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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문의 비밀 -상 - 백탑파白塔派 그 두 번째 이야기 ㅣ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불멸의 이순신>, <부여현감 귀신체포기>, <방각본 살인사건> 등으로 역사의 장면들을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로 만드는데 능수능란함을 보여줬던 김탁환이 또 한번 그 재주를 선보였다. 조선시대 르네상스를 일으켰던 백탑파 서생들과 이명방의 활약이 돋보이는 백탑파 시리즈의 두 번째 이야기 <열녀문의 비밀>이 바로 그것이다.
<열녀문의 비밀>은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주인공들이 정조의 부름을 받은 지 5년이 지난 때에서 시작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놀라운 재능을 보여준 만큼 정조에게 크게 쓰일 것이라고 기대됐지만 시대적으로 위험천만하게 여겨질 수 있는 북학파 세력이라는 것과 서얼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이 맡은 일은 예상외로 낮다. 하지만 이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초조해하지 않고 정조가 시키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래서 ‘거짓 열녀’를 찾으라는 명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진짜 열녀와 거짓 열녀를 구별한다는 것은 의금부 도사인 화자 이명방에게나 명석한 추리를 자랑하는 김 진, 그리고 대학자 이덕무에게는 그리 어려운 일로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덕무가 현감으로 부임하는 적성에서 열녀라고 추앙받는 김 씨(김아영)의 일을 알아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사건을 풀려하지만 오히려 죽을 위기를 겪는 등 큰 코만 다칠 뿐이다.
이제껏 저자는 역사를 불러오되 단순히 흥밋거리만을 불러오지 않는다. 백탑파 시리즈도 그렇다. <열녀문의 비밀>은 겉으로 보면 역사추리소설로 역사의 유명인들과 함께 의금부 도사가 사건을 파헤친다는 것이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어느 역사책 못지않게 풍성하게 역사를 소개하며 ‘역사’와 ‘오늘’이 한걸음 다가설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열녀문의 비밀>은 적성이라는 곳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실상 이곳은 조선으로 봐도 무방하다. 폐쇄적이고 유학적인 사상으로 똘똘 뭉친 이곳에서 기득권을 지닌 이들은 절대 밖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니 외부의 종교는 물론이고 외부의 사상까지 물리치려는 것이 당연한데 그것은 당시의 조선 사회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에서는 주목해야 할 인물이 두 부류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역사 추리소설로서의 이명방과 김 진의 행보다. 이들은 추리라는 과정을 통해 역사의 장면을 흥미롭게 오늘날에 전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두 번째로 주목해볼 이는 사건의 동기가 되는 김 씨다.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백탑파의 많은 이들이 나와 북학파의 사상과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개괄적으로 보여줬다면 <열녀문의 비밀>에서 김 씨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이들이다.
작품 속에서 김 진의 말마따나 이덕무를 포함한 백탑파 서생들이 머릿속에서 사회 개혁을 이루고 실용적인 사회 건설을 꿈꿀 때 김 씨는 직접 작은 마을에서 그것을 실천하려 했었고 상당수 성공을 거뒀다. 작품은 그것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덕분에 <방각본 살인사건>에서 약간은 두루뭉술하고 이상적으로 말했던 것들을 <열녀문의 비밀>에서는 구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그렇기에 왜 정조 시대 이들이 활동하던 때를 르네상스라고 부르기도 하는지를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도 있다.
또한 조선시대의 여러 문제점들이 사건을 통해 아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데 ‘열녀’를 장려하는 사회의 풍속 등이 그렇다. 사실 열녀문이라는 것은 여성들에게 있어 상당한 고통을 수반하고 죽은 뒤에야 얻을 수 있는 남성을 위한 명예이다. 저자는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것에 대해서 신랄한 말을 감추지 않는데 그런 점에서 <방각본 살인사건>이 조선 시대 정치의 단면을 그려냈다면 <열녀문의 비밀>은 조선 시대 사회 풍속의 단면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열녀문’은 역사라는 무대에서 숱하게 등장했던 작은 소재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것을 쉽게 다루지 않았다. 열녀문을 둘러싼 음모에서 당시 사회의 전체적인 윤곽들까지 그려내는 솜씨가 일품이다. 또한 시대상을 아우르는 지적인 추리를 선보이는 것도 놀랍다. 더군다나 막힘없이 역사를 묘사하는 것까지 본다면 또 한번 저자의 역사 끄집어내기는 화려하게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