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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초콜릿이다 - 정박미경의 B급 연애 탈출기
정박미경 지음, 문홍진 그림 / 레드박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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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나 연애는 인류의 영원한 화두이다. 영화와 음악, 미술이 끝없이 그리고 원하고 꿈꾸는 대상. 그것이 아름다운 여인이듯, 명예를 꿈꾸는 남성이든 그 안에는 그들을 향한 애정어린 시선이 있고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있으며 내면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한 노력이 담겨 있으며 그 내면의 감정 가장 깊은 곳에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사랑은, 혹은 연애는 진부하고 지루하며 또 아름답고 늘 꿈을 꾸게 하는 대상으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한다. 모두가 지겹다고 고개를 저으면서도 언제나 그것을 향해 그리움을 쏟아내는 감정, 사랑과 연애는 그래서 달디 달아 가끔은 지겹지만 언제나 한번쯤은 먹고 싶은 초콜릿의 그 달콤 쌉싸름한 맛을 닮아있다.

누군가는 해보았을 그들의 연애사.
정박미경이라는 이름의 작가가 그려낸 B급 연애 탈출기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소위 B급 연애라고 이름지어진 너무도 흔하게 널린 그렇고 그런 연애담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누군가는 상처받고 누군가는 눈물흘리며 후회해야했던 친구 누구누구의 과거 연애사에 대한 일곱가지의 짧은 토막이야기들을 엮어내었다. 그리고 그 연애담이란 아름답고 진한,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꿈꾸었을법한 A급 연애를 꿈꾸다, 시작도 과정도 결말도 특별할 것 없는 그렇고 그런 B급 연애로 막을 내려버린 흔하디 흔해 진부하다는 표현이 너무도 잘 어울리는 누군가의 과거사와 너무나 닮아있다.

A급 연애를 꿈꾸는 자. B급 연애를 하리라.
<남자는 초콜릿이다>에는 모두가 조금씩은 다른, 그러나 언뜻 보면 흔하디 흔한 연애를 했던 일곱명의 연애사들이 있다. 35살까지 경험이 없었던 어리의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남자와의 연애담부터, 어린시절의 기억 때문에 남자들에게서 스스로를 격리하는 법부터 배워야 했던 희수, 여성해방이라는 명분을 위해 100명이 넘는 많은 남자들과의 묻지마 섹스를 감행했던 현서, 양다리를 넘어 세다리 네다리를 걸치고도 유유자적한 초인, 제자를 애인으로 삼아 해외토픽에나 나올법한 연애담을 만들어낸 대학강사 지아와 나쁜남자만 사랑하는 디디, 그리고 스스로 까미유 끌로델이 되어버린 이후까지.. 어디선가 들어본적 있는 것 같은 혹은 내가 과거에 그랬고, 내 친구가 지금도 빠져있을 것만 같은 그런 연애담들을 쏙쏙 골라 모아 놓은 것 같은 바로 그런 이야기들이 이 책을 채우고 있는 것이다.

당신의 연애, 이것만은 피해라.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하지만 그렇고 그런 연애담만을 모아 묶어놓은 자잘한 연애모음집은 아니다. 앞서 언급한 일곱가지의 사례들을 통해 여자들이 꿈꾸었던 A급 연애의 환상뒤에 어쩌면 깊게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혹은 알고도 외면하려 했던 치명적인 함정들에 대해 이야기 하려는 책이다. 연애와 사랑이라는 감정에 휘둘려 눈에 빤히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발을 내딛어 빠지게 되는 연애의 이런 함정들로 인해 한때는 아름답고 멋진 A급 연애를 꿈꾸었으나 어느 순간 뻔하디 뻔한 B급 연애의 절벽으로 내닫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 따끔한 한마디의 충고를 담은 지침서랄까? 그래서 <남자는 초콜릿이다>는 읽는 내내 우습고 한심해 보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스스로를 찔리게 만드는 묘한 느낌을 선사한다. 당신이 빠질지도 모르는 연애의 함정, 사랑이라는 달콤함 때문에 어딘가에서 느껴지는 씁쓸함을 외면하고, 속 버리는지도 모르고, 이가 상하는지도 모르고 자꾸만 손을 뻗게 되는 초콜릿이 되어버릴지도 모르는 바로 그 B급 연애가 되지 않길 바란다면 한번쯤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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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비안의 해적 - 상 - 낯선 조류 샘터 외국소설선 2
팀 파워스 지음, 김민혜 옮김, 김숙경 그림 / 샘터사 / 2010년 1월
품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 녹녹치 않아서 인지, 아니면 영화에서만 가능한 새롭고 아름다운 또다른 세계들에 대한 열망이 점점 뜨거워져 가는 것인지, 극장가에는 점점 다양한 판타지영화들이 종종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판타지라고 하면 일단 떠오르는 마법과 전설등을 다룬 판타지부터 최근에는 젊은층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모은 뱀파이어 연애담까지, 판타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넓어지고 다양해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 판타지라는 장르를 설명하면서 꼭 빼놓지 않아야할 또 하나의 대작 캐리비안의 해적이 있다.

캐리비안의 해적, 4편의 원작.
캐리비안의 해적은 여러모로 조금은 의외인 작품이 아닐까 한다. 늘 약간은 마이너 성향이 강했던 조니 뎁을 가장 메이져스러운 영화에 출연시킨것부터 하여 역사속에 실제로 존재하기에 판타지로는 만들어질지 몰랐던, 그더 단순 어드벤처 무비일 것으로만 생각했던 해적영화를 판타지라는 장르로 재탄생 시켰다는 점에서 말이다. 사실 처음 이 영화를 관람했던 이유는 가장 판타지적인 그러나 늘 마이너적이었던 배우 조니뎁에 대한 단순 애정에서 시작했던것이지만 오랜 시간 속편과 연작들을 발표해오며 이어져 온 캐리비안의 해적은 그 자체만으로 또 하나의 판타지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한 작품이기도 했다.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바로 그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 4편의 원작이 되는 작품이다.

어두운 배경, 마법. 그리고 해적이 되어야 했던 남자.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의 주 인물은 잭 섄더넥이라는 이름의 청년. 그는 불행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고통, 바로 그 시작에 다름아닌 자신의 삼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아버지의 고통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아이티로 향하는 배를 타고 가던 도중 해적의 습격을 받게 된다. 자신의 복수를 위해 배에 올랐으나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해적의 일원이 되어 배에 남는 것을 선택하고 그것으로서 해적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에는 방해가 되어버렸지만 어쨌든 해적으로서 남게 된 잭, 그는 해적들과의 생활을 통해 점점 해적의 일원으로 점점 익숙해지고, 해적들과의 생활이 그렇듯 자신도 모르게 그들의 모험과 일상에 동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중심에 캐리비안의 해적 3편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청춘의 샘에 대한 이야기와 검은수염이라는 공포의 존재까지 가세하며 이야기를 점점 흥미롭게 끌어간다.

재미와 즐거움, 그리고 호기심을 동시에 선사하는 판타지.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단순히 <캐리비안의 해적>이라는 영화를 떠올려 그 이야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이야기 단 하나만을 두고도 충분히 집중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만큼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해적이 되어야만 했던 잭의 사연부터 해적과 크게 상관이 없을 것 같은 부두교의 주술등, 다양한 재료들을 이용해 단순한 어드벤처물이 아닌 환상과 상상의 세계를 충족시켜주는 판타지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가디 더하자면 이 이야기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야기와 사실들이 단순히 작가의 상상력만을 근거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등장하는 실제의 인물들과 실제존재했던 수 많은 전설, 그리고 종교적 근거들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역사적 사실들까지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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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이 진다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5
미야모토 테루 지음, 서혜영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1월
절판


그저 존재하는 것 만으로도 사람을 빛나게 하는 시간들, 모든것이 싱그럽고 어떤 도전도 힘에 겹지 않을 것 같은 그 시기를 일러 사람들은 청춘이라고 부른다. 살아가면서 모두에게 한번은 찾아오지만 정작 찾아왔음을 느끼기에는 그 발걸음이 너무도 가볍고 조용하여 알아차리기 힘들고, 비로소 그 시간이 흐른 다음에야 그 때가 나의 인생에서 가장 빛날 수 있었던 청춘이라 이름지어진 바로 그 시기였음을 깨닫게 되는 조금은 야속하고 무정한 인생의 순간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래서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나, 혹은 그 시간을 흘려보내버린 사람들에게 모두 아름답고 진한 그리움과 각성을 불러오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빛나는 시절의 아름답고도 아련한 기억들
<파랑이 진다>는 바로 그 청춘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은 책이다. 존재만으로 빛이 나지만 그 순간의 빛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래서 더욱 안타깝고 아련한 흘러간 기억들에 대한 이야기.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찬란한 청춘의 시간들을 기록한 이야기임에도 희망적이고 아름답기 보다는 어딘지 모르는 상실감과 아픔을 담고 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푸르름을 담은 파랑이 서서히 잦아드는 시기. 그래서 그 푸르름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었던 그 파랑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것이 바로 <파랑이 진다>이다.

아름답지만 잃어가야 하는 것들이 많았던 그 시절
<파랑이 진다>의 주인공 료헤이는 집안의 사정으로 재수를 하던 중에 우연히 사정이 풀리며 새로 생긴 신생 대학에 입학을 하는 것으로 그 파랑의 시절을 시작하는 대학생이다. 특별히 원한 것도, 그렇다고 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 대학의 입학, 시작부터 거의 충동적으로 입학을 결정했을만큼 그 무엇도 확실한 것이 없었던 료헤이에게 대학시절은 그저 잠시 주어진 얼마간의 유예기간일 뿐이고, 때문에 그는 대학생활을 통해 자신이 어떤 것들을 이루어나갈지, 혹은 무엇을 얻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 어찌보면 대단히 우유부단하고 주체성이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우연처럼 들어간 대학에서 목적없는 시간을 보내는 료헤이, 그는 또다시 우연처럼 테니스클럽에 들어가고, 그 모임을 통해 우연처럼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리고 테니스라는 하나의 매게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사람을 만나고, 삶을 읽는 방법에 대해서 배워간다. 다른 파랑의 시절을 보내는 청춘들처럼 같은 시간을 보내며 특별한 의미를 찾지 못하지만, 그 시간을 지내내는 것 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파랑의 청춘들, 료헤이는 자신도 모르게 그 시간들을 통해 세상에 나가기 전의 유예기간을 많은 것을 얻고, 배우고, 상실하는 시간으로 채워간다. 가끔은 열렬히 무언가에 빠져들고, 가끔은 어떤 것을 얻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그리고 그 노력에도, 혹은 의도치 않았던 상황으로 다치고, 넘어지고, 잃어버리는 과정. 그것들을 그 파랑의 시절에 겪어내는 것이다.

모든것이 뜻대로 되지 않음을, 그래서 아프고도 아름다운 파랑의 계절.
잠시 잠깐 모습을 드러내고 져버리는 꽃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그 꽃이 피어있는 시기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이라고들 한다. 잠깐의 아름다움이기에 더욱 절실하고, 아름다운 꽃. 그 아름다움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기에 오랜 시간 그 아름다움을 기다리고 추억하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같은 시기인 청춘이 아름다움으로 기억되는 것은 어쩌면 바로 그 때문이 아닐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그리움과 안타까움 말이다. 정작 그 시기를 지내고 있는 파랑의 젊은이들에게는 모질고 아픈 상처를 깨달아가고 한없는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 움츠려드는 시기일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그 시기가 지나면 그 때가 아름다웠다고 말하는 파랑의 시절. <파랑이 진다>는 그 파랑의 시기를 우리처럼, 그리고 바로 당신처럼 지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아름답지만 안타까운, 그리서 그 파랑이 지는 모습이 더욱 안쓰러운 그런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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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 - Harmony
영화
상영종료


가끔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도 잊고 사는 곳들이 있다. 또 그곳이 존재하는 사실은 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을 외면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세상이 지켜진다고 믿는 곳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 세상에서 용납받지 못하는 죄를 짓고, 세상을 버리거나, 혹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사는 곳.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편견어린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하모니는 그래서 우리가 잠시 잊었던 그곳에 대한 잠시의 머뭇거림을 제공한다.

영화 하모니는 여자 교도소라는 사실은 조금 생소한 공간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각자가 아픈 상처를 가지고 있거나 혹은 사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죄를 지었으나 그럼에도 한명의 사람으로서의 삶 역시 가지고 있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각자가 모두 같은 죄목으로 한방에서 살아가는 또 하나의 공동체, 죄목은 같지만 각자가 그 죄를 지은 배경에는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들의 인생은 모두가 삶이라는 시간을 걸어가지만 모두 다른 모습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보통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에 속하지 못한 이들이 또 하나의 가족으로 맺어져 그들 나름의 삶을 꾸리고 살아가는 모습들은 또 하나의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모니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사연을 통해 모두가 공감하고 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죄의 이유들을 보여준다. 그들이 살인이라는 큰 죄를 짓고 여자교도소라는 공간에 모이기까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어쩌면 합당한 이유들을 제공해 그들에게 안타까운 마음과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게 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영화가 교도소라는 특수한 공간의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에게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합리화를 제공하는 영화는 아니다. 단지 하모니라는 이름처럼, 그들도 사람들 사이에 살아가고 있었던, 그리고 여전히 사회로 돌아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우리같은 사람들이며, 때로는 그들에게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절박한 순간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단 한번의 이해를 부탁하는 영화인 것이다. 제목처럼, 하모니를 이루며 살아가는 기회를 부탁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노래를 담은 단 한곡의 노래. 하모니, 감동과 유쾌함, 그리고 잠시의 생각할 여지를 주는 이 영화는 영화적 재미뿐 아니라 그 외의 많은 얻을 것도 더해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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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내지 마 민음사 모던 클래식 3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구판절판


한권의 책을 손에 잡고 시간을 들여 읽고 나면 책을 정리하는 시간에 느끼는 감정들은 그 책을 읽는 순간 느꼈던 감정과는 다른 경우가 있다. 읽는 내내 즐겁고 유쾌하게 너무도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며 읽었던 이야기도 책을 정리하는 시간에는 내가 무엇을 읽었던가를 갸웃거리게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읽는 동안 내내 고역스럽고 힘이 들었음에도 읽고 나면 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리게 하는 책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 언제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하게 하는 책도 있다. <나를 보내지 마>는 정말 오랜만에 나에게 그런 느낌을 선사한 아련하고도 흐릿한,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오래 되새김질하며 기억에 떠올릴 한 권의 책이라는 느낌으로 남은 책이었다. 마치 이 책의 제목처럼 <나를 보내지 마>라고 말하는 이야기. 그래서 보내야만 하는 이 책의 주인공들을 더욱 잡고 싶어지는 이야기가 바로 <나를 보내지 마>이다.

헤일셤의 아이들, 그들만의 기억
<나를 보내지 마>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캐시라는 이름의 30대 여성이다. 헤일셤이라는 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현재는 간병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녀가 과거 자신이 살아온 시간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방식으로 전해지는 이 이야기는,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막연한 느낌을 준다. 그저 30여년의 삶을 살아온 여성이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는 이야기. 어쩌면 아무것도 특이할만한 이야기가 없을지 모르는 그녀의 성장의 과정들을 그녀와 함께 그 시간을 보내온 이들과 공유한 수 없이 많은 추억들과 함께 버무려 낸 이야기. 그래서 단순한 성장소설처럼 느껴지는 이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딘지 부자연스러운 그들의 과거.
책을 읽는 내내 헤일셤이라는 공간은 어딘지 자연스럽지 못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주곤한다. 외부와 단절된 공간,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아이들, 기증자, 근원자들의 알 수 없는 말들. 읽는 동안 내내 정확한 의미를 규정해주지 않던 이 단어들은 캐시가 그곳을 살아가며 어렴풋하지만 정확하게는 알 수 없었던 자신들의 운명과 그 진실에 대해 깨달아가득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누군가의 단순한 성장소설과 같은 느낌을 주던 이 이야기는 이런 과정을 통해 사실은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신체를 기증해야하는 운명을 타고 탄생된 클론들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그들의 운명.
순수하게 누군가의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탄생된 하나의 존재 클론, 모두가 사랑과 우정과 성장의 과정을 겪는 독립적인 인격체이지만 하나의 생명으로 존중받기 보다는 누군가의 부속품으로 자신의 존재를 유지시켜야 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영화 아일랜드를 떠올리게 한다. 많이 닮은 듯한 영화와 소설, 하지만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아일랜드의 그들보다 훨씬 잔인한 운명을 타고 난 존재이다. 스스로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인지도 모른채 장기를 기증하게 되는 그 순간까지도 자신의 남겨지니 삶을 그리고 계획하며 살아갔던 아일랜드의 그들과는 다르게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자신들이 세상에 살아있는 이유에 대해 너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을 몰랐기에 그 사실을 맞딱드리고 저항할 수 있었던 아일랜드의 그들에 비해 <나를 보내지 마>의 클론들은 이미 알고 있던 운명이었기에 저항할수도 없고 저항할 마음도 없는 상태로 살아가며 자신들의 운명을 받아들이게 된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어떤것도 자신들을 구할 수 없는, 그리고 그들 자신도 자신을 구할 수 없는 절망의 상태에 그들을 버려놓아 읽는 내내 그들의 운명을 아파하고 안타깝게 만든다.

진실의 가치.
<나를 보내지 마>의 캐시와 그 친구들은 자신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운명을 모른채 살아갔던 혹은 그 사실을 외면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애를 썼던 헤일셤의 다른 사람들에 비해 그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자신들이 결국은 그 자체로 의미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의 죽음으로써 가치를 이루어낸다는 최악의 진실은 아마도 그 사실을 몰랐을때보다 알았을때 그들을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사람의 삶은 대부분 그 끝을 알 수 없다. 모두가 미래를 알고 싶어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미래가 아름답고 더욱 빛날것이라는 희망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 말이다. 미래가 정해진 사람들, 그리고 그 미래가 아름답기는 커녕 최악의 것들이라면 고통으로 가득찬 미래를 받아들이며 순응하는 것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리라. <나를 보내지 마>는 그래서 알 수 없는 우리의 미래가 왜 의미 있는 것인지, 그리고 그 자체로 의미있는 존재로 살아갈 기회를 얻은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다시 한번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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