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훔치고 싶은 것 미래의 고전 20
이종선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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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벽, 도벽....'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는 여경이와 달리 여진이는 이야기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뒷이야기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도벽'이라는 단어만 반복해서 들리는 것 같았다.
(본문 73쪽)

네 명의 또래소녀(같은 반)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요즘 한창 사춘기인 딸아이와 학년까지도 같아 사뭇 진지하게 읽혀졌다.
여진, 여경, 민서, 선주... 네 명의 같은 반 소녀들 사이에 흐르는 긴장이 감도는 이야기가 여진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학기초 발생한 도난 사건. 민서의 돈이 없어진 사건을 예사롭지 않게 느끼고 있는 여진이가 범인인지 아닌지 자못 헷갈리게 한다. 곧이어 등장한 여경이도 범인인듯 느껴지지만 진짜 범인은 누구인지 더욱 헷갈리기만 한다.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함께 등하교도 하는 사이인 여진과 선주. 갑작스레 양궁 선수가 된 선주의 빈자리를 여경과 민서가 새롭게 파고드는 것같아 혼란스러운 여진. 그러나 여진의 혼란스러움은 단순한 자리다툼(?)이 아니라 여경과 민서의 불편한 관계를 알게 되면서부터이다. 그 사이에서 자신이 박쥐같다고 느끼는 여진은 게다가 누구에게도 말 못할 비밀까지 간직하고 있다. 다름아닌 민서의 물감을 슬쩍한 것! 

언제부터인가 주인이 없어 보이는 물건들만 보면 자꾸 갖고 싶어졌다. 하루, 이틀, 주인 없이 한자리를 지키는 물건들이 집에 돌아와서도 자꾸 생각났다. 그러면서 '내일도 있으면 좋겠다.'싶었다. 그러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 학교로 달렸다. 보는 눈이 없는 시간에 그 물건은 여진이의 가방 속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본문 39쪽) 

여태껏 주인이 없는 물건만 가져오던 여진이 특활시간에 민서가 두고간 물감을 가져온 것이다. 엄연히 주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그래서 가슴 한 구석이 점점 묵직해지고, 예정에 없이 여경을 집으로 데리고 간 날에는 그로 인해 더 큰 불안을 겪게 된다. 혹시 여경이 자신이 한 일을 눈치챈 것은 아닌지.....

게다가 여경이 뜬금없이 자신의 남동생에게 도벽이 있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런 여경이 자신이 민서의 물감을 훔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까봐 노심초사하는 여진이 민서와 여경 사이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불안해 하는 모습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아닌게 아니라, 아동 전문가들에 의하면 어린시절 '훔치는 일'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는 일이라 하지 않는가? 나 역시도 기억을 더듬어보면 '훔쳤던' 일이 있었다. 하얗고 작은 비둘기 저금통(물론 내 것이기는 하였지만)에 든 동전을 빼내기 위해 방바닥에 누워 바늘로 침을 꼴깍 삼켜가며 긴장하던 일이며, 우연히 아버지의 겨울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발견한 지폐와 동전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동전으로는 과자를 사먹고 지폐는 다른 곳에 숨겨 놓고 며칠을 아버지가 기억하는지 못하는지 살피던 기억이 어제인듯 떠오른다.

저금통 사건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아버지의 코트 속 돈은 며칠 후 아버지의 불호령과 함께 따끔하게 매를 맞았던 기억때문에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다. 그 일의 후유증탓인지 어떤지 성인이 된 후로 나는 거짓말조차도 결벽증처럼 싫어한다. 그저 떨어진 돈도 줍지 않을 정도로.... 

아무튼,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겪게되는 일(현상) 가운데 하나가 '훔치는' 일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에 뒤늦게 위안을 삼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진의 경우에도 자연스러운 현상의 하나일까?

전문가들이 말하는 '자라는 동안'이라는 의미가 선과 악을 구별하는 사춘기 무렵의 아이들이 아니라 아직은 선과 악의 판단에 서툰 대여섯 살 무렵의 어린아이들에 국한된(?) 경우라면 다소 심각한 경우가 아닐까..... 

딱히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는, 그대로 두면 버려질 것이 뻔한, 집에 가져와서도 대부분 쓰레기통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그것들을 가져오는 여진의 심리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일로 바쁜 아버지와 엄마, 그리고 사춘기로 자기 자신 외에 관심조차 없는 언니 등 자신이 가족들의 관심 밖에 있다고 느끼는 여진이 버려진 물건들을 보며 마치 자신인양 느꼈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인이 없어 보이는 물건들만 보면 자꾸 갖고 싶어졌다는 여진의 말이 예사롭지 않은 것도 그때문은 아닌지......

단순한 또래아이들의 친구문제인 것도 같지만 보다 근본적인 관계와 관심에 대한 이야기가 또래의 딸아이를 둔 내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혹.. 내 딸아이도 관심과 사랑에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살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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