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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항하는가 - 국가에 의한, 국가를 위한, 국가의 정치를 거부하라
세스 토보크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만화를 통해 세상에서 은폐된 진실, 정치적 야합을 고발하고자 한다'는 저자 세스 토보크먼의 그림을 보는 내내 그의 용기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된다. 더불어 지금 이순간에도 세상 어딘가에서 불의에 맞서 기꺼이 '저항'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반세계화 운동과 반전 운동을 펼치며 가장 급진적이고 정치직인 예술가로서 인권이 파괴되는 곳이면 어디라도 달려간다'는 앞날개의 소개글처럼 저자는 미국과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저항'의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으로 함께 하고 있다.
예술가인 그로서는 그림으로 기록하고, 그림으로 알림으로써 또 저항의 현장에 있다는 행위 자체로 저항에 동참하는 것일터...그래서인지 굵고 거칠어 판화에 가까운 그의 그림이 마치 저항에 기꺼이 동참하는 그의 목소리가 담긴듯 강하게 느껴진다.
우리에게 국가는 과연 무엇일까?
이념의 차이로 국가간에 혹은 국가내에서도 전쟁이 일어나던 때에도 국가는 우리에게 든든한 울타리였을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부강이 국민의 최우선 의무이며 책임인듯 똘똘 뭉치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어느덧 어떤 이념이든 나름의 가치가 인정되고 세계의 평화가 온인류의 최고 목적인듯 전쟁없는 평화를 바라는 요즘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소리없이 전쟁이 진행중임을 우리는 문득문득 잊고 살지 않는가. 오랜 휴전으로 인해 전시중임을 잊고 사는 우리의 현실처럼 말이다.
과거의 국가간 대립이 전쟁이라는 무시무시한 충돌이었던 탓에(한마디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이제는 가급적 모두에게 이로울 것없는 전쟁은, 세계평화라는 한차원 높은 공동의 이념이 있어 지양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전쟁못지 않게 국가의 울타리속에서 함께 살아가기를 바라는 약자들에게 두려움을 던져주는 것은 막강한 권력을 내세우며 약자를 함부로 짓밟는 국가의 횡포가 아닐까. 어떻게 보면 국민모두를 똘똘 뭉치게 하는 전쟁보다 못한, 국민을 분열시키는 치사한 행태가 아닐까....
세스 토보크먼의 고발과도 같은 이 책을 보면서 새삼 놀라운 것은 무자비한 국가의 횡포가 제3세계와 같은 정치적, 경제적 빈곤국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선진 민주주의 정치의 표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의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커먼그라운드의 저지대 9번가 사수를 위한 저항(저항 다섯, 우리 집을 돌려달라!편)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뉴올리언스,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유일한 병원이지만 환자를 실은 앰뷸런스가 멈출 수 없는 DC종합병원 등은 미국의 실상이라 생각하니 씁쓸하기만 하다. 그러면서 겉으로는 더이상의 민주주의는 없다는듯 세계를 지배하려드니 말이다.
세스 토보크먼의 힘찬 그림은 불의와 모순, 폭력과 권력에 맞서는 '저항'이 약자의 또는 소수의 몸부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케냐의 나이로비에서 독재자 다니엘 아랍 모이에 맞서 단식투쟁을 벌이던 루스 왕가리가 자신의 옷을 찢음으로써 청년의 목숨을 구해낸 것처럼... 비록 총과 칼, 탱크와 장갑차가 없어도 자신의 몸으로 맞서 싸우는 '저항'이 있다면 완전한 정복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원시적인 집단생활을 시작으로 우리는 이해(利害)를 위해 국가를 이루며 오늘까지 살고 있다. 하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구성원들이 국가를 이룬탓에 또 자신의 의지(선택)와 상관없이 태어나면서 이미 국가의 구성원이 된탓에 살다보면 국가의 이해와 자신의 그것이 부딪칠 때가 있다. 물론 국가라는 엄청난 거인앞에 개인은 너무나 미미한 존재이다. 그러나, 국가는 개인이 있음으로써 가능한 이해집단이 아닐까....
그러고보면, 무조건 국가앞에 무릎을 꿇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오늘의 나의 나약함이 우리의 아이들에게는 더욱더 큰 복종을 강요할 터이므로.... 하여, 지금 우리를 미미한 존재로조차도 인정하지 않으려는(불필요한 존재라고 여기는) 국가의 일방적인 횡포 앞에서 우리는 결코 함구해서는 안될 일이다.
건강한 저항은 개인은 물론 국가의 발전과 미래 후손들의 행복을 위해서도 분명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