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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이야기 ㅣ 인물로 보는 우리 역사 5
박윤규 지음 / 보물창고 / 2010년 4월
평점 :
'사람의 삶에 완성이란 없으며, 영원한 일등도 없는 것이다. 학문과 예술에는 최고란 없으며 오로지 한층 더 높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진정한 예술이다!' (본문 206쪽, '천하제일 명필 석봉 한호'편)
눈물이 왈칵 솟았다. 뚜렷한 이유도 없이 위 대목에 이르러 그냥 눈물이 솟았다.
나라를 다스리려면 인재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작아서 인재가 드물다 그런데도 대대로 벼슬하던 집안 아니면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높은 벼슬에 오를 수 없다. 한 사람의 재주와 능력은 하늘이 준 것이므로 귀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재능을 많이 주는 것도 아니며 천한 집 자식이라고 해서 인색하게 주는 것도 아니다. (본문 241쪽, '승천을 꿈꾼 이무기 허균'편)
어제가 6.2 지방선거 후보자 등록 마지막 날이었다는 뉴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데, 위의 글을 읽는데 마음이 착잡해져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재난(?)에 말이다.
떠돌이 나에게 삿갓은 정처 없는 빈 배
한 번 쓰기 시작한 것이 사십 평생을 지냈구나
소치는 아이가 들판에서 송아지를 몰 때
늙은 어부가 갈매기와 고기잡이할 때 쓰는 것인데
술에 취한 나는 벗어 꽃나무에 걸기도 하고
흥이 오르면 들고 다락에 올라 달구경도 하였네
세상 사람들 의관이야 모두 겉치레지만
나의 삿갓은 비바람 근심 외로움 막아 주는 벗이라네.
(본문 290쪽, 김삿갓의 시 '삿갓을 노래함')
시절 피해 은둔의 삶을 살며 한평생 시를 읊었던 방랑시인 김삿갓의 곁을 지켜준 것은 보잘 것없는 삿갓에 지나지 않았으나, 그 어떤 것보다도 그를 든든하게 지켜주었다는 삿갓. 문득, 타고난 예인의 기질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안타깝게 스러져간 삶은 또 얼마나 많을지 생각케 한다.
실감하기에는 까마득한 역사 속에서나 등장하는 인물들이어서일까? 아니면, 박제된 표본처럼 책속에 갇힌 몇 줄의 글로써만 그들을 배운 탓일까?
그동안 무덤덤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우리 역사에서 뛰어난(이름난?) 인물들로만 배웠던 예술가들을 온전히 새롭게 만나게 된다.
때로는 그들의 어린시절 성장이 순탄치 않았음에도 빼어난 예술가적 기질은 자루속에 든 송곳처럼 어떻게든 발현하고 있었고, 또 그들의 비범함을 일찌기 눈치챈 이들에 의해 차근차근 갈고 다듬어져 제 빛을 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시대가 미처 그 고매함을 따라가지 못하여, 주변의 시샘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사라져간 이들도 적지 않았다.
단순히 동국이상국집의 저자 이규보, 절세가인 황진이, 현모양처의 대명사 신사임당, 명필가 한석봉,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 조선의 최고 풍속화가 김홍도... 등으로만 알고 있던 인물들의 삶을 통해 우리가 익히 배워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좁은 소견의 소치인지도 깨닫게 되었나고 할까....균여, 정지상, 신재효 등 이름조차도 낯선 혹은 이름만 겨우 알고 있던 인물들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게 되어 무척 반가운 책이다.
오늘날에 비하면 그야말로 부족한 것 투성이였던 그 시절에 어찌 그리도 고매한 기상과 뛰어난 예술성을 갖출 수 있었을까??
물론, 선천적으로 부여된 재능인 탓도 있겠지만 그들(의 재능?)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뒷받침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무엇이든 풍족하고 넘쳐나는 요즘에 과거와 같은 예인들이 없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물질이 정신을 압도하는 시대의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이제는 정녕 역사속에서나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진정한 예인들을......
아, 예인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