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위버>에서는 신의 대리인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사회자 : 시청자의 질문을 받겠습니다. 이 분은 자신을 ‘꿈 속의 남자’라고 밝히고 있군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은 너무 무거워서 자신도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을까요?”
신의 대리인 : 물론 할 수 있죠. 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까요.
사회자 : (표정이 어두워진다) 예, 그렇군요. 하지만 이 질문에 긍정으로 대답하신다면 아주 심각한 혼동이 있을 것 같은데요. 만약 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는 할 수 없는 것을 창조한 것 같군요. 그러나 신이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는 전능한 것이 아니잖아요?
신의 대리인 : 그렇군요.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답은 분명히 ‘아니요’입니다.
사회자 : 그러나 그것 또한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신이 정말 전능하다면 그는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의 대리인 : 맞아요. 진퇴양난이군요. 괜찮으시다면 신의 다른 속성으로 넘어가야 할 것 같군요.


이 인도의 신, 야마는 염라대왕과 저승사자의 역할을 겸하고 있다

재미있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기에는 한 가지 함정이 있습니다. 신이라는 전능한 존재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즉 전능한 존재든 전능하지 않은 존재든 할 수 없는 것을 전능한 존재에게 요구하고 있는 셈이죠. 예컨대 신에게 둥근 사각형을 만들어보라고 하는 것과 같죠. 이처럼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둥근 사각형, 결혼한 총각, 아프지 않은 두통, 네 변의 삼각형, 자기보다 더 힘 있는 것을 만드는 전능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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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소설>의 경계를 넘나든다는 것은 위험하다. 철학은 개념으로 말하고, 문학은 이미지로 말하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두 가지 모두 잃기 십상이다. 두 영역의 문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철학 소설이나, 철학적인 내용을 전달하려는 소설들은 이 문법적 거부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대부분 실패했다. 하지만 철학의 개념을 보존하면서도 소설의 이미지를 창조할 수 있다면 두 가지를 모두 갖출 수 있다.

<드림위버>(다른)는 소설로 읽는 철학책이다. 이 책의 놀라운 점은 소설적인 특징을 철학적인 특징에 묘하게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가장 다루기 힘든 것 중의 하나가 ‘상황설정’인데, 철학사를 다양한 소설적 상황으로 볼 수 있어서 의미가 분명히 들어왔다. 많은 철학자를 등장시키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세계로 철학자들을 이해하고 현실에서 만나는 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철학사를 온전히 재현해 낸다.

특히 <드림위버>가 창조했다고까지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치는 ‘꿈’과 ‘현실’의 토론이라는 형식이다. 주인공은 꿈속에서 만난 노인을 통해서 회의주의와 역설이라는 난감한 상황을 맞지만, 현실에서는 엄마아빠와의 토론을 통해 온건하고도 현실적인 관점을 회복하게 된다.



예컨대 모래더미에서 모래 알갱이 하나를 아무리 여러 번 빼도 그것은 더미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는 노인의 명제에 대해서, 현실의 아버지는 '모호한 언어'를 가지고 반박한다. 즉 단어가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고 모든 것을 포함한다면 결국에는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398쪽)

이 꿈과 현실의 토론이라는 과정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의 모양을 이룬다.





▲ 1만개의 모래알갱이로 이루어진 모래더미가 있다고 했을 때, 여기서 1개의 알갱이를 뺀다고 해도 모래더미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1개씩, 1만번 반복해서 모래알갱이를 줄여간다면 어느 새 모래더미는 형체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때 '더미'란 모호한 용어로 명확한 개념을 설명하기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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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에 들어와 가장 엄청난 유행병은 스페인 독감이었다. 보통 감기처럼,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무기력해지고, 열이 나고 아프다. 그리고 심해지면 폐를 피거품으로 채우는 치명적인 폐렴으로 진행되었다. 몸의 조직에서 산소가 빠져나가서, 헐떡거리는 환자의 피부는 죽기 전에 병색이 짙은 보랏빛이 된다.

스페인 독감에는 다른 치명적인 특성이 있다. 대부분의 유행성 감기는 매우 어린 아이나 노인을 죽인다. 그러나 이 독감은 스물에서 서른 살 정도의 사람들에게 가장 치명적이었다. 독감으로 세계에서 이로 인한 사망자수는 2백만에서 1억에 이르렀다.
 
스페인 독감은 스페인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아니라 1차 세계대전 당시 스페인 신문에서 처음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왜일까? 스페인은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래서 군대가 언론을 감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이 병에 걸렸지만 미국을 포함해 전쟁 중인 국가들은, 적에게 유리한 것이면 어떤 소식이라도 통제했다.
 
독감(influenza)은 “영향(influence)"을 뜻하는 이탈리아어이다. 그 이름은 별과 행성이 건강을 포함해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점성학 사상에서 나왔을 것이다. 독감은 처음에는 새에게서 발견되어 진화된 고대 질병이다.

오늘날 바이러스의 주요 저장소는 오리, 거위, 그리고 이동하면서 바이러스를 세계에 퍼뜨리는 갈매기와 같은 야생 물새 무리 속에 있다. 바이러스는 새들을 감염시키지는 않는데 아마도 오랫동안 기생충과 숙주의 관계로 지내왔을 것이다. 그러나 닭과 같은 가축 조류들은 바이러스에 잘 적응되어있지 않다. 바이러스는 그것들을 죽게 한다. 닭이 한번 감염되면, 그 병은 가끔씩은 무서울 정도로 무리 속에 폭발적으로 퍼져나간다.

바이러스가 조류를 병들게 하면, 그들의 면역 체계는 병을 극복하기 위해 항체를 만들려고 한다. 이런 종류의 압박 속에서 독감 바이러스는 변하기 쉬워진다. 각 세대는 지난 세대의 바이러스와 조금씩 달라진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바이러스는 일부 숙주들의 면역 체계를 무너뜨리는데 이것이 지역 유행병을 유발하게 된다. 수십 년 마다, 독감 바이러스는 거의 모든 숙주에게 영향을 미칠만한 형태로 바뀐다. 이것으로 인해 세계적 범유행이 생겨난다. 스페인 독감도 그런 경우였다.

독감 바이러스는 어떻게 우리를 감염시키게 되었을까? 동물과 가까이 사는 사람들은 많은 병원체들에게 숙주를 바꿀 기회를 준 셈이었다. 과거 어느 시점에, 독감 바이러스는 직접적으로 혹은 매개 숙주를 통해 조류에서 사람에게로 뛰어 들어왔다. 돼지들은 가장 가능성 있는 “혼합 용기”로서, 돼지는 조류바이러스에 민감한데 조류 바이러스의 내부 환경은 독감 기생충을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우리를 감염시킬 수 있도록 변화시킨다.

사람들, 가축 조류, 그리고 돼지들이 가까이 사는 장소들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의 시골이다. 주요 독감 범유행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시작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조차 중국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수천 명의 중국 노동자들이 1차 세계 대전 동안 깊은 참호를 파도록 유럽으로 유입되어 왔는데 그들이 질병을 옮겼을 가능성이 있다.

스페인 독감이 수그러든 후에, 세계적 독감 감시망이 또 다른 범유행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감시망에 속한 과학자들은 이제 매년 독감 발발의 특질을 평가하고 이 정보를 제약 회사들에게 제공해서 그들이 효력 있는 백신을 개발할 수 있게 한다. 중국과 아시아는 특별한 주목을 받는다. 몇 가지 치명적인 독감 유행병이 이런 식으로 진압되었는데 1957년 아시아 독감과 1968년 홍콩 독감 등이다.


 

1991년 홍콩 조류 독감과 2004년 아시아 조류 독감은 모두 사람에게 전염된 것인데 질병을 보유하고 있을지 모르는 닭 무리를 도살함으로써 이 질병은 그쳤다. 2004년 캐나다에서는 프레이저 계곡에서만 1천 9백만의 새들이 도살되었다.

2003년, 태국에서 지금까지 본적 없는 독감 같은 질병의 범유행을 세상에 경고했는데 이것이 바로 심각하고 날카로운 호흡 증후군(사스)이다. 그 범유행은 부분적으로는 전 세계의 과학자들 사이의 유례없는 협동으로 부분 진압되었는데 이는 독감 감시망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런 협력은 미래에 가장 필수적일 것이다.

과학자들은 독감 바이러스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다른 치명적인 독감류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말한다. 현재 멕시코 사회와 경제를 마비시킨 돼지 인플루엔자도 이와 같은 독감이다. 세계 보건 기구의 임원들은 독감 바이러스에 효과적인 대응을 못 한다면 지구 인국의 18억 명 정도가 죽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1918년과는 달리 우리는 이런 범유행이 다가올 것임을 알고 있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할 수 있다.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 브린 바너드 지음, 도서출판 다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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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와 악수한 박물관장, 다음날 숨져.
2009년 4월 1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그는 멕시코인류박물관을 관람한다. 그런데 그때 박물관을 안내했던 펠리페 솔리스는 다음날 사망한다. 돼지 인플루엔자 유사증세를 나타내면서.
지난 12일 멕시코에서 돼지인플루엔자로 첫 사망자가 나온 지 보름 만에 감염환자는 1600명으로 늘어났고, 그 중 103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는 ‘공중보건 비상 우려’ 경보를 발동하고 각국의 예방활동을 촉구했다.(조선일보 4월 28일자 기사 및 사설 중)

한 노의사 홍콩의 한 결혼식장 참석, 다음날 900명 이상의 사망자 속출
2003년 중국 남부지방의 한 노의사가 친지의 결혼을 위해 홍콩을 방문한다. 그가 어떤 결혼 선물을 가져왔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몸 안에는 지금까지 지구의 다른 지역의 사람에게는 초면(初面)인 미생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미생물은 사스 바이러스였으며,  홍콩을 중심으로 항공노선을 타고 삽시간에 캐나다, 베트남 등으로 퍼지면서 700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리고 세계 각국의 주식시장 및 관광산업에 천문학적인 재정 손실을 남겼다.

돼지인플루엔자나 사스보다 수백 배나 파괴력이 있는 전염병들?
<세계사를 바꾼 전염병들, 브린 바너드 지음, 도서출판 다른>에 보면 세계 역사를 통틀어 발생했던 수천 개의 유행병 중에서, 돼지 독감이나 사스 바이러스보다 수천 배나 파괴력을 지닌 흑사병, 천연두, 전염결핵, 콜레라, 황열병, 독감에 초점을 맞추어, 단지 이들에 대한 미시적 접근으로 다가가기를 거부하고 인간의 문명에 이들이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1. 봉건제도를 강타한 흑사병
질병은 우리의 가장 깊은 두려움, 희망 그리고 편견을 투사해주는 스크린이다. 흑사병도 마찬가지다. 몽고군대에 의해 1331년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4년도 채 안되어 중세 유럽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 결과 중세 유럽의 지배계급은 결정적 타격을 받으면서 봉건제도는 무너지기 시작했고, 자본주의 맹아는 싹트기 시작했다.
                                             
 
2. 세계를 정복한 천연두
유럽의 풍토병이었던 천연두는 콜럼버스의 탐험의 시대와 함께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스페인이 멕시코와 페루를 점령할 때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실제로 잉카제국은 천연두로 인해 인구의 4분의 3이 죽게 된다. 또한 천연두는 영국과 프랑스의 북아메리카 정복에 필수 요소였다. 청교도가 플리머스에 도착하기 전인 1617년에 향후 뉴잉글랜드가 될 지역을 유행병이 지나가면서 원주민의 90퍼센트 이상을 학살해버렸다.
                                               
3. 노예제도를 폐지한 황열병 
황열병은 유럽인들의 탐욕을 위해 노예상태로 아메리카에 끌려온 대략 2천만 명의 아프리카인들과 함께 동행했다. 아프리카인들은 면역성이 있었지만 노예 주인들은 그렇지 않았다. 황열병은 처음에는 카리브 해 연안에서, 그 다음에는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에서 노예제도의 몰락을 자져오는 원인이 된다. 나중에, 이 질병은 미국이 북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4. 도시를 청소한 콜레라
건강한 사람을 무력하고 파르스름한 시체로 바꿔버릴 수 있는 콜레라. 이 질병은 180년 이상, 일곱 차례의 각각 다른 범유행(pandemic)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을 죽이면서 남극대륙을 제외한 전 대륙에 퍼졌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가장 위압적인 질병 중 하나인 콜레라는 당시 새롭게 산업화된 유럽과 아메리카의 빈민과 부자의 공통점이었던 비위생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5. 동경의 대상에서 치명적인 질병으로 전락한 결핵
19세기 새로운 문화운동인 낭만주의와 함께 시작된 결핵은, 낭만주의적 신념과 교차하면서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가령 결핵은 창조적 천재의 확실한 징표로서, 환자의 가족들에게 환영받고 다른 사람의 부러움을 사면서 미와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고전적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그러나 결핵의 진짜 원인이 가난, 열악한 위생환경과 연관이 있다고 알려지자 지금까지 누렸던 명성은 사라졌다. 
            

    

  6. 독감
  20세기 들어와 독감은 200만 명에서 1억 명 정도    의 사망자를 냈다고 추산된다. 이 독감은 제1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전투에서 주전 선수로 활약했    고 베르사유 평화 조약을 성립시키는 역할을 했     다. 그리고 오늘날의 세계 독감 감시 체계와 매년    가을에 시행되는 독감 예방 주사를 만드는데 촉매    역할을 했다. 하지만 독감이 기여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병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로 인해 의학계    에 혁명을 일으킨, 최초의 항생물질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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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0년,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페르마는 350년 동안 풀리지 않은 수학 문제를 제기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로서 알려져 있는 이 문제는



여기서 n의 값을 구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n에 대해서 숫자를 계속 대입했지만 답이 나올 수 없었다.
수학자 앤드류 와일즈는 1993년 150페이지에 달하는 논문으로 완벽하게 증명했다.





컴퓨터는 계산은 잘 하지만 증명은 무용지물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피카소도 컴퓨터는 그저 답만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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