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가지 사랑의 언어
게리 채프먼 지음, 장동숙 옮김 / 생명의말씀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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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일찍이 에리히 포름은 사랑은 배우고 익혀야할 기술이라고 이야기했다.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은 가슴 한 쪽에서 솟아오르는 좋은 감정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아니 엄밀히 말해서 그것은 사랑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랑이란 한 인격체와 다른 인격체를 묶어주는 가장 긴밀한 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끈은 우리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서 강해질 수도 있고 느슨해지기도 하며 심지어는 끊어질 수도 있다.
게리 체프만의 ‘5가지 사랑의 언어’는 바로 이 끈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먼저 사랑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감정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감성을 연합시켜 주며, 의지에 따른 행동을 내포하고 훈련과 성숙이 요구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랑을 전달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사람마다 다르다고 이야기 한다. 각 민족마다 언어가 다르듯, 사람들마다 사랑을 소통하는 언어도 다른데, 그 언어들을 종합해보면 크게 5가지로 집약이 된다고 한다. 표출하는 방식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 다를지라도, 다섯가지 언어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것은 ‘함께하는 시간, 선물, 육체적인 접촉, 인정하는 말, 봉사’이다.
부부가 서로 갈등을 겪는 이유는 배우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여기는 이유는 실제로 배우자가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나와는 다른 사랑의 언어로 전달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그저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사랑받고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함께 하는 것’보다 그냥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배우자라면 그는 사랑받지 못한다고 여길 것이다. 어떤 아내는 자기의 일을 도와 줄 때(봉사) 사랑받고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남편이 부인의 일을 도와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면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할 일과 남편의 할 일은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내는 남편이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배우자에게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 뜨거웠던 사랑은 식어져가고 결국 부부사이에는 금이 가게 된다.
 
사랑은 그래서 희생과 섬김이 요구된다. 사랑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다른 사랑의 언어를 배워야 함을 내포한다. 어떤 이에게는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배우자와 함께 하는 시간이 힘들 수 있다. 어떤 이에게는 따뜻한 말을 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자신의 습관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사랑을 채워주기 위해 그 언어를 배워야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다. 그 중에는 정말 문제가 있는 부부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어떻게 사랑해야하는지 어떻게 결혼 생활을 유지해야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파국을 맞는 부부도 상당히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 부부들에게 이 책은 실제적인 치료책이 될 수 있다.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결혼 생활에 권태기를 느끼는 많은 부부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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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 글쓰기의 달인을 위한
로버트 그레이엄 외 지음, 윤재원 옮김 / 베이직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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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 - 글쓰기 사전.
 
모든 글쓰기는 -그것이 허구이든 사실이든- 창조의 행위이다. 간단한 메모나 수업시간에 강의를 받아쓰는 것도 하나의 창조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 사람만의 독특한 주관이 개입되어 일련의 보이지 않는 가공행위를 거쳐서 글이 탄생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창조행위이기에, 그 글 속에 심미적 요소가 가미되면, 우리는 그 글쓰기를 예술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바라본다.
‘창의적인 글쓰기의 모든 것’는 글쓰기를 단순한 의미전달을 위한 창조행위가 아니라, 예술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알아야할 기본적인 ‘거의’ 모든 내용들을 담고 있다.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모든 것’이라는 말은 과장된 수식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이 책은 글쓰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다고 할 수도 있다. 사전은 모든 단어를 담고 있다. 그러나 사전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국어 사전도 있고 백과 사전도 있다. 심지어는 어린이 국어사전도 있다. 백과 사전은 모든 것을 다 담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국어 사전에 있는 많은 단어들이 실려있지 않다. 그러나 백과 사전을 국어사전과 비교해서 불평하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은 적어도 본격적으로 직업적인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 혹은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알아야할 거의 모든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작가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글쓰기 사전과 같은 역할을 해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글쓰기 비법같은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고차원적인 글쓰기를 위한 숨은 비법을 가르쳐주고 있지 않다. 아니 사실 그런 비법은 없다. 모든 예술 행위가 그러하듯, 글쓰기도 기초가 중요하다. 화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긋기나 동그라미 그리기 같은 것을 기초적인 스케치 연습을 지겹게 해야 하듯, 좋은 글쓰기도 많은 노력과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 책은 바로 우리가 해야할 그 기초적인 작업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다.
이 책은 여러 장르 중 주로 소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인 정보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그러나 소설과 상관없이 좋은 글을 쓰고 싶어하는 분들에게도 글쓰기의 기본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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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러를 빌린 백만장자
마크 피셔 지음, 지소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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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카피 문구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백만장자의 비결' 10"으로 되어 있다. 정말 실화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의 내용을 면면히 뜯어보면 백만장자의 비결이라기 보다는 '성공적인 삶의 비결', 혹은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고 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된다.
 
책의 후반부에도 소개되어 있지만, 저자는 '돈이라는 폭군에게 지배당하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라'고 말하고 있다.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돈을 버는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인데, 돈을 벌다보면 어느덧 목적전치가 잃어난다. 돈을 버는 것은 수단이고 목표는 행복인데, 돈 버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 행복을 잃어버리기 쉽게 된다. 아마도 우리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이 함정에 빠져 허우적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돈을 벌기를 소망하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행복을 위해 돈을 번다는 분명한 의식보다는 돈은 일단 많이 있어야 된다는 최면에 걸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돈을 벌지만 행복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볼 수 있다. 저자는 묻고 있다. 내일 당신의 계좌에 100만불이 들어오더라도 지금 그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또 계속해서 내일 당장 죽더라도 지금 하던 일을 계속할 것인가를 자문해보라고 말한다. 만약 그러하다면 그는 이미 성공한 사람이요, 백만장자라고 할 수 있다. 백만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행복이 중요하기 떄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가 '부자가 되기 위한 10가지 전략'정도로만 읽었다면, 나는 분명 책을 잘못읽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부자가 되려고 하는가가 중요하다. 저자는 말하기를 부자가 되면 삶의 여러부분에서 자유를 주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만약 그가 이미 자유하다면 굳이 부자가 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어쨌거나 저자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서 백만장자가 되는 비결을 재미있게 소개해주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책의 주인공의 모습은 상당히 나를 닮아 있다. 사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사에 소극적이며 현실의 벽에 억눌려서 새로운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지, 이 이야기의 서두 부분에 나오는 이야기가 무척이나 마음에 와 닿았다. "보통 사람들은 남에게 뭘 부탁하기를 꺼려하지요, 막상 부탁해놓고도 상대방이 조금만 망설이는 기미를 보이면 하던 말이 숙 들어가버리고 말지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결코 얻을 수 없답니다." 완전 내 이야기다 @@;; 부탁하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이것은 왜 대부분 사람들이 성공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리고 저자도 이 말을 말미에 다시 한번 소개함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 주고 있는 듯하다.
 
이 책이 주장하고 있는 바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정신일도 하사불성’ 혹은 ‘하면된다’라고 자기 암시를 하라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짧은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감동적인 교훈을 전해주고 있다. 당신이 지금껏 살아온 삶이 불만족스러운가?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가? 이 책은 당신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훌륭한 지침을 제공해줄 것이다.
 
※ 기독교인들을 위한 첨언
이 책의 기본적인 사상은 물론 비성경적입니다. 하면된다라는 불굴의 의지와 자기최면, 자기암시는 신앙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요, 어떤 의미에서 신앙과 대척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행복이나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요, 또 내 힘과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도 아닙니다.
우리는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사실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인생의 진정한 행복입니다. 또한 우리는 내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을 따라서 살아야 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교훈은 여러모로 신앙의 해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교훈하고 있는 내용 중에는 중요한 인생의 교훈들도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삶의 지혜서로서 참고할 만한 내용들이 있기에 지혜롭게 분별하며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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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 혹은 신들의 고향 1 (보급판 문고본)
제카리아 시친 지음, 이근영 옮김 / 이른아침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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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류의 책은 솔직히 당황스럽다.

한편에서는 용감하고 한편에서는 무모하고,  한편에서는 치열함이 묻어나고 한편에서는 가득한 어리석음이 묻어난다. 도대체 저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책을 쓰는 걸까?

먼저, 독자들은 이런 책을 경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책은 옛날 어렸을 적 약장수의 말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시골 사람들은 무지하다. 약장수는 화려한 언변과 알듯 모를듯한 전문용어들을 써가며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강하게 어필한다.  이런 책이 바로 그러하다.

저자는 고고학에 무지한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전문적인 고고학 용어와 기술적 용어들을 나열함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설득한다. 당연히 고고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은 저자의 논리에 설득당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독자라면 의심하고 볼 수 밖에 없다. 외계인이 지구 문명을 심었다니! 소설을 쓰고 있지 않는가?

이와 비슷한 책은 신의 지문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출간되었다.  신의지문 저자 그레이엄 헨콕은 기존의 모든 고고학적 업적을 깡그리 무시하고 외계인이 지구 문명을 심었다는 가설을 기정 사실화하여, 모든 문화와 기호를 외계인의 존재를 그려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고학적 지식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황당하기 그지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문제는 일반인들에게 이런 류의 책들이 잘 팔린다는 것이다. 이단적인 이런 책들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만 베스트 셀러인지 외국에서도 베스트 셀러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런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의 학문적 천박성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슬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저자의 주장은 혹세무민(?)하는 글이다. 그리고 이런 책이 핸드인핸드 시리즈에 선정되었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나름대로 괜찮은 교양서적으로 뽑아서 핸드인핸드 시리즈를 만들었을터인데, 이런 이단류의 책이 어떻게 선정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저자의 주장은 간단하다. 인류의 문명은 어느날 갑자기 비약적인 성장을 보여준다. 점진적인 발전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 폭발적인 문명의 진보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진화론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것인데, 이것을 해결하는 유일한 대답은 바로 외계인(12번쨰 행성에 사는)이 지구에 문명을 심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물론 귀납법적으로 자신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접근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귀납법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이미 연역적인 결론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귀납법적인 증거를 찾아내는, 말하자면 이어령비어령식의 주장일 뿐이다. 고고학은 어떻게 보면 결국 해석의 문제인데, 저자는 고대의 여러 유물들 중에서 외계인을 암시하는 듯한 (혹은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증거들 만을 모아서, 외계인의 존재를 기정 사실화한다.

물론, 저자의 이런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면 곡학아세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알 수 있다.  저자는 기존의 고고학적 해석들을 모두 무시해버리고, 기존의 학문적 업적들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자신의 주장을 이끌고 간다. 그냥 재미로 읽으시라. 이것을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만병통치약을 판매하는 약장수에게 속아서 약을 사는 것과 꼭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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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읽어주는 남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4
탁석산 지음 / 명진출판사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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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하던가? 솔직히 part1을 읽으면서 실망감이 컸다.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비판하자면, 과학주의의 늪에 빠져 길을 잃은 철학 이라고나 할까?

 인간을 하나의 기계적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분석하는 것은 오래된 서양철학의 폐단인데, 저자의 글에서도 그 폐단에서 한 발자욱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본다.

우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과학에 대한 지나친 맹신에서 그의 철학이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모든 철학적 논제들에 대해서 20세기에 이루어놓은 과학의 잣대에 두고 철저하게 제단한다. 현대 과학이 이루어놓은 어떤 성과물이나 결과물과 불일치하는 철학적 결론은 일단 무시하고 시작한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철학적 자세로서 합당하냐에 대해서 묻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철학이 해야하는 작업은 그 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물어야 하지 않는가? 

십분 양보해서,  엄연한 현실이 놓여져 있는데 그것을 뒤집는 철학적 결론은 헛되다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하자. 그런데 과학이 내놓고 있는 결과물은 "엄연한 현실"이 아니다. 과학이 내어놓고 있는 결과물은 과정 속에 있다.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현대 과학이 내놓고 있는 성과물은 극히 불완전하고 미미한 지식에 불과하다. 도대체 과학이 밝혀낸 것이 무엇이 있는가?  이 우주의 근본적인 진리 혹은 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는 모든 지식에 비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너무나 초라하다.  우리가 과학에 대해 놀라고 맹신하는 것은  이제 껏 우리가 알지못하던 지식(혹은 진리)에 비해서 너무나 파격적이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현대 과학이 알고 있는 내용은 사실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이 지구에 대해서 과학이 알고 있는 것은 너무나 적다. 우주에 대해서는 거의 모른다.  우리 몸에 대해서는 어떠한가? 역시 알고 있는 부분이 너무나 적다.  DNA의 발견, 양자 역학의 세계에 대한 탐구와 같은 이전에는 사상할 수 없었던 세계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주어졌기 때문에 인간이 마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혹은 상당부분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저자도 이 착각 속에 함몰되어서 과학이 내어놓은 결과에 모든 철학적 과제를 제한하고 있는 것 같다. 중세까지 소위 과학이 철학의 시녀였다고 한다면, 저자의 주장은 과학의 시녀로 전락한 철학을 설파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 도대체 과학이 알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저자는 과학의 엄청난 결과물 앞에 한마디로 "쫄았다" 철학은 이제는 과학과 상대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과학 앞에 백기 투항하고, 그의 모든 철학적 논의를 과학아래에서만 행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가 발견한 유일한 철학의 생존 구역은 바로 과학이 다루지 않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과 의미를 동일선상에 놓고 다룰 수 있는 다른 카테고리라고 할 수 있을까?  과학 자체가 인간에게 있어서 이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과학을 피해서 의미로 들어간다는 것도 모순아닌가? 사실은 의미가 과학을 포괄하지 않은가? 결국 과학을 포함한 세계전체를 아우룰 수 있는 것이 현상학이나 해석학이지, 철학이 과학을 신성불가침의 자리로 구별해두었다고 과연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자는 인간의 인간됨을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저자가 생각하는 인간은 그저 생물학적인 구성물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명제에 동의할 수 없다(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 전제를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인간은 고기덩어리 이상이다.  인간은 물리적인 현상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 있다.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과학이 발견한 진리가, 인간이 없다면 그것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진리는 ’내가 존재함으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간이 없었다면 과학적 논쟁 자체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과학이란 결국 우리가 파악한 과학이다. 우리가 파악하지 못하는 더 고차원적인 과학적 세계가 있고, 그 과학적 세계는 우리의 경험하는 모든 현실을 뒤엎는 다면 어떠하겠는가?  철학의 위대한 점 혹은 인간의 위대한 점은 바로 경험을 최종적 진리로 인정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한가지 저자는 적어도 학자로서 진실하다는 점은 아주 높이 평가할 만하다. 솔직히 우리 사회에 교수라는 직함에 어울릴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 지 의문이다.  그저 박사학위(혹은 그것에 준하는)라는 라이센스를 따서 학맥이나 인맥 혹은 돈으로 교수된 사람이 너무 많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실력없는 교수들이 너무 많다. 저자는 적어도 그런 부류와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공부안하고 놀고먹는 교수와는 격이 다른 느낌이다. 이런 학자들이 대우를 받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철학에 대한 저자의 관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part 1

 우리 삶에 나타난 여러 현상들의 철학적 의미를 보기 위해서는 part 2

 한국 사회에서의 철학의 현주소를 알기 위해서는 part 3을 읽어보라

 철학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분들은 part2부터 읽으면 흥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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