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것이 좋아!
하정아 지음 / 북스(VOOXS)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누군가에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편하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이 에세이와 수필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가. 낯익기 때문일까? 이름도 들어도 자연스럽게 작품이름까지 연상되는 유명인들의 글로 손이 간다. 그들이 글을 잘 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다. 이른바 ‘검증’은 되지 않았더라도 신선한 이야기를 찾으려는 노력일 게다.


하정아의 <더러운 것이 좋아!>도 그런 무명씨의 작품 중 하나일 게다. 알려진 것이라곤 방송국의 일원 중 한명이라는 것 정도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여자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더러운 것이 좋아!>로 선뜻 손이 가기는 쉽지 않을 터지만, ‘4년간 술만 들이붓다가, 치질에 걸려 우울한 인생의 싹을 틔우고, 어영부영 졸업을 하며 등록금을 다 날렸다는 죄책감에 집구석에 처박혀 하염없이 괴로워한 시기가 있었다’는 저자 설명글을 보고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기로 했다. 세상에서 가장 솔직한 여자이야기라는 것에.


세상에는 예쁜 것이 있고 더러운 것이 있다. 또한 아름다운 것이 있고 더러운 것이 있다. 또한 잘난 것이 있으며 더러운 것이 있다. 그렇다. 세상에는 태양이 있으면 반드시 존재하고야 마는 그림자가 있듯이 더러운 것이 있는데 이 더러운 것을 좋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게다. 사실 그렇다. 예쁘고, 아름답고, 잘난 것이 있는데 구태여 더러운 것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까?


그런데 저자는 좋단다. 책 제목 그대로 ‘더러운 것’이 좋단다. 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그 이야기만 한다. 하수구에 빠져서 망신 톡톡히 당한 경험을 알려주는 하는가 하면 라면을 먹지 않아도 오바이트 하면 라면이 나오는 것에 대해 궁금하다고 말한다. 자신을 가가멜과 바람이 났다고 하는가 하면 초등학교 때의 부끄러운 시간을 털어놓으며 스스로를 ‘최초의 씨발년’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남자든 여자든 누구나 말하고 싶지 않아하는 치질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전체적인 수준으로 보면 그 정도는 약과다. 저자는 막 나간다. 막 나가는 정도가 아니라 막 달린다. 빨간 벽돌집 앞에서 자위 행위하는 성환이(성병환자)가 남겨놓은 정액을 보곤 암바사를 졸인 것 같다고 말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기도 하는데 누가 저자를 보고 ‘막 달린다’고 하지 않으랴.


글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솔직한 정도를 넘어서 진정으로 ‘뻔뻔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다. 그런데 무슨 까닭인가? 재미있다. 그리고 속이 시원하다. 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거침없이 하는 그 당돌함이 당황스럽게 찾아와서 당황스럽게도 웃게 만든다. 신기하게도 <더러운 것이 좋아!>는 그렇다.


솔직해서 시원하고 뻔뻔해서 재미있다. 글 잘 쓰기로 소문난 수필가들의 글에 비하면 글솜씨는 많이 부족할 테다. 그러나 그들에게 없는 것이 저자에게는 있다. 이토록 뻔뻔하게 더러운 것을 이야기하는 솔직함과 젊음의 한가운데서 웃고 우는 평범한 젊은이의 아름다운 고백이 있다.


또한 방금 잡은 물고기들의 파닥거림과 같은 신선함이 마구잡이로 펼쳐져 있다. 그러니 글이 부족하면 어떠랴. 세상 보는 시선이 어설프면 어떠랴. 오히려 그것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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