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랑 - 김충선과 히데요시
이주호 지음 / 틀을깨는생각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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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왜. 역사 관련 컨텐츠를 좋아하는 내게도 그리 익숙한 단어가 아니니, 사람들에겐 참 낯설 단어다. 아마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들도 꽤 있을 테다. 역사적으로 주목 받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아 많이 연구되지 않은 분야기도 하니까 말이다. 항왜라는 건 '조선에 투항한 일본인'을 뜻한다. 영화 <명량>에도 항왜였던 '준사'가 등장한다. 사실 나도 <명량> 때문에 항왜에 대한 관심을 가졌던 건데, <역랑>은 조선의 대표적 항왜로 손꼽는 '김충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역랑>은 김충선, 극 중 '히로'라 불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다. 태어나면서부터 항왜로 전향하기까지 30년 가까운 세월을 담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의 이야기가 비중있게 다뤄질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좀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한 번씩은 들어본 이름이고, 일본 만화를 좋아했던 이라면 조금은 친숙한 이름일 이 이름들이 소설 전면에 등장한다. 히로가 살아갔던 세상은 오다 노부나가가 전국을 통일하기 위해 애쓰던 시기였으며, 히로는 오다 노부나가의 용병집단 '붉은 돌'의 뎃포(조총)부대원이었으니까 말이다.

히로의 아비는 역모로 몰려 죽었다. 히로의 어미는 자식만은 살리려 일본으로 가는 배에 젖먹이를 실려 보냈다. 천식이 있던 연약한 젖먹이는 용병집단 '붉은 돌'에서 뎃포부대원으로 성장한다. '붉은 돌'의 마고이치(우두머리) 겐카쿠는 히로의 비상한 두뇌를 알아보고 히로가 원하는 뎃포 공부를 시켜준다. 포도국(포르투갈)의 최식신 뎃포를 통해 일본의 뎃포를 개발한 히로는 전쟁에 혁혁한 공을 세워 단숨에 권력자들의 눈에 들게 되고, 자신을 지지하던 오다 노부나가의 죽음 이후엔 어쩔 수 없이 시류에 휩쓸리게 된다. 시류에 휩쓸리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겐카쿠의 딸 아츠카 때문이다. 아츠카는 어려서부터 히로를 마음에 두고 있었고, 히로도 아츠카에게 사랑이란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히로를 원하는 권력자들이 아츠카를 가만히 놔 두지 않았고 결국 히로는 아츠카를 위해 임진왜란에 참전하게 된다.

<역랑>은 조선인이라는 신분적 핸디캡을 가진 이방인으로서, 일본의 역사적 흐름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개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조선인이지만 일본인으로 살아야 했기에 느꼈을 '뿌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도 함께 보여준다. 임진왜란 시작 이야기와 처참하게 무너진 조선군의 이야기 또한 모조리 드러내어 전쟁의 참담함도 알려준다. 항왜란 낯선 존재에 대한 친근함도 만들어준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답답함으로 속이 꽉 막힌 느낌 또한 들었다. 저때의 조선의 상황이란, 그리고 주인공이 처했던 처참한 상황이란 답답함만으로는 표현하기 힘들 정도니까 말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답답함 뿐만 아니라, 그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딛고 일어서는 조선 민중들의 모습도 잘 그렸다. '힘이 없어 침략당하고 있지만 이들은 힘이 없지 않았다. 이들은 누구보다 강한 자들이었다. 누구보다 강한 백성들 위에 누구보다 비겁하고 위선적인 정치가들이 있어 이리도 비참하게 짓밟히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런 히로의 감상은 임진왜란을 겪는 내내 느꼈던 감정들이다. 자신의 죽음을 피하지 않은 리더, 각지에서 일어났던 의병, 승병, 그리고 그들을 지원했던 일반 민중들까지. 그나마 전쟁의 처참함 속 조금은 위로가 됐었던 모습들이었다.

개인이 역사의 흐름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소설을 보면서 계속 갖게 된 물음이다. 히로는 벗어나려하면 할수록 한가운데로 떠밀려갔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용기있게 자신의 인생을 선택했다. 작가는 이 한 남자의 일생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무엇을 던져주고 싶었던 걸까. 치열한 전쟁같은 소설 <역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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