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클리오 > 술버릇

어제 갑자기, 술에 취해 지나가는 남녀를 보다가 불현듯 나의 술버릇을 생각해보니, 술버릇도 변한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이 하는 술버릇을 다 한두번쯤 해보긴 했다. 뭐 놓고 오기, 엉엉울기, 자리에서 쓰러져 자기... 그러나 가장 인상적인 술버릇은 아마 이거였던 듯 하다. (흠, 쓰려고 보니 좀 문제가 있어 민망하다...)

1. '사랑한다' 말하기 (^^;;)

이것은 내가 처음 술을 먹을 대학 1학년 무렵의 술버릇이다. 소주를 맥주 잔에 따라놓고 마실 것을 종용하던 1-2학년 대면식 문화에서, 내 앞에는 좋은 (여)선배가 앉았지만 좋을 수록 충성을 다하는(^^) 나는, 나 때문에 그 선배가 난처해질까봐 소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처음 마셔본 소주는 아무런 별 맛을 모르겠었고, 오직 병원 알코올 냄새가 지독하게 나면서 술이 알코올로 이루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날 나, 사랑한다는 말 무지 많이 했다. 심지어 만난지 이틀 밖에 안되는 룸메이트들에게까지. 그 다음날 일어나 나는 깜짝놀랐다. '사랑한다'고 말하던 것은 우리 아빠의 전형적인 술버릇인데.. 술버릇도 유전되나? 아니면 후천적 각인의 영향?? 하여간 그때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던 남자선배 하나에게 조금은 미안했지만. 그 뒤로는 적절히 주량을 관리하고 워낙 지성적인(흠!!) 이미지로 관리했기 때문에 그 술버릇은 서서히 잊혀져갔다.

2. 가지말라고 애절하게 부여잡기..

직장생활 처음, 외로웠던 그날들부터 시작된 술버릇. 남자들도 술먹으면서 2,3 차를 계속 가자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나의 경우 '애절하게' 부여잡았던 것은 술자리를 나와 함께했던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5,6살 이상 많은 남자들이 많았기 때문일 듯 하다..(안그럼 강요했겠지!!) '안가면 안되요?'라고 묻는 애절한 눈빛에 나의 본질을 파악했던 사람은 과감히 뿌리치고 집에 갔으나. 같이 술먹었던 남자들이 모두 이렇지는 않다. 가지말라 해서 그 남자들이 안간다면 그 다음부터는 내가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 남자가 술 때문에 안갔다면 이미 취한 나는 잡은 책임 때문에 술을 마시느라 힘들고. 혹은 '안가면 안되요'를 다른 쪽으로 받아들인 남자라면 또한 그때문에 당황, 수습..에 진땀이고.. 하여간 별로 좋지 않다!!

3. 폭력적인 본성

2-3년전쯤 절정에 다다른 술버릇이다. 비올 때마다 술을 먹으러 가던 그 무렵. 내 나름대로는 친근감(--;;)을 표시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는데..  목 잡아 헤드락하기. 자리에 패대기치기, 운전하는데 뒷자리에 앉아 목조르기(쓰고보니 정말 엽기적이다.. 흑...) 사람들의 말이 내가 술에 취하면 힘이 무지 쎄진다고 한다. 심지어 가까이 지내던 한 남자 선배는 전화 통화를 할 때 '폭력적이던 너의 술자리 마무리가 보고싶다'는 말로 나를 그리워하기까지.. ^^;; 정말 나의 안에는 무엇이 숨어있는 것일까...

* 요즘은 몸도 안따라주고, 마실 사람도 없어 그만큼 술을 마시지 않는다. 사실 술 자체가 좋은 건 아니지 않는가. 술 자리에서 술을 주고 받으면서 너랑나랑 맞는 사람이었구나를 확인하는, 마음의 공감과 소통이 확! 되는 것을 느끼는 마음 뿌듯함. 이것을 아직 차 마시는 자리에서는 못하고 마음을 닫아두는 것을 보면. 나는 점점 소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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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포르노. 하이틴 로맨스. 날카로운 첫키스

어제 한겨레 신문을 읽으면서 누구던가, 영화 속의 남과 여를 분석하는 글에서 <몽정기> 1, 2를 비교하면서 사춘기 남,녀의 차이를 적은 글을 보며 웃었다. 소년들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욕망을 채울까를 고민하는데 비해, 소녀들은 어떻게 하면 하늘이 내려준 이상형을 만나 섹시하게 유혹하여, '딱딱하게' 만들어 사랑을 이룰까를 고민한다는 것. 이것이 전체적인 실상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사회가 소녀들에게 순수할 것과 섹시할 것을 동시에 요구한다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 글에는 이런 구절도 있었다. "남자들은 포르노를 보며, 여자들은 하이틴 로맨스를 보며 성에 대한 의식을 키운다." 남자들이 포르노로 성을 배워 생기는 악영향에 대해서는 여러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하지만. 하이틴 로맨스의 악영향은 글쎄. 잘 분석되지 않는 것 같다. 하이틴 로맨스는 배경만 달라질 뿐 전형적인 줄거리는 가난하고 가진 것 아무 것는 여주인공이(사실은 이 여주인공은 자신만 모르는 빼어난 외모와 재능이 있는 경우가 많다.) 부유하지만 왕싸가지 남주인공을 만나 어떨 수 없이 연인 혹은 계약결혼을 하게 되지만, 서서히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그 남자도 사실은 이 여자를 사랑하고 있으나 몇번의 오해로 엇갈리다가 결국 '매우 뜨거운 밤'으로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는 것이다. 부유하고 여주인공보다 나이가 많은만큼 여자관계에 능수능란한건지 사랑하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 남자의 키스는 황홀하다. '다리가 풀릴만큼' 그래서 여자는 싫다는 마음과 거부할 수 없는 그 남자의 키스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한다.

포르노를 보고 자란 남자들이 여자의 No를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자들이 강간도 좋아한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하이틴 로맨스를 보고 자란 여자들은 첫키스와 육체적 관계에 대한 환상을 키워나간다. 언젠가 하게 되면 그것은 최상의 경험일 것이라고 상상의 날개를 잔뜩 펴는 것이다. 실제로 내 친구 중 하나는 어느 남선배랑 술을 먹다가 그 선배가 키스를 하자(이상한 놈이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랑 키스를 했다는 것이 싫은 것이 아니라 기대하던 첫 키스가 너무 밍숭했던 것이 싫었단다. 그래서 이럴 리가 없다고, 다시 해보라고 집요하게 그 선배에게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  키스가 좋으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믿는 친구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키스가 별로이자 자신의 마음을 다시 점검해보는 사람도 있었다. 확대해석하자면, 육체적 관계의 만족도가 오직 상대방의 기교에 달려있다고 믿는 의식 속에도 하이틴 로맨스류의 책임이 있지 않을까.

글을 쓰다보니 어찌 이상야릇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 같다. 남녀 모두, 아무래도 처음 해보는 어떤 것을 능숙하게 잘해내는 것은 힘들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과는 또 다르게,  손끝만 스쳐도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다리가 떨리는 정도로 사랑하는 사람과라면 그 무엇도 좋지 않을까. 인간의 쾌락을 관장하는 것은 결국 뇌라고 보면,  이것은 자신의 의지 혹은 상상력과도 관련있어 보인다. 결국, 최고의 기술은 '자신의 사랑하는 마음'일 수 있는 것이다. (시작에서 벗어난 결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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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나이

30대 초반의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본 적은 한번도 없다. 주변의 다른 이들은 여자의 전성기여서 어느 자리에 가나 기뻐해주는 20대가 지났다고 자기 나이를 말하지 않으려 하는 경우도 많이 봤으나, 그리고 어려보이려 앞머리를 자르고 애들같은 스타일의 옷을 입고 아줌마라는 말을 들으면 바르르 떠는 경우도 봤으나. 다행히 나는 한해한해 지나면서 얻게되는 여유로움과 성숙, 안정이 무척 소중하고 행복해서 아직도 불안할 것이 분명한 20대 중반 여자애들에게, 너희들 이런 기쁨 모르지, 30대가 되면 인생 끝날 줄 알았지? 하며 여유롭게 웃음지을 수 있는 한해한해를 가져오고 있다. 물론 누군가는 현 상황에 내가 만족해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런데 가끔 나이에 헉 소리가 날 때가 있다. 내가 직장에 그대로 머물러있었으면 나는 아직도 스스로 어리고 많은 것을 시작하고 완성은 어차피 40대 이후에야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련만. 난데없이 공부를 시작한 지금은 훌륭한 책들을 저자가 몇 살에 썼는지를 알고 나면 무척 기가 죽는다. 물론 그들은 천재이거나 상황을 잘 만났을 수도 있지만. 긴즈부르그는 '베난단티와 마녀의 밤의 전투'를 26세에 썼고, 내가 최근 읽으려는 책 '동맹 속의 섹스'를 지은 캐서린 문은 64년 생이라 안심했더니, 그 기념비적인 책을 무려 10년 전에 썼다고 한다.

굳이 다급해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런 일을 볼 때마다 이제 뭔가 해야 할 나이가 되었군. 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뭔가를 열심히 하면서 기본을 쌓느라고 미루고 있으면 모르지만, 늘 아직 뭔가를 만들기에 너무 어리다는 생각으로 느슨한 생활로 일관하고 있는 것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왜, 자극은 받는데, 작심삼일인거지? ^^;; 공부를 계속 하는 사람들이 30대에 뭔가 만들어내야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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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금발이 너무해'를 보고 - 교육, 선입견, 법률드라마

 

 

 

 

오랜만에 주말내내 집에서 쉬면서 갖은 비디오와 만화, 티비 프로를 섭렵했는데 그중 하나가 영화 채널에서 본 '금발이 너무해'.(제목이 왜 이런 식인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는 이전에 봤었지만 다시 봐도 역시 주인공도 예쁘고.. 하여간. 음에 비디오를 빌려볼 때는 뻔히 그렇고그런 로맨틱코메이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보고나서 느낌이 좋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에서 가장 특징적이었던 것은, 온통 부유하고 자기치장에만 힘쓰던 여학생이 잠시 공부하고도 하버드 법대에 진학할 수 있는 개방적(!)인 학교제도였다. 또한 이렇게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우리나라에서는 영어나 한문 등을 중고등학교에서 미리 공부해놓지 않았다면 다른 학생들을 따라가지 못했을텐데, 자신의 노력(물론 고생스러웠지만 자신의 미모 가꾸기는 버리지 않는다.)만으로 충분히 우등생이 되어 졸업하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첫번째 부분에서도 하버드 로스쿨이 나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만든 모든 법정 드라마는 어려운 용어를 동원하고 그럴 듯한 증거를 만들어내서 정말 근접하기 힘든 법조계의 분위기를 만드는데 비해. 이 영화에서 주인공도 법정에서 승소하는데, 자신의 장기(!)를 발휘해 파마를 하고 샤워를 했다는 위증을 발견해내서 승리하는 것이다. 오히려 이런 것이 한편으로는 법적인 마인드를 갖추고 법률을 가깝게 만드는데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예쁜 여자들이 승리하는 세상에 별로 살아본 적이 없는 행운을 가졌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피해의식이 별로 심하지 않은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대학시절 강의시간에 예쁘고 참하게 꾸민 미모의 여학생이 교수님 바로 앞에서 초롱초롱 눈뜨고 있는 것만으로  이름이 불려지고 A+를 보장받는 것에 대해서는 불만이었다. 이 여학생이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똑같은 노력을 하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었다. 일명 후광효과. 그래서 이쁜 것들은 다 똑같애, 혹은 남자는 다 똑같애.. 하는 투덜거림을 조금 가지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것도 하나의 선입견이었는지,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노력해서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했더니, 다들 내 외모만 보고 있었어'라는 지점에서 좌절감을 느끼게 된다.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인가보다.

(외모가 아니더라도 선입견이나 편견은 벗어나기 힘들다. 내가 있는 공간에서 밤에 학교에 있는 사람은 일단 공부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경향이 있다. 한 선배가 일본 애니메이션에 취미가 있는 '다운의 여왕'이었다. 당연히 아무도 없는 밤이 학교의 인터넷이 빨라지니 그 선배가 공부를 하나도 하지 않고 밤에 학교에 있었던 것은 당연. 몇 번인가 밤에 이 선배와 마주친 학구적인 교수님은 드디어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고. 옆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우회적으로 말해도 그 인상은 절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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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클리오 > 고정관념의 감옥...

벼룩 두 마리가 있다.
이들을 유리컵 안에 가두어 둔다.
그러면 금새 튀어 도망을 간다.
다시 주워서 더 높은 컵에 가두어도 녀석들은 역시 단번에 뛰어 넘는다.

그런데 이번엔 유리컵에 유리뚜껑을 올려둔다.
유리로 만든 뚜껑을 모르는 벼룩들은 높이 올랐다가 머리를 맞고 떨어진다.
그러나 한동안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튀어오 르다가 마침내는 포기를 한다.

그러다 한참 후에 유리뚜껑이 제거된다.
벼룩들은 여전히 튀어 오르지만, 예전에 유리 뚜껑이 있는 그 선 아래까지만 오른다.
그들이 더 높이 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면서, 작은 도약에 만족하면서 감옥에 갇혀 산다.
이 실험은 처음부터 훨씬 낮은 유리컵을 사용했더라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제 자신에게도 물어봅니다. ‘나도 한 마리의 벼룩이 아니었을까?’ 하고.
한 두 번의 작은 시도를 해보고 중단한 일들이 그 동안 얼마나 많았던가!
아니, 어쩌면 이보다 더 심한 ‘제3의 벼룩’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뛰다가 실패한 두 마리의 친구벼룩을 바라본 후에, ‘그들도 안되었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하고 상상만으로 기대치를 낮추는…제3의 벼룩!
인간에게는 정말 무한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머리로는 믿고 있지만, 우리 역시도 ‘안된다!’라는 고정관념속에서 그 잠재능력을 묶어두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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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서운  일이다.. 아침의 충격... 내가 못하는 일이라 생각하는 일이 실은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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