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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평점 :
루쉰하면 '아Q정전'밖에 딱히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제목이 무슨 신기루라도 되는양 의외로 다가왔다.
'그림쟁이'라는 수식어에 솔직히 지극히 '보편적인' 그림을 기대하며 받아든 책은 생각보다 두께며 부피감이 묵직하였다. 자연히 제법 많은 그림을 기대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 문학의 중요성을 절감하여 문예 활동을 시작했다는 루쉰에 대한 앞표지 날개에 적힌 소개글에는 엄연히 '중국의 소설가이자 사상가'로만 적혀있음에 더욱 루쉰의 남겼을 그림에 호기심이 더욱 꿈틀거렸다.
하지만, 가볍게 휘리릭~ 넘겨본 책장마다 언뜻언뜻 보이는 것은 '보편적인' 그림이라하기엔 좀 무엇한(?) 작품들이 좀 작다싶은 크기로 실려있고 그에 얽힌 루쉰의 기록과 배경(해설)이 주석처럼 달려있었다.
30년 넘게 루쉰 연구에 몰두해 온 루쉰 연구자인 엮은이 왕시룽은 <이 책을 엮게 된 인연>글을 통해 루쉰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매우 좋아했으며 훌륭한 미술 훈련을 받은 경력이 있음과 소년 시절에 습자지 같은 종이로 된 명공지에 수상소설을 모사하기도 하였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 남경에서 과학기술을 배울 때 그림을 접하게 되었으며 일본에서 의학을 전공하면서 해부도를 그리게 된 것이 그의 회화 실력을 향상시키는 미술훈련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그가 루쉰을 연구하며 발견한 100여 점이 넘는 미술작품들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들을 정선하여 애호가들에게 보여주려 하고자 한다는 이 책의 집필 목적과 함께, 각각 한 점뿐인 국화(國畵)와 전각을 비롯하여 평면디자인과 선묘, 책과 잡지의 디자인 부문으로 분류하여 담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기대했던 그림과는 다소 다른 루쉰의 작품 하나하나를 생경한(미술에) 시선으로 하나하나 보면서 주석같은 루쉰의 이야기와 관련기록과 해설까지 읽으려니 새로운 재미가 느껴졌다.
이를테면, 당시 중국인들의 의식을 고취하고자 하는 루쉰의 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엿볼 수 있다고나 할까.......
선현들에 관한 자료는 물론 골동품과 책도 구입한 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길 때도 상세한 그림을 덧붙이고, 또 중국작품을 번역하는 일본인 친구의 질문에 대한 편지에도 설명과 함께 이해를 돕는 그림이 곳곳에 있는 것만 보아도 루쉰이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심지어는 일기장에 자신이 구입한 집의 구조를 그려놓기도 하고 또 자신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이 근무하게 된 대학이며 묵게 된 방의 위치까지 그려보내기도 하였다.
사적이라 할 수 있는 일기며 편지글에 담긴 소소한 그림은 사실 그저 설명이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려놓은 것에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생동감이 넘친다' '간결하고도 우아한 풍취를 자아낸다'는 등의 해설은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지도 하였다. (그림에 문외한인 솔직한 나의 느낌이다)
'책과 잡지 디자인'에 관련한 것들은 대부분 표지의 그림과 글씨로 되어 있는데 역시나 나에게는 미술 작품으로보다는 그가 출판한 번역집들과 문집 등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였다는 것이 더 눈에 들어왔다.
아쉽게도 표지의 작품들에 대한 화려한(?) 해설에는 그다지 공감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문학 활동에 대한 루쉰의 열정만큼은 제대로 느끼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하다.
문득 '그림쟁이, 루쉰'이라는 제목은 그림을 잘 그리는다는 의미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즐겨 그렸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