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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 이미륵의 자전 소설 ㅣ 올 에이지 클래식
이미륵 지음, 이옥용 옮김 / 보물창고 / 2009년 10월
평점 :
언제였던가 이미륵이란 인물과 그의 독일어 작품 '압록강은 흐른다'에 대하여 들었던 것이...... 한국이면서 독일어로 썼다는 그의 작품을 몹시도 읽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게한 이유중 하나는 독특한 그의 이름때문이기도 했다. 정말 한국적인(?) 향기가 물씬 풍겨오는 미륵이라는 이름. 물론 종교의 냄새가 더 진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얼마전 동명소설을 구입해 놓고 바쁘다는 핑계로 여태껏 미루고 있던 차에 이 책을 먼저 읽게 되었다. 정말 읽고팠던 책이어서인지 어느새 저자의 어린시절로 빠져들었다.
19세기 말 저물어가는 조선왕조의 끝자락에 미륵불에게 기도를 드린 뒤 태어난 연유로 본명 이외에 아명인 미륵을 갖게 되었다고... 그후 미륵은 필명이 되었고.
황해도 해주의 대지주의 귀한 아들로 태어난 그의 어린 시절, 사촌 형 수암과의 생활은 여느 아이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지만 아버지로부터 천자문과 서예를 배우고 훈장에게서 아이들과 함께 글(한자)을 배우는 모습이나 셋째 누나가 배우는 알기 쉬운 한글이며 세상을 뜬 아우의 가족을 떠맡은 그의 아버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과는 사뭇다른 그 시대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었다.
주로 자신을 둘러싼 가족들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물이 흐르듯 잔잔하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다소 지루한듯도 하지만 서당을 다니던 그가 신식 학교에 입학하면서 부터 겪게 되는 이야기는 그의 삶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듯 갈등이 느껴졌다.
맹자와 중용을 읽고 한시를 읊조리던 그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신식학교에 다니며 유럽의 여러 나라와 학문을 배우면서도 방학동안에는 여전히 아버지 곁에서 한문책을 옮겨 적는 모습이나 신선들의 놀이라는 바둑을 배우는 모습 역시 새로운 문물의 유입과 변화하는 시대를 보여주는 듯하였다.
경성 의학 전문학교에 그를 입학시키기 위해 한동네의 형이며 친구가 나서서 그를 도와주는 모습이 개인적으로 참 정겹고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경쟁이 치열한 요즘 아이들에게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기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요즘의 생각으로는 신기하게(이해되지 않는?) 경성 의학 전문학교에 입학한 그가 일본의 부당함에 맞서는 시위에 가담하게 된 후 쫓기는 몸이 되어 어머니의 권유로 중국을 거쳐 독일로 망명하는 동안의 이야기는 고난이나 역경보다는 오히려 무덤덤한 기록처럼 펼쳐진다.
당초 '압록강이 흐른다'는 다소 상징적인 느낌의 제목에 감동같은 것을 기대했는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읽는 동안 이렇다할 놀라운 사건없이(물론 3.1운동과 같은 큰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들려주는 지극히 작가 개인의 일과 감정에 충실한 이야기에 왠지 김칫국부터 마신 것 같은 생각에 슬며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본문과 달리 뒷부분에 마련된 <이미륵 연보>나 '옮긴이의 말'을 통해 작품의 의의와 작가의 삶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 좋았다. 특히 그의 연보를 통해 알게 된 그가 이른 나이에 결혼하여 망명하기 전에 이미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된 것이나 상하이 망명시절 임시 정부 산하에서 적십자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청년 외교단에서 편집부장으로 활동한 것 등등.... 어떻게 생각하면 적극적이었을 것도 같은 그의 삶의 모습이 전혀 드러나지 않은 작품이 다소 의아하기도 하였다.
어쩌면 내면의 복잡함(어쨌든 조국을 떠나 가족과도 생이별을 하게 되었으니..)은 오히려 그로 하여금 모든 것을 침잠시키는 물과 같이 변화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문득 고요히 혹은 변함없이 흐르는 압록강은 작가 자신의 마음이자 그리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아니면 도망치듯 넘어야 했던 압록강 너머에 있을 그의 어린 시절 추억에 대한 향수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