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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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베스트셀러는 있다.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감동케하는 책은 생명력이 길어서 언제 펼쳐도 공감이 간다. 다만 시대에 따라 그 길이가 달라지는 것은 명확해 보인다. 책의 유통량이 적었던 전통 시대의 경우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면 꽤 오랜 시간 읽혀졌다. 출간된 책을 만나기 힘들 경우 필사하여 소장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반면 인쇄술이 발달한 요즘에는 베스트셀러의 생명력이 짧다. 그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베스트셀러를 대신할 다른 책들도 많이 출간되는 점도 무시하기 힘들다. 아무튼 좋은 책을 만나 인생이 바뀌게 되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조선 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중에 하나가 <중용>이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국가 운영 및 인재 양성의 근본을 제공한 이 책은 조선 시대 내내 큰 저항 없이 꾸준히 읽혔다. 아울러 고매한 형이상학의 형성과 현실에서의 실천을 근간으로 재해석되고 다양한 주석서들이 편찬되었다. 지금으로 치면 초대형 베스트셀러의 등장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책들이 하나의 가능성으로써의 위치를 넘어 종교적 절대성을 가지게 될 때 생겨나는 문제점들이다. 또한 그것이 국가나 정권의 절대권력에 의해 휘둘러질 때 소수의견은 무시되고 다른 가능성을 사장되기 십상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점에서 고민되고 불편했다.

시작은 좋았다. 국가 경영의 단초를 제공해주었고 수 많은 논쟁을 통해 지식 확대의 장도 마련되었다. <중용>은 16세기까지는 최고의 순기능을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17세기로 들어서며 사상적 경직화(혹은 보수화) 현상이 심해진 조선에서는 그 경직화의 수단으로써 <중용>이 작용하게 되었다. 이는 순기능을 넘어 악기능으로까지 가는 시작이었다. 사실 <중용> 자체는 문제가 없다. 이를 읽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문제가 있을 뿐. 또한 그 주해서인 주희의 <중용장구집주>도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이를 현실에 적용하면서 자신의 마음대로 곡해한 이들이 문제지.

17세기 조선의 <중용> 신봉은 종교적 근본주의와 닮아 있어 보인다. 혹은 마치 공산주의나 자본주의 이론에 경도된 것처럼 보인다. 유학이, 공산주의가, 자본주의가 언제 완벽히 증명된 적이 있었던가. 다만 현실에서 최선이라고 생각할 뿐이지 않는가. 주희와 그의 <중용장구집주>를 절대화하는 순간, 주희 저작의 일점일획도 고칠 수 없다고 선언하는 순간 사고는 굳고 다양성을 파괴되었다. 사문난적의 시비에 얽혔던 이들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학문과 정치 권력을 잡은 이들에 의해 해석은 좌우되니까.결국 <중용>도 이용당한 셈이다. 조선의 유학자들에 의해. 증면된 바 없는 주장들을 사변하여 세상에 강요한 것이다.

조선의 멸망 원인은 다양할 것이다. <중용>의 사례에서 보듯이 사상의 보수화 역시 증요한 사례임에 틀림없다.

이 책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중용>이 조선에 들어와 어떻게 정착하고 순기능하였는지 실록을 통해 실례를 보여 준다. 또한 사상 보수화의 너머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며 자신의 길을 간 이익, 정제두, 박중빈의 사례도 제시한다. 결국 <중용>이 조선에서 소화된 역사적 과정을 5단계를 통해 일러 주고 있다. <중용>의 역사성이라 평가할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는 저자가 현재 천착하고 있는 생태주의로의 안내까지 이어진다. <중용>에 내재된 우주관을 생태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저자만의 색다른 자세 아닐까 싶다.

책을 읽으며 아쉬운 대목은 저자의 탁월한 한문 실력에 경탄하면서 끝내는 경전 해석의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점이다. 철학적 혹은 형이상학적 사고가 불가능한데다 한문 이해력이 떨어지지 친절한 설명조차 버겁기까지 했다. 나의 조선 이해가 얼마나 수박 겉핥기 수준이었는지 절감했다. 한문과 유학 공부라는 숙제를 떠안은 느낌이었다. ㅎㅎ

저자의 색다른 시도를 환영하며 다음 책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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