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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만 나면 딴생각 - 아무 것도 아니지만 무엇이든 되는 생각
정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8년 3월
평점 :
어릴 때엔 참 공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딴 생각 중이어서 깜짝 놀라곤 했는데 그런 시간이 꽤 많아서
스스로도 난 왜 이렇게 쓸데없는 생각을 많이 할까... 고민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정말 쓸데없는 생각이었을까. 그때 했던 생각은 주로
"상상"이었다. 소행성이 지구로 와 부딪히면 어떻게 될지, 외계인이 내게 오면 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의 SF적인 상상에서부터 내가 사실
고아라면 난 어떻게 살아갈지, 미래에 어떤 사람과 결혼할지 같은 미래에 대한 엉뚱한 계획을 세워보기도 했다.
요즘 내가 딴생각을 해본 적이 있나? 아닌 것 같다. 약간 두려운 일에 대해 마인드 컨트롤을 하느라 여러 번 내가 해야 할 말, 해야 할
행동 등을 떠올려본 적은 있지만 어릴 때처럼 지금 현실과 조금 다른 상상을 해본 적은 없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늙긴 했구나...하고.
또한 내 아이들이 멍때릴 때마다(나 어릴 적 상상하던 순간이 멍때리는 때였는데도) 뭐 하는 거냐고 정신 차리라고 할 때도 있었는데 요즘 둘째를
키우면서는 조금 조심하게 된다. 아마 멍 때리며 딴 생각 하는 중요성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딴생각>은 카피라이터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책이다. 난 잘 몰랐는데 카피라이터 정철은 각종 영화, 지방
선거, 그리고 대통령 선거 캠페인 카피에 이르기까지 30년째 수천 개의 카피를 써온 대한민국 대표 카피라이터라고 한다. 그런 작가가 이 책에
"브레인스토밍 에세이"라고 이름 붙였단다. 가장 창의적인 직업답게 하루종일 생각을 가지고 "관찰하고, 발견하고 확장하며"(...5p)
늦가을의 풍경에서부터 발명품, 격언, 속담, '잡'이라는 글자, 우리 몸 부위 구석구석, 동물들, "왜"라는 질문, 걷는 길에 보이는
장소, 감사한 것들에 대해.... 작가의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이 없다. 그뿐 아니다. 나로선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다른 시각을
보여준다. 뻔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입장에서, 다른 시각에서 보여준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보여줄 뿐이지만 읽는 독자로선 놀랍기만 하다.
어찌 보면 말장난 같지만서도 그 안엔 깨달음이 존재한다.
그저 나이가 들었다고 상상을 하지 않았다는 건 변명일 것이다. 여유가 없었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도 모르게 이제 어른이 됐으니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고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생각의 유연성이 바로 여기서 차이나는 것이 아닐지. 잠깐이라도 다른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