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호실로 가다 - 도리스 레싱 단편선
도리스 레싱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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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스 레싱이라는 이름은 역시, 노벨문학상 이후에 익숙해졌다. 굉장히 예리한 작품들이라는 소개를 본 것 같은데 아직 그녀의 작품을 접해보지 못했다. 너무 어렵지 않을까...하는 두려움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시도도 해보지 못할 것 같은 느낌에 뒤로 미뤄놓기만 했다. 그러다 단편이라면...이라는 생각에 <19호실로 가다>로 시작했다.

 

첫 작품 "최종 후보명단에서 하나 빼기"부터 무척 불편하다. 이 작품이 쓰여진 때가 1960년대라는데, 읽으며 계속 떠오르는 건 최근까지 이어지는 미투 운동과 패미니즘 운동이다. 미투 운동 전에 읽었다면 불편하지 않았을까. 아닐 것 같다. 내가 여성이고 여성으로 성장하기 이전부터 스스로 그런 부당함, 불편함, 혐오감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스펜스의 뻔뻔스러움에 당황스럽고 바버라의 당당함과 포기에 또 한 번 당황한다. 아마 작가 도리스 레싱이 여성 작가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읽어다면...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끝내지는 않을 거라는 기대 때문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정의라거나 정당함과는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결말이나 이야기보다 더 눈에 띄었던 건 스펜스의 심리 묘사이다. 한 순간, 한 순간 계속해서 이어지는 양가 감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는 사실이다.

 

도리스 레싱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 대해서도 무척 잘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느 하나의 성보다는 인간 자체를 잘 이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변해가는 세상과 환경 속에서 적응해야만 하는 사람들(대부분은 여성이지만)의 다친 마음을 정말로 예리하고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내가 마침내 심장을 잃은 사연"이나 "영국 대 영국", "한 남자와 두여자"에서는 히스테릭한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때론 판타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때론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어떤 상황이든 이 작품들 속 주인공들의 고민과 아픔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도리스 레싱의 단편들이 마냥 우울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작가가 희망을 이야기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 봐요. 그렇게 흥분할 필요가 없어요. 그렇죠? 내 말은, 힘든 일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에요. 다른 방법은 없어요."...186p

 

그렇기에 전체 작품들 중 "19호실로 가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가족의 이야기이고, 모든 엄마, 아내들이 겪는 공통된 감정인 동시에 인간이 갖는 외로움과 고독을 처절하게 그려낸다. 인생에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각자가 중심을 갖고 살아야 하느 것이지만 살다 보면 쉽지 않다. 나의 "무엇"을 찾기 전에, 엄마로서 아내로서 한 가정의 일원으로서 희생하고 우선시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설 속  수전이 원하는 온전한 고독에 온전히 공감한다. 그러므로 그녀가 선택한 결말이 너무나 안타깝다. 아니... 그 결정마저 인정해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만큼 더 그녀에겐 벗어날 수 있는 구멍이, 숨 쉴 틈이 없었다는 증거일테니...

 

이제 그녀의 장편에 도전해 보아야겠다. 읽기 불편하다고, 생각하기 귀찮다고 넘기다 보면 내가 당했던 부당함이 내 딸들에게도 이어질테니. 용기내어 도전하고 부당하다고 소리내는 그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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