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의 강렬한(약간 눈이 피로한) 분홍색 때문이었는지..아니면 그림때문이었는지 한창 사춘기의 문턱에서 엄마인 나를 긴장시키는 초등고학년 딸아이가 먼저 낚아채 읽고는 불쑥 하는 말은 다름아닌 '엄마, 이 책 표지 색깔이 좀 촌스럽네.' 흠.. 첫사랑이 어쩌고 몸에 생기는 변화가 어쩌고....하는 문구때문에 딸아이를 염두에 두고 함께 봐야지 했던 책인데, 허망하게 표지 색깔만 운운하는 딸아이의 반응에 '더 느낀 건 없나?' 생각하며 읽던 책조차 잠시 미루고 펼쳐본 책~ 그림이 딱히 귀엽다 어떻다 평할 수는 없고 다만 어떤 이에게는 좋게도 또 아니게도 느껴지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용은? 초록대문에 살고 있고 태어나서 한번도 말을 해 보지 못한 벙어리 발렌타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아이의 고백같은 또는 비밀일기같은 느낌이 드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자신이 아주 성숙해진 걸 느끼는 요즘이라며 꿈결에 자주 말을 하는 꿈을 꾼다는 말에 약간은 마음이 뭉클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벙어리장갑이라고 놀려대던 그날 초콜릿색 콧물을 흘리며 울고 있는 발렌타인에게 나타난 그 아이. 바로 사랑을 느끼게 한 주인공? 그리고 독백처럼 전개되는 발렌타인의 이야기에는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상징들로 가득하다. 봄부터 여름, 가을, 겨울을 지나는 동안 발렌타인은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내게는 왜 제대로 들리지 않을까... 혹시 나는 귀머거리? 벙어리 발렌타인의 이야기를 단 한 줄도 듣지 못하는.......아니면 마음의 창문이 없는 것일까? <역자후기>를 통해 원제가 'A goegeous sense of hope'라는 것과 '분홍주의보'라는 제목은 역자인 김경주의 오마주(존경?)에 기인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돼 새삼 엠마 마젠타의 원작이 궁금해진다. 제목뿐만 아니라 본문도 역자에 의해 과감히 각색되었다고 하니 말이다. 문득, 이건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그래도 역자의 사사로운 감정(그것이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각색되었다고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 역자의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판단이 아닐까....)으로 인해 원작이 변형(훼손?)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더불어, 발렌타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것도 어쩌면 역자의 간섭(훼방)때문은 아닐까 하는 핑계까지도..... 사견으로, 역자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외서의 번역이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않나? 역자는 질감을 최대한 살리고자 하였다고는 하나 그것 또한 불만이다. 역자가 느끼는 질감보다는 원작자가 사용한 원재료를 느끼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내친 김에 원작을 찾아보니 엠마 마젠타는 2007년에 이 책을 펴낸 걸로 되어있는데.. 벌써 3년 전의 작품이란 말씀? 그녀에게 당시의 사랑에 대한 우화로 담아낸 이 작품에 대한 느낌은 여전한가 하는 의문을 슬쩍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