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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수근 - 공간을 디자인하다 ㅣ 예술가 이야기 4
황두진 지음 / 나무숲 / 2007년 1월
평점 :
나무숲이 들려주는 '예술가이야기'시리즈 네 번째 권이다. 느낌부터 말하자면 역시나 이번에도 나무숲의 나무향에 흠뻑~ 취한 셈이다. 우리나라 건축의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남기고 간 한국의 건축가 김수근을 비로소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서울 종로구 계동에 가면 우리나라 최고의 건설사 현대건설사옥이 엄청난 높이로 자리하고 있다. 그 옆에는 한때 비원으로 불리며 아픈 역사를 간직한 창덕궁이 있다. 그리고 현대건설사옥과 창덕궁 사이에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있다. 왠지 어울리지 않은 것 같기도 한 그리 크지 않은 건물의 이름이 '공간'이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 건물이 바로 우리나라는 물론 해외에서도 유명한 건축가 김수근의 '공간'이라는 것은 전혀 몰랐던, 건축에는 문외한인 셈이다.
왜 그 건물 '공간'이 거기에 자리하고 있는지, 그 이유는 간단하게 고향이 함경북도 청진임에도 '나의 집은 서울의 북촌'이라고 할 정도로 북촌을 사랑했던 김수근이었기에 당연하리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짐작해 본다. 더불어 '공간'의 내부는 밖에서만 보는 이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운치있는 마당하며 오래된 석탑이 있어 작은 마을 같은 흥미로운 공간도 있고, 계단으로 연결된 작은 마당들이 막힘없이 열리고 끊임없이 이어진다니 언제 한 번 찾아가고픈 마음조차 들게한다.
정말 그런 공간들이 있는가 확인이라도 하듯 말이다.^^;
부유하게 자라는 외아들 김수근을 엄격하게 가르친 어머니를 자신의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는 김수근이 흑백사진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사진이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우연히 만난 미군 병사 밥을 통해 건축가와 건축에 대해 알게 된 중학생 김수근이 건축이야말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이라고 느낀 것은 그에게 우연이었을까? 아니면 필연이었을까?
자신만의 독창적인 생각을 건축에 담아야 한다는 생각만큼이나 이미 그는 독창적이었던듯, 일본으로의 밀항이 참 의외다. 아버지의 악어가죽 가방을 판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니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니 말이다. 젊은 날의 패기인지 호기인지... 아무튼 그런 그였기에 우리나라 건축사에 한 획을 긋지 않았을까.....
본문을 통해 알게 된 그가 설계한 많은 건축물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건축계를 이끌었던 인물이라 아니 할 수가 없을 듯....
어쩌면 그의 설계대로 지어졌을지모를 국회의사당(5.16혁명으로 중단된)이며 독특한 모양의 힐탑 바(워커힐 호텔의 레스토랑), 지금은 녹지계획으로 철거된 세운상가를 비롯하여 초기의 여의도 도시계획까지(실제 개발에서는 상당 부분 바뀌었다고), 한국의 건축가라 아니할 수 없겠다.
풍부하게 담긴 사진자료들 덕분에 몇년 전 춘천인형극제를 보러 찾았던 춘천의 어린이회관도 그의 작품이며, 공연을 보러 다녔던 올림픽 경기장들과 동숭동의 문예회관과 샘터 사옥, 한계령 휴계소 등도 그의 공간사랑이 빚어낸 작품들이라니 새삼스레 반가웠다.
솔직히, 아직까지 '엄청나게 큰' 성공이란 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얼만큼의 열정과 노력이 있어야 그처럼 대단한 성공을 거둘 수 있는지 짐작조차 못할 일이지만, 그가 남긴 스케치와 노트 기록과 일정표들을 통해 막연하게 나마 쉼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아직도 공간 사옥에 놓여 있다는 그의 책상은 살아생전 그의 대단한 열정이 아직도 그 열기를 잃지 않고 있는 듯, 더불어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애틋함까지 느껴지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