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한 매력 - 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하는 자기관리법
로리 헬고 지음, 임소연 옮김 / 흐름출판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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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향적인 사람인가, 외향적인 사람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할까 아니면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할까?

어느 경우이든 외향적인 사람은 본인이 더욱 진취적이고 활발한 사람이기를 바라고 내향적인 사람은 본인이 외향적인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외향적인 사람을 이상향에 가까운 인간상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것인데 정말 외향적인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보다 인성적으로 뛰어난 것일까? 은근한 매력은 이 질문에 대해 "아니다"라는 답을 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책이다. 당신이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그것이 외향적인 사람에 비교해볼때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며 A와 B의 취향이 서로 다른 것이 상대적인 차이일 뿐 우월과 열등의 결과가 아닌 것처럼 내향과 외향도 상대적인 차이점일 뿐이라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내향적인 사람이 스스로를 인정하는 첫 단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인정하라.

내향적인 것이 외향적인 것에 대해 열등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내향적인 사람은  굳이 스스로를 외향적인 사람으로 부자연스럽게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 또한 깨닫게 되는데 여기에서부터 내향적인 사람은 스스로의 영역을 주장할 권리를 스스로 찾아나갈 힘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내향적인 사람의 자기 영역 사수를 위한 주장이라.. 스스로의 영역을 주장하는 내향적인 사람은 과연 내향적인 사람일까 아니면 외향적인 사람일까?

 

은근한 매력의 저자는 한국인이 아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렇게 수없이 모순되는 질문에 빠지곤 했다. 내향적인 사람에게서도 외향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으며 외향적인 사람에게서도 내향적인 부분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하고, 내향적인 사람도 종류가 여러가지이며 그 종류에 따라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내향적일 수 있다고 말하는 책. 이렇게 내향적인 사람의 범주를 끝없이 넓혀나간다면 굳이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을 나눌 필요자체가 있긴 한걸까?라는 식의 질문 말이다. 또 은근한 매력의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외향적이라고 믿고 있으며 그러나 현실은 절반이상의 사람들이 내향적이더라라는 전제를 깔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문화적인 차이겠지만 사실 이런 전제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다르게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점들 때문에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 책을 수정하는 재미와 함께 (비록 답을 해주진 않지만) 읽는 동시에 끝없이 질문을 하는 연습도 할 수 있는 책이 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내향적인 사람과 외향적인 사람이 모두 읽어야 할 책.

책 속에서 저자는 내향적인 사람을 기준으로 그들이 갖추어 나가야 하는 스스로를 위한 길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하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는 내향적인 사람의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상인 외향적인 사람이 역시 반복적으로 출연하고 그들의 특성을 설명하는 것을 함께 병행하면서 서로의 차이점을 서로에게 설명하는 데 꽤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때문에 책을 읽는 사람은 내향적인 사람과 동시에 외향적인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외향적인 사람이 내향적인 사람을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내향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사람을 이해하고 준비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책이라면 내향적인 사람에게 필요함과 동시에 내향적인 대부분의 사람들을 주변에 가지고 있는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도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데 꼭 필요한 책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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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의 음모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항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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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매니아만을 위한 소설인가?

추리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교해 볼때 특히 매니아층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그런 만큼 고정 독자들이 있고, 반면 추리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손에 들기 어렵다는 단점도 동시에 지닌다고 할까?나의 경우도 후자에 속하는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긴박성과 너무 빠른 전개들이 익숙치 않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아자젤의 음모는 이미 러시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보리스 아쿠닌의 판도린 시리즈의 첫 이야기라고 한다.추리소설이라면 기껏해야 셜록홈츠나 애거서 크리스티 정도를 연상하는 나에게는 여러모로 생소하기 그지 없었던 책.그런 책이기 때문에 첫장을 넘기기 전부터 잔뜩 긴장을 한 상태였는데,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은 싸그리 사라졌다고 고백해야겠다.

 

지극히 평범한 젊은 청년을 통해 빨려 들어가는 러시아를 넘어서는 거대한 소용돌이.

주인공인 판도린은 한때 잘 나가다 현재는 파산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억을 가진 평범한 경찰이다.

책 속의 설명을 더하자면 가장 아랫등급의 공무원에 속한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하면 순경쯤이 아닐까 한다.

가장 낮은 등급의 수사기관 직원인 판도린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청년의 자살 사건을 시작으로, 읽는 동안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만큼 순식간에 커져 버리는 스케일은 읽는 사람을 판도린과 같은 사건의 현장에 몰아넣고 그 소용돌이를 함께 겪는 것처럼 빨아들인다. 물론 모든 영화와 추리소설들이 그렇듯 이 책도 반전이 존재하며 어느 정도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반전을 짐작하게 하지만 그 반전조차 공포스러울만큼 살짝 소름끼치는 것들로 채워놓는 것으로 마지막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하는 힘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덮는 순간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사건의 주인공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는 영화를 보고 난 느낌 같은 현장감은 이 책이 조만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상상까지 더하게 했다.

 

아직은 먼 나라 러시아.

책의 작가가 러시아인이기에 그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사실 익숙치 않은 그들만의 문화와 번역본으로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가끔 정신이 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생소한 문화에 대한 어색함과 지나치게 길고 긴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주는 번거로움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 문학이라면 흔히 가지는 선입견 중 하나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다보니 책을 접하기 전부터 가진 두려움 또한 한 몫을 하는 것이겠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러시아에도 여러 장르의 훌륭한 문학이 존재하며 충분히 매력적이고 대중적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을 느낄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러시아 문학은 나에게 있어 무겁고 답답한 느낌이 아니라 좀 더 즐겁고 활동적이며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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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 신개정판 생각나무 ART 7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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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학교에 가면 미술시간이 있었다. 두시간씩...일주일에 한번 꼬박꼬박. 유치원때부터 시작해서 일단 교육이라는 시스템에 들어오면 시작부터 그림을 만나게 된다. 어린날엔 그림일기를 시작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물론 고등학교 미술시간은 입시로 인해 거의 무용지물이지만..)이렇게 놓고 보면 그림이란 정말 가까이에 있었던 존재인데.. 왜 그림은 한없이 어려울까? 미술사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아니면 평론법을 몰라서? 아마도 그림을 보는 법을 배운것이 아니라 그저 그 시간안에 그림을 그려내는 것 이외에는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리라.

 

인류의 본능, 예술 그리고 그림.

구석기 시대 인류가 존재하는 그 시기부터 인류는 벽이고 땅에 뭔가를 끄적였다는데..그렇다면 그림은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그럼에도 그림이 어려운것은.. 아마 살아가며 그림을 가까이하기엔 그림을 부수적인 것으로만 치부했던 분위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특정한 재능이 있는 이에게만 부여된 특권처럼 그림은 그리는 자도 그것을 소유하는 자도 언제나 일반인들과는 구분된 영역에 존재하고 있었다. 부유한 이들은 그림을 소장함으로써 힘을 과시하고, 그림을 그리는 자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특별했던 그들의 능력을 통해 부와 명성을 쌓았으며 때로는 예술가로, 때로는 명성을 이용하는 지략가로 보통의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며 살아온 그 역사가 그림을 우리에게서 어느 순간부터 떼어놓은 것은 아닐까? 사람이 두 발로 걷고 역사속에 흔적을 남기던 그 시절부터 함께 해온 예술의 영역은 다시 사람들이 새로운 계층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과시함으로써 본성에서부터 떨어져나와버린 것이다.

 

아주 작은 관심으로도 그림을 가까이 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림에 대한 이론도, 미술사도, 평론법도 아니다. 그저 여러 작가들과 여러 작품에 대한 작은 일화들을 열거함에 지나지 않고, 때문에 그다지 재미있지도, 흥미롭지도 않은것이 사실. 하지만 책 속에서 언젠가 들었던 것 같은 작가들의 이름을 만난다거나. 평소 관심있었던 작가에 대한 일화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 의미는 달라질 것이다. 책에서 깊이 있는 것들을 만나기는 어렵지만.. 이 책을 통해 내가 이 작가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는것을 기억할 수 있고, 그래서 그 기억으로 새로운 미술의 역사와 작품들에 대해 호기심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림이 어렵다면, 혹은 그저 그림에게 다가서고 싶다면. 그 때 이 책이 시작점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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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 대한민국 30대를 위한 심리치유 카페 서른 살 심리학
김혜남 지음 / 갤리온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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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20살만 되면 어른인줄 알았다. 그리고 스무살에는 서른이 되면 뭔가 확실한 것이 존재하리라 믿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흘러 나는 이제 한국 나이로는 31세, 만으로는 30을 조금~ 아주 조금 남겨두고 있다. 스무살 성년식을 마치고도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던 어른의 나이 서른, 서른이 된 나는 과연 스무살에 그렸던 무언가 확실한 것을 하나라도 쥐고 있는가? 참으로 씁쓸한 질문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여기저기에서 서른이라는 숫자가 상징처럼 거론되고 있음을 지켜보며, 나의 서른살에도 조금은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면, 이 책,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추천한다.
 
서른, 모든것이 어정쩡한 나이.
평균연령이 갈수록 높아지고, 노령화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만큼 나이에 따라 기대되는 사회적 역할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기고 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시절에 맞았던 사춘기를 중학교 시절에 맞고 때로는 2차성징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나타나는 것을 보면, 몸들은 다들 빨리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것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그들에게 요구되는 역할들은 갈수록 어려지는 것이 아마도 살아야할 세월들이 갈수록 늘어남에 이유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도 해본다. 스무살만 되면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오로지 착각에 지나지 않았으며, 10년이 더 흘러 서른이 된 이들에게도 세상은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는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른들은 길을 잃고 서성인다. 어른도 아니고 아이도 아닌 나이, 확실하게 구축된 사회적 위치도 없고, 가정을 꾸리는 것도 당연하게는 생각되지 않는 나이. 무언가를 책임지는 것을 망설이고, 안정도 필요한 나이. 서른은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어정쩡한 상태로 남아 우리를 괴롭힌다. 자.. 이쯤 되면 서른들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생긴다. 그리고 그런 필요성에 대답하는 책이 바로 이 책.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이다. 책은 서른이라는 나이의 젊은이들이 가지는 불안정한 심리상태와 사회적 위치에 대해 십분 이해하는 마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식의 뻔하고 고리타분한 교과서적 해답들을 늘어놓는 대신 스스로에 대해 끝없이 묻고 대답하게 한다. 그 질문속에 서른에 대한 이해과 공감, 그리고 모든 배려를 함축한채 말이다.
 
이해받고, 대답하며 스스로 위로하다.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의 가장 큰 매력을 들으라면, 지시형 문장으로 사람을 질리게 하는 대신, 스스로 답하고 근원을 찾아가게 하는 소크라테스식 길 찾기를 제시한다는 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군가가 제시한 뻔해보이는 길이 주는 밑도 끝도 없는 반감대신, 스스로 고민하게 하면서 답을 찾고 더 나아가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까지도 이끌어낸다고나 할까? 누군가의 조언보다 때로는 스스로를 이해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이 책의 저자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로가 필요한 서른살이여, 길을 찾기 위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독여보라 그러면 새로운 길을 좀 더 밝은 눈으로 찾으리라..라고 말하는 책. 바로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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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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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는 누구나 시절을 관통하는 꿈과 목표라는 것이 존재한다.  어린시절에는 그저 원하고 갈망하는 것들을 꿈이라 부른다. 그리고 현실적인 제약에는 크게 신경쓰지 않을채, 나는 언제고 그것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믿을 가지고 살아간다. 생각해보면 참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밑도 끝도 없이 미스코리아가 될거라고 호언장담을 하고, 초등학교시절 장래희망란에는 반에서 10명 넘는 아이들이 대통령이 꿈이라고 큰소리로 자랑스럽게 말하곤 하니, 도대체 아이들에게 꿈은 무엇일까? 나이가 먹고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린시절의 꿈을 회상하라 말하면 십중팔구는 이미 괘도수정을 하고 조금 더 낮고 조금 더 실현 가능한 꿈을 말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꿈은 꿈이 아니라 그저 목표가 되어버린다. 완전한 성인이 되어 어린시절을 회상할때 누구나 가장 가슴아파하고 아쉬움을 담는 것은 그래서 꿈이 아닐까 싶다. 꿈이 꿈이 아닌 목표가 되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걸어야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때문이다.

 

어린시절 하늘을 날고 싶었던 나의 꿈과 강을 헤엄쳐 나가고 싶었던 그의 꿈

<리버보이>에는 3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제시와 그의 할아버지, 그리고 리버보이. 이야기의 끝에 가서야 자신을 알게 하는 리버보이는 알 수 없는 힘으로 제시를 강으로 끌어내고, 제시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리버보이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헤엄치며 그를 이해한다. 그리고 리버보이의 정체를 아는 순간, 그녀가 해야할 마지막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된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마지막 교감은 그렇게 끝없이 소원했던 할아버지의 어린 시절 꿈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어린시절의 꿈이란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조금은 허무맹랑하고 실현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는 그 꿈에는 어떤 힘이 있길래 끝없이 성장하는 가운데에서도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것일까? 이제는 그것이 이루어질 수 없는 그저 '꿈'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지금에도 사람들은 끝없이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절의 꿈을 그리워 한다. 그리고 그 꿈을 통해 자신이 꾸고 있던 지금의 시간을 살피게 된다. 어쩌면 일생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이자 최후에 닿고자 하는 목적지가 그 꿈 속에 들어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늘을 날고 싶하던 나의 꿈에 자유로운 인생을 살고 싶은 목표가 들었있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리버보이>의 강을 헤엄쳐 나가고 싶었던 꿈에, 영원히 삶을 유영하고 싶었던 꿈이 녹아있는 것처럼 말이다. 제시의 할아버지가 <리버보이>로 남아 인생의 마지막에서 손녀와 함께 해냈던 마지막 꿈은 어쩌면 그렇게 평생의 삶을 이끌어온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꿈으로 살아가는 수 많은 리버보이들에게

책 속의 구절처럼 항상 아름답지만은 않은 삶 속에서 사람들은 인생이라는 강을 따라 흐르는 동안 많은 일을 겪게 된다.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 짓는다는 흔하디 흔한 표현처럼.. 때로는 행복을 느끼고 때로는 절망에 무릎꿇고 하염없는 눈물을 쏟아내는 때도 오게 되지만..그래도 멈추는 법 없이 인생의 강은 그렇게 끝을 향해 흐르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인생을 살아가며 어딘가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멈추지 않고 흘러가게 하며 절망해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살아가며 어린날 꾸었던 바로 그 꿈과 모양새는 달라지고 과정은 조금 복잡하게 얽히게 될지라도.. 결국 사람들이 향해 가는 것은.. 어른이 되어 현실과 타협하며 바꾸고 포기한 새로운 어떤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바로 그 때에 어떤 것과도 타협할 필요없이 막연히 꾸었던 바로 그 꿈이 아닐까?

 

그 꿈에서 어린날의 자신이 태어났듯..
그 꿈의 완성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를 끝마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바다에 도달하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지.
그들에겐 끝이 시작이야.
난 그 모습을 볼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껴."』

 

제시의 할아버지는,
강의 시작점부터 바다까지 흘러가고자 하던 어린시절의 꿈을 이루고 편안함을 느끼며 또 다른 리버보이로 태어나기 위해 준비를 마치셨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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