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쯤은 이상세계를 꿈 꿔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이상세계와 좀 더 커서 꿈꾼 세계가 다를지언정 이상세계가 현재 우리 삶보다 나은 곳이기를 바라는 마음은 같다. 이런 염원은 과거인들이라고 다를 리 없다. 그들 역시 고단한 삶을 살았고 현실을 넘어서는 이상세계를 꿈궜다. 어쩌면 이것은 연약한 인간의 당연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적지 않은 이들이 이상세계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죽어갔다.반면 현실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다를 것이다. 그들에게는 지금의 삶이 이상세계일 것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현 상황이 바뀔 이유도 없고 바껴도 안된다. 그래야 지금의 권력과 풍족한 삶을 계속 유지할 테니까. 이런 이들에게 하층민들의 이상세계론은 불온하기 그지 없다. 이것은 현체제를 뒤엎으려는 반역사상이기도 했다. 그러니 정부와 권력층은 이러한 시도를 강하게 억압했고 심지어는 외국군의 힘을 빌려 그들을 눌렀다. 조선 역사상 최고의 왕 중에 하나라 일컬어지는 정조 대에 예언서인 <정감록>에 기반한 역모사건이 많이 발생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를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조선의 멋진 신세계>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다양한 이상세계를 꿈꾼 조선 후기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 활빈당, 천주교, 동학, 미륵, 정감록, 정약용 등이 주도하던 신세계를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읽기 쉬운 필체로 써내려 갔다. 일종의 조선판 유토피아 설명서다.조선 후기 민초들의 억눌린 삶은 더이상 그들을 고분고분하게 살도록 하지 않았다. 당장의 끼니를 걱정하고 내일을 기대할 수 없는 일상은 현재의 권력에 대항하도록 만들었고 이상세계론은 그 사상적, 이론적 기반이 되어 주었다. 여기에는 가난한 하층민만이 아니라 몰락한 양반층도 가담함으로써 전 사회를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그럼에도 집권층은 권력 유지에 급급했고 변화를 꾀하지 않았다. 민초들의 저항은 각 단체별로 따로 진행된 듯하지만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보인다. 결국 이러한 힘들이 모여 시대 변화의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냈다고 본다.한편 이 책은 전문가 6명이 함께 만든 책이다보니 서술 방식에 차이를 보인다. 사실 이는 읽는 데 큰 어려움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독자인 내게 약간의 불편을 주었다. 특히 <동학이 꿈꾼 유토피아> 부분은 다소 동학을 찬양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며, <다산이 다스린 사회>부분은 논문투의 필체와 많은 고어의 사용으로 읽기를 방해한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읽는다면 200여 년 전 고단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이땅의 민초들이 눈에 자연스레 그려질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주제이기도 하다. 과연 우리는 그때보다 나아졌을까 고민해봐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