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 봐 청소년문학 보물창고 4
로리 할스 앤더슨 지음, 고수미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처음 책을 받아들고 표지를 보고는 영화 '양들의 침묵' 포스터가 떠올랐다. 정면을 응시하는 눈동자며 공통적으로 입부문이 없는듯한.... 아마도 말해야 할 무엇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밀려오는 궁금증에 뒷표지의 글을 바쁘게 읽어보니 '성폭행'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오고 그 아래 노란색의 '프린츠상 수상작'을 비롯한 다양한 기관에서 추천도서 혹은 선정도서가 되었다는 화려한 내역이 들어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끔찍한 아동성폭행 사건으로 사회가 시끌시끌하기도 하고, 나 역시도 한창 사춘기인 초등생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보니 무엇보다 반인륜적이고 끔찍한 아동성범죄에 촉각이 곤두선다. 속히 더 이상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임을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더욱 내용에 대한 궁금함이 피어올라 서둘러 책장을 펼쳐들어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몇 장을 읽었을까..... 얼마전 읽었던 책 한 권이 떠오른다. 모출판사의 <제발 내 말 좀 들어주세요>라는 책인데 이 책 역시 10대의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오빠의 친구에게 성폭행을 당한 후 학교는 물론 동네에서 가쉽의 주인공이 된다.  

이 책의 주인공 멜린다가 침묵(?)을 일관하며 부모는 물론 주위의 친한 친구들조차도 그녀가 당한 일을 모르는 것과 대조적이지만 두 주인공 모두 어느날 느닷없이 당한 일이나 한두 살 많은 또래 남자아이들에게 당한 일이라는 설정 그리고 학교라는 공간이 상당부분 차지하고 있다는 것 역시 공통점이기도 하다.  

멜린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녀가 왜 말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지.. 그저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쯤으로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실어증'으로 인한 것이었는지는 뒷쪽에 실린 '옮긴이의 말'을 읽고서야 알게 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태껏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그리고 당한 이들의 고통스러움을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성폭력의 피해자들이 어떤 증상을 보이며 또 어떻게 괴로워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는 없었다는 것! 그러고보니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뉴스나 TV프로그램 역시 성폭력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피해자는 그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감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잘못이 없었던듯 훌훌~ 털고 스스로 일어나 일상을 돌아와야 한다는 것...또 가해자는 법이 정한 처벌만 받으면 아무 일도 없었던듯 그렇게 일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진정으로 뉘우침과 후회가 있든없든 말이다. 

이 책 역시 가해자인 앤디 에반스에 대한 처벌이나 가해자로서 느끼는 어떠한 가책도 없었다. 기껏해야 무도회장에서 사실을 알게 된 레이첼에게 채이고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진실을 폭로한 멜린다를 추궁하며 몰아부치다 결국 분노한 멜린다에게 아무 말도 못하고 달려온 라크로스 선수들에게 발견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른들의 세계를 동경하며 이제 막 핑크빛 환상을 꿈꾸는 아이들. 그러한 막역한 환상과 기대가 사춘기무렵의 아이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몹쓸 짓! 그것은 바로 성폭행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범죄가 아닐까? 가해자에게나 피해자에게나 더이상 순수한 마음을 간직할 수도, 세상을 향한 환상이 더이상 지속될 수 없는 끔찍한 성범죄! 

문득..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청소년들의 성범죄는 큰 문제가 되고 있다는 공통점에 안타까움이 먼저 밀려든다. 게다가 피해자보다는 가해자 스스로 그 짐을 견뎌야 하는 것같은 이야기에 더욱 착잡한 마음이다.  

그래서일까... '그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 일이 나를 죽이도록 가만히 있지 않겠다. 나는 이겨 낼 수 있다.'는 멜린다의 호소와도 같은 결심에 마냥 박수를 보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는 물론 그 누구에게도 사실을 알리지 못한채 일 년이라는 시간동안 얼마나 마음속에 되뇌이며 자신을 곧추세워야 했을까...

처음부터 누구에겐가 자신에게 일어난 엄청난 일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으로 피해자의 잘못이 아닌 성폭력범죄이기에 말이다.

우리의, 이 사회의 몫은 바로 아무런 잘못없이 당한 성폭력범죄를 도난사고 신고하듯 교통사고 신고하듯 할 수 있는 여건을 하루속히 마련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그 어떤 성폭력범죄도 가벼이 다루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참,  이 책의 제목 <말해 봐>를  처음에는 피해를 당한 후 그 고통을 말해 보라는 의미로 생각했는데 읽다보니 앤디 에반스의 범행 동기가 멜린다의 싫다!는 강력한 부정의 표현(말)이 없었기에 술에 취해 그 어떤 표현도 할 수 없는 멜린다를 무언의 동의로 받아들였음을.... 그래서 진실을 말한 멜린다를 추궁하며 몰아붙이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그렇다고 술에 취한 멜린다를 원망할 수도, 그런 멜린다의 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한채 제멋대로 해석(?)해버린 앤디 에반스를 옹호할 수도 없지 않은가....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무튼 성에 대한 무분별한 호기심을 부추기는 사회에 그 탓을 돌리고픈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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