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153일의 아니 정확히 151일 간의 예정에 없던 미친 늙은이와의 동거를 끝마치고 집으로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소녀 갈샨이 예전과 같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고 차궁에 혼자 남아있는 바이타르를 생각하며, 또 쿠다야 어르신에게 영원한 자유를 종용하며 떠나보낼 땐 결국 눈물이 와락 쏟아졌다. 그리고, 문득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하는 물음이 선문답처럼 떠올랐다. 엄마 다알라의 안전한 출산을 위해 다섯 달 동안 집을 떠나야 하는 갈샨이 아빠 리함과 함께 48톤 짜리 괴물 트럭 우랄을 타고 열 시간을 넘게 달려 도착한 곳은 말과 양 떼 속에 묻혀 사는 미친 늙은이 바이타르가 살고 있는 차궁이었다. 갈샨과 바이타르, 손녀딸과 할아버지 관계이지만 갈샨의 부모는 물론 집안의 첫손주인 갈샨이 계집아이라는 것에 그리 탐탁지 않아 그동안 관계가 뜸했던 탓에 서먹할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만남. 153일을 버티면 집으로 돌아간다는 희망을 갖고 하루하루 공책에 표시를 하며 먹기싫은 쓴 약을 삼키듯 살아갈 것임을 마음먹는 갈샨. 따스한 말같은 것은 없지만 갈샨에게 '재무쇠'를 골라주고 또 재무쇠를 길들여가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는 바이타르. 마침내 열흘째 되는 날 바이타르를 따라나서게 된 갈샨. 그리고 시작되는 갈샨과 바이타르의 이야기(151일 간의 동거). 몽골하면 우선 넓은 초원을 떠올리기 십상인 탓에 '바위와 자갈이 깔린 거의 절벽에 가까운 위험한 너설 언덕(37쪽)'이나 '언덕마루에서 경사를 곧바로 달려 내리더니 속력을 늦추지 않고(39쪽)'.. 등과 같은 배경이 금새 익숙해 지지 않았지만, 언젠가 TV를 통해 보았던 몽골의 매사냥(독수리사냥이었던가?)을 떠올리게 하는 검독수리 쿠다야 어르신을 사냥하는 장면(70~73쪽)은 몽골의 전통적인 모습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팽팽한 긴장감과 혹시라도 바이타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바쁘게 책장이 넘어가는 부분은 다름아닌 몽골의 혹독한 겨울 추위가 그대로 전해져 오는 '죽음의 흰 가루'였다. 사나운 돌풍과 함께 몰아닥친 다브카르 쭈트(죽음의 흰 가루)는 게르 바깥 세상은 물론 갈샨과 바이타르가 있는 게르의 내부까지 죽음의 그늘을 드리운다. 죽음의 흰 가루 앞에서 불안에 떨며 더없이 약해지는 그러나 끝까지 삶에의 질긴 끈을 놓지않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인간은 자연의 막강한 힘과 싸우며 여태껏 살아온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처음에는 아빠 엄마와의 헤어짐이 싫고 비록 할아버지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미친 늙은이로만 생각된 탓에 153일 동안의 동거가 끔찍하기만 했던 갈샨이 어느새 바이타르를 아타스(할아버지)라 부르며 함께 양떼를 돌보고 검독수리를 사냥하고 쿠다야 어르신과 짝이 되고, <노인과 바다>를 읽어주고.....그리고 '죽음의 흰 가루'속에서 함께 죽음과 싸우는 동안 과연 무엇을 생각했을까...... 마침내 엄마와 아기가 태어난 집으로, 일상으로 돌아간 갈샨이 바이타르를 잊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고집스럽게 자신의 양떼를 지키며 차궁의 삭막한 게르 속에서 손녀딸 갈샨이 남겨두고 간 <노인과 바다>를 보는 바이타르는 또 어떤 마음일까...... 문득, 삶이란 제가 딛고 선 땅 위에서 제각각 짊어지고 가야할 무게의 몫임을 깨닫는다. 결코 누구의 삶이 더 옳고 더 그르다고 말할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