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접하게 된 <어린이를 위한 이주헌의 주제별 그림읽기>시리즈의 네 번째 권이다.
'풍속화'라 하여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 것은 다름아닌 조선시대의 그 유명한 김홍도와 신윤복 등등 우리의 옛그림이었다.
큼직한 크기의 표지에 가득 메운 서양화에는 이미 익숙한 그림의 부분이기도하여 반갑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서양화에도 풍속화가??'하는 의문도 떠올랐다.
사실, 서양화하면 기껏해야 인상파니 추상화니 유화니 정물화니 풍경화니..하는 것만 생각하는 그림에는 그야말로 소질도 상식도 없는 지독한 문외한인 나로서는 서양화에도 풍속화가 있다는 것이 새로운 발견임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 그림에서 김홍도나 신윤복이 그린 풍속화는 그야말로 그 시대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풍속과 일상생활을 소재로 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으나, 서양에서는 풍속화라는 표현보다 딱히 이름붙이기 모호한 것이어서 '장르화'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명이 다소 비논리적이고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미술 작품의 재료나 만드는 방법의 차이에 따라 회회니 조각이니 판화니 역사화니 초상화니 풍경화니 하며 나누는 것이 바로 다름아닌 '장르'라고 하는데 '장르화'라고 하니 도무지 어떤 그림인지 짐작조차 모호하게 여겨진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그림을 장르에 따라 나누고 난 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그러니까 남는?) 그림들을 이름하여 '장르화'라고 이름붙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서양의 풍속화는 우리의 풍속화에 비해 그 주제가 훨~씬 다양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풍속화와 조금은 개념을 생각하며 들여다본 서양의 풍속화는 정말 인물이 등장함에도 인물화라고 하기에는 무엇하고 또 뒷배경을 생각하며 풍경화라 이름붙이기도 무엇한 정말 딱히 구분짓기 모호한 감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림에 대한 설명을 하나하나 읽으려니 그림만 보고 느끼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각각 들어있음을 또한 깨닫게 된다.
풍속화에 소개된 화가들 역시 익숙하지않은 생소한 이름과 더불어 그림 또한 낯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 시대 사람들의 삶과 풍속, 풍자, 사회의 모습 등등이 담겨있음은 우리의 풍속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하나 그림들을 살펴보며 그 속에 담긴 의미와 숨겨진 삶의 모습을 짐작하며 문득 그림 역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