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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멤버
카슨 매컬러스 지음, 채숙향 옮김 / 창심소 / 2019년 2월
평점 :
내 12살을 생각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통틀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객관적으로 따지자면 단연 1위는 아니지만 정서적으로 감정적으론 그때가 1등이다. 뭐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반장이니까 당연히 발표를 잘해야 한다 매일 괴롭히고 말도 안되는 정육점 심부름을 시키던 담임이나 매일 밤 커다란 소리로 들으라는 듯 싸워대던 부모님의 목소리도 한몫 했겠지만 그보단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나 자신을 어쩌지 못했던 감정이 가장 컸던 것 같다.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무엇이 옳은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만 싶었다. 매일 밤 침대에 누우면 어떻게 하면 사라질 수 있을지 궁리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처음 <결혼식 멤버>를 보았을 땐 그저 그런 성장소설인 줄 알았다. 다만 우리나라 청소년 소설의 뻔한 스토리가 아닌 미국에서 벌어지는 우리와는 다른 문화 속의 여자아이가 성장해 나가는, 그 와중에 아주 재미있는 결혼식 에피소드가 들어있는 이야기라고 말이다. 하지만 조금씩 읽어나가며 이 책이 그리 녹록치 않음을 깨닫는다. 자칫 잘못하면 프랭키의 의식을 따라잡을 수 없어 다시 뒤로 돌아간다. 프랭키라는 허무맹랑하고 당돌하며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는 이상한 여자아이의 이야기라고 내 마음대로 결정해 버릴 즈음, 이야기는 2부 재스민의 이야기로 옮아간다. 그리고 그 재스민의 야이기는 내게 공통의 경험을 떠올리게 하고 어서 달아나라고 응원을 하게 하며 아무 일 없기를, 어머니의 마음으로 기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3부 프랜시스로 옮아간다.
끝도 없이 쨍쨍한, 너무나 지루한 여름 동안 프랭키는 키가 훌쩍 커버린다. 아이라고 할 수 없을만큼 키가 커버린 프랭키는 아빠의 침대에서 쫓겨났고 이제 더이상 이 세상의 일원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방황한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의 일원이 될 수 있을지. 그러다 오빠의 결혼식이라는 사건을 통해 그들과 함께 "우리"가 되고자 했다. 어느 클럽에도 속하지 못해 친구 하나 없고 자신은 이미 다 큰 것 같은데 아이 취급을 하면서도 너무나 커버린 키 때문에 진짜 아이들처럼 보호받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이 마을을 떠나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오빠와 새언니를 따라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길 원했던 것이다. 그렇게 아이의 세상을 떠나 어른의 세상에 소속되고 싶었던 프랭키는 스스로를 재스민이라 부르며 오빠 결혼식의 멤버로서 생각을 부풀린다. 그리고 인정받기를 원한다. 프랜시스는 좌충우돌 속에서 겉만 여성인 척 했던 재스민을 버린, 진정한 프랭키의 자라 이름이다. 그 와중엔 많은 좌절과 사건들, 생각, 새로운 소속 등을 겪게 되지만 그렇게 아이는 조금씩 성장한다.
자신의 생각이 옳은지 옳지 않은지를 실험하거나 도대체 어찌해야할지를 모르는 것이 비단 청소년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은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계속해서 성장한다. 여전히 나에겐 풀지 못할 많은 문제들이 쌓여있고 때로는 모른 척, 때로는 당당하게 헤쳐나가지만 매일 매 순간 끈임없이 고민하고 아파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결혼식 멤버>가 일련의 성장소설처럼 읽히지는 않은 것 같다. 왠지 프랭키의 그 말도 안되던 상상이, 행동력이 그나마 나를 대신해 줄 것 같은 공감의 아픔과 고민의 흔적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