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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역사가 바뀌다 - 세계사에 새겨진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
주경철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나처럼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맛깔나게 글 쓰는 사람을 좋아한다. 내 즐거움을 배가 시켜줄 있는 사람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ㅎㅎ 이 책을 읽으며 주경철 교수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역사가 죽은 과거의 재료를 이용하는 데 그친다면 그 존재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 과거가 살아 있는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미래를 결정짓는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면 말이 달라진다. 도구로서의 과거가 현재를 해석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면, 모든 과거를 더 연구(분석)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 자체로 과거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야 한다. 해석의 학문인 역사가 어떻게 과거에 접근해야 하는지는 작금의 한일 관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나간 과거는 말이 없지만 현재의 역사가는 그런 과거에 해석을 가함으로써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면 죽은 과거는 기적(?)처럼 되살아나 날 다시 보라며 손짓한다. 모든 역사가의 해석이 같다면 국정 역사 교과서 같은 단조로움 속에서 진저리 치겠지만 다행히도 많은 역사가들은 저마다 다른 해석을 하고 있다. 인간이 가진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그만큼의 다양성 속에서 역사는 더 풍부해진다. 이 책을 읽자니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왜일까?
저자는 1492년, 1820년, 1914년, 1945년을 중심으로 이야기(실제로는 강의)를 풀어간다. 바로 그해부터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1942년은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해로, 지구의 변방이랄 수 있는 유럽이 틀을 깨고 대양과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물론 이전에도 문명 간 교류가 있었지만 그것은 육지를 통한 제한적인 것이었다. 콜럼버스는 자신의 신앙과 선원으로서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스페인 왕실의 지원을 받아 둥근 지구의 저편을 향해 출발했다. 이것은 유럽이 이제 중세를 벗어나 근대로 들어오는 시작이자 유럽 문명의 본격적 대외 진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두 번째 1820년은 1492년보다 좀 더 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 해는 유럽이 타 문명을 완전히 압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대체로 17,8세기 이전에는 중국이 경제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유럽의 대외 진출이 본격화되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런데 1820년쯤이 되면 이는 완전히 역전되어 유럽은 세계를 압도하게 된다. 이를 1820년 대분기라고 부른다. 그 이유야 잘 아는 대로 산업혁명 때문이면 이를 바탕으로 유럽은 제국주의 길을 치닫게 된다.
세 번째는 1914년으로 오해가 있을 듯하다. 그해에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른 곳으로 눈길을 준다. 1914년에 미국의 한 동물원에서 나그네비둘기가 죽음으로써 그 종이 멸종했다고. 즉 인간 문명의 발달로 자연 생태계가 파괴되고 환경 위기가 초래되는 과정을 찾았다. 환경 문제는 21세기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산업 혁명을 거치며 주요 국가는 물론 지구 전체에 위기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래서 저자는 ‘문명화란 숲이 없어지는 것‘이라 주장한다. 문명화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인간의 욕망은 동식물들의 운명을 좌우할 정도이다. 문명화는 이 욕망의 다른 얼굴 아닐까? 파울 크뤼천이라는 네덜란드 화학자의 주장이 새삼 와닿는다. 현재는 ‘인류세‘라는 새로운 지질 시대로 들어섰다는.
마지막으로 1945년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지만 인류는 여전히 폭력의 세기에 살고 있다. 학자들에 따라 인구가 적었던 과거의 전쟁이 상대적으로 더 사망자 수가 많았다고 하기도 하고, 무기의 발달에 따라 현대전에서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2차 대전으로 5,500만이 전사했으며 제노사이드와 같은 학살은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인종의 차원을 넘어 종교나 민족을 거론하며 자랑스레 ‘청소‘라는 것을 자행하고 있다. 게다가 군사 기술은 과학 기술과 병행하여 발전함으로써 그만큼 인류는 더 위험에 처해 있다. 이것은 문명화의 숨은 얼굴 아닐까? 아니 차라리 야만화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현대로 올수록 개인은 예절과 교육 등을 통해, 사회는 경제 발전을 통해 폭력을 포기하도록 문명화되고 있지만 반면 국가는 그 폭력을 독점하는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이는 한국의 현대가 증명하고 있다.
역사는 이처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안겨준다. 주어진 대로의 삶이 아니라 내가 생각하고 가꾼 현실을 살아가는 식재료로써 역사는 아주 좋다. 역사의 흐름에 둔감한 내가 이렇게 콕콕 집어주는 과외를 받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과거를 내가 주인공으로써 다듬고 잘 활용한다면 그 과거는 죽지 않은 날 것이 될 수도 있다. 역사는 전공자만의 것이 아니다.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나눠야 할 재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의미가 있다. 인류 사회가 나가야 할 바를 고민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