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운동 - 공산주의 선언 나의 고전 읽기 11
박찬종 지음 / 미래엔아이세움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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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共産主義)'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어릴적 철도 들기 전에 들었던 '공산당'이란 말이다. 그 당시 공산당은 우리의 적(敵)이었던 휴전선너머의 북한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 무렵 즐겨보던 TV프로그램중 하나가 바로 북한 공산당에 맞서 용감히 싸우던 우리의 국군이야기. '전우'였다.
그래서인지 어릴적 나는 한여름밤 무더위를 쫓기위해 특집으로 보여주던 무시무시한 귀신이나 구미호보다도 총부리를 겨누며 쫓아오던 북한군이 더 무서웠었다.

그렇게 나의 뇌리(腦裡)에는 자연스럽게 공산당 또는 공산주의에 대한 저항이 형성되었을 것이다.  과연 공산주의는 무엇에 반(反)하는 말일까......
그 의미 또한 막연히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에 위협을 느끼는 두려운 것으로만 알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리라. 한 번도 자의(自意)로 판단해 보지 않은, 국가라는 테두리가 의심할 틈도 없이 내 의식에 심어놓은 일방적인 '공산주의'만이 어렴풋한 의미로 남아있다.

지금에서야 만난 공산주의(共産主義), 마르크스가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룩하고자 한 바로 그 공산주의는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째서일까???

 학문적 철학에서 당시 독일 현실에 갑갑함을 느꼈던 마르크스가 정부를 반박한 것을 시작으로 어쩌면 그의 평생에 걸친 '공산주의'의 건설에 대한 거대한 꿈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또 때를 맞춰 등장한 유럽의 자본주의체제로 인한 빈부격차의 발생 또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이상국가를 갈구케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과연 국가의 발생이후 진정으로 국가의 구성원이 진정으로 평등했던 적이 있었던가? 마르크스의 이상향이었던 경제적 평등은 물론 정치적 평등이 과연 한 번이라도 일 초라도 존재한 적이 있었던가?

 종종 사람들은 자신을 바로 보는 사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자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상대방을 오히려 미워하기조차 한다. 때로는 그를 '왕따'로 몰아세우기 위해 주변 사람들의 눈과 귀를 가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기도 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경제적 부를 향하는 자본주의에 박차를 가하던 시대에 자본주의의 단점과 치부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 비판하던 마르크스는 모두가 공모하여 몰아내야 하는 '왕따'였을 것이다. 또한 그가 주장하는 '공산주의 선언' 역시 껄끄러운 반동(反動)일 뿐이었다.

 물론, 자본주의의 맹점(盲點)에 희생자들에는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은 새로운 희망으로 솟아오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마르크스의 이상향은 그의 생존에도, 사후에도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구소련이나 몇몇 국가에 대해 공산주의자들이라고 몰아세우지만 그들 역시 진정으로 마르크르의 공산주의 실현에는 실패했을 뿐이다.  

 문득, 마르크스가 꿈꾸었던 공산주의는 어쩌면 종교와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지만 결코 실현될 수 없는........ 또, 종교에서도 그 해석과 적용에 따라 본질에서 벗어난 사이비교들이 만연한 것처럼 공산주의 역시 정치적, 경제적 적용에 따라 마르크스가 애초에 바라던 것이 아니니말이다.

 공산주의 국가가 아닌 나라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과연 한 번이라도 진정한 '공산주의'를 꿈꾸지 않았던 것일까...... 또, 자고나면 이런저런 물가가 치솟는 우리의 현실에서 걱정없는 평등한 세상을 꿈꾸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닐까......

 막연한 거부감과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공산주의'는 어쩌면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두려움으로부터 기인(起因)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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