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 사전 - 잘난 척하고 싶을 때 꼭 알아야 할
레이 해밀턴 지음, 이종호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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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우위에 서고 싶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싶다. 내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조금의 지식은 갖고 싶다. 현재의 대한민국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예전에 TV에서 스치듯 어떤 강연을 봤는데, (얼굴은 기억 안 나는) 강연자가 그랬다. 하나라도 더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tvN의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일명 알쓸신잡)>이라는 이 긴 이름의 예능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평소에 이미 알고 있던 익숙한 것과 전문 분야의 새로운 시선이 만나 '낯설 것'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지적허영심을 채워줬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기가 있었던만큼 책의 제목으로도 많이 차용됐다.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서 '쓸데'까지 쳐보면 주르륵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검색된다.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도 그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걸까?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별 기대없이 책을 열었다.

'이 책을 소개합니다'라는 서문에서 작가는 대놓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당신을 아주 짧게나마 지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실제적으로 더 유식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그런데 또 '하지만 깊이를 따진다면 글쎄!'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 책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이 가득 들어차 있지만, 아주 전문적이고 깊숙한 이론이나 지식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가볍게 읽고 유식한 척 대화할 때 써먹어라!가 저자가 책을 쓴 이유가 될 것 같다. 사실 서문을 읽으면서 조금 당황했다. 저자 본인이 책의 쓰임을 이렇게 정의한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안고 뒤로 넘겼다. '우리가 살고 있는 놀라운 지구'라며 지구에 관한 이야기임을 암시했다. 지구에 관한 '쓸데 있는 지식'은 뭘까 봤더니 이게 웬 걸. 지구의 둘레, 가장 큰 대륙, 가장 큰 바다, 가장 큰 사막, 가장 더운 사막 등등 정말 살면서 한 번 생각해볼까 말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퀴즈 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할 법한 이야기들이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글도 남겨뒀다. '만약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팀 대항으로 상식 퀴즈 게임을 할 때, 당신이 속한 팀이 당신 때문에 질까 봐 부담을 느낀다면 지식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책의 성격은 대충 파악이 됐으니 이제 쭉쭉 읽어나가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웬만한 건(지구의 둘레 같은 정보 같은 것) 스킵하려고도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신기하더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알았던 적 없던 정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지구에 관해서도 당장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생각하면 중국을 떠올리겠으나, 일본 도쿄의 인구가 약 3천 8백만으로 가장 많았다. 유럽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갖고 있는 장소는 책에서 집적 확인하길 바라고(적기에 너무 길다), 인류는 단 한 번도 달에 착륙한 적 없다고 많은 미국인들이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 이야기도 짧게 담겨있다. '수달은 물 위에 누워서 손을 맞잡고 잠을 잔다. 나는 이 문장에서 '귀엽다'는 단어를 사용할 뻔 했다'와 같은 유머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분야는 '문화' 분야였다. 특히 문학 분야에선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처음 생각해 낸 표현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내가 영어권이 아니기에 아주 깊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가사에도 쓰일 정도로 '흔하게' 쓰이는 표현들을 셰익스피어가 처음 발명(?)했다는 이야기라 많이 신선했다. 더불어 예문이라고 덧붙인 작가의 글이 있었는데, 거기엔 원문이 함께 표기돼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미술 분야의 '미술 사조의 전문적인 표현'을 보면서는 웃어야 하나 물음표를 띄워야 하나 약간 고민했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가 역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들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과, 로마의 연극에선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이 대신해서 무대에 올라 처형당한 이야기까지, 문화 분야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 그런지 몰라도 재미를 느꼈다. (물론 누군가의 사생활 혹은 이런 이야기를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흥미롭다. 각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다.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읽기 좋은 책이다. 내용마다 연속성이 딱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은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며 썼겠지만 아시아인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기분이 나쁜 부분도 몇 군데 존재했다. (그 부분이 아쉽다.)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얼만큼 지식을 넓혀주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냄으로써 하나라도 머릿속에 남는다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 당신에게 좋은 대화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나야나! 언젠가 이 책을 읽은 나도 오늘의 이 지식들이 쓸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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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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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역사 관련 컨텐츠를 좋아하는 내게도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니, 사람들에겐 참 낯설 단어다. 아마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꽤 있을 테다. 역사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 많이 연구되지 않은 분야기도 하니까 말이다. 항왜라는 건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을 뜻한다. 영화 <명량>에도 항왜였던 '준사'가 등장한다. 사실 나도 <명량> 때문에 항왜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건데, <역랑>은 조선의 대표적 항왜로 손꼽는 '김충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랑>은 김충선, 극 중 '히로'라 불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태어나면서부터 항왜로 전향하기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다뤄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이고, 일본 만화를 좋아했던 이라면 조금은 친숙한 이름일 이 이름들이 소설 전면에 등장한다. 히로가 살아갔던 세상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하기 위해 애쓰던 시기였으며, 히로는 오다 노부나가의 용병집단 '붉은 돌'의 뎃포(조총)부대원이었으니까 말이다.

히로의 아비는 역모로 몰려 죽었다. 히로의 어미는 자식만은 살리려 일본으로 가는 배에 젖먹이를 실려 보냈다. 천식이 있던 연약한 젖먹이는 용병집단 '붉은 돌'에서 뎃포부대원으로 성장한다. '붉은 돌'의 마고이치(우두머리) 겐카쿠는 히로의 비상한 두뇌를 알아보고 히로가 원하는 뎃포 공부를 시켜준다. 포도국(포르투갈)의 최식신 뎃포를 통해 일본의 뎃포를 개발한 히로는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워 단숨에 권력자들의 눈에 들게 되고, 자신을 지지하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 이후엔 어쩔 수 없이 시류에 휩쓸리게 된다. 시류에 휩쓸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겐카쿠의 딸 아츠카 때문이다. 아츠카는 어려서부터 히로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히로도 아츠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히로를 원하는 권력자들이 아츠카를 가만히 놔 두지 않았고 결국 히로는 아츠카를 위해 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된다.

<역랑>은 조선인이라는 신분적 핸디캡을 가진 이방인으로서, 일본의 역사적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기에 느꼈을 '뿌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함께 보여준다. 임진왜란 시작 이야기와 처참하게 무너진 조선군의 이야기 또한 모조리 드러내어 전쟁의 참담함도 알려준다. 항왜란 낯선 존재에 대한 친근함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함으로 속이 꽉 막힌 느낌 또한 들었다. 저때의 조선의 상황이란, 그리고 주인공이 처했던 처참한 상황이란 답답함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답답함 뿐만 아니라, 그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조선 민중들의 모습도 잘 그렸다. '힘이 없어 침략당하고 있지만 이들은 힘이 없지 않았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한 자들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백성들 위에 누구보다 비겁하고 위선적인 정치가들이 있어 이리도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런 히로의 감상은 임진왜란을 겪는 내내 느꼈던 감정들이다.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은 리더, 각지에서 일어났던 의병, 승병,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일반 민중들까지. 그나마 전쟁의 처참함 속 조금은 위로가 됐었던 모습들이었다.

개인이 역사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소설을 보면서 계속 갖게 된 물음이다. 히로는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한가운데로 떠밀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했다. 작가는 이 한 남자의 일생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싶었던 걸까. 치열한 전쟁같은 소설 <역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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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
정혁준.정윤영 지음 / 꿈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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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인 아빠와 학생인 딸이 글쓰기 고민을 이야기하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주고 싶어서 낸 책.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의 출간 배경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글쓰기 고민을 한다. 어떻게 써야할 지 모르고, 무엇을 써야할 지 모르고, 좋은 글이 뭔지 모른다. 주제를 보면 주눅이 들고, 나는 언제 마음대로 글을 써 보나 한숨이 나오고, '글쓰기'란 단어만 들려도 성질이 난단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동생 피셜이다.) 그러니 글쓰기 고민을 이야기하는 책이 보이면 눈길이 간다. 동생과 관련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좋은 팁을 얻을 수 있어서다.

나는 글을 쓰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쓰고 싶은 말을 다 쓴 건가? 불필요한 부분은 없나? 글은 매끄럽게 잘 읽히나? 등등. 글을 쓰는 도중에도 이전으로 돌아가 읽고 더 나은 위치를 찾아 문단을 이리저리 옮긴다. 이렇게 글을 다듬는 행동은 쓰다 막혔을 때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종의 습관같은 거다. 처음엔 다음으로 넘어가는 아이디어를 얻으려 시작했는데 지금은 습관처럼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아무튼 글을 자주 고치다 보니 '필요 없는', '빼야하는', '잘못된' 것들에 관심이 많다. 하지만 '글쓰기'와 관련된 책은 어마무시하게 많은데 비해 '퇴고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은 쉽게 찾을 수 없다. 쓰는 것과 다듬는 것의 중요도가 비슷한 나에겐 참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여기,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에 복잡하지 않고 내용 자체도 깊지 않지만 글을 쓸 때 쓰지 않거나 빼야 하는, 내가 찾던 방법들이 잔뜩 등장한다.

책의 제목은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지만 이 책은 글쓰기의 A to Z가 아니다.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주제를 선정하는 방법, 용도(매체)에 따른 글쓰기 같은 주제를 다루지 않는단 소리다. 이 책은 '잘못된 글쓰기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래서 글쓰기 초보든 고수든 쉽게 잘 저지르는 실수들을 차근차근 짚고 있다. 처음부터 영어투와 일본어투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1부 전체에 걸쳐 중복과 모호함과 불필요함을 빼는 방법, 문장이 간결해야 하는 이유와 뜻이 분명해야 함을 이야기하며, 말하듯 읽기 쉬운 글쓰기를 강조한다. 실제 딸과 함께 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었기에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를 쓰지 않는 방법 같은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실상 '글쓰기 고민'이라고 뭉뚱그려 놓았지만, 담겨 있는 내용은 '명확한 내용 전달'에 맞춰졌다 보면 된다. 그렇기에 별 기대 없이 책을 펼쳤던 내게 참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인상깊었던 부분은 1부의 아빠가 딸에게 이야기하는 이론 부분이다. 실제 딸이 쓴 글의 잘못된 부분을 고쳐보는 2부도 존재하지만 이 서평에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다.)

책에 등장한 영어 투와 일본어 투, 흔히 '번역 투'라 말하는 잘못된 글쓰기 습관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명사와 명사 사이를 잇는 '의', 역시 명사와 명사 사이를 이을 때 무의식적으로 많이 쓰는 '대한(대해)', 국문에서는 쓸 데 없는데 많이 쓰는 '가지다'(소유격 have 직역), 강조를 위해 써야 하지만 자꾸 남발하게 되는 의존명사 '것'까지. 솔직히 이 네 개는 나도 자주 썼던지라, 제외하고 글을 써야 한다니 생각이 꽤 많아졌다. 이외에도 우리말은 조사를 겹쳐 쓰지 않지만 평소에 자주 쓰여 익숙한 '~와의', '~에의', '~로의', '~로부터', '~에서의' 부터, 일본식 표현 '요하다', '달하다', '다름 아니다', '경우', 영어식 표현 '~을 위하여', '불구하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요구된다/요청된다'까지. 잘못 쓰고 있었지만 인식하지 못한 채 엄청 익숙히 사용하고 있었다. 교과서나 공식 문건에서도 아직 사용되고 있으니 우리말 쓰기의갈 길이 멀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이외에도 서술어 늘여쓰기가 안 좋은 이유, 문장을 짧고 간결하게 써야 하는 이유, 주어와 서술어가 일치해야 하는 이유, 엉뚱한 서술어를 쓰지 않아야 하는 이유, 목적어와 서술어가 일치해야 하는 이유, 숨겨진 중복 단어를 발견하고 문장을 모호하지 않게 구성하는 방법 등등 글쓰기에 참 도움이 되는 팁들이 실려 있다. 진짜 리스트를 만들어 퇴고할 때 곁에 두고 생각해보고 싶을 정도다. (실제로 그럴 마음 100%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를 막 시작한 사람들 보다는 나처럼 글을 다듬을 때 팁으로 사용할 사람들이 보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이 글은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주겠다는 책을 읽고 나서 쓰고 있지만, 사실 나는 글쓰기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글이란 한 번에 바로 잘 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동안 계속해서 생각을 보태고, 다듬고, 쓰고, 다듬고, 쓰고, 다듬고. 마음에 드는 글을 만나게 될 때까지 지루하게 그 과정을 반복해야만 하나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하지만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예를 들면 내 동생같은) 사람들은 한 번에 좋은 글을 뚝딱 써내길 바란다. 내가 쓰는 글들이 한 번에 주르륵 뽑혀 나온 줄 안다. '처음부터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없다.' 이 간단한 명제만 곁에 둔다면 글쓰기 허들이 조금은 낮아지지 않을까. 더불어 이렇게 여러가지 팁을 전해주는 책을 가까이 두며 글을 다듬어 나간다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물론 글쓰기 근육이 필요하다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자꾸 글을 써가면서 근육을 키울 필요는 있다. 그리고 <글쓰기 고민을 해결해 드립니다>는 세밀한 잔근육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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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커 아트북 : 랜드마크 엽서북 - 손 안에 펼쳐지는 안티 스트레스 북 스티커 아트북 (싸이프레스)
싸이프레스 콘텐츠기획팀 지음 / 싸이프레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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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의 폭염이라던가. 2018년의 여름은 참 더디게 흘러간다. 서울의 한낮 온도가 대구보다 더운 40도에 육박했고 한달 가까이 평균 35도를 넘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온도만큼 열대야도 한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어진다는 예보다. 건물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홧홧한 기온에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건 기본, 이제는 아침 온도가 27도만 돼도 '오늘 아침은 왜 시원하지?' 같은 이상한 소리도 하게 된다. 내일 모레면 '말복이 지나면 찬물에 목욕을 못한다'는 그 말복이지만, 말복이 지나도 당분간 찬물 샤워는 계속될 듯 하다. 

날씨가 이렇다보니 뭔가를 할 의욕이 뚝뚝 떨어진다. (물론 에어컨이 있으니 이 말은 과장이다. 하지만 에어컨을 계속 틀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따져보면 반만 과장이다.) 할 수만 있다면 대나무 돗자리 위에 딱 붙어 누워서 에어컨+선풍기를 틀어놓고, 양쪽 옆구리엔 꽝꽝 얼린 페트병을 끼운채 얼음을 입에 물고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그곳이 파라다이스일테니. 그러나 일상생활을 해야 하기에 이건 꿈같은 일이다. 그러니 움직이면 열이 나고, 열이 나니 자연스레 짜증도 샘솟는다. 덕분에 의욕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다. 그런 내가 의욕을 가지고 하는 놀이가 하나 있다. 바로 <스티커 아트북>의 스티커 놀이다. 




<스티커 아트북>은 말 그대로 스티커를 붙이는 놀이다. 어른들의 힐링 놀이라며 유행하던 컬러링북, 점잇기, 캘리그라피, 커팅북 등등 여러가지 이후에 새로 등장한 놀이인데, 책에 동봉된 스티커를 제 자리에 갖다 붙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시키는 것이 스티커북의 주요 골자다. 파워 간단! 더군다나 색연필이나 볼펜 같이 무언가 재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덜렁 책 한 권만 있으면 어디서든 놀이가 가능하기 때문에 휴대성도 좋다. 그동안 <스티커 아트북>은 여러 시리즈를 내왔었는데, <스티커 아트북-랜드마크 엽서북>은 예전에 한 번 출판했었던 베스트 셀러 랜드마크를 '엽서' 형식으로 재편집한 구성이다. 사이즈가 아담해서 처음부터 호기심이 동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스티커 아트북> 시리즈는 폴리곤아트를 차용한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로 폴리곤 아트워크를 만들어내는 작업물을 본 적이 있는데, 그와 비슷한 방식이다. 그래픽을 다각형으로 쪼개어 입체감을 주는 방식. 그래서 기본 도안 랜드마크들은 삼각형과 사각형으로 산산조각 나 있다. 이곳에 동봉된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다. 당연히 산산조각 나 있는 삼각형과 사각형엔 번호가 적혀 있다. 적게는 100번부터 많게는 230번까지 그 크기와 갯수도 다양하다. 아무래도 도안이 엽서크기라 새끼손톱보다 작은 도형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데, 역시나 이 작은 도형들이 난이도 최상이다. 집중력을 최고치까지 끌어올려주는 동기이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10가지의 랜드마크 중에 패기있게 처음부터 9번 모스크바 성 바실리 대성당을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1번이 가장 쉬운 난이도고 10번이 가장 어려운 난이도다. 처음부터 어려운 난이도를 선택했으니, 헤매는 것도 당연지사. 스티커의 1번부터 찾아서 순서대로 붙였다. 도형들의 숫자는 중구난방이다. 그러니 숫자를 찾는 것만도 시간이 꽤 많이 들었다. 그러다 딱히 순서대로 붙이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반 정도 붙이고 나서야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는 눈에 보이는 큰 면적부터 붙여나가기 시작했다. 작은 스티커는 생각보다 잘 붙이기도 어려웠고, 중간중간 보이는대로 붙이다보니 서로 겹쳐들어가거나 꽉 들어맞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붙여놓고 멀리서 보면 하나의 작품이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번엔 3번 광화문을 꺼내들었다. 바실리 대성당보다 조각의 크기들이 커 쉽겠다 생각했지만, 광화문이란 현판이 붙어 있는 곳의 조각들 크기가 역시 작아 자리를 잡는데 애를 먹었다. 광화문은 위쪽을 쭈르륵 붙이고, 아래쪽을 쭈르륵 붙인 뒤 복잡한 중간 부분을 나중에 붙였다. 하지만 이도 썩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아 6번 파르테논 신전은 위에서부터 차근차근 붙였다. 파르테논 신전은 아무래도 직선으로 이루어진 랜드마크라 다른 랜드마크들보다 붙이기는 수월했다. 그래서 그런지 처음부터 차근차근 붙이는 것이 조금 더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놀이엔 왕도가 없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면 그 뿐. 나는 조금더 완벽한 작품을 위해 핀셋을 꺼내들었다. 조금씩 삐뚤어지는 스티커들이 퍽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인데, 핀셋을 든다고 해서 스티커가 제자리에 꼭꼭 들어맞는 것은 아니니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스티커 아트북>을 하고 있으면 시간이 금방 갔다. 여름이 언제 끝나는 거냐고 투정부리다가도 <스티커 아트북>만 잡으면 두 세시간이 금방 휘리릭 지나갔다. 집중하면서 스티커와 씨름하는 사이 시간이 지나가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시간이 날 때면 스티커북을 잡고 있다. 빠른 스피드로 모두 끝내버리겠다!의 느낌이 아니라 조금 더 완벽하고 깔끔하게 붙이기 위해 하나하나 집중하면서 말이다. 시간이 참 안간다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스티커 아트북>은 시간을 보내기 참 좋은 책이 아닌가 싶다. 아직 한참 남은 여름, 나도 <스티커 아트북>과 함께 보내버릴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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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미술관 - 미술관 담장을 넘어 전하는 열다섯 개 그림 이야기
이소라 지음 / 혜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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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은 내게 조금 낯설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아는 것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다.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다면 아마 미술은 내게 엄청 친숙했을테고, 아는 것이 많았다면 어디서든 미술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테니까. 얕디 얕게 알고 있는 것들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것들은 주워들은 상식선에서다. 그래서 미술 관련 책들이 나오면 일단 눈이 갔다. 대충 훑어보고 마음에 들면 한 번쯤 읽어보려고. 왜 그런 것 있지 않나. 내가 모르는 부분에 대한 지적 호기심. 하지만 문외한이라 해도 될 정도로 미술엔 기초도 없으니 "아주 읽기 쉬운 책이 눈에 띄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딱 발견했다.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책을 말이다.

사실 내가 막 뒤져가며 열의있게 발견한 것은 아니고, 온라인 서점의 메인화면에서 봤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커다란 박스에 소개되어 있었다. 미술에 대한 이야기에 <한밤의 미술관>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들었고, 책의 색깔이나 책의 방향성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직접 받아본 책은 표지부터 예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마음에 들었다.

<한밤의 미술관>은 나처럼 미술 초심자들이 봐도 좋을만큼 쉬운 책이다. 어떤 느낌이냐면, 마치 미술을 공부한 사촌언니가 미술 초심자에게 이것저것 이야기해주는 느낌. 하나의 작품을 놓고 작가가 이야기해주고 싶은 방향대로 글을 썼다고 보면 된다. (근데 그 글이 잘 읽히고 흥미가 동한다!) 아무래도 그림의 화풍이나 복잡한 기법 등 어려운 내용들이 등장할 수 밖에 없는데, 그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스르륵 흘려보냈다. 초등학생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을만큼(물론 초등학생 중에 이 책을 좋아할 아이들이 많을지는 모르겠지만) 쉽게 읽힌다. 

그러다 보니 작품에 대한 이야기들 중 대부분은 화가에 대한 이야기다. 화가의 성장 배경이라든가, 작품을 그릴 당시의 상황이라든가, 화가에게 영향을 끼친 스승이라든가, 비슷한 시기에 같은 화가가 그린 다른 그림이라든가. <한밤의 미술관>의 좋은 점은 하나의 작품을 이야기한다고 그 작품에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여러 갈래로 발전시켜 그에 알맞은 다른 작품들도 소개해준다는 점이다. 누군가에게 연관지어 어떤 것을 설명한다는 것은 그 분야에 어느정도 통달하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다. 오래 공부하지 않고도 언뜻 흉내는 낼 수 있겠으나 흉내만 내는 비교는 그 깊이를 당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한밤의 미술관>은 비교들도 훌륭하다.

책 속에 등장한 15개의 주제 작품들 중 내가 아는 작품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도 알 법한 드가와 고흐의 작품 뿐이었다. 에곤 실레는 영화제목으로 이름을 들어본 기억이 나고, 다른 이들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 내게 익숙한 드가의 그림 이야기를 해 보자. 드가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집안의 기대에 맞춰 법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앵그르라는 프랑스 거장을 만나 조언을 듣게 되면서 진로를 완전히 뒤바꾸어 버린다. "자네의 인생과 추억에서 날아오르는 이미지를 그려보게." 드가는 움직이는 것에 사로잡혀 발레리나를 많이 그렸다. 또한 시력을 잃게 된 말년에는 손으로 더듬거리며 조각을 했다. 하지만 드가는 사춘기 시절 겪었던 어머니의 외도로 '여성혐오자'라는, 그림만 보면 언뜻 이해할 수 없는 별명도 갖고 있다. 이에 작가는 '어머니라는 절대적 존재를 계속 사랑할 수도 끝끝내 미워할 수도 없었던, 자기부정과 모순으로 점철된 유년기를 반복적으로 살아내고 있는, 가엾은 어른이었을 뿐이다'라며 드가의 비하인드를 이야기한다.

드가의 작품과 관련된 이야기를 짧게 요약한 것인데, 어떤가. 이 글만 읽어봐도 되게 흥미롭지 않은가? 작가는 독자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이야기들을 찾아 작품과 잘 엮어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 한 줄을 마지막에 적기도 한다. <한밤의 미술관>은 이런 이야기들이 15개가 실려 있다. 한꺼번에 후루룩 몰아봐도 상관은 없지만, 시간 날 때마다 하나의 이야기씩 만나기를 권한다. 하나의 이야기 속 그림들을 느낄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한밤의 미술관>의 또 다른 좋은 점은 하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마다 작품이 있는 미술관의 이야기도 덧붙여져 있다는 점이었다. 미술관을 소개할 때는 앞서 작품을 소개할 때와는 다른 톤으로 설명해준다. 이때는 사촌언니의 느낌보다는 미술관 도슨트의 느낌이 강하다. "이 미술관에는 이런 작품이 있구요,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같은. 글이 확연하게 둘로 나뉘어서 그런지 화가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는 흥미로운 눈빛을 반짝였다면, 미술관에 관한 이야기를 볼 때는 뭔가 뒷 이야기와 지식을 함께 전달받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의 '우리동네 미술관' 코너는, 한번쯤은 꼭 가봐야지 할만한 우리나라의 미술관들을 소개해뒀다. 물론 작가 추천이다. 어디부터 가야할지 망설이는 초보 관람자에게 좋은 팁이 될 듯하다.

작가는 한밤 침대 위에서 책으로나마 짧게 만나는 미술관이길, 언젠가는 한번쯤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을 갖길 바라면서 책 제목을 <한밤의 미술관>으로 지었던 듯 하다. 작가의 말에 있는 영화 <<굿 윌 헌팅>>의 대사 "너는 미술에 관해 물으면 뭐든 답할 수 있을 거야. 미켈란젤로를 예로 들어볼까. 넌 그의 걸작, 정치적 야심, 성적 취향까지도 줄줄 읊어대겠지. 하지만 시스티나 성당의 냄새가 어떤지는 모를 거야. 직접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볼 때 벅차오르는 감동도. 넌 한 번도 그 성당의 아름다운 천장화를 본 적이 없을 테니까."처럼, 그리고 작가의 바람처럼, 책으로만 작품을 만나는 것 보다는 그곳의 공기를 함께 느껴보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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