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깊은 바다
파비오 제노베시 지음, 최정윤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이상하다. 나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자란 파비오의 이야기를 읽는데, 내 어린 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현재의 나도. 지금 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진정한 성장소설이 아닐까 싶다. 전혀 다른 환경 속의 이야기지만 그 안의 내면의 생각과 걱정, 성장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아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음에 더 와 닿고 파비오의 상황에 더 공감하고 더 마음 아프고 더 뿌듯해진다. 정말 오랫만에 완소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너무 소중해서 빨리 읽어버리는 게 싫을 정도였다.


파비오는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워낙 동떨어진 동네였고 그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라곤 파비오네 가족과 할머니, 할아버지의 형제들 뿐이라서다. 그래도 심심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많은, 10명이나 되어 서로 파비오를 차지하기 위해 바쁜 삼촌 할아버지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하지만 파비오는 학교에 들어가 지금까지 자신이 즐겼던 놀이라든가 아는 지식들, 자신이 알아왔던 모든 세계가 전혀 쓸모 없었음을, 아이들의 세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음을, 진짜 알아야 하는 세상을 이제 만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록 삼촌 할아버지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굳이 이런 삼촌 할아버지들과 비슷한 사람들을 찾으라면 내겐 시댁을 들 수 있겠다. 애정 표현이 거침없고 빈말이 난무하며 가족들끼리의 화합을 중요시한다. 함께 있어도 별 말이 없고 말이 없어도 당연히 알아주겠거니 생각하고 말보다는 행동으로 표현하는 우리 가족과는 너무나 달랐다. 결혼해서 한동안은 얼마나 힘들었던지. 내 세상에서 다른 세상을 알아간다는 건 정말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파비오는 자신의 속도대로 천천히 그들의 세계로 나아간다. 비록 자신에게는 삼촌 할아버지들이 겪은 엄청난 저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간다. 


"어쩌면 세상 한가운데에서 우리 가족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럽기 그지 없고 미치광이들로 가득할지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엔, 주변 세상이 존재하지 않고 외부에서 우리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만 없다면 그야말로 멋지고 놀라운 것들이 넘치는 가족일 것이다."...120


파비오에겐 너무 과도한 삼촌 할아버지들을 통제하는 할머니도, 그의 순수함을 지켜주려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엄마도, 말보다는 행동으로 사랑과 애정을 드러내는 아빠도 있었기에 중심을 잘 잡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가족에게 어려움이 닥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아빠 곁에 머물며 책을 읽어주고 사랑을 표현하는 파비오를 보면 말이다. 


성장 소설을 읽을 때, 그 아이가 겪는 사건들과 그 아이의 변화가 주를 이루고 감동을 주게 되지만 <물이 깊은 바다>는 그런 파비오의 성장뿐만 아니라 파비오의 생각 한 줄, 한 줄 모두 보석이 되어 가슴에 박힌다. 내 아이들도 그렇게 흔들리지 않고 가슴 가득 세상을 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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