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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여행 - 헤세와 함께 하는 스위스.남독일.이탈리아.아시아 여행
헤르만 헤세 지음, 홍성광 옮김 / 연암서가 / 2014년 7월
평점 :
이번 알라딘 신간평가단 에세이 분야에는 내가 추천했던 5권의 에세이 서적 중 1위와 2위 서적이 모두 선정되어 기쁜 마음으로 읽게되었다. 이 책 이후로 신간평가단 마지막 도서 2권을 읽고 리뷰하면 2014년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진행되어 온 신간평가단도 마무리된다. 마무리 직전의 책이 헤르만 헤세의 여행서적이라 기쁜 마음이다.
헤르만 헤세. 노벨문학상의 주인공이자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등의 문학적 예술작품들을 쏟아낸 그그. 이번 책 <헤세의 여행>은 헤르만 헤세의 여행 에세이다. 24세부터 50세까지 헤세가 쓴 여행과 소풍에 대한 글이자 문학적으로 만난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것은 유명인의 여행 에세이라기보다는 한 명의 원숙한 작가의 여행 일기에 가까워보인다. 여행과 글의 조화. 여행과 문학의 만남. 그 생각 자체만으로도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은 적당한 두께를 가지고 있지만 폰트가 작고 글의 배치가 촘촘하여 내용은 상당히 많은 편에 속한다. 479페이지의 양장본인데 체감으로는 700페이지 정도되는 책을 읽는 기분이었다. 호흡이 길었고, 헤세가 여행했던 곳곳을 간접적으로 '함께'여행하며 떠났던 시간들은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나를 날려버렸다.
여행과 소풍에 대한 에세이 외에 1901년과 1911년, 1913년의 이탈리아 여행, 1904년의 보덴 호 산책, 1911년의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지의 아시아 여행, 1919년에서 1924년까지 테신 지역 소풍, 1920년 남쪽 지역으로의 방랑, 1927년의 뉘른베르크 등지의 낭송 여행에 대한 소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각각의 여행기가 이어지는 형태가 아니므로 원하는 장소부터 읽어도 무방할거라 생각했지만 시간 순으로 이어지는 여행기이기 때문에 차례대로 읽을때 비로소 감정의 변화와 여행을 통한 자기발견, 그리고 작가로서의 발전과정을 보다 생생하게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이 책에서 헤세는 상당히 까칠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근래엔 과거의 그 어떤때보다 여행이 유행이다. 인터넷, 책, 잡지, TV 등 접할 수 있는 매체란 매체에선 항시 여행을 이야기하고 여행 콘텐츠를 접목한다. 역사상 최고로 여행 정보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비록 오래전에 쓰여진 책인 <헤세의 여행>은, 이 부분에 대해 여행의 진면목을 보지않고 단지 유행따라 하는 여행에 냉소적으로 응대한다.
현대인이 어떻게 여행해야 하느냐의 문제를 다룬 많은 책과 소책자가 있지만, 내가 알기로 좋은 책은 보지 못했다. 누군가가 유람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왜 그 여행을 하는지 아는 것이 좋다. 오늘날 도시에 사는 여행자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도시인이 여행하는 것은 여름에 도시가 너무 덥기 때문이다. 그가 여행하는 것은 공기를 바꾸고, 다른 환경과 사람들을 봄으로써 일에 지친 피로를 풀고 푹 쉴 수 있기를 희망하기 때문이다. 그가 산으로 여행하는 것은 자연과 땅, 식물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이해되지 않는 갈망으로 그를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가 로마로 여행하는 것은 그것이 교양 여행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여행하는 주된 이유는 그의 모든 사촌과 이웃도 여행을 가는데다, 또 여행을 갔다 와서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뻐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행하는 것이 유행이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무척 쾌적하고 안락한 기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척이나 공감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과거와 현재 사람들의 사상과 삶이 다르지않다. 본디 여행이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임에도 근래엔 '남들이 하니까', '내 친구도 다녀온 곳이니까', '그저 돈을 소비하기 위한'여행으로 전락했다. 헤세가 이야기하는 여행은, 체험이라는 가장 직접적인 경험치에 기반해야한다.
여행의 시학은 일상적인 단조로움, 일과 분노로부터 휴식을 취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우연히 함께 하고, 다른 광경을 관찰하는 데에 있다. 여행의 시학은 호기심의 충족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체험에, 다시 말해 더욱 풍요로워지는 데에, 새로 획득한 것의 유기적인 편입에, 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지구와 인류라는 큰 조직에 대한 우리의 이해 증진에, 옛 진리와 법칙을 전적으로 새로운 상황에서 재발견하는 데에 있다.
이 책은 여행 자체를 바라보는 헤세의 시각을 다루고있다. 그리고 헤세가 여행하며 만났던 수 많은 사람들과 물품, 각 나라의 전통과 문화, 시스템을 보며 느꼈던 생각들이 주를 이룬다. 우리는 여행에서 이런걸 느끼지 않는다. 진정한 여행을 하지 못하는 셈이다. 헤세는 국경과 경계를 바라보며 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할 수 있을만큼 넓은 세계관을 갖고 있다. 이 것들이 결국엔 많은 여행을 통해 얻어진 결과이리라.
나처럼 국경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이 많다면 더 이상 전쟁도 봉쇄도 없을 텐데. 경계만큼 보기 싫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경계는 대포나 장군과 같다. 이성, 인간성과 평화가 지배하는 한 경계에 대해 아무것도 못 느끼고 그것에 대해 비웃는다.
번역의 말투가 살짝 거슬리는 편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읽기에 부담없는 문체였다. 헤세의 문학적 문장들과 자연을 표현하는 솜씨는 그 자체로 가치를 지닐만큼 아름다웠다.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작가인 헤세가 왜 여행했는가에 대한 답변이 처음부터 설명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방랑벽이 있다며 이야기하는 그는 도대체 왜 세계각국을 돌며 여행하는가?
“나는 7월의 따뜻한 어느 날 저녁 시간에 태어났다. 나는 그 시간의 온도를 알게 모르게 평생 좋아하며 찾아다녔다. 그 온도가 아니면 나는 고통스런 마음으로 아쉬워했다.” - 헤세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심적 고향을 찾아 떠난 여행. 계속 남쪽으로, 또 남쪽으로 향하는 그 여행이 헤세를 만들었고, 위대한 작가로 발돋움하게 한 계기가 되었으리라. 여행의 끝에서 작가는 높고 낮은 것, 귀하고 천한 것의 경계가 무너지고, 만물이 평등해지며, 경계와 대립이 완전히 소멸되는 곳에 열반과 해탈이 있는 것을 깨닫게된다. 그래서 헤세의 작품들 대부분은 자연친화적이면서 차분하고, 사람들의 심리적 싸움과 갈등이 노골적으로 표현되어있다.
“여행을 떠나고 이틀만 지나면 사람, 특히 삶에 아직 굳건히 뿌리박지 않은 젊은이는 자신의 의무, 이해관계, 걱정 및 전망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 즉 일상생활로부터 아련히 멀어지게 된다.” -토마스 만
많은 사람들이 작가나 소설가라고 하면 엉덩이가 엄청 무거운 사람일 것이라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위대한 작품을 썼던 문인들과 현재 위대한 글을 쓰고있을 많은 작가들은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여행을 다닌다.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여행이 아니라 진정한 자신을 찾는, 일종의 수행같은 여행을 말이다. 나름 작가라는 타이틀을 어깨에 메고 살아가는 나도 이 부분을 뒤늦게 이해했다. 간접적 체험을 전달하는 글이란 결국 직접적인 체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방구석에 가만히 앉아서 쓰는 글은 그 누구도 감동시킬 수 없을만큼 진부해진다. 허구인 소설조차 리얼리티에 기반하고있다. 그래서 소설은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적인 면모를 가진다. 이 세상의 작가들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여행전문가이자 여행중독자들이다. 그들은 글을 쓰기 위해 떠난다. 자신을 이해하고 보다 많은 문화적 체험을 하기 위해 떠난다.
이 책을 읽은 후, 가장 크게 느낀점은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음이다. 나는 지금껏 나름 많은 곳을 여행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여행은 단 한번도 하지못했다. 나는 어른이었고 성인이었다. 성인스럽게 여행했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에 찬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카메라가 아닌 온 시신경에 때려넣는 그런 여행을 하지못했다. 여기저기 쏘다니며 마치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있는 사람처럼 정열적으로 여행하지 않았고, 피곤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하지 않으리. 나는 이제 헤세처럼 여행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