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카데미 - 우리시대 최고 작가들의 TV 드라마 작법 강의
김수현.노희경.이금주.박찬성 지음 / 펜타그램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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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현, 노희경, 이금주, 박찬성에게 드라마 쓰는 법을 배운다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설레는 일이 아닐까? 그렇다. 정말 설레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상상은 더욱 설레게 하는 일이다.


그런데 한 권이 ‘사고’를 냈다. <드라마 아카데미>가 그 장본인으로 불가능을 약간이나마 가능하게 해준 것이다. 여기서 약간이라도 언급하는 것은 직접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한 간접 소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 또 어떤가? 간접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기회를 만날 수 있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쟁쟁한 드라마 작가 4명이 맡은 역할은 두 가지다. 하나는 마음가짐, 즉 ‘작가 의식’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실전론’에 관한 것이다. 작가 의식에 관한 첫 글은 김수현이 맡았다. 김수현은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에게 “자존심을 사수”하고 부단히 “책 읽기”를 실천할 것과 “다양한 캐릭터 창출”에 힘쓰라고 충고하고 있다. 또한 드라마에 대한 본질을 제대로 꿰뚫어 ‘내용’으로 승부하라는 말을 덧붙이고 있다. 특히 신데렐라 이야기나 재벌 2세 같이 붕 떠버린 드라마는 쓰지 말라고 철저하게 당부하고 있다.


김수현이 ‘귀족’스럽게 이야기를 풀었다면 뒤이어 펜을 잡은 노희경은 ‘평민’스럽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노희경은 참으로 겸손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그것은 모르면 모른다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대신에 부단히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배우기는 배우되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배우고 인간에 대한 ‘이해심’을 드라마 작가의 기본 미덕으로 뽑고 있다.


이금주와 박찬성이 맡은 역할은 ‘실전론’이다. 즉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실전에서 반드시 지켜야 하는 룰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는 시놉시스 쓰는 방법이나 드라마의 구성원리, 또한 갈등을 부각시키는 방법 등이 세밀하게 설명돼 있는데 어느 것 하나 버릴 부분이 없다. 정말 실전에 뛰어들 각오가 있는 사람이라면 <드라마 아카데미>를 옆에 두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섣부른 예상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 아카데미>는 드라마작가 지망생들에게 필수 도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두루뭉술하게 이야기를 풀지 않고 세세하고 직접적으로 날카롭게 이야기들을 풀어내는 것이 너무나 맛깔스럽고 특히 실전론에서 예로 들고 있는 내용들은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명목상으로, 또한 내용상으로도 드라마작가 예비생들을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글쓰기를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큰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소설이나 희곡 등 ‘드라마적’인 요소를 갖춘 글을 노리는 사람이라면 고민하지 말고 <드라마 아카데미>를 펼쳐보자.


흔히들 사람들은 글 쓰는데 ‘작법’ 같은 것이 무어 소용이 있겠냐고 한다. 그러나 있다. 소용이 있다. 밑바탕이 되는 무언가가 있다. <드라마 아카데미>에는 그것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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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책들의 도시 1
발터 뫼르스 지음, 두행숙 옮김 / 들녘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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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흐하임’이라는 도시가 있다. 그곳은 ‘책의 도시’다. 도시의 어느 곳을 발을 들여놓아도 서점을 찾을 수 있다. 또한 어느 길에 들어서도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한 시인들과 소설가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또한 1년 365일 내내 책들의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하루 24시간 내내 사람들의 화젯거리도 온통 책에 관한 것이다.


이 도시에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일흔 일곱 살의 어린공룡 ‘미텐메츠’가 발을 들여놓는다. 위대한 작가이자 미텐메츠의 대부 단첼로트가 남긴 유언 때문이다. ‘오름’, 즉 현대 소설가들이 곧잘 ‘뮤즈’라고 표현하는 글쓰기의 신성이 담긴 원고의 작가를 찾아가 배움을 얻으라는 것이었다. 미텐메츠는 어린 나이에 오름 따위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가 보여준 원고에 반했으며, 또한 대부의 뜻을 거스를 마음도 없어 살던 곳을 떠나 부흐하임으로 떠나온 것이다.


하지만 찾는 이의 이름도 모르고, 찾는 이의 다른 작품에 대해서도 아는 것 없는 미텐메츠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작가를 찾는 일은 갈수록 오리무중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는다. 부흐하임은 호기심 많은 어린 나이의 그를 완전히 위로해주기 때문이다. 작가를 꿈꾸는 미텐메츠는 당연하게도 처음 접해 본 부흐하임의 면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특히 부흐하임의 지하 세계를 드나들며 귀한 책을 구해오는, 목숨을 내놓고 숨겨져 있던 고서적을 지상으로 꺼내오는 레겐샤인과 같은 책 사냥꾼들의 모험에 매료되고 만다.


그런데 아주 뜻밖에 미텐메츠는 작가를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를 작가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던 출판업자 하르펜슈톡 덕분에 부흐하임 최고의 유명인사이자 실종된 책 사냥꾼 레겐샤인의 충실한 동료로 알려진 서적 전문가 슈마이크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레겐샤인에게 반했던 미텐메츠는 당연하게도 슈마이크에게도 반하고 모든 걸 그에게 맡긴다.


슈마이크도 그런 마음을 알았는지 미텐메츠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려한다. 그들의 만남 이후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만 같다. 하지만 최고의 작가를 찾는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예상치 못한 일로 미텐메츠는 부흐하임이자 부흐하임이 아닌 곳, 책 사냥꾼들도 출입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고 알려진 곳, 그림자제왕이라는 무시무시한 존재가 살고 있다고 알려진 곳, 그러나 그 어떤 책들보다 귀한 책들이 있다고 알려진 지하세계로 빠져들게 되고 그곳에서 책으로 인한 파란만장한 모험들을 겪게 된다.


책을 이야기하는 책들이 있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바람의 그림자>처럼 책이 사건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거나 귀뒬의 <도서관에서 생긴 일>처럼 이미 존재하는 책의 내용을 이용해 또 다른 책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책들은 책의 내용을 떠나서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책 속에 책에 대한 애잔함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는 것과 이런 내용의 책들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갑게도 미텐메츠의 모험이 담긴 발터 뫼르스의 <꿈꾸는 책들의 도시>도 책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의 도시 부흐하임이 등장하는 것에서부터 쉽게 볼 수 없는 책이라는 것을 눈치 채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것은 보통 수준이 아니다. 책을 이야기하는 기존의 책들이 보여준 정도는 <꿈꾸는 책들의 도시>에 비하면 책을 이야기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책은 정말 책만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책을 도구로 삼는 책이 아니라 책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책이다. 책에 눈이 달려있고 책이 책장들을 펼쳐 날아다닐 수도 있으며 또한 책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기발한 상상력을 무장한 이 책은 가히 책 타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책에 시선이 닿아있다.


그렇기 때문에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미텐메츠의 모험과 글쓰기와 관련된 오름에 관한 것들을 지켜보는 것 외에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책을 이야기하는 대목 대목이다. 기발함을 넘어 기상천외하다고 해야 할까? 장정 열명이 달라붙어야 책장을 넘길 수 있는 거대한 책이나 곁에 땀 닦는 손수건이 함께 놓여 있는 모험소설, 기묘한 효과를 갖고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는 무서운 책, 날아다니는 책 같은 책을 보는 순수한 상상력부터 책을 보면 배가 부르다는 부흐링족 이야기나 책으로 먹고 사는 책 사냥꾼들에 대한 환상적인 상상력까지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상투적으로 책을 말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꿈꾸는 책들의 도시>가 단순히 상상력에 의지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작품에서 저자의 상상력은 단연 돋보이는 것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저자는 책에 관한 중요한 메시지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것은 책을 보는 것,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책을 쓰는 것 등에 대한 마음가짐에 관한 것이다.


필시 그것들은 평소에도 상투적으로 여겨졌던 메시지들일 것이다. 하지만 같은 말이라도 희망과 절망 속에서 다르게 받아들여지듯이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책들의 세계에서 비평가와 출판업자, 작가와 독자, 그리고 책에 의해 그 말을 듣는다면 결코 그것을 상투적이라고 여길 수는 없을 것이다. 하다못해 사람들이 들은 척 하지도 않는, ‘책을 사랑하자’라는 말조차도 말이다.


책의,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세계를 그려낸 <꿈꾸는 책들의 도시>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환상의 모험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또한 책에 대한 사람들의 애잔함에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까지 남겨주고 있으니 책을 이야기하는 책 중에 가히 ‘으뜸’이라고 말할 수 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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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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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추리소설의 성공과 실패, 그 갈림길을 판가름 짓는 것 중 대표적인 요소가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 여부와 ‘반전의 유효성’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충분한 성공 요인들을 갖추고 있다. 하나의 반전에 ‘올인’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주요 등장인물들 누구 하나 밋밋하지 않고 개성적이며 인상적인 기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첫 번째 주요인물은 광고기획사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크리에이터 사쿠마 순스케다. 그는 직업적인 기질도 탁월하지만 자기 관리도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담배 한 개비 피우는데 걸리는 시간을 약 3분으로 계산할 때 담배 한 갑 피우는 시간은 약 1시간이기 때문에 하루의 1/24을 담배 피우는데 보낸다는 사실이 아까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니 자기 관리가 오죽하겠는가.


그런 사쿠마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한참 공들여 참가한 프로젝트가 새롭게 닛세이 자동차의 부사장에 오른 가쓰라기 가쓰토시에 의해 단칼에 거절당한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사쿠마가 상처받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서 사쿠마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술에 취해 부사장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이 장면은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첫 번째 주요인물과 두 번째 주요인물이 본격적으로 대면하려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전적인 추리소설이 일 대 일의 승부를 벌이는데 반해 작품에서는 난데없이 또 한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사쿠마가 부사장의 집 안에서 서성거릴 때 가출하려고 담을 넘던 부사장의 딸 주리가 그 주인공인데 주리는 등장한지 얼마 안돼 놀라운 제안을 한다. 작품에서는 사쿠마에게 하는 말이지만, 실상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그 제안은 ‘날 유괴하지 않을래?’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납치법과 인질이 교감하게 되면서 서로를 도와주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소에는 보기 힘든 인간심리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보기 힘든 심리가 있다. 피해자도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도 아닌 가해자가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맡아 한 몫 챙겨보려는 것인데 사쿠마와 주리가 그렇다.


주리는 집안문제로 가출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사쿠마를 통해 인질이 되고자 한다. 언젠가 자신이 상속받을 돈을 먼저 받아보려는 속셈이다. 반면에 사쿠마는 돈에 관심이 없다. 승부사의 기질을 지닌 그는 ‘게임’에 관심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짓밟은 부사장에게 게임을 걸어보기 위해 유괴범이 되려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지능파 사쿠마는 놀라울 정도의 지략을 발휘해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유괴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대로 행하는데 그 태도는 마치 역대 유괴범들의 실수를 모두 섭렵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가히 ‘유괴의 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간혹 엉뚱한 행동을 하지만 첩자나 마찬가지인 부사장의 철부지 딸 주리를 다독거려 쉽게 게임의 승자가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승부는 쉽게 판가름 나지 않는다. 사쿠마가 제갈량이라면 주리의 아버지는 사마의와 같다. 사쿠마도 지능적이지만 가쓰라기도 지능적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한 승부 열이 대단하다. 그로 인해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는 사쿠마와 주리의 관계만큼이나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심리가 한 가지 더 등장하는데 그것은 가쓰라기와 사쿠마의 관계다.


가쓰라기는 보통 딸이 납치됐을 때 경찰과 신의 도움만을 바라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직접 승부에 뛰어든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유괴범이 제안한 게임을 제3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위험천만한 유괴 게임은 돌아올 수 없는 지경까지 나아가게 된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성격들과 행동들은 첫 번째 승부처인 ‘캐릭터의 매력’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그럼 마찬가지로 중요한 ‘반전의 유효성’은 어떤가? 두 말할 것 없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반전은 예측불가능하다.


첫 번째 반전은 저자가 제공하는 실마리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두 번째 반전이 있다. 더군다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세 번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 또한 예측 불가능하니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반전의 유효성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추리소설로서 충분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게임이라는 단어를 작품의 제목으로나 또는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강조되었기 때문일까? ‘유괴’를 다루고 있음에도 게임처럼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도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장점이다. 심각하지 않게, 그러나 즐겁게 보고 싶은 것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그것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추리소설의 계절이라는 이 여름에, 철저한 지략 대결로 무장한 <게임은 이름은 유괴>로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어보면 어떨까? 유괴라는 게임, 나쁘지 않다. 자, INSERT 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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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것이 좋아!
하정아 지음 / 북스(VOOXS)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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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편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에세이와 수필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낯익기 때문일까? 이름도 들어도 자연스럽게 작품이름까지 연상되는 유명인들의 글로 손이 간다. 그들이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이른바 ‘검증’은 되지 않았더라도 신선한 이야기를 찾으려는 노력일 게다.


하정아의 <더러운 것이 좋아!>도 그런 무명씨의 작품 중 하나일 게다. 알려진 것이라곤 방송국의 일원 중 한명이라는 것 정도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여자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더러운 것이 좋아!>로 선뜻 손이 가기는 쉽지 않을 터지만, ‘4년간 술만 들이붓다가, 치질에 걸려 우울한 인생의 싹을 틔우고, 어영부영 졸업을 하며 등록금을 다 날렸다는 죄책감에 집구석에 처박혀 하염없이 괴로워한 시기가 있었다’는 저자 설명글을 보고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여자이야기라는 것에.


세상에는 예쁜 것이 있고 더러운 것이 있다. 또한 아름다운 것이 있고 더러운 것이 있다. 또한 잘난 것이 있으며 더러운 것이 있다. 그렇다. 세상에는 태양이 있으면 반드시 존재하고야 마는 그림자가 있듯이 더러운 것이 있는데 이 더러운 것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사실 그렇다. 예쁘고, 아름답고, 잘난 것이 있는데 구태여 더러운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저자는 좋단다. 책 제목 그대로 ‘더러운 것’이 좋단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그 이야기만 한다. 하수구에 빠져서 망신 톡톡히 당한 경험을 알려주는 하는가 하면 라면을 먹지 않아도 오바이트 하면 라면이 나오는 것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가가멜과 바람이 났다고 하는가 하면 초등학교 때의 부끄러운 시간을 털어놓으며 스스로를 ‘최초의 씨발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치질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전체적인 수준으로 보면 그 정도는 약과다. 저자는 막 나간다. 막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막 달린다. 빨간 벽돌집 앞에서 자위 행위하는 성환이(성병환자)가 남겨놓은 정액을 보곤 암바사를 졸인 것 같다고 말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기도 하는데 누가 저자를 보고 ‘막 달린다’고 하지 않으랴.


글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솔직한 정도를 넘어서 진정으로 ‘뻔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가? 재미있다. 그리고 속이 시원하다.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하는 그 당돌함이 당황스럽게 찾아와서 당황스럽게도 웃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더러운 것이 좋아!>는 그렇다.


솔직해서 시원하고 뻔뻔해서 재미있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수필가들의 글에 비하면 글솜씨는 많이 부족할 테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는 것이 저자에게는 있다. 이토록 뻔뻔하게 더러운 것을 이야기하는 솔직함과 젊음의 한가운데서 웃고 우는 평범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고백이 있다.


또한 방금 잡은 물고기들의 파닥거림과 같은 신선함이 마구잡이로 펼쳐져 있다. 그러니 글이 부족하면 어떠랴. 세상 보는 시선이 어설프면 어떠랴.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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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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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부여현감 귀신체포기>, <방각본 살인사건> 등으로 역사의 장면들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만드는데 능수능란함을 보여줬던 김탁환이 또 한번 그 재주를 선보였다. 조선시대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백탑파 서생들과 이명방의 활약이 돋보이는 백탑파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열녀문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열녀문의 비밀>은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주인공들이 정조의 부름을 받은 지 5년이 지난 때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만큼 정조에게 크게 쓰일 것이라고 기대됐지만 시대적으로 위험천만하게 여겨질 수 있는 북학파 세력이라는 것과 서얼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맡은 일은 예상외로 낮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초조해하지 않고 정조가 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짓 열녀’를 찾으라는 명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진짜 열녀와 거짓 열녀를 구별한다는 것은 의금부 도사인 화자 이명방에게나 명석한 추리를 자랑하는 김 진, 그리고 대학자 이덕무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덕무가 현감으로 부임하는 적성에서 열녀라고 추앙받는 김 씨(김아영)의 일을 알아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건을 풀려하지만 오히려 죽을 위기를 겪는 등 큰 코만 다칠 뿐이다.


이제껏 저자는 역사를 불러오되 단순히 흥밋거리만을 불러오지 않는다. 백탑파 시리즈도 그렇다. <열녀문의 비밀>은 겉으로 보면 역사추리소설로 역사의 유명인들과 함께 의금부 도사가 사건을 파헤친다는 것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 역사책 못지않게 풍성하게 역사를 소개하며 ‘역사’와 ‘오늘’이 한걸음 다가설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열녀문의 비밀>은 적성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실상 이곳은 조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폐쇄적이고 유학적인 사상으로 똘똘 뭉친 이곳에서 기득권을 지닌 이들은 절대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니 외부의 종교는 물론이고 외부의 사상까지 물리치려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은 당시의 조선 사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에서는 주목해야 할 인물이 두 부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역사 추리소설로서의 이명방과 김 진의 행보다. 이들은 추리라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장면을 흥미롭게 오늘날에 전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해볼 이는 사건의 동기가 되는 김 씨다.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백탑파의 많은 이들이 나와 북학파의 사상과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개괄적으로 보여줬다면 <열녀문의 비밀>에서 김 씨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이다.


작품 속에서 김 진의 말마따나 이덕무를 포함한 백탑파 서생들이 머릿속에서 사회 개혁을 이루고 실용적인 사회 건설을 꿈꿀 때 김 씨는 직접 작은 마을에서 그것을 실천하려 했었고 상당수 성공을 거뒀다. 작품은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덕분에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약간은 두루뭉술하고 이상적으로 말했던 것들을 <열녀문의 비밀>에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렇기에 왜 정조 시대 이들이 활동하던 때를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하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여러 문제점들이 사건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열녀’를 장려하는 사회의 풍속 등이 그렇다. 사실 열녀문이라는 것은 여성들에게 있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고 죽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남성을 위한 명예이다. 저자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것에 대해서 신랄한 말을 감추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 <방각본 살인사건>이 조선 시대 정치의 단면을 그려냈다면 <열녀문의 비밀>은 조선 시대 사회 풍속의 단면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열녀문’은 역사라는 무대에서 숱하게 등장했던 작은 소재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것을 쉽게 다루지 않았다. 열녀문을 둘러싼 음모에서 당시 사회의 전체적인 윤곽들까지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또한 시대상을 아우르는 지적인 추리를 선보이는 것도 놀랍다. 더군다나 막힘없이 역사를 묘사하는 것까지 본다면 또 한번 저자의 역사 끄집어내기는 화려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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