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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난 장미 인형들
수잔 영 지음, 이재경 옮김 / 꿈의지도 / 2020년 5월
평점 :
절판
처음 표지를 볼 땐, 참 가벼운 소설이겠거니~ 했었다. 비록 제목에 "깨어난"이라느니 "장미"라느니..."인형"이라느니 심지어 이것들이 모두 합쳐져 뭔가 의미심장한 제목으로 구성되었지만 무척이나 예쁜 표지가 그런 제목을 싸그리 무시하게 했다. 물론 앞 표지에는 "<시녀 이야기>의 계보를 이을 젊은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쓰여 있어서 대강의 내용은 파악이 됐다. 그래서 더, 주제는 있지만 가벼운 소설일 거라 내 맘대로 상상했나 보다.
처음부터 소설은 진도가 무척 빠르다. 필로미나의 1인칭 시점으로 벌어지는 사건과 필로미나의 시선, 생각들이 엉켜서 뭔가 괴리감을 느끼게 되면... 그때부터는 헤어나올 수가 없다.
"우리는 우리를 보살피는 남자들을 노엽게 해서는 안 된다."...32p
이때부터였나 보다. 도대체 이 소설이 어느 시대 이야기인지 앞 표지를 들춰 작가 연혁도 읽어보고(몇 년생인지 나와있지가 않다.) 자꾸만 뒤 페이지를 들춰보았던 게. 나로선 요즘 시대에 어린 학생이 저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됐기 때문인데, 그렇게 뒤 페이지를 들춰보다 찾아낸 건, 이 책이 크라우드 펑딩으로 제작비 일부가 충당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우와~! 나도 알았다면 일조했을텐데... 그만큼 가치있는 책이다.
필로미나가 소속되어 있는 학교는 무척 폐쇄적이다. 아름답고 총명한 여자 아이들을 전국에서 선별해 뽑아 교육하는 이 학교는 이 여학생들을 가장 훌륭한 여성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조금의 흠집이나 잘못된 예절은 용납되지 않는다. 처음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소중하게 이 학생들을 보호하나 싶다가도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입 다물고 듣기만 하라거나 닥치고 시키는 대로나 하라거나..하는 교사와 학교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뱃속이 뒤틀리기 시작하고 가슴이 쿵쾅대고 답답해진다. 도대체 이 학교가 뭔데? 뭘 하는 학교길래 21세기에 여자 아이들에게 이런 말도 안되는 것들을 가르치나 싶다.
필로미나가 깨어나는 과정이 무척 흥미롭다.
"그의 말투가 내 피를 분노로 끓게 한다. 레베카에게 그따위로 말하지 말라고 쏘아붙이고 싶다. 이곳에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비정상인지, 이제 슬슬 보이기 시작한다. 그게 보일수록 - 그걸 바꾸고 싶어진다."...194p
필로미나를 응원하게 된다. 제대로 깨어나 모든 걸 바꿔보라고. 너무 위험하면 그곳에서 벗어나기라도 하라고.
나 또한 어느 정도는 그렇게 자랐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문제 의식은 할 수 있지만 그 뒤까지 생각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적어도 우리 딸들은 그렇지 않기를~. 도대체 어느 시대 이야기야~하던 생각도 잘못임을 깨닫는다. 아직도 우리는 조용하기를, 입 다물고 가만히 있기를, 시키는 대로만 하기를 강요받고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어도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어도 그러한 것들은 무의식중에 세뇌당하고 있다. 또한 더욱 심한 강요가 이 세상 어딘가에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포일러가 될까 결말 부분을 언급하고 싶진 않지만 뒷부분의 설정은 사실 조금 실망스럽기도 했다. 굳이 SF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싶어서이다. 오히려 있는 그대로였다면 훨씬 더 주제가 강조되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분명 의미있는 책이다. 순식간에 마음 졸이며 읽을 만큼 재미와 주제까지 모두 갖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