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이름은 유괴 - g@m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권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소설을 맛깔스럽게 만드는 것, 그리고 오랫동안 기억에 남도록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추리소설의 성공과 실패, 그 갈림길을 판가름 짓는 것 중 대표적인 요소가 바로 ‘매력적인 캐릭터’의 등장 여부와 ‘반전의 유효성’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충분한 성공 요인들을 갖추고 있다. 하나의 반전에 ‘올인’하는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것도 그렇거니와 주요 등장인물들 누구 하나 밋밋하지 않고 개성적이며 인상적인 기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첫 번째 주요인물은 광고기획사에서 실력을 검증받은 크리에이터 사쿠마 순스케다. 그는 직업적인 기질도 탁월하지만 자기 관리도 훌륭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사람이다. 그는 담배 한 개비 피우는데 걸리는 시간을 약 3분으로 계산할 때 담배 한 갑 피우는 시간은 약 1시간이기 때문에 하루의 1/24을 담배 피우는데 보낸다는 사실이 아까워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니 자기 관리가 오죽하겠는가.


그런 사쿠마가 직장에서 승승장구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천만뜻밖에도 한참 공들여 참가한 프로젝트가 새롭게 닛세이 자동차의 부사장에 오른 가쓰라기 가쓰토시에 의해 단칼에 거절당한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쳤던 사쿠마가 상처받는 건 당연한 이치. 그래서 사쿠마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술에 취해 부사장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이 장면은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첫 번째 주요인물과 두 번째 주요인물이 본격적으로 대면하려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 고전적인 추리소설이 일 대 일의 승부를 벌이는데 반해 작품에서는 난데없이 또 한명의 주요인물이 등장한다. 사쿠마가 부사장의 집 안에서 서성거릴 때 가출하려고 담을 넘던 부사장의 딸 주리가 그 주인공인데 주리는 등장한지 얼마 안돼 놀라운 제안을 한다. 작품에서는 사쿠마에게 하는 말이지만, 실상은 독자들에게 건네는 그 제안은 ‘날 유괴하지 않을래?’이다.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것이 있다. 그것은 납치법과 인질이 교감하게 되면서 서로를 도와주게 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소에는 보기 힘든 인간심리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보기 힘든 심리가 있다. 피해자도 아닌 피해자와 가해자도 아닌 가해자가 서로 피해자와 가해자의 역할을 맡아 한 몫 챙겨보려는 것인데 사쿠마와 주리가 그렇다.


주리는 집안문제로 가출하던 중에 우연히 만난 사쿠마를 통해 인질이 되고자 한다. 언젠가 자신이 상속받을 돈을 먼저 받아보려는 속셈이다. 반면에 사쿠마는 돈에 관심이 없다. 승부사의 기질을 지닌 그는 ‘게임’에 관심이 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을 철저하게 짓밟은 부사장에게 게임을 걸어보기 위해 유괴범이 되려 한다.


자기 관리가 철저한 지능파 사쿠마는 놀라울 정도의 지략을 발휘해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유괴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대로 행하는데 그 태도는 마치 역대 유괴범들의 실수를 모두 섭렵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가히 ‘유괴의 고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간혹 엉뚱한 행동을 하지만 첩자나 마찬가지인 부사장의 철부지 딸 주리를 다독거려 쉽게 게임의 승자가 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승부는 쉽게 판가름 나지 않는다. 사쿠마가 제갈량이라면 주리의 아버지는 사마의와 같다. 사쿠마도 지능적이지만 가쓰라기도 지능적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게임에 대한 승부 열이 대단하다. 그로 인해 <게임의 이름은 유괴>에는 사쿠마와 주리의 관계만큼이나 평소에는 보기 힘든 심리가 한 가지 더 등장하는데 그것은 가쓰라기와 사쿠마의 관계다.


가쓰라기는 보통 딸이 납치됐을 때 경찰과 신의 도움만을 바라는 무능력한 아버지가 되기를 거부하고 직접 승부에 뛰어든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본다고 했던가? 아버지는 유괴범이 제안한 게임을 제3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접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위험천만한 유괴 게임은 돌아올 수 없는 지경까지 나아가게 된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성격들과 행동들은 첫 번째 승부처인 ‘캐릭터의 매력’을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그럼 마찬가지로 중요한 ‘반전의 유효성’은 어떤가? 두 말할 것 없다.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작품의 반전은 예측불가능하다.


첫 번째 반전은 저자가 제공하는 실마리에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두 번째 반전이 있다. 더군다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세 번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그것 또한 예측 불가능하니 <게임의 이름은 유괴>는 반전의 유효성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이 작품은 추리소설로서 충분한 즐거움을 주고 있다.


게임이라는 단어를 작품의 제목으로나 또는 작품 속에서 계속해서 강조되었기 때문일까? ‘유괴’를 다루고 있음에도 게임처럼 무겁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도 <게임의 이름은 유괴>의 장점이다. 심각하지 않게, 그러나 즐겁게 보고 싶은 것이 추리소설이라는 장르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그것에 꼭 들어맞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추리소설의 계절이라는 이 여름에, 철저한 지략 대결로 무장한 <게임은 이름은 유괴>로 잠시나마 무더위를 잊어보면 어떨까? 유괴라는 게임, 나쁘지 않다. 자, INSERT C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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