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9월 14일 레바논의 대통령으로 취임하게 될 팔랑헤당 민명대의 지도자인 바시르 제마엘이 폭탄 테러로 살해 당한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랑헤당 민병대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의 무장 세력을 제거 한다는 명목으로 사브라와 샤틸라라는 지역으로 들어가 사흘(16~18)동안 노인, 여자, 아이들 3000여명을 학살하게 되는데, 이 사건이 바로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이다. 그런데 이 대량학살에 간접적이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연관이 있는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이스라엘이다. 이 사건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이 난민촌을 둘러 싸고 있었다고 한다. 그럼 왜 이스라엘은 막을 수도 있었던 이 사건을 묵인했을까? 살해 당한 바시르 제마엘은 친이스라엘 세력이었고, 이스라엘 정부의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라는것이 그 답이 될 것 같다. 이 책은 이 당시 난민촌을 둘러싸고 있던 이스라엘 군대에 복무한 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지면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 이스라엘의 괴뢰정부 수장 바시르 제마엘의 현수막 아래서 이스라엘 병사가 기관총을 휘두르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전쟁에 있어서 전쟁을 직접 일으키는 사람들은 전쟁과 관련해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는 반면, 정작 전쟁이 일어나는데 있어서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던 사람들은 그 피해를 온 몸으로 받는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은 살해 당함으로써 피해자고 되고,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살아남음과 동시에 그 당시 기억으로 고통받음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된다. 정작 전쟁을 일으킨 정부나 정치인, 고위 관료는 전쟁에 직접 참여한 국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들이 전쟁의 가해자가 아닐까 싶다. 진주만이라는 영화에서 ’전쟁에서 진 놈은 죽고, 전쟁에서 이긴 놈은 병신이 된다’라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이 대사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하마스가 전쟁중에 있다. 그런데 그 피해액과 사상자수가 PLO측이 이스라엘보다 100배정도 된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 정도면 이는 양국간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한쪽의 일방적인 공격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PLO측의 사상자수만도 6000~7000명에 달한다는데, 이는 30년전 사브라·샤틸라 학살사건과 다를바 없는 제2의 대량학살 사건이다. 그런데 더 기가 찬 것은 이 전쟁이 일어난 계기이다. 30년전과 같이 표면적인 이유는 무장단체의 제거이다. 그러나 실질적은 요인은 정치이다.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나는 정치라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은 올해 2월 10일이 총선 예정일이였다. 그런데 전쟁전 야당의 지지율이 높았다고 한다. 그런데 PLO측과의 전쟁으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고 한다. 이는 집권 여당이 총선의 승리를 위해 전쟁을 활용하고 있다고 밖에 볼수 없다. 미국측 역시 이스라엘에 반미적인 정권보다는 친미적인 정권이 계속 집권하는 것이 자국에 이익이기 때문에 현재의 학살을 묵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30년전과 똑같다. 전쟁을 일으키는 놈은 따로 있고, 전쟁에 참가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전쟁으로 희생당하는 국민이 따로 있다. 예나 지금이나 열심히 살아가려는 국민만 희생당하는 현실이 암울하다.

이 책은 애니메이션을 지면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다. 영화와 이 책을 비교해 본다면 영화는 조금 지루한 반면 전쟁의 암울한 상황과 주인공의 심적 상황을 잘 알수 있고, 책은 영화에서 다루지 못한 사건의 배경이라든지 작품 해설이 있어 ’사브라·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보신분이라면 영화도 한번 보시라고 권해드리고 싶고, 영화를 보신분이라면 이 책으로 좀더 깊게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호의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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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개인에게 행하는 폭력과, 살인은 어떤 식으로든 처벌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위가 커지고, 힘있는 소수가 힘없는 다수에게 행해지는 무자비한 폭력은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다. 오죽하면 그런말이 있겠는가. 한 명을 죽이면 살인자지만 백 명을 죽이면 영웅이라는.....말도 안되는 그런 말.

책의 주인공 역시 기억을 잃고 헤매고 있다. 전쟁에 참여했으나 그때 상황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암흑. 그 암흑 속에서 빛을 찾고자 동료들을 찾아 그들을 인터뷰한다. 그러면서 그 당시의 참혹하고 끔찍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이 책은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의 추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비추고 있다. 피해자를 집중 조명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사람을 죽였던 군인의 기억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의 인터뷰가 모두 변명같이 들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와닿는것이 있는 것은, 결국 그들 모두 전쟁의 피해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스라엘의 소리없는 지지속에 팔레스타인 수천명의 난민들은 죽어갔다. 힘없고 저항조차 하지 못한 그들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갔다, 아무런 명분없이. 비단, 명분없는 학살이 1982년 사브라 샤틸라 팔레스타인 난민 학살 사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것같은 수많은 끔찍한 살인이 지금 현재에도 너무나 사소한 이유로 자행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전쟁에 참가했던 이의 자기고백을 들으면서 이 세상 모든 끔찍한 상황을 그저 모른채 수수방관하고 있는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아무런 이유없이 오로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천명의 목숨을 빼앗아서는 안될 것이다. 자기반성을 하는 이유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중요한 또 한가지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의 눈물과 한숨을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그 순간, 이 세상에 전쟁이라는 끔찍한 일은 사라질테니 말이다.

 

posted by po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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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출판사에서 출간된 <바시르와 왈츠를> 특별 책세이는 '블로그가이드'의 형식으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중동 문제가 적잖이 알려지기는 했지만, 차분히 이 문제를 살펴보며 팔레스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알지 리뷰어 회원님들이 힘을 합쳐서 일종의 '블로그 안내서'를 만들어보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1. 블로그가이드 이렇게 만들어요!

구성은 3부로 나눌 생각인데, 블로그가이드에 대한 의견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1부는 <바시르 알기>입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은 짧은 지면에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중동의 상황이 압축적으로 소개돼 있기 때문에 만화책이지만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상황이나 책 읽기에 도움이 되는 '지식제공'의 의미로 구성했습니다.
제2부는 <바시르 깊이읽기>입니다. 이것은 평소에 회원님들이 쓰시는 '책세이'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호의은행님과 들풀처럼 님, jjolpcc 님께서 원고를 일찍 보내 주셔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3부는 <바시르 넓게읽기>입니다. <깊이읽기>와 <넓게읽기>의 차이가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여쭤보시면 속시원하게 말씀드리기가 어렵지만, <바시르>를 깊게 다루지 않으면서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형식입니다.
알지님과 제가 쓴 원고를 살펴보시면 참조가 되실 겁니다.

2. 블로그가이드 샘플 참조하세요.

※ 글 제목을 클릭하면 내용을 볼 수 있어요

블로그가이드 가이드 글(클릭하면 글을 볼 수 있어요) 글쓴이
바시르 알기 두 개의 이스라엘과 세 개의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군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재밌는 심리학 실험 - 나 몰래 움직이는 기억  
숫자로 본 팔레스타인  
그림으로 본 팔레스타인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한 행위 바시르 책
바시르 깊이읽기 후진국의 공통된 학살 패턴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권력을 얻으려 하지 마라! 호의은행
'학살'을 잊지 않는 방법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 들풀처럼
학살을 추억하며(『바시르와 왈츠를』을 읽고)
 jjolpcc
바시르 넓게읽기 이젠 '인문학' 만화가 뜬다  알지
워낭소리와 같이 보면 좋을 '영화'와 '책' 알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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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차 발송 응모 마감일 : 3월10일

(2) 책세이 수상자 발표 :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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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학살' 에 대한 우리들의 기억




 

학살 1 / 김남주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5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경찰이 전투경찰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전투경찰이 군인들로 교체되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미국 민간인들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것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도시로 들어오는 모든 차량들이 차단되는 것을

아 얼마나 음산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나는 보았다
총검으로 무장한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침략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야만족의 약탈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밤 12시 나는 보았다
악마의 화신과도 같은 일단의 군인들을

아 얼마나 무서운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노골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도시는 벌집처럼 쑤셔 놓은 붉은 심장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용암처럼 흐르는 피의 강이었다
밤 12시
바람은 살해된 처녀의 피묻은 머리카락을 날리고
밤 12시
밤은 총알처럼 튀어나온 아이들의 눈동자를 파먹고
밤 12시
학살자들은 끊임없이 어디론가 시체의 산을 옮기고 있었다

아 얼마나 끔찍한 밤 12시였던가
아 얼마나 조직적인 밤 12시였던가

오월 어느 날이었다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일천구백팔십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밤 12시
하늘은 핏빛의 붉은 천이었다
밤 12시
거리는 한집 건너 울지 않는 집이 없었다
밤 12시
무등산은 그 옷자락을 말아 올려 얼굴을 가려 버렸고
밤 12시
영산강은 그 호흡을 멈추고 숨을 거둬 버렸다

아 게르니카의 학살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처참하지 않았으리
아 악마의 음모도 이렇게는 이렇게는 치밀하지 못했으리

-시집 [나의 칼 나의 피], 김남주, 실천문학사.

 

 

하마터면 결코 기억할 수도 없었을 그 시대의 일들이 이렇게 우리곁에 살아 있다.

1980년 5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학살'의 기억은 풍문속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몇 년 뒤 이같은 노래의 한 자락으로 슬금슬금 다가와 우리를 내동댕이 쳤다.

격동의 80년대는 그렇게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잊지 않으려 그날의 '비디오'를, 글들을,

찾아 읽으며, 나누고 또 나누며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사람사는 길로 나아갔다.

 

 

 

그리고 새날은 오는 듯 하였다. 

20세기의 끝자락, 민주주의는, 온전한 정치적 자유는

사람들의 움켜잡은 손에 거의 다 들어온 것처럼 보였다. 

 

 

Ⅱ. '학살', "홀로코스트" 

 

어느날 영화를 보러갔다.

2차 세계대전중 일어난 독일의 유대인 대량학살."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학살의 내용보다 독일인이 유대인을 구해낸 실화라는 사실에 솔깃하여

만나러 갔던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적어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으로 이 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사람이란 존재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야마는건지..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묻지도 않았다. 그렇게 '학살'은 기억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영화를 보며 흥분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였으리라.

하지만 80년 5월, 이 땅의 학살도 쉬 잊혀지는데

더 오랜 남의나라 이야기가 어찌 기억속에 여태 남아 있으랴...

 

학살은 학살 그 자체로 남아있는 사람들의 감상까지 죽여버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Ⅲ. 그리고 이 '학살'을 보라,  [바시르와 왈츠를]

 

학살은 쉬 잊혀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쉬 말해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엇인가?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아 자신들의 나라를 건설한 유대인들이

이제는 학살자가 되어 사람들을 죽여대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은 철저히 왜곡되고 은폐되고 있다.

자신들이 그만큼 역사속의 희생자임을 강조하던 이들이 보여주는 만행을 보라.

글이 아닌 그림으로, 사진으로 생생히 전해지는 학살의 기억들.

 

 

 

지은이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한번 잊어보라고, 꽁꽁 숨겨두고 묻어두어 기억 속에서 완전히 제거해버리라고....

과학이 더 발전되어 정말 기억을 선택적으로 고를 수 있다면

그들은 이 학살에 대한 모든 기억을 깡그리 지워버리리라.

 

하지만 아직까지 신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문득문득 솟아나 어떤 계기로 하여금 잊어버리고 묻어버렸던 그 기억들을 찾아내도록 만든다.

그리고 남는 것은 정말로 잊고 싶었던 아픈 학살의 진실들이다.

 

레바논 민병대의 학살을 방조하고 실질적으로 도운 이스라엘 병사들의 기억은

이 책에서처럼 결코 지워지지 앉는다. 다만 가라앉아 있을 뿐이다.

 

바람이 불고 피냄새가 번지면 이윽고 기억속 장면들이 처참히 살아나

살아남은자들의 상처를 후벼판다.

우리는 이 책을 덮으려 하지만 덮을 수 없다.

마지막 장면의 절규하는 난민의 모습과 총상에 피흘리며 쓰러져 있는 젊은이들의 사진이

마치 그날 오월의 우리네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기 때문이다.

 

하여 이제는 그만 잊고 살아도 될 것 같았던

'학살'의 기억들이 오롯이 살아나 밤을 지새우게 한다.

 

우리는 우리네 형제끼리...

저들은 저네들끼리....

게다가 주인공인 이스라엘인들은 "홀로코스트"의 피해자에서

드디어 가해자로! 변한 것이다.

 

정녕 '학살'의 피해자가  '학살'자가 되는 일이 생기고 만것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아픔을 몽땅 잊었단 말인가?

이 책은 제발 그러하지 말자고 조심스레 반성의 기색을 내보이는

이스라엘 자신의 목소리일까?

 

에니메이션이 원작인 이 다큐멘터리만으로는 조금은 기대를 걸어도 좋으리라. 

하지만 최근 '뉴스 속 세계'에는

다시 자행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공 이야기가 이어진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도 아니고 악화되는 것인가?

책 한 편이 던져주는 '학살'의 아픔과 충격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야기리라.

 

끊이지 않는 국지전 속에 분단조국의 현실도 녹록치않게 악화되어가고 있다.

정녕 우리는, 사람들은 어디쯤에 서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을지....

묻고 또 묻는 시간들이다.

 

'학살'은 결코 잊혀지지도, 끝나지도 않는다.   이런....젠 장.

 

2009. 2. 12.  불어닿는 저 바람처럼 흔들리는 깊은 밤

 

들풀처럼
*2009-03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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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도 가끔 김남주 시인 평전을 꺼내 읽으며, 그 서늘한 숫돌위에 제 마음의 칼날도 갈아보곤 합니다.
'바시르와 왈츠를'을 보관함에 넣어주고 선뜻 꺼내들지 못하는 것은 마주보기에 너무 두려운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이 지구에 학살지 아닌 곳이 얼마나 남아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문뜩 듭니다. 이 포스트를 읽고 바로보지 않고서는 바로 인식하고 바꿀 수 없을테니 용기를 내어 읽어보고자 합니다.

다른 2009-02-18 12:57   좋아요 0 | URL
FTA반대휘모리 님~ 안녕하세요. 김남주 시인의 시는 바위를 뚫고 나온 듯한 느낌을 선사합니다. 시를 고민하던 때에는 김남주 시인이 쓰는 시어는 제게는 금기어였지만, 금기어를 가지고서 금기어가 아닌 어떤 언어들로 빚은 시보다 더 시답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엄청난 시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시르의 작가도 김남주 시인만큼은 아니지만 '만화', '기억'이라는 키워드로 짧은 페이지 안에 그 충격을 담아냈으니 '시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 이스라엘의 분리 장벽 완공 현황(2005년, 자료 : 아틀라스 세계는 지금)

위의 지도는 2005년 현재 완공된 이스라엘의 장벽이다. 완공된 빨간 선을 따라가다 보면 이 장벽이 얼마나 자의적이며 제국적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상위의 빨간 색은 녹색 선의 한참 안쪽까지 세워져 있다. 그 이유는 단지 이스라엘인의 정착지가 있다는 이유다. 그 안에는 팔레스타인 주민들도 사로 있는데, 이와 같이 비상식적으로 세워진 장벽 때문에 10개의 팔레스타인 마을에 사는 5,200은 완전히 갇힌 신세가 되었다.

▲ 예루살렘에 위치한 실제 고립장벽(자료 : 라피끄 팔레스타인과 나)

이스라엘은 지난 2002년 6월부터 서안지구 전체를 촘촘히, 지그재그로 에워싸는 총 길이 약 720Km의 장벽을 건설하고 있다. 장벽은 높이 8m의 콘크리트 장벽과 철조망 장벽 등이 있으며, 이스라엘은 장벽을 통해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을 이스라엘로부터 물리적으로 분리, 고립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만리장성이 생각나네요. 이런 설화가 있습니다. 진시황이 꿈에서 예언을 하나 들었는데, '호胡'를 조심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호'란 오랑캐를 말합니다. 당시 진나라는 흉노 등 오랑캐의 시달림을 당하고 있었는데, 진시황의 결단으로 2,700km 대장성을 만듭니다. 하지만 '호'란 다름이 아니라 진이세황제 호해(胡亥 기원전 230년 ~ 기원전 207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을 막기 위해 장벽을 세웠겠지만, 이 장벽이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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