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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이기는 대화법 38 - 입만 열면 손해보는 사람을 위한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직장의 회의실에서도, 가정에서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연인과의 데이트 중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소통을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말이라는건 주워담을 수 없다는 격언처럼 유교문화권에서는 되도록이면 말을 하지 않고 묵묵하게
지내는걸 지향하는 분위기가 있다. 말을 많이하면 많이할수록 그만큼 말 실수할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말을 하느니
아예 말을 하지 않는게 경우에 따라서는 전략적일 수도 있다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처럼 개인의 표현이 소중하고 그 어느때보다도 소통이 중요한 시점에서 말이라고 하는건 이제 무조건 하지 않는게
정답은 아니다. 이왕이면 잘해야하겠지만 모든 사람이 말을 잘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누군가로부터 말싸움에 밀려 손해를
보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감정이 상한다. 사소한 말싸움때문에 사랑하는 연인과 헤어지는 일은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업무상으로도
말로 하는 파워게임은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 이기는 사람은 항상 이기는데 지는 사람은 항상 지는 경우도 있다.
상황에 따라 항상 말싸움을 이겨야하는 것은 아닐터다. 때로는 말싸움을 한 발 양보하면서도 원하는걸 얻을 수도 있다. 예를들어
사랑하는 연인과 지리멸렬한 말싸움을 지속해봤자 서로의 사랑에 도움이 될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업무상이나 감정적으로 반드시
이겨야만하는 말싸움도 있는 법이다. 실제로 말로 하는 전쟁은 서로의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말싸움을 '토론'이라거나
'소통'이라는 유연한 단어로 포장해둔 채 "자! 오늘은 허심탄회하게 토론해봅시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실제 직장에서 상사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란다고 진짜 그랬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논리적인 근거를 갖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토론에서 매번 이기는건 아니다. 사람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휘둘리는 까닭에 제대로 맞붙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알고있던 지식도 까먹기 일쑤다.
이번 책 <쇼펜하우어 이기는 대화법 38>은 토론에서 이기기 위한 직접적인 기술 38개를 나열한 도서다.
교과서적인 스피치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착하고 평범한 전략이 아니라 사람의 본성을 꿰뚫고 때로는 명확하지 않은 방법까지
동원하여 수단과 방법을 안가리고 이기는 것에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하는 재미있는 책이다.
아쉽게도 전자책 e-book은 출시되지 않았다. 전체 분량이 150페이지 정도로 얇은 편이며 책 내용도 38가지의 기술을
리스트화하여 간략하게 소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가볍게 읽어보기에 좋다. 실제로 책 무게도 가벼워서 지하철이나 출퇴근 시간에
읽기에도 부담없는 사이즈다. 책 후미에 쇼펜하우어 연보도 잘 정리돼 있다.
심술쟁이 독설가인 쇼펜하우어의 책 답게 38가지 전략 모두 매우 악의적으로 느껴진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곤란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38가지 법칙들 중에서 소수는 평범한 내용이었지만, 대다수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가령, 유식하게
들리는 허튼 소리를 쏟아내라던지, 질문을 퍼부어 양보를 얻어내라는둥, 증명되지 않은 전제를 이용하거나 상대가 억지를 쓴다고
외치라, 억지 결론을 이끌어내고 인신공격도 불사하라는 조언은 아마도 쇼펜하우어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쇼펜하우어는 논쟁적 토론도 공격하고, 방어하고, 승리하는 기술만 필요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기기 위한 기술은 진리를 향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은 말싸움에서조차 이기고 싶어한다. 이 것은 본능이다. 어느때가 되면 토론은 진실은 둘째치고 승자와
패자만이 남는 게임이 된다. 이겨야될 게임에서는 어떻게해서든 이겨야만한다.
내 말이 분명히 맞는데도 진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그리고 나중에 내 말이 맞다는게 밝혀졌을 때의 허망함, 뒤늦게 할 말이
생각나서 억울할 때, 권위에 눌려 하고싶은 말을 못했거나 손해를 볼 때, 퍼붓는 질문에 당황하고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들켰을
때, 사람들 틈에서 바보가 된 느낌이 들 때, 입만 열면 손해를 본다고 느끼거나 진실은 통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안통할 때 등
여러가지 상황에 공감하는 사람이라면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