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핀 선생 죽이기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20
로이스 던칸 지음 / 보물창고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마크는 그리핀 선생님이란 사람에는 관심이 없었고, 그런 점에서 이것이 원한 범죄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어요.'(본책 344쪽 작가와의 인터뷰 중에서)

 

수업 종이 울리는 순간에 딱 맞추어 들어오지 않은 날이 한 번도 없고, 늘 단정한 남색 정장과 하얀 와이셔츠, 넥타이를 완벽하게 갖춰 입고... 불의와는 절대 타협할 수 없다는 듯 굳게 입을 다문 그리핀 선생에 대한 아이들의 불만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가 가르치는 '영미 문학 및 작문'과목에서 A를 받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고 그 어떤 예외도 있을 수 없는 혹독한(?) 방식은 대부분의 아이들로부터 자연스레 불만이 터져나왔다. 아이들에게 영문학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한 그리핀 선생의 철칙과도 같은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농구시합때문에 과제를 못 끝낸 탓에 F를 받게 된 것뿐만 아니라 평소 자신의 과제에 지적투성이인 것이 못마땅한 제프는 이번에도 영어 학점이 모자라 졸업을 못할 위기에 닥친 마크의 장난같은 '그 망할 작자를 죽이는 거'에 홀리듯 넘어가고 만다. 이미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두기라도 한듯 마크는 밤새 작성한 과제가 바람에 날려가 제때 제출하지 못해 F를 받게 된 데이비드와 데이비드를 불쌍해 보일 정도로 좋아하는 범생이 수 멕코넬을 바람잡이로 정해 두었다고 한다. 거기에 제프의 여자친구이자 고등학교 때를 추억하는 재미있는 일 하나쯤으로 생각하며 가담에 끼어든 벳시까지 5인조가 꾸려진다.

 

책을 읽기에 앞서 '그리핀 선생 죽이기'란 제목에 섬뜩함이 먼저 들지만 사실 아이들의 엉뚱한 소란같은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짐작도 해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이들의 엉뚱한 소란같은 전개는 결코 없다. 무엇보다 제프가 독백처럼 묘사하는 마크에 대한 부분이 뭔가 예사롭지 않은, 짐작과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질 것 같은 불안감을 더해준다.

'... 마크의 역삼각형 얼굴에 매끈하게 뺨에서부터 뾰족한 턱까지 이어진 선은 대부분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런 표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않았다. 변하는 것이 있다면 딱 한 가지, 바로 눈빛이었다.'(본문 27쪽)

마이크를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그저 단순한 호기심 가담자에 불과하지 않았지만, 사건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이유로 즐거운 추억거리와는 거리가 먼 '진짜' 살인사건이 되고 만다. 어이없이 벌어진 살인사건 앞에서 당황하는 네 명의 아이들과 달리  치밀하게 사건을 은폐하려는 마크의 모습이 한편의 범죄소설을 읽는 착각마저 들게한다. 

 

어처구니 없이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 의해 살해당한 그리핀 선생을 보면서 얼마전 딸아이와 함께 보았던 EBS교육방송의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란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과거에는 '선생님'하면 아이들은 물론 학부모조차도 쉽게 대하지 못하던 명예로운 직업이 아니던가. 그러나 방송프로를 통해 보는 선생님의 모습은 아이들 앞에서 당황하고, 아이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여느 사람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름의 확신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하더라고 그것이 아이들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강요될 때는 아이들의 무관심과 눈에 보이지 않은 조소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가슴아프게 눈물을 흘리던 선생님들.

다행히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아이들과의 소통을 기본으로 배우며 선생님으로의 자리와 역할을 제대로 찾아가는 선생님들은 어느새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약간 아쉬웠던 것은 일방적으로 선생님들의 부족한 부분만 보여주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사실 요즘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문제도 무시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어쨌든, 옆에서 함께 보던 딸아이도 나도 요즘 선생님들의 어려움과 현실을 약간이나마 엿볼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책 뒤에 담긴 <작가와의 인터뷰>를 통해 선천적인 인성장애자(사이코패스)인 마크가 죄책감보다는 단지 스스로 계획한 일을 치밀하게 끝내려고 한 것이 오히려 사건을 키우고 다른 아이들을 더 위험에 빠뜨리게 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또 '선척적인' 인성장애를 갖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우리 아이들과 섞여 자라고 있는 아이들인 것이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부모는 물론 학교 선생님들도 아이들 하나하나에 특별한 시선과 관심을 갖고 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애정깊은 관심만이 '선천적인' 장애도 극복하는 힘을 줄지도 모르니까...

문득, 억울한 죽음을 당한 그리핀 선생님이지만, 그에게는 전혀 잘못이 없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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