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우표 동심원 7
곽해룡 지음, 김명숙 그림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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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는
집이 동그랗다 

- 내 집 많이 커졌지?
집을 등에 지고 다니며
달팽이는 자랑한다 

민달팽이도
집이 동그랗다 

달팽이보다 훨씬 큰 집에서 살지만
민달팽이는 자랑하지 않는다 

민달팽이는 집을 안고 다닌다
 

위 시의 제목은 <지구>다.
처음 <지구>라는 제목의 이 시를 읽으며 고개가 살짝 갸웃거려졌다.
평소 민달팽이는 달팽이와 달리 집(껍질)이 없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알고 있기에 달팽이보다 더 큰 집을 가졌다는 싯구절에 말이다.
게다가 우리집 베란다 화단에는 심심찮게 민달팽이가 출현하는데, 민달팽이가 식물들을 마구마구 뜯어먹는 해충으로 알기에 평소 보이는대로 잡는 것이 일아닌 일이 되었다. 

사실, 가끔 시장에서 사온 채소 속에 들어있는 달팽이를 만나면 새삼 반가워, 딸아이가 어릴때는 달팽이를 애지중지하며 길렀던 적도 여러 번 있다. 하지만, 둥근 집(껍질)이 없는 민달팽이는 왜 그렇게 징그러운지....... 

하지만, 민달팽이는 집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달팽이보다 더 큰 '지구'라는 집에서 산다는 시인의 말에 왠지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져 온다.
그러고보면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 민달팽이를 징그러워한 것 같아서 말이다.
왜 시인처럼 달팽이는 달팽이대로, 민달팽이는 민달팽이대로 그렇게 인정(?)하지 못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새삼 밀려온다.

언제부터인가 누군가 만들어놓은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마치 내 것인양 그대로 답습하며 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밖에도 엄마 오리를 씩씩하게 따라가는 아기 오리들의 모습 속에서 아빠 오리가 없어도 오리 가족이 행복한 것을 발견하는 시인은, 소나무 둥치에 붙은 속이 텅 빈 매미 허물의 찢긴 등을 보며 엄마 배에도 저런 자국이 있음을 상기 시켜준다.
엄마도 매미처럼 자신의 몸에 찢기는 상처를 만들어가며 우리를 낳았다는 것을 일깨워주기라도 하듯.....

짐차 운전수인 아빠는
한 통의 편지가 되어
부산도 가고
여수도 갑니다 

떠날 때마다 아빠는
내 앞에 뺨을 내밀고
우표를 붙여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나는 입술 우표를
쪽! 소리가 나도록 붙여 드립니다 

.......
.......

어떤 날 아빠는 내 입술 우표를
한꺼번에 두 장 세 장씩 받아 가기도 합니다
내 입술 우표는 아무리 붙여 주어도 닳지 않아
아깝지 않지만
두 장 세 장 한꺼번에 붙여 드리는 날은
아빠를 오랫동안 못 볼 것만 같아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합니다
 

<입술 우표>라는 제목의 시에 어린시절이 그립게 떠오른다. 다시는 되돌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는 어린시절, 나 역시도 아버지께 입술 우표를 쪽! 소리가 나게 붙였던 그 시절. 자식이라고는 뒤늦게 낳은 딸아이 하나여서 참 이뻐라 하셨던 아버지. 말이 없던 엄마에 대한 기억보다도 아버지와 영화관에도 가고 시장에도 가고 공원으로 나들이도 갔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무리 붙여 주어도 닳지 않고 아깝지 않은 입술 우표를 붙여드리고 싶어도 이제는 먼먼 나라도 떠나가신 아버지.... 이 시가 자꾸만 어린시절을 그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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