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허밍버드 클래식 M 3
가스통 르루 지음, 신소영 옮김 / 허밍버드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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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6학년 때인가... 한창 명작을 빌려읽던 시기에 잠깐 스치듯 읽었던 편집본이 내가 읽은 <오페라의 유령>이다. 아마도 짧은 책으로 대강 읽었기 때문인지 전체 내용은 커녕 단편적인 이미지만 기억하고 있다. 호수 같은 곳, 어둡지만 잔잔한 물결 위 보트 같은 배 위의 검은 망토의 사나이가 긴 노를 잡고 서 있는 모습, 그 남자의 얼굴엔 가면이 씌워져 있다. 하지만 이 단편적인 이미지도 어쩌면 수많은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 포스터나 수많은 원작 책의 단편적 표지들이 얽혀 내가 만든 이미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아주 오랫동안 해 왔다. 그래서 이 작품은 내게 숙제 같은 책이다. 


허밍버드 출판사의 허밍버드 클래식 M 시리즈는 뮤지컬과 오페라의 원작소설을 예쁜 패턴 표지로 엮어 만든 감각적 문학 시리즈이다. 보통의 유명한 뮤지컬이나 오페라 작품의 원작들은 유명세를 따라 가장 유명한 장면을 표지로 사용하는 편인데 이 클래식 M 시리즈는 매우 감각적인 표지를 내세워서 오히려 차별점을 둔다.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라면 다양한 버전의 책을 소장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을 테이고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분명한 차별점이 된다. 제법 두껍지만(496페이지) 양장도 아니고 종이도 가벼워서 곁에 두고 틈틈이 읽기 좋다. 


본격적으로... 사실 어렸을 때 읽었다는 기억만 있을 뿐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고, 뮤지컬도 본 적이 없으므로... 처음 읽는 <오페라의 유령>으로 봐도 되겠다. 뮤지컬을 찾아본 적도 없어서 그 어떤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읽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유령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새로운 사건(한 남자의 죽음)에 로맨스까지 등장하니 잠시도 쉴 틈이 없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다보니 조금 정리가 안되기도 하고 어느 정도 이 작품의 배경을 인식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린 것만 빼면, 가독성도 무척 뛰어나고 끝도 없는 사건과 로맨스, 미스테리 속에 푹 빠져 들어갔다 나올 수 있다. 


서사성이 뛰어나다는 점과 사건을 추리해나가는 힘, 공간을 이용한 장치 등을 생각한다면 뮤지컬로 대박이 날 수밖에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유명해서 다들 들어본 음악들이 어느 장면의 노래들인지 궁금해서 책을 읽어나가며 하나하나 찾아 듣는 노래의 재미도 쏠쏠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도 무서울 정도로 기괴하게 태어난 아이, 그 아이가 살아남기 위해서 익힌 기술들은 그를 정점에 세우기도 하고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가 원한 건, 그저 남들처럼 평범한 일상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외모로선 그런 흔한 평범은 거부된다. 그렇다고 에릭을 동정할 수만은 없다. 


소설을 읽으며 가장 중요한 건 공간적 배경의 이미지화일 것 같다. 신기한 무대장치로 인간을 유령처럼 속이게 만든 것들이나 오페라 하우스 지하의 호수, 고문실 같은 것들, 통로에서 통로로 이어지는 미궁을 어떻게 이미지화 하느냐에 따라 지루하게도, 재미있게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파리 코뮌이라는 단어를 아무것도 모른채 지나갈 수도 있었을 것을, 얼마 전에 읽은 <라 벨르 에뽀끄> 덕에 더욱 풍부한 독서가 될 수 있었다. 어쨌든, 숙제 하나를 잘 끝낸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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