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베르타의 사랑 - 아이러니하고 말도 안 되는 열정의 기상학적 연대기
쿠카 카날스 지음, 성초림 옮김 / 예담 / 2009년 11월
절판


다른 장르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연애소설은 연애소설 특유의 색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표현하는대로 보드랍고 달콤한 맛이 느껴지는 핑크, 놀이동산에서 만나게 되는 구름같은 솜사탕처럼, 달큰한 맛이 나는 핑크빛이 바로 연애소설의 느낌이다. 사근사근하고 세상 그 어느것에도 영향받지 않을 것 같은 그 아름다운 핑크빛을 그래서 읽는 사람의 마음도 조금은 부드럽게 조금은 따스하게 그리고 가끔은 손발이 오그라들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모든 연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 그러하듯이 그 사랑을 그린 연애소설 역시 그렇게 낯간지럽고 예쁘기만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까?

키다리 베르타, 사랑을 찾아라.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의 주인공 베르타는 태어날때부터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실망을 한번에 받으며 태어난다. 무지개가 마을에 걸린 날 태어나는 아이. 그래서 대단한 능력을 타고 날 것이라는 마을 사람들의 기대를 받고 자랐으나 사실은 그저 길쭉한 아이일 뿐이었던 베르타. 그녀는 남자도 170이 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인 마을에 190이 넘는 키를 가진 키만 껑충한 길쭉한 아이일뿐이었고, 그녀의 키는 그녀를 다른 사춘기 소녀들이 경험하며 지나는 첫사랑의 풋풋함마저 겪지 못하도록 하는 거추장스럽고 창피한 걸림돌일 뿐이다. 그러던 그녀에게 어느날 새로이 나타난 요나라는 이름의 우체부는 그녀의 마을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만큼 큰 키를 가진 사람이었고,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그녀가 올려다 볼 수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눈길을 준 이들은 그 또한 자연스럽게 사랑을 느끼기 시작하고 유난히 베르타를 아끼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시작한다.


베르타의 특별한 능력, 그리고 마을의 변화

마을에 무지개가 걸린 날 태어난 특별한 아이 베르타의 숨겨진 능력은 베르타가 사랑을 시작하고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베르타의 마음에 따라 날씨가 변화하는 것이다. 사랑에 빠진 베르타가 처음으로 요나와의 짧은 스침을 통해 마음이 뜨겁게 달아오른 그 순간부터 마을에는 식을 줄 모르는 더위가 찾아오고, 그녀가 아버지에 의해 요나와의 만남을 계속할 수 없는 상황에 닥치자 슬퍼하는 그녀의 마음을 따라 마을에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닥치는 이상기후가 베르타에 의한 것이라고는 생각치 못하고 엉뚱한 곳에서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더위에서 다시 끊없이 이어지는 비를 극적으로 멈추게 한 것이 앞으로 분홍색 옷만 입겠다고 맹세한 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다시 이상기후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마을 전체를 분홍색옷을 입는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만들고, 마을의 변화는 상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마을을 이끌어낸다. 분홍색 옷만 입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 크리스마스 마을로 관광을 오기 시작한 것이다. 마을은 외지인들로 붐비기 시작하고 늘 가난과 친숙했던 크리스마스 마을은 전에 없던 호황을 경험하게 된다. 크리스마스 마을과 늘 비교되고 서로를 싫어하는 마을 폰사는 크리스마스 마을의 이런 호황을 질투하고, 그들도 크리스마스 마을처럼 푸른 마을이 되기로 한다. 그리고 이 결정은 폰사와 크리스마스 마을 사이에 불화를 심화시키고, 이제 폰사마을 출신인 요나와 크리스마스 마을 출신인 베르타의 사랑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가난했을때에는 그저 약간의 시기와 약간의 경쟁만 있던 마을이 번성하며 이제는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분노와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을이 사라지고 나서야...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은 그렇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요나와 베르타를 설정한다. 가난했을때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게 찾아온 행운을 평화롭게 누리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서로 경쟁하고 분노하며 질타하는 것으로 그것들을 변질시킨다. 그리고 이제 그 분노는 마을을 넘어 폰사마을까지 향하게 되고 두 마을의 전쟁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의 욕심은 분노를 부르고, 그 분노가 희생을 낳을때까지 말이다. 서로를 사랑했던 요나와 베르타는 그 모습을 보며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마을은 베르타의 눈물로 쓸려 사라지고 분홍의 마을화 파랑의 마을은 자줏빛 물이 되어 자취를 감추어버린다. 그렇게 마을이 사라지고 요나와 베르타는 그들만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마을은 사라졌지만 그들의 사랑은 남은 것이다. 베르타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의 기분에 따라 변하던 날씨는 아마도 그 이후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듯 하다. 책에는 그날의 두 마을에 닥친 재앙을 아직도 원인불명이라고 정리해버렸으니 말이다. 그녀의 능력이 사라진 것일까? 아님 그녀의 일상이 그토록 원했던 사랑을 얻은 뒤 다시 지루해진 것일까? 아마도 베르타는 그날 그 마을의 자줏빛 물에 자신의 능력을 쏟아버렸던 것 같다. 더 이상 자신에게는 그런 능력이 필요없었으니 말이다. 조금은 황당한 설정에서 시작한 연애소설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 <키다리 베르타의 사랑> 역시 그렇게 사랑의 진리를 말하고 있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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