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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자젤의 음모
보리스 아쿠닌 지음, 이항재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소설은 매니아만을 위한 소설인가?
추리 소설은 다른 장르에 비교해 볼때 특히 매니아층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장르 중 하나이다.
그런 만큼 고정 독자들이 있고, 반면 추리소설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손에 들기 어렵다는 단점도 동시에 지닌다고 할까?나의 경우도 후자에 속하는데 추리소설이라는 장르의 긴박성과 너무 빠른 전개들이 익숙치 않았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이유였던 것 같다.아자젤의 음모는 이미 러시아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보리스 아쿠닌의 판도린 시리즈의 첫 이야기라고 한다.추리소설이라면 기껏해야 셜록홈츠나 애거서 크리스티 정도를 연상하는 나에게는 여러모로 생소하기 그지 없었던 책.그런 책이기 때문에 첫장을 넘기기 전부터 잔뜩 긴장을 한 상태였는데, 책을 읽는 동안 이런 생각은 싸그리 사라졌다고 고백해야겠다.
지극히 평범한 젊은 청년을 통해 빨려 들어가는 러시아를 넘어서는 거대한 소용돌이.
주인공인 판도린은 한때 잘 나가다 현재는 파산하여 돌아가신 부모님의 기억을 가진 평범한 경찰이다.
책 속의 설명을 더하자면 가장 아랫등급의 공무원에 속한다고 하니 우리나라로 하면 순경쯤이 아닐까 한다.
가장 낮은 등급의 수사기관 직원인 판도린이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청년의 자살 사건을 시작으로, 읽는 동안 언제 그렇게 되었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만큼 순식간에 커져 버리는 스케일은 읽는 사람을 판도린과 같은 사건의 현장에 몰아넣고 그 소용돌이를 함께 겪는 것처럼 빨아들인다. 물론 모든 영화와 추리소설들이 그렇듯 이 책도 반전이 존재하며 어느 정도 부분에 이르러서는 그 반전을 짐작하게 하지만 그 반전조차 공포스러울만큼 살짝 소름끼치는 것들로 채워놓는 것으로 마지막까지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게하는 힘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덮는 순간 책을 읽었다기 보다는 사건의 주인공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는 영화를 보고 난 느낌 같은 현장감은 이 책이 조만간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상상까지 더하게 했다.
아직은 먼 나라 러시아.
책의 작가가 러시아인이기에 그 나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책은 사실 익숙치 않은 그들만의 문화와 번역본으로는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 특유의 분위기 때문에 가끔 정신이 들게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무래도 생소한 문화에 대한 어색함과 지나치게 길고 긴 등장인물의 이름들이 주는 번거로움이 아닐까 한다. 러시아 문학이라면 흔히 가지는 선입견 중 하나가 어둡고 무거운 느낌이다보니 책을 접하기 전부터 가진 두려움 또한 한 몫을 하는 것이겠지만 이 책을 시작으로 러시아에도 여러 장르의 훌륭한 문학이 존재하며 충분히 매력적이고 대중적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을 느낄 기회를 얻게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러시아 문학은 나에게 있어 무겁고 답답한 느낌이 아니라 좀 더 즐겁고 활동적이며 외면할 수 없는 새로운 영역으로 기억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