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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 - 눈물 나게 외롭고 쓸쓸했던 밤 내 마음을 알아주었던 시 101
김선경 엮음 / 메이븐 / 2019년 7월
평점 :
사춘기 때 나는 나름 문학 소녀였다. 소설로 시작된 독서는 가장 반항이 심할 시기인 중학생 때에는 시로 발전했다. 어느 시인이 15이 가장 교만한 나이라고 했다는데 그때의 나는, 그랬던 것 같다. 허세에 젖어 제대로 뜻도 모르면서 겉멋 가득한, 아름다워 보이는 시만 골라 빈 노트에 필사해 놓았다. 안타깝게도 그 치기 어린 노트는 사라지고 없지만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그 시절을 통해 얻은 단 하나의 시가 있다. 윤동주 님의 "길".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다른 시들은 분명 내 겉멋 가득한 시였지만 윤동주 님의 "길"만큼은 내 내면에 와닿은 시였다. 그리고 그당시 유일하게 외웠던 시라는... 지금 40 중반의 나이에 다시 읽어 보니 내 정체성을 찾아 헤매던 그때의 나 자신에게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시절의 문학 소녀임을 자처하던 때가 무색하게 지금은 그저 책을 좋아하는, 조금 아는 척을 할 수 있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 고등학교 시절의 주입식 교육 탓인지 그렇게 책을 좋아하면서도 시집은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그래도 시는 내게 영원히 가지고 싶은 저 하늘의 별인 것 같다. 서점에 가면 한 번 들여다 보는 곳, 독립 서점에서 정지용의 시집 한 권을 사올 수 있는 여유와 <도깨비> 속 김인육 님의 "사랑의 물리학"에 흠뻑 빠질 수 있는 감성은 아직도 조금 남아있다. 이 시는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는 억압감에서 조금은 벗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시 하나쯤 가슴에 품고 산다>라는 제목은, 마치 시 한 구절처럼 가슴에 와닿는다. "누구나"라는 단어가 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거꾸로 "누구나" 그랬으면 좋겠다로 해석한다면, 더욱 멋지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내게는 윤동주 님의 "길"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그저 좋아하는 시 이외에 내 가슴에 품고 살고 싶은 시는 아직 만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이다.
표지 날개의 저자 소개와 프롤로그 속 저자의 글을 먼저 읽어본다. 저자 삶의 굴곡짐에 안타깝고 그 어려운 시기마다 시가 그에게 위로, 위안이 되었음에 진심 부럽다. 책은 모두 8 챕터로 나누어 그때그때마다 도움이 되었던, 깨달은 것, 고민될 때, 위안이 된 시를 소개하고 있다. 무려 101편이다. 간혹 외국 작가의 시도 있지만 대부분은 한국 작가의 시이다. 그런데 어쩜 내가 아는, 읽어본 적이 있는 시가 이렇게 없을까......
평소 나태주 님의 시를 좋아했던 덕분인지, 아님 지금 내 상황 덕분인지 이 101편의 시 중 나태주 님의 "세상 일이 하도 섭해서"라는 시가 훅 들어온다. 시는 시를 쓴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썼든, 시를 읽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시를 읽는지에 따라 다른 해석이 붙을 수 있다. 해석이라는 단어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시는 그저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101편의 시가 지금 당장은 와닿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내 인생 어딘가에서 또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좋은 시집 한 권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