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 사전 - 잘난 척하고 싶을 때 꼭 알아야 할
레이 해밀턴 지음, 이종호 옮김 / 도도(도서출판)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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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조금 더 많은 것을 알고 싶다. 이야기를 할 때 내가 우위에 서고 싶다. 상대방이 하는 말을 모두 알아듣고 싶다. 내 관심분야가 아니더라도 조금의 지식은 갖고 싶다. 현재의 대한민국엔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은 듯 하다. 예전에 TV에서 스치듯 어떤 강연을 봤는데, (얼굴은 기억 안 나는) 강연자가 그랬다. 하나라도 더 공부하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하며 걱정하는 거라고. 그래서 그런지 tvN의 예능 프로그램 <알아두면 쓸데 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일명 알쓸신잡)>이라는 이 긴 이름의 예능이 대중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평소에 이미 알고 있던 익숙한 것과 전문 분야의 새로운 시선이 만나 '낯설 것'을 만들어내며 대중의 지적허영심을 채워줬던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기가 있었던만큼 책의 제목으로도 많이 차용됐다. 온라인 서점 검색창에서 '쓸데'까지 쳐보면 주르륵 비슷한 제목의 책들이 검색된다.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도 그 프로그램에서 파생된 걸까?란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별 기대없이 책을 열었다.

'이 책을 소개합니다'라는 서문에서 작가는 대놓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당신을 아주 짧게나마 지적인 인간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때 실제적으로 더 유식하게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라고. 그런데 또 '하지만 깊이를 따진다면 글쎄!'라고 이야기한다. 결국 이 책에는 세상의 온갖 지식이 가득 들어차 있지만, 아주 전문적이고 깊숙한 이론이나 지식은 없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가볍게 읽고 유식한 척 대화할 때 써먹어라!가 저자가 책을 쓴 이유가 될 것 같다. 사실 서문을 읽으면서 조금 당황했다. 저자 본인이 책의 쓰임을 이렇게 정의한 건 처음 봤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안고 뒤로 넘겼다. '우리가 살고 있는 놀라운 지구'라며 지구에 관한 이야기임을 암시했다. 지구에 관한 '쓸데 있는 지식'은 뭘까 봤더니 이게 웬 걸. 지구의 둘레, 가장 큰 대륙, 가장 큰 바다, 가장 큰 사막, 가장 더운 사막 등등 정말 살면서 한 번 생각해볼까 말까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퀴즈 프로그램에서 자주 접할 법한 이야기들이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저자는 서문에서 이런 글도 남겨뒀다. '만약 선술집에서 사람들이 팀 대항으로 상식 퀴즈 게임을 할 때, 당신이 속한 팀이 당신 때문에 질까 봐 부담을 느낀다면 지식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책의 성격은 대충 파악이 됐으니 이제 쭉쭉 읽어나가기만 하면 되겠다 생각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웬만한 건(지구의 둘레 같은 정보 같은 것) 스킵하려고도 생각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책에 담겨 있는 내용들이 신기하더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고 한 번도 알았던 적 없던 정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지구에 관해서도 당장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라고 생각하면 중국을 떠올리겠으나, 일본 도쿄의 인구가 약 3천 8백만으로 가장 많았다. 유럽에서 가장 긴 이름을 갖고 있는 장소는 책에서 집적 확인하길 바라고(적기에 너무 길다), 인류는 단 한 번도 달에 착륙한 적 없다고 많은 미국인들이 믿고 있다는 여론조사 이야기도 짧게 담겨있다. '수달은 물 위에 누워서 손을 맞잡고 잠을 잔다. 나는 이 문장에서 '귀엽다'는 단어를 사용할 뻔 했다'와 같은 유머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봤던 분야는 '문화' 분야였다. 특히 문학 분야에선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는 과정에서 처음 생각해 낸 표현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내가 영어권이 아니기에 아주 깊이 공감할 수는 없지만, 가사에도 쓰일 정도로 '흔하게' 쓰이는 표현들을 셰익스피어가 처음 발명(?)했다는 이야기라 많이 신선했다. 더불어 예문이라고 덧붙인 작가의 글이 있었는데, 거기엔 원문이 함께 표기돼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미술 분야의 '미술 사조의 전문적인 표현'을 보면서는 웃어야 하나 물음표를 띄워야 하나 약간 고민했고, 디즈니 애니메이션 백설공주가 역대 가장 높은 수익을 올린 영화들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과, 로마의 연극에선 등장인물 중 누군가가 죽어야 한다면 유죄 판결을 받은 살인범이 대신해서 무대에 올라 처형당한 이야기까지, 문화 분야는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라 그런지 몰라도 재미를 느꼈다. (물론 누군가의 사생활 혹은 이런 이야기를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말이다.) 

책은 전체적으로 흥미롭다. 각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가볍게 읽을 만한 책이다. 흥미가 없는 사람이라도 누군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낼 때 읽기 좋은 책이다. 내용마다 연속성이 딱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은 유머러스하다고 생각하며 썼겠지만 아시아인 독자 입장에서는 조금 기분이 나쁜 부분도 몇 군데 존재했다. (그 부분이 아쉽다.)
 
<쓸데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얼만큼 지식을 넓혀주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냄으로써 하나라도 머릿속에 남는다면,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다면, 그것은 어느 장소 어떤 상황에서 당신에게 좋은 대화거리를 제공할 것이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나야나! 언젠가 이 책을 읽은 나도 오늘의 이 지식들이 쓸 데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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