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우리나라에도 이솝이 있다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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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작가에게는 두가지 언어가 존재하고 있다. 사투리와 표준어.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사투리로 소설 한편을 만들어내는 그는 손놀림이 빠른 목수 같다. 게다가 양념처럼 재치와 익살, 기지가 넘치는 정통 요리사 같기도 하다. 짧은 소설들 안에는 소설의 전개과정이 순차적으로 나열된다. 발단이 시작되면 전개가 드러나고 절정에 오른뒤 결말을 낸다. 그리고 훌쩍 한편의 소설은 끝이난다. 이솝 우화를 익는 것처럼 우화에서 볼 수 있는 교훈과 사회 비판적인 풍자도 있다. 그의 다양한 사고와 어휘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걸까..

남성적인 힘을 갖고 있는 작가의 손끝은 박력있다.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옆에서 조곤조곤 얘기해주는 것도 같고, 사춘기 시절 친구들에게 어떤 얘기를 들려주기 위해 연습장에 볼펜으로 그림을 그려가듯 지껄였던 얘기들처럼 소소한, 그러나 흥미로운 얘기들로 가득하다. 소설과의 거리를 좁혀서 자신의 이야기인듯 풀어내다가도 그는 금새 낯설게 하기를 시도한다. 만약 작가가 영어 문법책이 있듯 소설의 문법이란 책을 저술한다면 아주 다양한 공식과 해법들이 있을 듯 싶지만, 그 얘기들의 공통점은 재밌고 깔끔하게가 통용될 것 같다.

만약 버스를 타고 장거리 여행을 하며 그의 책을 읽고 있다면, 정거장에 한번씩 버스가 정차할 때 마다 그의 소설은 한편씩 끝이날 것이다. 아주 쉽게 써내려간 듯한 소설이지만 결코 가볍거나 경망스럽지 않아 읽고 나서도 한번 더 들여다보게 하는 성석제의 필력은 이제 경지에 오른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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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내가 몰랐던 우리말의 재밌는 문법
나의 한국어 바로 쓰기 노트
남영신 지음 / 까치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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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를 잘하려면 우리말을 잘해야 한다는 얘기는 누누히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는 말에 대해 경외심이나 존경심은 별로 갖고 있지 않는 듯 하다. 영어 열풍이 사그라들줄을 모르고 국제화 시대를 운운하는 지금, 우리말 바로 쓰기의 중요성을 거론 하는 것이 시대에 뒤떨어진 것 쯤으로 안다면 착각이다.

인터넷의 범람 때문에 우리말은 점점 더 원래의 모습에서 많이 벗어나고 있다. 줄임말과 읽는 대로 쓰기, 편할대로 내뱉는 온라인식 방법이 성행하고 있어 우리말은, 한글은, 영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신종 언어를 가지치기 해버렸다.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우리말 문장을 쓰는 것은 어느새 조금 덜 세련되어진,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수식어로 전락하고 있다. 더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미 초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어떤 죄책감도 없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우리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도 인터넷 용어들이 하나 둘 익숙해지고 있다. 우리는 입시 전쟁을 치루면서 우리말의 문법이나 중요성 보다는 소설, 시 등의 문학작품 일부분에 밑줄을 그어놓고 어떤 의미 인지 만을 파악해왔다. 곧 교육은 실제다. 교육백년지대계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보수적이라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우리말에 대해서 조금은 보수적인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책을 살펴보면서, 또 연습문제를 풀어보면서 우리말의 미묘한 매력을 발견했다. 부드러움과 강함, 긍정과 부정의 차이가 조사 하나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가히 매력적이다. 우리말을 잘 쓰는 것 만큼 잘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분별한 방송인들로 인해 우리말은 서툰 조합문장들이 득실대고 있다. 제발, 말을 생업으로 하는 방송인들은 이 책을 꼭 봐야하겠다. 그들의 실수가 얼마나 많은 전파 낭비를 하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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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그 여자의 외로운 수다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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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세살이 되려면 얼마 남지 않았다. 결혼을 하기전, 나는 제도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합당한가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본적이 있다. 내게 결혼이라 함은 마침 사랑하는 남자를 만났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었다. 내 사랑을 믿었고, 함께 있고 싶었고, 평생 그 남자와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물론, 그 안에 나는 남편이 그런 것처럼 나만의 일을 갖고 나의 길을 가는 것이 포함되 있다. 결혼을 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나고 보니 결혼이 내게는 달콤한 현실을 주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건 남편과 나의 코드가 적절히 맞다는 것들이고, 그럴수록 나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다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나와 같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랑 함께 산다는 건 나에게 재밌는 일이다. 시시때때로 외롭지만, 가끔 외로움을 가릴 수 있다는 것 역시 내가 결혼에 대해 만족하는 몇가지 이유중의 하나이다.

소설속의 유경은 철저하게 혼자가 되어 사는 삶을 살고 있다. 대놓고 가족이 싫다고 말하며, 섹스에 대한 생각도 복잡한 거미줄이 쳐있지 않다. 그런 그녀들이, 유경과 같은 그녀들이 내 주위에 많아질꺼라 생각한다. 유경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여성의 대표주자격인 유경의 네 친구들 역시 유경과 같은 존재들이 늘어갈 때 만만치 않게 늘어가고 있는 것 역시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런 그녀들이 사는 세상은 얼마나 변화해 줄 것인가. 얼마나 그녀들을 맞춰주고, 이해하며, 놔둬 줄 것인가..

인물은 변하지만, 세상은 변하지 않고 있음을 소설속에서도 만났다. 사람은 변하는데 왜 사람이 사는 세상은 여전히 편견과 아집과 고집이 난무 하고, 제 멋대로의 취향만 늘어가는 것일까.

씁쓸했던 것은 유경이 결국 길과 타협을 한 채 친구와의 저녁식사 도중에 나간것이다. 인간의 외로움은 결국 인간에게서 얻어내야 하는 것인가.. 제 아무리 창대한 꿈이 있다고 해도, 결국 공허한 마음이나 외로움 따위를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인가..

유경이 그래도 나는 딜도나 바이브레이터 대신 사람과 섹스 하고 싶다고 고백하는 말이 유난히 11월의 가을과 잘 어울린다. 그 여자의 외로운 수다처럼 낙엽도 폴폴 떨어져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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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성장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하성란 지음 / 창비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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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작가를 선택해서 읽을 권리를 갖고 있다. 머쓱하지만, 작가앞에서 조금 당당해 질 수 있는 사치스러운 처사라고나 할까..^^ 나와 궁합이 맞지 않는 작가들이 몇몇 있는데, 그 중의 한 사람이 하성란이었다. 그렇다..과거가 되버린 종결어미처럼 이제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소한 반열에 능숙하게 들어왔다.

하성란의 작품들은 마이크로 묘사라고 하는 것처럼 정밀함이 매력이었다. 하지만 난..읽는 동안 답답했었다. 읽다가 만 소설책을 덮을때의 실망감이 싫어 책 한권 구입하는데 신중함의 지수는 늘 고온이다. 지인의 권유가 없었더라면..나의 취향과 맞지 않는 다는 가벼운 이유로 묻어버렸을 테고, 훗날 그녀의 책이 또 출간 됐을 때 여전히..그런 이유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계속 될 뻔했다. 휴우..

표제작인 푸른수염의 첫번째 아내 부터 읽었다. 자연스럽게 묘사된 문장과 장면 장면의 선명함은 명쾌했다. 아..하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단편 하나하나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으며, 모두 다른 색깔을 가진 카멜레온 같은 작품집이다. 이렇게 잘 쓸 수 있을까 라는 말만 되풀이 됐다. 정말 잘 쓴 작품집이다. 작가는 계속 성장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처럼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었다.

하성란의 이 작품집의 매력은 소재다. 소재들이 모두 우리가 놓칠뻔한 생의 이면들이다. 직관력과 감성적인 논리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부럽다. 그녀처럼..그녀를 닮는다면 일상이 즐거워 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녀는 분명 적극적인 삶을 살아내고 있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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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플레져 > 불란서 영화처럼
꿈꾸는 마리오네뜨
권지예 지음 / 창비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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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삶은 생활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생각하는 창구는 역시 지금 내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공간이며 시간이라는 순수한 진리를, 작가는 제일 먼저 느끼고 집을 짓는다. 다른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조차 찾아내야 하는 고단한 삶이 아니라, 다른사람도 보고있을테지만 조금 더 눈길을 주고 있는 정성, 그것이 바로 작가의 삶이 아닐까 싶다.

권지예씨의 단편집은 온통 프랑스와 관계되 있거나, 프랑스 인근의 지역과 연결되 있다. 물론 그녀가 떠나있던 서울과 여행을 다녔던 추억의 장소까지. 그녀의 말처럼 30대를 낯선 땅에서 보냈기 때문일까. 그전의 그녀를 알고 있지 않았으나, 많이 달라진 지금의 모습을 확인한 것 같다. 프랑스 단편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 영화의 외국인인 한국 여인이 걸어다니는 것처럼 소설들은 온통 프랑스와 연관된 삶이다. 사랑에 상처를 받았거나, 갈망하거나 사라진 여자들의 이야기는 밀회를 하고 있다.

뱀장어 스튜 와는 사뭇 다른 권지예씨의 단편들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에 순리적으로 따라붙는 비극성이 특징이다. 흔한 연인들이 주체가 되는사랑의 정서가 아니라 인간과 인간의 끈끈한 정을 사랑이라고 정의 했을 때의 그 사랑..사랑을 하고있다는 현재진행형의 짙은 담론 때문일까.. 사랑은 모두 사라져버리거나 끊어져 버린다. 그리고, 남아서 사랑의 과거를 얘기하는 사람은 추억하고, 어루만진다. 사랑의 상처는 먼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속해 있는 사회에 의해, 나와 상대의 지독한 습관이나 운명적 습성에 의해 파국을 맞고, 오직 기억만이 사랑을 얘기한다.

사랑을 지켜나가는 것이 사랑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과제처럼 느껴지는건 당연한 논리일까. 문득 사랑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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