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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인간 안나
젬마 말리 지음, 유향란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첫 눈에 나의 호기심을 자극한 삼박자가 모두 표지에 있었다. 제목부터 심상치않은 '잉여인간' 안나, '2009년 프랑스 청소년 상상력 대상 수상!', 그리고 분홍색도 빨간색도 아닌 바탕에 기형적으로 그러나 두 눈은 이쁜 소녀의 모습까지 부담스런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작정하고 책장을 넘기게 하기에 충분한 조건들이었다.
자신을 안나로, 그리고 여기에 있어서도 살아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그런데 이렇게 살아있다...... 고 시작하는 안나의 이야기는 결국 나의 주말시간을 온통 붙들어 두고 말았다.
2140년 영국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현실이다. 잉여인간들을 그와 반대되는 의미의 합법적 인간들을 위한 귀중한 인재로 키워내기 위한 그레인지 수용소에서 잉여인간 안나로 살아가는 안나가 안나 커비, 탈퇴자 안나 커비가 되기까지의 숨막히고도 끔찍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나날이 인간의 평균수명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의학과 과학의 발전으로 가능한 것이리라. 인간에 의한 의학과 과학의 발전에 마냥 긍정적인 것은 아닌지 오래 전부터 부정적인 면을 걱정하는 내용의 영화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문학작품도 적지 않다.
잉여인간 안나는 그런 점에서 보면 의학의 발전으로 연장되던 인간의 수명이 급기야는 무기한으로 연장되어 '장수약'만 있으면 영원불멸이 가능한 현재의 우리에게는 꿈같은 이상향을 그린 이야기일 것같지만 결코 인간의 꿈을 현실화함으로 인한 '보람' 가득한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장수약'같은 것은 결코 개발되어서는 안 될 마약보다 나쁜 것으로, 평화로운 자연의 일부로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독약같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과연 인간이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간다면 행복할 것인가?
평소 나는 인간생명의 유한함으로 인하여 인간을 삶의 목표를 위해 고통을 극복케 하고 또 아름답게 살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수색대로부터 안나와 피터를 도망치게 도와주지만 결국엔 장수약을 위해 모든 것을 털어놓는 줄리아. 하루에 일정량의 장수약을 복용함으로써 영원한 삶을 보장받는다고는 하지만 과연 그것이 줄리아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에 반해 장수약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생명을 낳고 마땅히 자연의 섭리에 따르듯 죽음을 받아들이는 삶을 선택한 안나 커비의 부모들의 모습이 훨씬 더 인간적으로만 다가온다.
결국,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니 자신들의 뜻과 반대로 어이없이 선택이자 희망이라 생각했던 안나를 잉여인간으로 뺏기고 다시 찾은 커비 부부의 마지막 선택은 다름아닌 '생명 하나에 생명 하나'라는 부모의 희생으로 합법적 인간이 된 안나와 동생 벤.
커비 부부야말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순수한 인간성이 아닐까.......
정말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온통 지구위의 세상이 쭈글쭈글 주름 가득한 인간들이, 죽음이란 유효기간을 넘긴 채 목적도 희망도 없이 그냥 살아있음에 매달려 매일 아침 장수약을 털어넣는 모습을.......
자연의 순리는 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면 스러지듯 우리 인간의 삶도 탄생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질 때 온전하고 진정 아름다운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하는 가슴 찡~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