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rra Madre사이트의 이미지>

 

테라 마드레 Terra Madre 운동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에는 현재 및 미래의 삶에 대한 두려움과 나라 간, 계층 간, 민족 간이 분열, 그리고 엄청난 소비의 한켠에서 철저히 소외된 계층들의 절망이 만연해 있다. 슬로푸드 국제본부에서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기 위해 '테라 마드레 Terra Madre' 운동을 펼치고 있다.

 

테라 마드레 Terra Madre의 시작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테라 마드레 Terra Madre는 지난 2004년 10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인 튜린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테라 마드레 즉 '대지의 어머니, 지구'라는 뜻을 가진 식량 공동체들의 경이로운 모임이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

 


<Terra Madre사이트의 이미지>

 

테라 마드레 Terra Madre의 구성

주최자인 슬로푸드 국제본부의 모토는 "맛있고 건강하고 다양한 식량을 재배하고 섭취하는 문화를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개혁의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참여 국가는 모두 130개 나라이며 회원은 1천2백여 식량 공동체에 소속죈 5천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테라 마드레 Terra Madre의 주제

지금 슬로푸드 회원들은 나라와 민족과 문화가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어머니인 지구, 즉 테라 마드레와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식량이라는 주제 아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가난한 농부가 됐든, 한 나라의 황태자가 됐든, 모든 회원들은 한 인간으로서 동등한 목소리를 낼 수 있다.

 

테라 마드레 Terra Madre

원래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고 있던 농부들이 만든 작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 이 농부들은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종의 다양성, 전통 문화와 전통 지식이 말살되는 것은 물론 거대 자본에 의해 소농들과 지역경제가 파탄을 맞고 있는 현실에 맞서 농촌에서 쫓겨나기를 거부하고 끝까지 이 땅에서 살아남기를 결의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의 식량 공동체들과 손을 잡고 전 세계적으로 입맛이 일원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지역적 특성과 전통을 살린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함께 건설해 가기로 결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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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1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출판사에서 좋은 책이 많이 나오네요.
테라 마드레에 대한 소개를 다른 싸이트에서 읽었는데
좋았어요.
 


 
 
 

 

 

Focus. 테라, 마드레 공존을 위한 먹을거리 혁명 

 

 






 

공포의 먹을거리로부터 자유 선언,
테라 마드레!!

역사상 식량으로 이용돼 오던 8만 종의 식용작물 중에서 오늘날에는 단지 150종만이 경작되고 있고, 실제로 세계적인 교역이 이루어지는 작물은 겨우 8종에 불과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63억 명이 살고 있는 지구에는 120억명이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생산됨에도 불구하고, 8억 명이 영양실조와 기아로 고통 받고, 17억 명이 과식으로 인한 비만으로 고생하고 있다. 또한 건강한 음식보다는 효율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생각하는 기업형 농업회사가 양산한 환경과 생태파괴, 유전자 변형, 종자의 단일화 등의 폐해로 인해 지금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위기상황에 처했다. 

 
 
 

삶의 뉴 패러다임, 로컬푸드
농부들은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종의 다양성, 전통 문화와 전통 지식이 말살되는 것은 물론 거대 자본에 의해 유기농과 지역 경제가 파탄을 맞고 있는 현실에 맞서 농촌에서 쫓겨나기를 거부하고 테라 마드레에 모야 이 땅에서 살아남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지역의 식량 공동체들과 손을 잡고 전 세계적으로 입맛이 일원화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물론 로컬푸드, 즉 지역적 특성과 전통을 살린 다양한 식생활 문화를 함께 건설해 가기로 선언했다.

 
 

 

▶ 반다나 시바는 굉장한 창조적 에너지와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_더 프로그레시브

▶ 마이클 폴란의 접근 방법은 아주 솔직하다. 그의 명분은 공정하고, 그의 사고는 명료하며, 그의 글은 아주 매력적이다. _ 워싱턴포스트

▶ 카를로 페트리니는 먹을거리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었다. _ 타임

 
출간일자
2009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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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어머니께서 추천하셔서 읽게 된 '분홍 벽돌집'. 아주머니께서는 나에게 이 책을 건네실 때 '무서운 책'이라 하셨는데, 겉표지를 보니 정말로 묘한 무서움이 느껴졌다. 난 그렇게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준과 수경이는 나와 같은 나이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행동을 더 이해할 수 있었다. 수경이의 행동에 공감을 느낀 부분이 없잖아 있었다. 우리 나이때에는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없다. 서빙 알바를 하고 싶어도 18살이 넘어야 하고, 게다가 술집이라하면 미성년자는 아예 들어가지도 못할 뿐더러 햄버거집 알바도 거의 19살정도가 되어야 할 수 있다.  

우리 나이때에 돈이 뭐가 필요있겠냐고 묻는 어른들 정말 많다. 지금은 혈기왕성한 10대이다. 더 예뻐보이고 싶고, 더 날씬해보이고 싶고, 더 꾸미고 싶은 욕구가 차오른다. 어른들은 다들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때는 안꾸며도 예뻐." 하지만 우리들 입장에서는 눈에 뭔가 좀 더 바르면 눈이 커보이고, 입에 좀 바르면 입이 생기있어 보이는 걸 느끼면서 자기만족을 한다. 그리곤 예쁘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이 뭐라하든지간에. 우리 때에는 먹고 싶은 것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사고 싶은 것도 많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 단지 부모님의 용돈에만 의존할 뿐이다.  

그런데 수경이는 내가 생각하기에 용돈을 안 받는 것 같다. (수경이 말대로라면) 그렇다고 해서 몸을 파는 것은 해서는 안될 짓이다. 자기의 몸은 그 누구의 몸도 아니다. 나 자신의 몸이기 때문이다. 먼 사람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가까이 느껴진다. 그이유는 이것이다. 가끔 심심할 때 채팅을 할 때가 있다. 모르는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굉장히 기쁘고,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그 채팅을 했을 때마다 쪽지나 대화가 한두 통씩 꼭 온다. 돈 많으니까 오라고 말이다. 또는 성적인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가 크니 작니 하며 말이다. 그 말을 하는 사람들 모두 남자였다. 그래서 난 살짝 남자란 존재가 두렵게도 느껴졌다. 그런데 성적인 만족을 느끼기 위해 만들어진 방들 중 정원이 꽉 찬 방이 있었다. 그렇다, 여자도 동의를 한다는 것이다. 경악했다. 과연 그 여자들은 그 남자가 좋아서 만나는가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단지 돈!이라는 전제하에 만나는 것이다.  

다시 수경이로 돌아가자, 가시엉겅퀴 그녀, 아름답지만 찔릴까 두려운 존재. 그녀는 굉장히 아름답다. 하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다. 수경이도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다. 가시, 뾰족한 것, 찔리면 아픈것. 자신의 아름다움이 가시라는 것에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노숙자를 때린 혐의를 가진 준. 그의 삶은 웅이를 만난 후 급속도로 아래로 치닫았다. 준을 보니 꼭 우리 학교 남자애들이 떠올랐다. 남자애들은 무엇이 멋있다라고 생각을 할까. 놀아보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는 아이들을 보니 불쌍하다라는 생각이 났다. 자신보다 레벨이 높으면 굽실거리고 자신보다 레벨이 낮다 싶으면 떵떵거리니 어이가 없었다. 담배피고 술마시면 노는 줄 아는 그들. 정말 꼴불견이다. 나도 하라면 할 수 있다. 그것쯤이야, 하지만 난 더러워서 안 할 뿐이다. 겉에서 봤을 땐 멋있을 지 몰라도 폐를 보면 너무나도 더러울 테니까. 웅도 아마 그중 한명일 것이다. 아니다 그들보다 더한 존재이다. 친구를 개떡으로 보니까 말이다. 말도 안되는 '우리들의 수칙'을 주장하며 한 아이의 삶을 벼랑끝으로 내던지게 했으니까 말이다. 진정한 우정이란 서로를 감싸는 건데 '우리들의 수칙'에서는 웅을 위한 수칙일 뿐이다. 하지만 나였어도 '우리들의 수칙'에 따랐을 것이다. 맞는 것이 두려워서... 그렇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이다. 맞는다는 것은 육체적고통이다. 하지만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족보에 빨간줄이 그어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육체적 고통보다 더 할지 모른다. 취직할 때도 결혼 할 때도 모든 것의 걸림돌이 될 것이니까. 하지만 다행인것은 준이가 새로운 인생을 찾았다는 것이다. 한남자, 털보아저씨로 하여금 자아를 되찾은 것이다. 

이 두명의 공통점은 이것이다. 사회가 이 둘을 내친 것. 누군가가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주었다면 안 일어났을 일들이었다. 우리 나이 때에는 부모라는 것이 굉장히 소중하다. 하지만 우리 나이 또래들은 그런 것을 잘 못 느낀다. 나 또한 그렇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부모님과 대화하는 일은 거의 없고,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나의 얘기를 말한다. 내 친구들과 얘기를 하면 서로 공감하면서 친해질 수 있고, 편하고, 내 이야기에 맞장구도 잘 쳐주니까 말이다.  

몇몇 이렇게 느끼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우리 자녀는 아마 저와 제일 친할 거예요. 그건 어른들만의 생각이다. 어른들은 거의 어른의 틀에 맞추어서 생각을 한다. 말이 통할 리 있겠는가. 예를 들자면 우리 어머니와 나의 대화는 이렇다. "나 내일 친구들이랑 놀러가","공부는 하고 노는 거니? 시험 성적 이렇게 맞고선 놀 생각이 생기니?" 우리 두 모녀의 대화의 끝은 서로 화내고 끝이 난다. 어느 집안이나 똑같을 것이다. 애들과 대화해 보니 다들 나와 같았다. 절대 어른들은 이런 것을 묻지 않는다. 그애는 어떻게 생겼니, 그애는 무엇을 좋아하니, 너랑 얼마나 친하니, 그애랑 어떻게 친해졌니 같은 질문 말이다. 그러니 부모간의 대화는 거의 하질 않을 수 밖에. 누가 짜증내면서 말을 하고 싶을까 말이다. 내일이 되면 이런다. 공부는 하고 가니, 몇시에 오니, 빨리 놀다가 와서 책 좀 봐라. 기분 좋게 놀러갈 마음이 생기겠다 말이다.  소통이 안되니 자신을 알아주는 친구를 찾는 것이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이다. '분홍 벽돌집'에서 나오는 체육선생님 정도는 아니지만 그들은 전혀 우리에게 다가올 생각조차 안한다. 우리가 말을 걸어도 대화가 잘 통하지가 않는다. 대화가 안된다는 것은 선생님은 물론이거니와 대화를 나누는 자신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마음을 좀 더 열어준다면 우리는 그들(우리를 이해 안 해주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만큼 꼴통이지도, 삶의 걸림돌도, 아무것도 아니다. 희망으로 가득 찬 우리이다. 

written by 중3 김민영(파란흙)

 


 

윗 글은 『분홍 벽돌집』에 나오는 주인공과 또래의 아이가 쓴 글입니다.
이 책을 읽은 어른들은 다들 '어른'으로서 '이해'를 한다고 하지만
또래의 아이가 이 책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또 다른 거겠죠.
전 아직 미혼이어서 아이가 없지만 중학생 조카가 있어서 아무 일 없이 잘 자랄지
살짝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마도 저 역시 파란흙님처럼 이 책을 읽어보라고 준다면 '무섭다'고 할 것 같았기 때문이죠.
(제 조카는 중1이어서 아직 건네지 못했습니다.-.-;;) 

민영이의 글을 읽고 저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니
저도 민영이와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것이 기억나더군요.
그랬으면서도 어른이 되면 치매에 걸린 사람마냥 왜 그 시절을 다 잊어버리는 걸까요?
그게 어른인가? 

암튼, 저는 민영이와 같은 아이들이 이 세상에 거의 대부분이라는 걸 믿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아무리 걱정하고, 선생님들이 아무리 불안해해도
자기는 자기가 지킬 줄 아는, 그런 똑똑한 아이들이 많다는 걸 말이죠. 

우리 아이들!! 홧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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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머리 속에서 쉴새없이 떠오른건 가네시로 카즈키당..  
그의 소설 GO의 느낌과 이 책은 쉴새없이 오버랩됐다. 

GO는 재일 일본인의 고등학교 삶을 그린 책이라면..
이 책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사는 인디언의 생활을 그린 책이다.  

자.. 어느 쪽이 더 처연할까?

남북으로 나눠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1세대가 아니라.. 나고 자란 일본에서 쉴새없이 이방인 취급을 받는 3세대의 재일 일본인. -_-+ 말하고 쓰는 것도 일본어가 더 편하고 듣는 음악도 일본노래, 보는 책도 일본 만화 인데도, 나보고 자꾸 한국인이란다. 그렇다고 한국에 가면... 동질감을 느끼냐... 하면 절대 아니다. 그곳에선 어색한 한국말을 하는 일본인일 뿐이다. 젠장. 10대란게 처음으로 눈뜬 사랑만으로.. 인생에 대한 계획만으로 짜증나 죽겠는데 정.체.성까지 찾으란다. 에라 모르겠당... 몸으로 부딪치자.

남성 작가라.. 몸으로 부딪인다. 말이 아니라... 

거대한 아메리카 대륙의 주인이었던 인디언 그러나 아놀드에게 세상이란 '인디언보호구역' 일 뿐이었다. 열에 일곱은 알콜중독자인, 세상으로 격리된 인디언 보호구역. 그들의 언어, 그들의 춤, 그들의 문화는 모두 세월 속에서 흩어져버렸고 백인들에게 구경거리고 전락해버렸다. 모든 것을 잃은 인디언들은 그들끼리 똘똘 뭉쳐 백인 사회를 저주했으며.. 그 저주의 방법은 알콜을 들이키거나 마약을 주입하는 것 뿐이다. 가난하고 추하고 헐벗은 인디언... 그리고 그걸 벗어날 희망도 사라진 스포캔 지역의 인디언 약골소년 '아놀드'는 스포캔을 떠나, 백인 사회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여성작가라, 말로 다 때운다. -_-+

난 짝퉁 인디언이 더 처연한거 같다. 물론 10대들이란 질풍 노도의 시기를 겪는 불쌍한 중생들이라.. 모두 조금은 안쓰럽기도 하지만... 사라진 문명의 끝을 잡고 지켜야 하는 미국인 인디언이 보다 힘겨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들의 주인공들은 처연한만큼 냉소적이다. 위트와 유머를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하긴 위트와 유머없이 어떻게 자신에게 닥친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으리요!!)  이 책들의 좋은 점은 동정심을 바라는 주인공들 내세워.. 내용의 동정심과 감상을 모두 짜냈다는 거다.  

아프면 아푸다고 울고.. 힘들면 힘들다고 징징거리고.. 어려울때 누군가 도와주길 바란다. 주인공의 '가오' 따위는 필요없다. 사는게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 탄생과 함께 깨달았기 때문에 겉멋따위 부릴 여유가  없다. ㅠㅠ

주인공들의 진상(?)을 보고 있자니.. 동정심과 감상에 젖어 들 시간이 없다.
냉소적인 그들의 말투를 따라서 끼득거리고 낄낄 거리게 된다.
그러나 보면 마지막 책장을 덮게 되고 눈물이 기어나온다.
울려고 하는게 아닌데.. 이 고등학생들이 분투에 감동감화되서 말이다.
그들도 사는데.. -_-= 18, 내 인생은 식은 죽 먹기야... 라며 주먹을 불끈 쥐게 되는데도.. 눈물이 기어나온다. 
 

아.. 놔... 어쩌라구... 

이 책을 누구에게 권할까?
일단 불면증 환자들.. 이 책 보고 나면 따뜻한 꿈을 꿀 수 있기 때문이고..
학교 가기 싫고 셤보기 싫다는 10대의 청소년들...
그리고 삶에 지친 우리 모두에게...
인디언들의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싶당. 

written by 다이어트의 여신(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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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물어가는 봄날 일요일 아침, 느즈막히 앉아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마시는 차 한잔에는 우리네 삶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없어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도 행복한 순간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 잔의 차』를 마시며 저는 그런 차 마시는 순간들을 생각하였다가 화끈 달아오르며 부끄러워지기 시작합니다.  

히말라야 등반시 길을 잃었다가 우연히 신세를 지게된 마을에 학교가 없음을 깨달은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이 다시 돌아와 산간오지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게 되고 그 일은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주인공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중앙아시아 협회'의 설립으로 이어져 수많은 학교들을 중앙아시아 지역에 설립하게 된다는 어쩌면 평범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서 만나게 되는, 만나야 하는 이야기는 학교의 설립과 그 고마움과 그 혜택에 대한 것들은 물론 거기에 더하여 이런 아름다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그 일이 어떻게 여러 사람들에게 퍼져나가며 인정받았는지를 깨닫는 일입니다. 그 속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한 눈길과 우리의 부족한 점을 한번 더 되돌아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회르니는 국제전화를 걸었다. 그는 스위스에 있는 어릴 적 친구에게 전화했다.
"나야, 장." 그가 프랑스어로 말했다.
"나는 카라코람에 학교를 지었네. 자네는 지난 오십 년 동안 무얼 했나?" 그자 자랑했다. (148)


장 회르니는 주인공 그레그 모텐슨의 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가장 큰 후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백혈병에 걸려 죽기 몇 주전에야 첫 학교가 설립되었고 그가 이 사실을 친구에게 자랑하는 장면이 바로 위의 글입니다. 책을 읽다 이 부분에서 울컥 눈물 한 방울 떨어집니다. 기부라는 일에 돈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상당한 양의 재산을 기부하고도 바라는 것이라곤 자신이 그 일에 큰 공헌을 했다는 사실, 그것도 언론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적 친구에게 자랑하는 모습은 한 사람의 품성을 오롯이 느끼게 해 줍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난 것도 주인공의 삶의 행보에 따른 것이겠지요.   

최근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해외 오지의 난민들이나 아이들에게 적지 않은 관심들을 쏟고 있습니다. 절대빈곤 - 굶어죽는 아이들이 없는, 기초치료를 받지 못하여 죽어나가는 아이들을 줄려나가는 운동에 많은 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참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앞서 그 길에 선다면 우리의 아이들도 함께 그 길에 나설 것임을 이 책은 주인공과 그의 달을 통하여서도 확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래저래 부모는 아이들의 거울임이 드러납니다. 슬쩍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아이가 아빠는,엄마는 이런 아이들을 위하여 조그만한 무언가라도 하고 있는지 물어볼 때, 그래, 아빠는, 엄마는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단다. 이제는 너도 함께 이 활동/기부를 해야겠지라고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이 책에는 이러한 뜻깊은 활동을 통하여 - 지은이는 파키스탄 분만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터에 이르기까지 학교 건립 등의 일을 합니다. - 마침내 우리를 깨우치는 커다란 울림이 탄생합니다. 예전에는 막연하던 느낌을 마침내 이처럼 확실한 선언으로 만나게 됩니다.  

"나는 테러와 싸우기 위해 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걱정되기 대문에 이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곳에서 일하면서 몇 가지를 배웠어요.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의 사람들이 단지 우리를 미워하기 때문에 테러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않게 되었어요. 죽음 대신 삶을 선택할 만큼 밝은 미래를 아이들에게 주지 못하기 때문에 테러가 생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04)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우리가 해야할 일들은 달라집니다. 우연한 계기로 산악 오지에 고마움을 표하러 시작한 일이 중앙아시아 어린이들의 미래를 바꿀 희망으로까지 번져나가는 과정이 실감나게 소개된 이 책은 원작을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개작한 것입니다. 덕분에 더 쉽고 재미있게 다가설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적지 않은 화보까지 더해져 있기도 합니다. 특히 끝부분의 주인공의 딸, 아미라가 들려주는 자신과 가족, 그리고 지금의 활동 이야기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아이들 스스로 이뤄나가는 '평화를 위한 동전 모으기'는 얼마전 랑딸도 학교에서 집에 가져온 "이웃사랑회" 동전 모으기 처럼 쉽고도 뜻깊은 활동입니다.  

하여 이 책은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과 반드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었으면 좋은 그런 책입니다. 지난 해부터 랑딸도 자신의 이름으로 한달에 얼마씩을 기부하고 있지만 그 참뜻은 제대로 느끼지 못할겁니다. 저도 랑딸과 함께 다시 한 번 이 책을 만나며 그 참뜻을 나눠보렵니다. 꼭 한 번씩 만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평화의 유산을 남기고 싶다면, 폭탄이 아닌 책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210)  

written by 들풀처럼(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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