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김선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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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부터 눈을 사로잡는다. 강렬한 푸른색의 초상화와 빨강 띠지 같은 강렬한 속지에 그만큼 강렬한 문구가 씌어져 있고 마지막으로 노란 속지가 살짝 비친다. 그야말로 강렬하다. 의도적으로 속지와 표지 길이 차이를 둔 것도 무척 아름답게 느껴진다. 책은 제목 그대로 그동안의 미술사에서 능력과 재능이 충분함을 이미 입증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잊혀지거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미술사들을 소개한다. 1부는 "가부장 수레바퀴 아래에서 예술혼을 불태우다.", 2부는 "편견과 억압을 담대한 희망으로 바꾸다.", 3부는 "경계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다"로 구성되어 있지만 3부를 제외하곤 특별히 차이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 속 여성 화가들은 모두 힘든 역사 속에서 홀로 싸우며 맞선이들이기 때문이다. 


"여성 화가들은 미술사에서 오랫동안 배제되고 소외되어 왔다. 린다 노클린이 지적했듯 오랜 가부장 사회가 만든 성차별적 가치관 때문이다."...10p


사실 생각해 보면 이 성차별적 가치관은 어쩌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아주 옛날인 중세에는 얼마나 더했을지 충분히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자신을 굽히지 않고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온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 한 편 한 편이 정말이지 감동적이다. 


대부분의 여성 화가들은 어쩌면 지금의 여성들처럼 결혼과 동시에 가정에 충실함을 요구하는 사회로 인해 자신의 재능과 정체성을 숨겨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하면 몇몇은 아버지의 재능을 대신하기 위해 이용되고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일생을 끝내기도 했다. 훌륭한 아버지들도 있다. 어릴 때부터 딸의 재능을 알아채고 적극적으로 미술 교육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거나 직접 가르치기도 하는 등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은 또다른 남성 중심의 미술 사회에서 아무리 자신을 내보여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은 진실로 훌륭한 작품을 창작할 수 없다고, 회화와 조각은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때문에 여성은 자수나 공예, 수채화에 적합하다는 고정관념에 말이다. 


일찍부터 곤충에 집중하고 그 곤충을 과학자와 화가로서 적절한 눈으로 그려낸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재능을 알아본 친아버지와 인정해준 의붓아버지의 도움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 숙주와 변태 등이 모두 담긴 그녀만의 걸작을 만들어낸다. 3부를 장식한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단지 회화에 머물지 않고 종이 오리기나 직물 디자인, 패션 디자인과 실내 디자인, 정원 디자인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 속에서도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낸 이들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한 권에 담겼기에 이 인물들의 인름이나 이야기가 모두 기억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읽는 내내 감동했고 이 책 한 권 자체로 가슴에 와닿았다. 이 많은 인물들 중 내가 아는 이름이 단 하나였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지 모른다. 앞으론 제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껴지거나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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