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
기명균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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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런 책에 약하다. '알아두면 쓸데있는', '알아둬도 쓸데없는', '지적 수다', '지식', '잡학', '나만 아는', '누구나 아는', '상식' 등이 제목이거나 내용에 포함되어 있는 책에. 풀어 이야기하면 이렇다. 평소에 나와 접점이 없어 혹은 관심이 없어 알지 못했던 지식들을 알려주는, 하나를 깊게 공부한다기보다는 '이러이러한 것이 있더라', '요즘엔 이런 게 중요하다더라', '이런 건 어때?' 같이 한 쪽 발끝만 슬쩍 걸칠 수 있는 정도의 지식을 알려주는 책에 약하다. 내가 모르는 세계에 대한 로망 때문인지, 조그마한 지식을 알게 됨으로써 느끼는 충만함 때문인지 잘 알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이란 제목을 갖고 있는 책도 위에서 언급한 종류의 책이다. 다만 다른 책들과는 다른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예전부터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인기 있는 'Crossword', 우리말로 '낱말퍼즐'이 책에 함께 자리하고 있다. 이를테면 상식 키워드 낱말퍼즐이라고 할 수 있다. 퍼즐을 풀면서 키워드들을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더군다나 한번 훅 눈으로 훑고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퍼즐 안에 들어갈 낱말들을 고심하며 생각하는 사이 그 키워드들은 머릿속에서 쉽게 날아가지않는다. 재미도 있고 상식도 쌓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랄까.

물론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은 상식책이기는 하지만 최신의 이슈들도 다루고 있기 때문에 퍼즐이 잘 안 풀리기는 한다. 세상 모든 이슈들에 귀쫑긋 하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정답도 있으니 너무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혼자 고민하며 풀어보다 답이 안나온다면 검색을 해 보고,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정답을 보면 되니까. 도저히 안 풀리면 다른 낱말퍼즐로 이동해서 풀어도 된다. 낱말 퍼즐은 새로운 지식을 즐겁게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니 굳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다.

책에는 많은 분야를 총 망라해 놓았다. 시사, 경제부터 시작해 문화, 음악, 심지어는 베스트셀러에 대한 부분도 있다. 각 분야는 2개의 낱말 퍼즐로 정리되어 있고, 저자가 특별히 다루고 싶은 키워드는 낱말 퍼즐 뒤쪽에 2~3쪽 분량으로 이야기를 덧붙여 놓았다. 단순히 키워드에 대한 이야기를 검색하면 얻을 수 있는 자료처럼 적어둔 것이 아닌, 저자의 생각이 함께 붙어 있다는 것이 조금 특별한 부분.

가장 많이 맞혔던 분야는 영화/음악 분야와 놀이/문화 분야였고, 가장 적게 맞혔던 분야는 역시나 과학/기술 분야였다. 단어를 완벽하게 기억하지는 못했으나 대충은 알고 있는 이야기도 있었고, 1도 모르겠는 단어들도 종종 튀어나왔다. 이제는 널리 알려져 조금은 식상한 이야기들 또한 존재했다. 관심있는 분야와 아닌 분야가 지식의 척도로 눈에 보이니 신기하기도 하고,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을 통해 몰랐던 분야의 지식이 얼만큼이나 내꺼로 남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몰랐던 분야 중에서 가장 관심이 있던 이야기는 '레이 커즈와일'의 이야기다. <알쓸신잡2>에서 등장했던 '특이점'을 널리 전파한 사람이라고 한다. (처음 발언한 사람은 아니다.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라는 책을 쓴 사람이다.) 특이점이 며칠동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했으니 단어 자체는 낯선 사람보다는 익숙한 사람들이 더 많을텐데, 이 특이점이라는 단어를 인공지능과 연결해 널리 알린 사람은 익숙하지 않아서 더 관심이 갔다. 물론 2쪽 분량의 글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지만 충분히 알아둘 만한 가치가 있어 보여서 개인적으로 킵해 둔 내용이기도 하다. 

'고레다 히로카즈'나 '아델', '브로콜리 너마저' 같이 인물을 다루기도 하고, '비혼', '킨포크', '팩트폭력' 같은 현재 사회의 이슈들을 다루기도 하며, '맨스플레인', '젠트리피케이션' 같은 사회현상들을 다루기도 한다. 광대한 범위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라 읽는 내내 즐겁다. 관심 없는 부분은 과감히 스킵하고 다른 부분부터 읽어도 이야기의 끊김이나 연결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 더 좋다.

<지적 수다를 위한 상식 퍼즐>은 누군가에게는 말빨(?)을, 누군가 지식과 상식을, 누군가에게는 즐거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읽어내기 쉬우면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간단하지만 재미있는 책이다. 가볍게 똑똑해지고 싶다면 읽어볼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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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서의 단청
박일선 지음 / 렛츠북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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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인 아름다움, 한국적 색채의 화려함, 독특한 문양. 단청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같이 떠오르는 수식어들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단청이 어디에 어떻게 붙어 있는 건지 알고 있다. 기본적인 상식선에서 인지하고 있다. 현대의 시멘트 건물에는 쓰이지 않는데도, 아주 자주 볼 수 있는 종류가 아닌데도 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익숙한 것과는 별개로 "그래서 단청이 뭔데?"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에 제대로 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조차도 "단청 그거 있잖아, 그거."라며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것들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답답해 할 거다. 그러다 보니 단청은 내게 '익숙한데 낯선', 자주 보니 낯은 많이 익은데 서로 아는 건 많지 않은 단골집 주인 아저씨 같은 느낌이다. <예술로서의 단청>이라는 책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단청을 알고 싶다'였다.

저자 박일선은 현재 단청발전소라는 이름의 카페를 운영하며 단청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단청기법으로 산수화를 그리는 전통공예 화가다. 그러나 과거엔 30년 가까이 은행에서 근무하던 회사원이었다. 은퇴 후 쉰이 넘은 나이에 이루고 싶은 꿈에 도전해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 현실과 타협하면서 꿈을 이룬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청기법'으로 '산수화'를 그리는 이는 저자가 유일하다는 점이다. 

<예술로서의 단청>은 단청을 사랑해 산수화에 접목시키기까지 한 단청마니아이자 단청이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단청수호자인 저자가 세상에 남겨 두는 '어렵지 않은 단청 이야기'다. 

책에는 단청의 뜻, 기원, 어원, 단청에 주로 쓰이는 색, 모양들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설명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단청에 자주 쓰던 무늬들과 닮은 듯 다른 해외의 건축물에 쓰인 무늬들을 찾아 비교하기도 하고, 같은 문화권인 한중일 세 나라의 단청을 비교하기도 한다. 글로 주렁주렁 길게 설명해 놓기보다는 직접 찍은 사진들을 많이 실어 두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특히나 내가 관심있게 본 부분은 한중일 세 나라의 단청을 비교한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중국 드라마 중 청나라를 배경으로 한 사극을 자주 봤었기에 자금성의 단청이 익숙하기도 했고, 언제나 라이벌로 이야기하는 한중일 삼국의 다름을 비교한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다른 점이 눈에 보이게끔 문화가 다르다는 느낌을 확 받았기에 재미있기도 했다. 

그 내용을 조금 이야기하자면, 우리나라의 단청이 청, 적, 황, 백, 흑의 다섯가지 오방색을 중심으로 보색이 뚜렷해 화려하고 강렬한 느낌이 강한데 비해, 중국은 2~3가지의 그라데이션과 청색, 녹색, 주색, 금색을 주요 색상으로 사용해 단청이 전체적으로 푸른 색감이고, 금색을 좋아하는 문화답게 금색이 곳곳에 많이 쓰였다. 일본은 우리나라나 중국의 다양한 문양과 강한 색과는 다르게 문양과 색채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단색조의 차분한 분위기를 가졌다. 이 부분 역시 첨부된 사진이 많아서 비교하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됐다. 단청을 중심으로 찍어놓은 사진들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느껴지는 부분도 많아 삼국의 단청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앞에도 언급했다시피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단청기법으로 산수화를 그리는 화가다. 단청을 이야기하면서 저자의 그림들이 곳곳에 실려 있다. 산수화에서 느껴지는 단아함이 단청의 화려한 색감과 만나 묘하게 융합되어 일반 산수화와는 다른 오라를 뿜어낸다. 겸재 정선을 존경하는 작가가 자주 그린 것이 바로 금강산인데, 금강산의 기개 넘치는 산새와 단청의 만남은 색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저자는 과거의 단청들과 자신의 그림 속 단청을 통해 단청이 나아가야 할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해 봤다. 저자의 마음 속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가 단청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는 이라는 것만은 <예술로서의 단청>이란 책을 통해 강렬히 전달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단청에 관심이 있다거나, 한국의 색에 관심이 있다거나, 단청에 쓰이는 무늬들에 관심이 있다면 너무 깊은 지식을 풀어놓지 않으면서도 궁금한 점을 어느정도는 해결해 줄 <예술로서의 단청>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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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안는다 - 오늘을 일상을 순간을 그리고 나를
심현보 지음 / 미호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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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울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볍게 안는다>라는 책을 선택한 이유 중 80%는 이 구절 때문이다. 저자의 정보, 책이 가진 느낌, 글의 분위기 모든 것을 그냥 넘겨버려도 좋을 만큼, 어딜 보나 아무리 봐도 평범한 이 구절 때문이다. 왜 그럴 때 있지 않나.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글을 읽고 생각을 하던 와중에 덜컥, 마음에 뭔가 걸린 듯 책장을 넘길 수 없을 때. 특별할 것도 신기한 것도 아닌 아무래도 좋을 그런 평범한 문장(혹은 단어) 앞에서 무너져내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내게는 "그냥 울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문장이 그랬다.

'울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라는 제목을 가진 글의 내용도 별 다른 내용은 없다. "한바탕 시원하게 울고 났다면 그걸로 됐다. 울 만하니 울었고 울어야 하니 울었다. 한 번쯤 꼭 울어야 비워질 만큼 정성껏 살아왔단 얘기니까." 잘 살펴보면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라서 그냥 스쳐 지나갈 법한 이야기들이지만, 어느 때 누군가에 닿게 되었을 때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공유하는 책. <가볍게 안는다>는 그런 울림을 가진 책이다.

처음 책 선택의 이유도 공감이다 보니, 책에서 유독 공감이 되는 부분이 많았다. 내가 기억하는 저자의 노래들처럼.

* 가끔씩 외로움이란 건, 왠지 모르게 불편한 누군가의 얼굴 같다. 이유 없이 서먹하고 어색한 누군가의 얼굴. 이리 피하고 저리 외면하다 보면 점점 더 불편해지는 누군가의 얼굴.(87쪽)

*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게 허물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같을 리 없다. 그러니 실망하지는 말기로 하자. 그건 원래부터 그런 거니까.(74쪽)

* 물 밖 일상에서도 가끔 잠수가 필요할 지 모르겠다. 심호흡을 하고 잠시 나 자신을 느끼고 다시 회복호흡을 하는 조용한 과정.(177쪽)

<가볍게 안는다>의 모든 글들은 조근조근 저자의 노래들을 닮았다. 본인은 날카롭고 예민하다 이야기하는데, 사람 살다보면 그정도의 예민함은 모두들 갖고 있는 지라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평범했다. 하루의 끝에서 맞는 외로움, 모든 것이 잘 안 풀리던 무력함, 복잡한 마음의 위로, 나 자신을 다독이는 안정, 모든 것이 평범해서 공감갔던. 어쩔 수 없이 글에는 글 쓴이의 성격이 묻어나오기 마련이라서, 온 몸의 가시를 뾰족하게 내세우고 한껏 날카로워져 있지만 실상은 누군가와 가볍게 안는 것 같은 포근함을 꿈꾸는 저자를 만나는 시간이 즐거웠다. 나쁜 말보다는 예쁜 말을 더 찾으려 노력할 것 같은 저자의 글들이 가진 착함은 읽는 내내 너무 무겁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아서 읽기 참 좋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가장 확실한 준비는 지금 현재에 완전하게 몰입하는 것.(261쪽)

리우의 카니발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려 현실에 완전한 몰입을 꿈꾸는 유약함마저 공감할 수 있는, 기분 좋은 <가볍게 안는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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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초보 7일 완성 손글씨
유제이캘리(정유진) 지음 / 진서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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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손으로 글씨를 쓰는 것뿐인데 하나의 작품이 되기도 하는 손글씨와 캘리그라피에 관심이 많았다.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뭔가를 끄적거리는 걸 잘 하는 특성상 나와 잘 맞아 보이기도 했고. 그런데 막상 시중에 나와 있는 그 많은 책들을 아무리 잘 읽어봐도 내가 원했던 글씨체와 구도가 잘 잡히지 않았다. 쉬운 말로 풀어 설명해 놓았다지만 생초보들이 쉽게 따라쓰긴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왕초보 7일완성 손글씨>라는 책 제목을 봤을때 진짜?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말 초보들이 따라 할 수 있는 손글씨 팁들을 담은 책이라면 나처럼 헤맸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무엇보다 '꺾임 없는 직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유제이 서체는 한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도 직선으로만 쓴 것에서 착안, 발랄하고 예쁜 느낌을 살려 왕초보에게 딱인 글씨체' 라고 저자가 자신의 글씨체를 자신있게 설명한 것을 보고 마음이 확 기울었다. 그동안의 책들과는 뭔가 다를지 몰라!

캘리그라피는 붓펜, 납작펜, 사인펜 등등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무궁무진하다. 종이 위에 글을 쓰는 것이니 쓸 수 있는 게 뭐든 재료가 가능하다. 그런데 이 책에선 초보들이 가장 사용하기 쉬운 것은 지그펜(납작펜의 한 종류)이라며 다른 것보다는 이 펜으로 연습할 것을 권했다. 일단 이 책은 캘리그라피 책이기도 하지만 악필 교정을 위해 선택했을 사람들도 있으니 뭔가 꾸밈 위주의 잔재주를 알려줄 느낌은 아니었다. 그리고 역시나. 선긋기부터 시작하는 글쓰기였다. 그런 다음엔 자음과 모음을 각각 연습하는 시간을 가졌고, 저자는 특히나 ㅂ의 경쾌함을 위해 따로 페이지를 할애하기도 했다. ㅂ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글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작가의 말에 뭐가 그리 다른가? 싶다가도 경쾌함을 가진 ㅂ을 보고 나서부터는 이전의 ㅂ을 머릿속에서 까맣게 지웠다.

뿐만 아니다. 자음과 모음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있어줘야 글씨가 예쁘게 표현된다는 것, 자음이 너무 크면 글씨가 어려보이기 때문에 글씨가 어려보인다면 의식적으로 자음의 크기를 줄이려고 해 나가야 한다는 것 등 초보자들이 쉽게 놓치는 부분들을 꼭꼭 짚어주고 있어 책을 읽어나감에 있어 더 믿음이 가기 시작했다.

<왕초보 7일완성 손글씨>는 워크북 개념이다. 실제로 워크북이 따로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말이다. 직접 손으로 책에 따라 써 보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시 한글을 배우는 마음으로 시간을 들이고 노력한다면 적어도 악필이라 누구 앞에 내놓기 창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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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쉬어가세요 - 행복한 나무늘보로 사는 법
톤 막 지음, 이병률 옮김 / 북레시피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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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오늘도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모두가 앞다투어 빠름을 자랑하는 세상, 빠르지 않으면 도태된다 여기는 세상. 벌써 인터넷은 5G가 상용화되기 바로 직전이라 하니, 앞으로는 세상이 얼마나 더 빨라질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따라갈 수는 있을까 조금은 걱정스럽기까지한 빠르기-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이유는 이 무시무시한 속도에 뒤처지면 안된다는 강박같은 것 때문일 거다. 뒤처지는 것은 패배한 것이라는 인식. 나는 그다지 시류에 편승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그런데도 가끔씩은 뒤처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아도 사람들의 인식에서 아주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뜻이다. 아등바등 따라가려 노력하는 것도 그 때문일 테고. 그런데 여기, 느리게 하루 하루를 채워가며 행복해하는 이가 있다. '나무늘보로 산다는 게 쉬운 일만은 아니'라며 이야기를 시작하는 <천천히 쉬어가세요> 속 나무늘보가 그 주인공이다.

사실, 나무늘보는 디즈니 영화 <주토피아>의 '플래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무늘보의 진짜 성향을 미국 교통국의 엄청 느린 일처리를 풍자하는데 사용해 많은 웃음을 줬었다. (물론 이건 영화로만은 알아채기 힘든 미국 문화이기에 나중에 리뷰들을 찾아보면서 알았던 내용이긴 하지만.) 딱히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책 속 동글동글한 나무늘보는 "천천히 사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운을 뗀다. "시간도 삶도 세상도 너무 느리게 흘러가는데, 해야할 일은 끝이 없고, 생각은 로켓처럼 질주를 한다"면서. 잘 보면 나무늘보의 걱정들 같은데, 세상이 너무 느리게 흘러간다는 이야기만 빼면 딱 내 이야기다. 할 일은 끝이 없고 생각은 많고 가끔은 만사가 귀찮고 짜증나고. 이럴 때 <천천히 쉬어가세요> 속 나무늘보가 내놓은 해결책이 바로 '순간에 집중하며 내버려두기'다.

햇빛을 받으며 걷고, 누군가에게 작은 친절을 베풀고, 먹을 때의 시간을 즐기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걸을 땐 걷는 것만 생각하고. 그러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순간에 집중하세요. 잘 안 돼도 괜찮아요. 늘 좋은 결과만 있을 수는 없잖아요. 잠깐 쉬어가도 괜찮아요."
나무늘보는 평상시에도 쉽게 할 수 있는 명상법도 전해준다. 뭔가 거창하게 자세를 바로하고 경건해야 하는 명상법이 아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호흡에만 집중하며 생각들을 흘려보내는 명상법이다. "한순간만이라도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네요. 그러니 그냥 흐르는 대로 내버려두어요. 결국 다 지나가버릴 테니."

그러니까 나무늘보의 명상법대로라면 복잡한 생각들을 기어코 정리해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시간에 맡겨 두는 것이다. 생채기 난 마음을 억지로 추스려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치유될 수 있도록 조금은 천천히 지켜봐 주는 것이다. 수 많은 물음표들을 뒤로 하고 잠시 쉼표를 찍어 마음을 쉬게 하는 것, 나 자신을 잃지 않도록 마음을 지켜내는 것이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만 해도 나무늘보의 명상법이 쉽사리 와 닿지만은 않았는데, 책 속 짧은 구절들을 여러번 곱씹어 읽어봤더니 이런 결론이 나왔다.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든 계기였던 옮긴이 이병률 시인은 '세상 모든 문제는 사람만이 열 수 있고, 사람이 가진 마음이란 건 세상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비밀번호다'라는 말을 했다. 내 마음을 잘 지켜내는 것만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천천히 쉬어가세요>는 마음의 중요성을 나무늘보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는 제각각 다르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겠지만, 내가 그 변화를 무조건 쫓아가며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 남들이 빨리 저만치 멀리 뛰어간다 해도, 나는 내 속도대로 조금은 천천히 쉬기도 하면서 주변을 둘러보기도 하면서 걸어가면 그 뿐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 속에 <천천히 쉬어가세요> 속 나무늘보를 들여 키워보기로 했다. "자신을 억누르지 않는다면 인생은 멋진 모험이 될 거예요."라고 말하는 나무늘보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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