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심벌 1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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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을 살때나 혹은 옷을 살때 그 제품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다면 사람들은 가장 먼저 그 제품을 만든 제조사의 이름부터 살펴본다. 어짜피 이리저리 보아도 구체적인 정보를 모르는 상품이라면 제품을 만든 제조사의 브랜드네임을 믿고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현명한 결정이라는 것을 눈치껏 이미 터득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가 가지는 어찌보면 이러한 맹목적인 신임은 하나의 힘처럼 느껴지게 되기도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은 그 힘을 가르켜 브랜드 파워라고 부르기도 한다. 책이란 것도 마찬가지라서 서점가를 방황하다 한권의 책을 골라 사는 경우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바로 이 브랜드 파워가 아닌가 한다. 물론 사전정보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면 본인이 목적하고자 하는 책을 정확하게 골라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책의 제목과 표지 혹은 그 책을 만든 저자의 이름을 가장 먼저 살펴보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책에 있어서의 브랜드 파워는 그래서 책을 저술한 작가의 이름이 아닌가 한다.


천사와 악마, 다빈치 코드, 그리고 로스트 심벌

브랜드 파워라는 측면으로 살펴본다면 현재 소설계에 이보다 더한 파워를 가진 사람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문득 하게 된다.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작가. 이름만으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분위기와 그간 했던 이야기들의 성격들이 모두 연상되는 작가. 그리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막강한 능력의 작가가 바로 댄 브라운이 아닌가? 바티칸을 둘러싼 힘의 대립을 그렸던 천사와 악마, 그리고 본격적으로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의 이름과 그간 사람들의 관심 바깥에서만 맴돌던 기독교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전면에 드러낸 다빈치 코드라는 작품으로 문학계는 물론 종교, 사회 전반에 거대한 바람을 몰고 왔던 그 이름 댄 브라운이 세번째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 <로스트 심벌> 어떤 대단한 신문의 평도, 어떤 평단의 평가도 모두 뒤로하고 그저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의 이름만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던 세번째 그의 작품 <로스트 심벌>이 모습을 드러냈다.


로버트 랭던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

<로스트 심벌>은 그의 유명한 두 편의 이야기들의 뒤를 이어 기호학자인 로버트 랭던 교수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간 바티칸과 레오나르도 다빈치 그림 속 숨겨진 기독교의 비밀이라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파헤친 로버스 랭던 교수가 맞딱드린 세번째 이야기는 바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단체 프리메이슨에 관한 것이다. 오랜 세월 메이슨이 감추어온 고대의 수수께끼와 그 수수께끼를 노리고 접근하는 이들을 둘러싼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 랭던의 오랜 친구 피터 솔로몬이 있고, 그로 인해 랭던이 이 사건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는 것이다. 바로 그 수수께끼를 풀 유일한 계몽된 자로서 지목된 채로 말이다. <로스트 심벌>의 랭던은 전작들과 비슷한 분위속에서 사건에 말려든다. 정작 본인은 그저 조용히 학교에서 강의나 하고 연구나 하길 바라는 평범한 교수에 지나지 않지만 그가 그동안 쌓아온 지적연구결과물로 인해 원치않게 사건에 말려들고 결국엔 그 사건을 직접 해결해나가는 열쇠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사건의 시작도 비슷하다. 다음 교황이 될 후보 신부들이 엽기적인 방법으로 살해되면서 시작하는 천사와 악마, 그리고 루브르 박물관의 수석 큐레이터 자크 소니에르의 죽음으로 시작되는 다빈치 코드와 비슷하게 이번에는 랭던의 오랜 친구 피터 솔로몬의 잘려진 손이 등장함으로서 이야기가 시작하는 것이다. 상징으로 가득한 문신을 가진채 역시 상징으로 가득한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말이다.


역시 댄 브라운

댄 브라운의 소설들이 그러했듯이 <로스트 심벌> 역시 많은 사실과 추측이 뒤섞여 환상적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뭔가 아직 밝혀지질 원하지 않는 비밀들과 그 비밀을 이용하여 힘을 가지려하는 또 다른 힘의 대결. 그 대결 속에 전혀 영웅스럽지 않으나 충실히 영웅의 역할을 해내는 로버트 랭던이라는 학자의 지적 능력을 지켜보며 독자는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의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하게 된다. 마치 영화의 한 씬 한 씬을 설명하는 듯 한 빠르고 간결한 댄 브라운만의 이야기 전개 방식 또한 큰 몫을 하면서 말이다. 전작인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가 모두 영화화 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을 기억해낸다면 아마도 <로스트 심벌> 역시 곧 영화와 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덕분에 <로스트 심벌>을 읽는 내내 랭던의 얼굴에 톰 행크스를 겹쳐넣고 댄 브라운이 묘사하는 장면장면을 영화에서 만나게 될 또 다른 영상으로 상상할 수 있음도 <로스트 심벌>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영화처럼 펼쳐지는 이야기 속 고대의 수수께끼에 대하여..

댄 브라운의 소설이 강력한 힘을 가지는 이유는 그가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실제 존재하고 있는 여러 사실들을 근거로 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조건 허구로 만들어진 그저 픽션이라고 생각하기에 너무도 조밀하게 짜여진 이야기들과 그 이야기들을 마치 사실처럼 확인시켜주듯 존재하는 근거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늘 소설로서의 재미 이상을 가져다 준다. 다빈치 코드라는 작품이 한동안 문학계를 넘어 종교계의 불안을 끌어당기고 사회적인 하나의 흐름을 형성시켰듯이 말이다. <로스트 심벌> 역시 이런 흐름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실재하는 조직 프리메이슨을 시작으로 하여 이어지는 <로스트 심벌>의 이야기는 그저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역시나 너무 사실감있고 분명하게 메이슨이라는 조직을 설명한다. 물론 실제 메이슨의 조직원이 들으면 말도 안된다고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아직 전반부에 지나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그래서 더욱 서둘러 2권을 들게 하는 책 <로스트 심벌>은 여전히 댄 브라운의 힘이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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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심벌 2 - 완결
댄 브라운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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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알고 있는 것, 모두에게 익숙한 것, 그래서 대부분은 의심하지 않고 넘어가던 것들에 대한 당연한 사실들은, 그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거나 혹은 너무도 생각치 못한 것이어서 그저 재고의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대상이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은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고 거대한 사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단 한번도 그처럼 대단한 비밀을 궁금해하지 않았다는 허무함과 더해져서 말이다. 댄 브라운의 소설이 늘 화재를 몰고 다니는 것은 아마도 바로 그런 점들을 공략하기 때문이 아닐까?


본격적인 사건의 진실로 다가가다.

1편에서 랭던의 오랜 친구인 피터 솔로몬이 처한 위기와 그 위기를 시작으로 불어닥친 고대의 수수께끼에 대한 위협은 2권이 시작하면서 점점 랭던과 피터의 여동생인 캐서린을 구석으로 몰아간다. 랭던과 캐서린은 미치광이로 보일만큼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피터의 납치범와 국가안보를 위해 그들을 잡아두려고 한다는 CIA의 끝없는 추격을 받으며 그들의 소중한 사람인 피터를 구해내려는 노력을 계속해야하는 난처한 입장이다. <로스트 심벌>은 랭던이 사건의 진실에 가까이 가는 과정을 정말이지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우리가 늘 보아왔던 혹은 알고 있던 역사적인 인물과 현존하고 있는 자료들, 그리고 여러 분야의 지식들을 동원하여 사실이라 말하는 지표로 삼음으로써 로버트 랭던이 추적하고 있는 고대의 수수께끼와 메이슨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치 100% 진실이듯 느껴지고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 스스로가 그 진실에 직접 다가갔던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들게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사실과 허구의 만남이라는 팩션이라는 장르가 더욱 사실적인 묘사와 이야기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모든 것은 작은 오해로부터 시작된다.

<로스트 심벌>은 캐서린 피터의 연구성과와 피터 솔로몬의 메이슨에서의 위치, 그리고 스스로를 신의 위치로 승화시키겠다는 광적인 집착을 가진 말라크의 비밀스러운 정체와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극적인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여러부분에서 그의 전작인 다빈치 코드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요소와 그 가족에서 비롯되는 거대한 사건의 시작이라는 면도, 그리고 누구나 알고 있으나 한번도 의심해본적이 없는 비밀스러운 역사의 진실이라는 점도, 또한 그 결론이 너무나 포괄적이고 보편적이기에 그 가치를 잊고 있는 것은 아니냐는 반문까지도 말이다. 물론 그것 역시 댄 브라운 특유의 화법이긴 하지만 말이다.

로버트 랭던이 계속해서 활약하는 이유.

<로스트 심벌>에는 전작의 주인공인 로버트 랭던이 계속해서 활약을 한다. 대단한 싸움실력을 가진것도 아니고, 무기를 해체하는 실력을 가진것도 아닌, 그저 책상 앞에 앉아 자신의 분야에 대한 연구에 매진하기만을 바라는 기호학자 교수 로버트 랭던, 그가 이렇게 매번 거대한 음모와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가 이토록 매력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기호학자라는 그의 전공이 고대의 신비와 과거의 비밀을 밝혀줄 지도 모르는 신비를 다루는 학문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역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모르는 것들의 신비를 알려줄 안내자가 늘 필요하고 밝혀지지 않은 신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인물이 기호학자 로버트 랭던이었나 보다. 매편, 새로운 사건과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 우리가 가장 궁금해하였으나 말로 꺼내기 껄끄러웠던 음모론에 대한 궁금증을 밝혀주는 랭던, 아마도 음모론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우리가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를 통해 랭던을 만나는 일은 당분간 계속되지 않을까?


조금은 서운한 뒷 이야기.

<로스트 심벌>은 분명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트 심벌>을 읽은 사람이라면 어느정도는 다소 아쉬운 느낌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천사와 악마와 다빈치 코드라는 두편의 장편 소설들이 너무도 많은 인기를 끌었고, 댄 브라운이라는 작가가 너무도 유명세를 타고 있는 탓에 그의 두 편의 이야기를 모두 읽은 이들이 많이 있을 텐데, <로스트 심벌>은 이 두편의 이야기들과 너무도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댄 브라운표 소설의 특징이라고 한다면 더이상 불평을 달 수는 없겠지만 뭔가 좀 더 다른 느낌을 원했던 이들이라면 조금은 서운한 느낌을 피할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정 반대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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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 브로드 2
팻 콘로이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생각의나무 / 2009년 10월
품절


인생은 누구에게나 그저 흘러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마음처럼 흘러가도록 하기 위해 길을 닦고 물길을 터주고 끝없이 지켜보기도 하지만, 그들의 이런 노력보다 늘 한발 앞서는 것은 운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그러나 소리조차 나지 않는 거대한 광풍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생을 가르켜 원하는대로 할 수 없고, 어디로 갈지도 모르는 인력의 힘이 미치지 않는것이라고 말하고는 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말한다. 인생이란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인력이 아닌 더 큰 힘에 의해 무엇이 일어날지 무엇을 잃게 될지 무엇을 이루게 될지 모르기에 그것이 인생의 진정한 묘미라고 말이다.

모두가 가진 각자의 이야기들.

<사우스 브로드>는 이제 그 이야기의 후반부로 접어든다. 전반부의 이야기가 그들이 현재에 이르는 과거의 만남과 현재의 삶을 짧게 그려내었다면 이제 후반부의 이야기는 그들이 그렇게 조금은 이방인으로 머물러야만 했던 각자의 더 오래된 이야기와 그 이야기에 가려져있던 잔혹한 진실들을 풀어낸다. 그리고 그 오랜시간이 흘렀으나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그들의 현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으나 어쩔 수 없이 조금씩은 발목잡혀 버둥거렸던 그들의 그 과거 말이다. 시바의 쌍둥이 오빠인 트레버의 귀환으로 이제 모두 찰스턴에 모이게 된 이들은 트레버와 시바의 귀향과 함께 다시 돌아온 그들의 정신병자 아버지로 인해 불안한 날들을 보내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자신을 숨기고 점점 그 집착을 강화시켰던 쌍둥이의 아버지는 공포라는 이름으로 그 형체를 드러내고 이제는 시바와 트레버를 위협하는 위험뿐이 아닌 그들 주변에서 그들에게 사랑을 주는 모든 사람들에게 병적인 분노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공포가 몰고온 지울 수 없는 또 다른 상처

모두가 모인 찰스턴은 공포가 숨어있는 자유와 평안을 보인다. 저 깊이 아래에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공포가 있지만 적어도 순간순간에는 오랜만에 그들의 과거를 만들었던 지난 시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듯, 모두가 한 곳에 모여있기 때문이다. 서로 거리낌없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부끄러울 것 없이 자신의 어두움을 말할 수 있는 이들.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미묘한 변화가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여전히 친구라는 이름으로 모일 수 있는 두텁고 단단한 사이임을 확인하는 시간이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느끼는 순간 그들에게 거대한 사고가 몰아닥친다. 쌍둥이의 아버지가 기어이 그의 아름다운 딸 시바를 살해하고 만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배우 시바, 그리고 그들의 마음속에 언제나 방황하고 불안정한 영혼으로 자유를 갈망했던 소중했던 사람. 그 시바가 처참한 몰골로 난도질 당한채 피범벅이 되어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찰스턴과 레오에게는 다시 어둠이 밀려든다.


폭풍은 기억을 지우고..

시바의 죽음으로부터 지작된 어두움에 대한 공포는 이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어두운 과거를 들추어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특히 그 어두움은 레오에게 집중되기 시작한다. 모든것을 잘 이겨내고 현실에서의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던 이들. 그들의 중심에서 모두를 아우르는 자신만의 평온함을 늘 선사했던 레오에게 그간의 평온을 탓하듯 몰아닥치는 불행들은 찰스턴에 불어닥친 폭풍처럼 그간 힘겹게 스스로를 세워왔던 레오를 무너뜨린다. 시바가 죽고,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녀의 아버지가 시체로 발견되고, 레오의 오랜 상처였던 아내 스탈라가 자살한 채로 발견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를 최초로 어둠속에 밀어넣었던 어린시절의 상처, 바로 스티브의 자살에 대한 이야기를 알게 된 것이다.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던 가장 신성한 누군가에 의해 처참히 스스로의 목숨을 버려야했던 형의 진실. 그 진실은 레오에게 선과 악의 구분, 현실과 과거의 구분, 그리고 진실과 거짓의 구분을 모두 부질없게 만들어버린다.


인생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모른다.

인생은 그렇게 아주 작은 구멍으로도 흘러내린다. 그 흐름은 사람이 막을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한번 시작되면 멈출줄 모르고 그 방향도 예측할 수 없다. 찰스턴에 어느날 찾아온 쌍둥이 자매, 그리고 고아원의 아이들, 그저 스쳐지나갔다면 전혀 다른 곳을 향했을지 모르는 레오의 인생은 그들에게 과자를 가져다주고, 그들의 손에 풀린 수갑을 풀어주면서 스스로도 모르는 사이 그를 안정으로 인도하기도 하고, 다시 불행으로 밀어넣기도 한다. <사우스 브로드>는 그렇게 인생의 예측불가능한 흐름을 그려낸다. 마치 우리들 누군가도 그렇게 흘러갈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듯 말이다. 그리고 그래서 <사우스 브로드>는 특별하다. 그저 단순히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경험하는 보통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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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어도 돼?
나카지마 타이코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10월
절판


요즘은 예전보다 많이 늦어졌다고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남성과 여성들 사이에는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존재한다. 남자들은 30대를 넘기기 시작하면 조금씩 결혼이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여자들은 20대 후반이 되면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것은 아니고 개인차가 분명 존재하지만 일반적인 선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왜 다들 어느정도의 나이가 되면 결혼이라는 것을 자연스러운 현실의 문제로 받아들이게 될까? 왜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쫓기듯 결혼에 대해 생각하고 마치 결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처럼 받아들이고 있는걸까? 아마도 그것은 사람들 마음 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불안이라는 것 때문이 아닐가 싶다. 어딘가에 내 마음을 의지하고 나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을 가정이라는 집단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는 방법인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마음을 의지할 곳이 꼭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되는걸까? 그저 나만의 공간을 가지는 것으로 그 편안함과 안정을 가질 순 없을까?


30대 독신녀, 나만의 공간을 꿈꾸다.

나카지마 타이코의 소설 <지어도 돼?>는 바로 이런 자그마한 반항심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이다. 왜 꼭 가정을 이루는 것만이 안정을 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그래서 <지어도 돼?>는 그 안정을 집이라는 나만의 공간으로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모든것이 나를 위해 만들어진 공간, 그리고 철저하게 나에게 맞추어진 공간에서 새로운 안정을 찾기 보다는 현재의 안정을 공고히 하는 방법으로 독신녀의 집 짓기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을거야!가 아니라 지어도 돼?로 시작하는 문제들.

<지어도 돼?>의 주인공인 마리는 30대의 직장여성이다 꽤 오랜 생활 직장생활을 하며 나름의 커리어를 가지고 있고, 오랜 시간 유학이다 뭐다 해서 집밖을 떠돌았던 그녀는 현재 직장에서 그리 멀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은 2층에 세들어 살고 있다. 집은 맘에 들지 않지만 어짜피 이사를 한다고 해도 좋아질것 같지 않은 주거환경을 빌미로 그녀는 문득 집이 있는 남자를 만나 이 생활을 탈출할까 하는 조금은 부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녀의 이런 생각을 눈치챈 주변 사람들은 그녀에게 이런저런 소개팅이다 맞선이다 하는 자리를 만들어주게 되고 이 자리에서 그녀는 후쿠시마라는 건축사를 만나게 된다. 나쁘지 않았던 그마저도 별다른 약속 없이 헤어진 그녀는 남자 만나기 계획에도 시들해지고 어느날 우연히 자신에게 살던 맨션을 물려준다던 친척의 말을 듣고 문득 내 집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맨션과 부모님이 버려두다시피 한 땅을 바꾸어 그 땅에 나만의 집을 짓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그녀의 계획은 순탄치가 않다. 신혼 부부도 아니고 그저 남자도 아닌 독신여성이 혼자만의 집을 짓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어딜가도 가족을 위한 집만이 보이고 독신여성인 자신을 위한 집을 찾을 수 없었던 마리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집을 지어도 되는걸까?"


나만의 공간을 찾기 위한 마리의 고분분투

그녀는 주변의 석연찮은 시선들에 문득문득 불안을 느끼지만 맞선으로 만났던 건축사 후쿠시마와 함께 자신만의 집을 계획하며 그 집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굳이 가족을 꾸리는 일이 아니라도 스스로 안정을 찾아가는 방법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해 짓는 집. 그래서 조금은 기괴하고 신기한 구조를 가지게 되어버렸지만 그래서 더욱 그녀스러운 그녀만의 집은 그 자체로 마리 자신이고 마리가 앞으로 이룩해야할 미완의 꿈이기도 하다.


스스로 찾아가는 나만의 집 만들기.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집을 짓는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 말이다. 물론 경제적인 여건도 여의치 않고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나만을 위한 맞춤 집이라니..이 얼마나 설레이는 꿈인가? 그리고 한켠에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혼자만을 위한 공간에서 나만을 위해 내가 변할 필요없이 그대로를 보여주는 집을 가진다면, 나는 과연 누군가를 위해 변화할 필요를 느낄까하는 생각 말이다. 마리는 현재의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을 짓는다. 마치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남들에 의해 흔들리고 변하기 보다는 자신만의 꿈을 위해 자신을 지키려는 듯이 말이다. 하지만 집이라는 건 언제나 변화하는 인간의 삶이나 생각만큼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가며 자신의 생각과 삶이 변할때마다 그녀는 이전의 자신을 보여주는 집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게 되진 않을까? 물론 앞으로 c동과 d동을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긴 했지만 이전의 a동과 b동은 그래도 두어야 하니 말이다. 아무쪼록 마리가 지금 지으려 하는 a동과 b동이 앞으로 지어질 c동와 d동의 좋은 시작이 되길 바람해본다. 그것까지 모두 부수고 다시 지으려면 너무 많은 수고가 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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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다리 베르타의 사랑 - 아이러니하고 말도 안 되는 열정의 기상학적 연대기
쿠카 카날스 지음, 성초림 옮김 / 예담 / 2009년 11월
절판


다른 장르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연애소설은 연애소설 특유의 색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는대로 보드랍고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핑크, 놀이동산에서 만나게 되는 구름같은 솜사탕처럼, 달큰한 맛이 나는 핑크빛이 바로 연애소설의 느낌이다. 사근사근하고 세상 그 어느것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 같은 그 아름다운 핑크빛을 그래서 읽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따스하게 그리고 가끔은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모든 연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그러하듯이 그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 역시 그렇게 낯간지럽고 예쁘기만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키다리 베르타, 사랑을 찾아라.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의 주인공 베르타는 태어날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실망을 한번에 받으며 태어난다. 무지개가 마을에 걸린 날 태어나는 아이. 그래서 대단한 능력을 타고 날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자랐으나 사실은 그저 길쭉한 아이일 뿐이었던 베르타. 그녀는 남자도 170이 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마을에 190이 넘는 키를 가진 키만 껑충한 길쭉한 아이일뿐이었고, 그녀의 키는 그녀를 다른 사춘기 소녀들이 경험하며 지나는 첫사랑의 풋풋함마저 겪지 못하도록 하는 거추장스럽고 창피한 걸림돌일 뿐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날 새로이 나타난 요나라는 이름의 우체부는 그녀의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큰 키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그녀가 올려다 볼 수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눈길을 준 이들은 그 또한 자연스럽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고 유난히 베르타를 아끼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시작한다.


베르타의 특별한 능력, 그리고 마을의 변화

마을에 무지개가 걸린 날 태어난 특별한 아이 베르타의 숨겨진 능력은 베르타가 사랑을 시작하고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베르타의 마음에 따라 날씨가 변화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베르타가 처음으로 요나와의 짧은 스침을 통해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그 순간부터 마을에는 식을 줄 모르는 더위가 찾아오고, 그녀가 아버지에 의해 요나와의 만남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자 슬퍼하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 마을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닥치는 이상기후가 베르타에 의한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더위에서 다시 끊없이 이어지는 비를 극적으로 멈추게 한 것이 앞으로 분홍색 옷만 입겠다고 맹세한 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이상기후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마을 전체를 분홍색옷을 입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만들고, 마을의 변화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마을을 이끌어낸다. 분홍색 옷만 입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크리스마스 마을로 관광을 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은 외지인들로 붐비기 시작하고 늘 가난과 친숙했던 크리스마스 마을은 전에 없던 호황을 경험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마을과 늘 비교되고 서로를 싫어하는 마을 폰사는 크리스마스 마을의 이런 호황을 질투하고, 그들도 크리스마스 마을처럼 푸른 마을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이 결정은 폰사와 크리스마스 마을 사이에 불화를 심화시키고, 이제 폰사마을 출신인 요나와 크리스마스 마을 출신인 베르타의 사랑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가난했을때에는 그저 약간의 시기와 약간의 경쟁만 있던 마을이 번성하며 이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분노와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을이 사라지고 나서야...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은 그렇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요나와 베르타를 설정한다. 가난했을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찾아온 행운을 평화롭게 누리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서로 경쟁하고 분노하며 질타하는 것으로 그것들을 변질시킨다. 그리고 이제 그 분노는 마을을 넘어 폰사마을까지 향하게 되고 두 마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욕심은 분노를 부르고, 그 분노가 희생을 낳을때까지 말이다. 서로를 사랑했던 요나와 베르타는 그 모습을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마을은 베르타의 눈물로 쓸려 사라지고 분홍의 마을화 파랑의 마을은 자줏빛 물이 되어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그렇게 마을이 사라지고 요나와 베르타는 그들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사랑은 남은 것이다. 베르타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기분에 따라 변하던 날씨는 아마도 그 이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듯 하다. 책에는 그날의 두 마을에 닥친 재앙을 아직도 원인불명이라고 정리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녀의 능력이 사라진 것일까? 아님 그녀의 일상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을 얻은 뒤 다시 지루해진 것일까? 아마도 베르타는 그날 그 마을의 자줏빛 물에 자신의 능력을 쏟아버렸던 것 같다. 더 이상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필요없었으니 말이다. 조금은 황당한 설정에서 시작한 연애소설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 역시 그렇게 사랑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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