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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 조선을 설계한 문화의 연금술사 ㅣ 아이세움 역사 인물 20
문정민 지음, 차재옥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9년 2월
평점 :
역사적인 인물은 물론 시대적인 상황과 관련 내용까지 두루 엮어내고 있는 <아이세움 역사 인물>시리즈 스무 번째 권, 세종!이다.
지난 8월 15일에는 해마다 열리는 65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와 함께 경복궁의 남측 정문인 광화문이 3년 8개월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웅장한 모습으로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겪으며 잃어버렸던 원형을 '고종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취지에 맞춰 현판도 145년 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일제의 왜곡으로 삐뚤어져있던 광화문이 비로소 조선시대 정궁인 경복궁의 남정문으로서의 제자리를 찾았다는 의미 외에도 웅대했던 5백 년 조선의 역사를 고스란히 이어가고픈 간절한 염원도 새롭게 담아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치욕과 아픔으로 우리의 자주적 근대사를 시작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는 광화문의 부활로 더이상 우리의 미래 역사를 써나감에 걸림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도......
5백 년 조선의 역사뿐만 아니라 5천 년 우리 역사에 있어 가장 위대한 성군이자 통치자로 손꼽히고 있는 세종. 조선을 건국한 태조4년 9월에 건립된 광화문의 원래 이름은 사정문(四正門)이었으나 지금의 광화문으로 바꾼 것도 세종7년 집현전에 의해서라고 하니 또 한 번 세종의 놀라운 힘(?)을 깨닫게 된다. 그야말로 대왕(大王)이라 일컫지 않을 수 없다는......
가장 위대한 통치자로 손꼽히는 세종에 대해 알면 알수록 '만약 세종이 조선을 통치하지 않았더라면......'하는 가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우리 역사에 세종이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럽고 우리 민족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일임을 더욱 확고하게 느끼고는 한다.
'세종은 나라의 근본이 튼튼하고, 백성이 평안하며, 문화가 활짝 꽃핀 나라를 꿈꾸었다. 아버지 태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을 없애 정치를 안정시켰고, 세종은 태종이 다져 놓은 기반을 딛고 꿈을 향해 한 발씩 나아갔다' (본문 133쪽)
태종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세종이 왕권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어찌보면 천우신조가 아닐 수없다. 더구나, 맏형인 양녕대군이 태종과의 마찰이 있었다고는 해도 세종 못지 않게 다방면에 재능을 가진(왕이 됨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그가 자신의 분수를 제대로 알았다기 보다는 세종의 능력을 제대로 보는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물론, 이는 이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한 태종이 결국에는 세종을 세자로 책봉하고 왕위를 양위한 것이나 둘째 형 효령대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아무리 세종이 왕이될 재목이라 해도 아버지 태종이 자신이 과거에 저질렀던 왕권 다툼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장자인 양녕대군에게 양위를 고집하였거나 두 형들이 끝까지 서열을 따져 왕권을 차지하려고 했더라면 심약한(효성이 지극하고 또 형제애가 깊은) 세종이 순순히 왕권을 받지는 않았으리라.
왕위에 오른 뒤 32년 동안 정치를 안정시키고, 백성들의 어려움을 안팎으로 헤아리며 생활과 문화를 두루두루 발전시킨 세종으로 인해 조선의 5백 년 역사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세종실록>>에 담겨있는 세종에 대한 평가(132쪽)는 다시 한 번 대왕 세종을 자랑스러운 통치자로 되새기게 한다.
'임금은 슬기롭고 도리에 밝았다.... 결정이 필요할 때는 과감하였고, 배우기를 좋아하되 게으르지 않아, 언제나 손에서 책이 떠나지 않았다.
매일 시벽 다섯 시면 옷을 입고, 날이 훤하게 밝으면 조회를 받았다.....처음부터 끝까지 올바르기만 했다.'
무엇보다 당대의 최고 두뇌 집단이라 할 수 있는 집현전 학사들을 키워내고, 전국에 숨어있는 인재들을 발굴하고,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능력 있는 자를 뽑아 능력에 맞게 일을 맡기는 세종의 능력이야말로 통치자로서의 으뜸된 자질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