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아주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영화를 만났다.  솔직히 이런 표현도 부족하다. 내 생의 최고의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아름다운 풍경. 아름다운 마음, 아름다운 삶. 우리모두가 동경하는 세상을 담고 있는 영화. 하지만 결코 현실이 될 수 없기에 씁슬함과 슬픔을 느끼게 하는 영화. 그런 영화를 만났다.

하지만 희망을 가져본다. 언젠가 이런 세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그리고 언젠가 이런 세상이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래서 더 마음에 담고 싶은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한편의 영화를 보면서 순수함과 깨끗함 그리고 슬픔과 아픔 또, 웃음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모든것이 결합된다면 아주 투명한 느낌을 전해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투명함. 그래. 그 표현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나의 모든감정과 모든 지각이 함께 활성화되어 하나의 모양을 이루는 느낌. 난 그 느낌을 '투명함' 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1950년 한국전쟁이 한창일때, 동막골이라고 불리우는 아주 작은 부락은 전쟁의 범위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곳에서 비행기를 조정하다 추락한 연합군 병사 스미스와 낙오한 인민군3명과 자군 병력에서 이탈해 길을 잃은 국군2명이 만나게된다. 결코 섞일 수 없는 그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정말 희한한 상황이라고 불리울 수 있으나. 마음 사람들은 전쟁과 군인이라는 개념이 없으므로 그들의 정체를 이해할 수 없다. 그냥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어져 살아갈 수 있는 인간으로 받아들이고 그들 모두를 포용한다. 그들의 순박함과 소박함 앞에서 결코 섞일 수 없는 부류의 인간들이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 하나가 되어 동막골이라는 부락을 위해 자신들의 목숨을 내 던진다. 전체적인 스토리를 요약적으로 제시하자면 6줄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수 많은 감정과 수 많은 갈등과 수 많은 감동은 결코 몇줄의 글로 표현될 수 없다. 솔직히 몇 백줄의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한편의 그림을 연상케하는 영상. 하늘과 들판 그리고 구름과 꽃. 그리고 사람. 이 모든것이 하나가되어 동화속에서나 나올법한 마을의 모습을 그려낸다.

이 마을을 상징하는 것은 하얀색의 순수함으로 하얀나비들과 정상인과 다른 미친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일(강혜정)이다. 그들은 너무도 순수하고 너무도 깨끗해서 전쟁이라는 현실이 마을을 찾아왔을 때 둘다 마음을 떠나게된다. 하얀나비는 하늘을 향해 높이 날아가고, 여일은 숨을 거둔다.

 

 

강혜정. 그녀의 연기에 또 한번 놀랬다. 솔직히 어려운역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여일의 역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수 있는 사람은 결코 흔하지 않으리라. 머리에 꽃을 꽂은 그녀는 정상인과는 다른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보통사람들에게는 미친사람으로 이해된다. 그럴수밖에 없는 것이 그녀는 정상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아주 서슴없이 행하기 때문이다. 아주 띄없이 깨끗한 웃음을 지니고. 아주 맑은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그리고 늘 즐거워한다. 종래의 영화에서 등장하는 '미친년'으로 불리우는 사람들과는 아주 큰 차이를 보이는 배역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그녀의 역할의 비중이 작았다고 말했지만 난 그녀야말로 이 영화의 핵심인물로써 없어서는 안될 역할을 아주 훌륭히 소화해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정상이다, 정상이 아니다. 는 기준은 지극히 다수에 의한 조작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수가 지니고 있는 평균적인 능력의 범위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우리는 미친사람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해서 그들이 우리와 다른 정신의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고해서 우리보다 부족하고 덜떨어진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을 존재할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면 그들은 우리보다 뛰어나고 아름다운 정신의 세계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지'라는 것이 그것을 가능하게한다. 솔직히 여일 뿐만이 아니라 동막골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었던 것은 무지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앎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은 정말 위대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으로인해 더 많은 것들을 잃어왔는지도 모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순수함' 이고, '따뜻함' 이다. 그것은 우리가 알아가면 알수록 우리안의 정신세계에 갇혀버리고 밖으로 주위를 돌리지 못하고 안으로 안으로 집중하기 때문이 아닐까? 결국 우리의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리는 것. 그래서 자신을 위해 타인의 영역을 침입하는 것.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극단적인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는 수 많은 전쟁을 거듭해왔다. 그 전쟁의 이유를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명제에 불과하다. 그 대명제에 가려진 것은 자국의 이익과 국가 원수의 개인적인 욕망이었다. 전쟁터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싸웠다. 하지만 그들은 왜 그런 운명을 맞이해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른다. 그냥 어쩔 수 없는 현실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맞서 싸우는 것 뿐이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정당방위다. 자신이 살기위해 자신의 위협하는 타인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상황속에서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피해자일 뿐이다. 위의 사진이 인민군과 국군이 동막골이라는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면했을 때 벌어진 풍경이다. 그들은 마을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룬다. 그들 사이에 있는 마을사람들은 이유도 까닭도 모른다. 그들이 들고 있는 막대기처럼 생긴 물건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가능성을 가진 위협적인 물건이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래서 그냥 그들이 시키는대로 앉아있다가 졸기도하고 잠을 자기도한다. -_-; 이런 설정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 그것은 바로 무지와 앎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증오와 원망 그리고 적대감은 동막골이라는 마을에 흡수되었으며 그들을 따뜻하게 대해주는 마을사람들에 의해 치유되었다. 그들이 함께 어우러져 공놀이를 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이미 동막골이라는 마을에 몸을 담았으며 마을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었고, 그들도 마음이 독한 인간들은 아닌지라 마을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도움이 될 수 있길 원했다. 그래서 마을을 위협하는 사건을 막기위해서는 하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쉬운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영화속에서나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 영화속에서는 쉬운일이 아닐지라도 가능한일이 되었지만 전쟁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는 일, 그리고 타인을 둘러보는 일, 함께 어울어져 살아가는 길을 모색하는 일은 절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들의 마음속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과 기억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자신이 살기위해 수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는 사실이 아주 큰 죄책감으로 자리잡을 수 밖에 없었을테니깐. 이 영화에서는 인간이 전쟁으로 인해 받을 수밖에 없는 피해의식과 정서적 정신적인 장애를 표현철(신하균)이라는 인물을 등장시켜 표현하고 있다. 만약 신하균을 통해 그런것들을 그러내지 않았다면 이 영화가 전해주는 현실성의 부재는 지금보다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신하균. 그의 계급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국군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그런 역할을 수행하면서 상부의 명령을 받아들여 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군대에서 타령했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는 외상후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다.  피난을 떠나는 수 많은 사람들. 그가 상부의 명령을 거부했더라면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이 그 때문에 죽었다는 죄책감. 그것은 그에게 심한 충격과 상처를 남겼기 때문에 그가 동막골에서 지내는 시간동안도 그는 결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다. 그가 평화로운 동막골의 풍경속에서도 피난민들을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죄채감이 불러온 환각이었고, 전쟁이 그에게 남긴 하나의 질병이었다. 하지만 그는 전쟁이 자신에게 남긴 질병에 당당하게 맞서 싸운다. 그리고 자신의 죄값을 치루기위해 죄없는 수 많은 민간인들이 또다시 죽어가는 비극을 막기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다. 그리고 자신의 뜻에 동조하는 다른 사람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의 계획. 그의 예상은 아주 제대로 실행된다. 그리고 아주 큰 성과를 거둔다. 하지만 그 결과 우리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죽는다. 동막골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동막골을 지키기위한 작전에 동참한 6명의 군인. 그들은 전쟁이 끝나면 돌아오라는 동막골 사람들의 요청에 뒤돌아서서 쓴 웃음을 지운다. 그들은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한다면 결코 그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고, 결코 그들을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웃는다. 동막골을 떠났 때도, 그리고 마지막에 연합군에 의한 폭격에 의해 그들이 동막골인 것처럼 가장했던 하얀눈이 덮혀있는 산속 들판이 모두 불덩이가 되어 사라져갈 때도 그들은 자신들의 작전이 성공했다는 것에 만족하며 웃는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그들은 인민군3명과 국군2명 그리고 미국군 1명으로 구성된 연합군이었다. 그들은 한국전쟁을 도와주려고 전쟁에 동참한 미국 연합군에 의한 폭격에 대항한 또다른 연합군이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순간이었다. 누가 적이며 누가 동지인가. 그들 모두가 조국을 위해 용감하게 싸웠지만 그 과정속에는 진정한 적과 동지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조국의 개념 또한 사라지고만다. 하지만 그들이 남긴것은 진정한 '인간애'이다. 그들은 사람답게 살고 싶었고, 사람답게 죽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그들의 죽음앞에서 막연하지만 수 많은 사람들을 떠올렸다. 결코 영화속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과거 역사의 이야기. 우리는 정말 수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으며 그 덕분에 지금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 동막골에서는 산속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하얀 벌판에서 벌어진 폭격과 그들의 희생을. 멀리서 바라보는 동막골 사람들은 그 불덩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못한다. 마치 불꽃놀이를 구경하듯이 번쩍거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몰라서는 안된다. 우리는 역사속에서나 존재하는 한국전쟁에 대해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듯한 동막골 주민들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는가? 적어도 난 그들이 목숨을 걸고 이룩한 많은 것들에 대해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그들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희생이 어떤 것이었는지 모른다. 그 '무지'가 나에게 남긴것은 또다른 '무지' 였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내가 이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결코 어느 몇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결코 하늘의 뜻과 내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는 것을 세삼스럽게 깨달았을 때. 나의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수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대가로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 이상의 생각을 전해주었고,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주었다. 살자. 살아야한다.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많은 것들을 기억하며 헛되이 살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나는 이 영화를 전쟁영화로 기억하고 싶지않다.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우리들의 역사의 이야기. 우리들이 동경하는 천국의 이야기. 우리들이 동경하는 자화상의 이야기. 우리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 마치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보고나서 느낄 수 있는 온 몸이 전율하는 쾌감과 기쁨은 나의 인생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이런 영화야말로 대작으로 기억해야 한다.

 

★★★★★★ : 감동 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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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05 1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퍼오셨군요. ^-^ 제 영화리뷰 항상 퍼오시나봐요? ㅋㅋ

살수검객 2005-08-05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님의 글땜에 동막골 보고 싶어 안달입니다..책임지세요..^^
 

달의 궁전을 새벽 1시까지 읽었다..지금은 새벽 4시 20분..올빼미족의 활동성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중이다.사실 지금 폴오스터의 작품을 고르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그의 작품을 달의 궁전으로 시작한게 다행이라 여겨진다..이 달의 궁전에서 난 그 무엇보다 이 작가가 좋아져버렸기 때문이다.이런 작품을 쓴다는것 자체가 고마울뿐이고 말이다..그렇게 다음에 읽을 폴오스터의 작품을 찾아다녔다.리뷰보느라 시간이 오래걸렸지만 그래도 많은 도움이 되어서 지금 4편의 작품을 골라두었다.우연의 음악,오기렌의 크리스마스,공중곡예사,환상의 책..내일 도서관에 가서 나에게 끌리는 것으로 대출해서 읽을 생각..분명 아까 난 댄브라운의 작품을 읽겠다 했으나 또 변덕이라니..이건 나의 책욕심의 과오성이 아닐수 없다..내일 빌릴 책으로 안녕 레나,경찰서여 안녕,천사와 악마,미드나이트 시즌..폴오스터의 작품하나..이렇게 될듯 싶다.타나토노트 상권을 읽었는데,,하권을 읽으려다 또 다음으로 미루기로 한다.원래 난 작품을 마구잡이로 읽는걸 즐기는 편이니 뭐 어쩔수 없다.그리고 도서관에서 살펴볼책..24권을 수첩에 적어두었다.그래서 거기서 맘에 드는 책을 또 다시 타깃으로 삼으면 또 그렇게 8월 목록이 탄생할것이다..8월은 원없이 봐야한다..그래야 앞으로의 군생활을 버틸수 있다..지금 딱 이 심정이다..뭇매를 맞더라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의지가 약해질지도 모른다.사랑스러운 책들과 떨어질 공백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기운이 안난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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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8-05 1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일기의 특징은 줄바꾸기를 안하시는데 있군요 ㅋㅋ
줄바꾸기를 해주시면 더 읽기가 편할텐데요.. ^-^

살수검객 2005-08-05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그런가요..전 줄바꾸기를 원래부터 안해와서 그런지 이런 습관이 배어버렸네요..이제와서 바꾸기도 좀 이상할것 같아 그대로 고수할게요.. ^-^
 
 전출처 : sonic > 아무 생각없이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폴 오스터 지음, 김경식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7월
평점 :
절판


난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첨으로 이영화를 봤을때..너무나 충격적이었다..너무나 잔잔한 물결에 뒤통수 맞은 기분이었다.. 물론 책도 좋아한다...하지만 '스모크'의 경우만은 책 보다 영화를 먼저 만났다..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를 보면 언제나 한쪽이 뒤진다.정말 그렇다..

그렇지만 스모크...양쪽 모두 너무나 아름답다..눈을 감고 있으면 그곳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담배가게 안에서 버러지는 모든 해프닝..작은 뉴욕이 그안에 들어있다..작은 미국이 그안에 들어잇다.. 아니.작은 세계라도 해도 되겠다..그 작은 공간안에서 모든걸 다..
그려냈다..작가도 감독도 적당히 민감하고 적당히 무던하게 너무나 잘 그려낸것같다..

난 언제나 예술가가 등장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자신은 잘 몰랐는데 나중에 깨닫고 보니..내가 읽는 책에는 예술가들이 많이 나온다..내가 이런 종류의 책을 선호하는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예술가의 캐랙터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작가들은 자기와 꼭 닮은 캐랙터를 만들어 낸다..아님 아주 미치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만들어 내던가..그렇게 그려내는 모습들이 너무나 재미난다..때론 멋있게 꾸미기도 하고..아주 뽀대 나게 그려내기도 하다..

이책에서도 그런 냄새를 맡았다..이책을 일고 나서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아주 건조하게 바라보려고 노력하게 해준책이 바로 '스모크'였다..꾸미지 않는다..있는 그대로를 보여준다.. 그세상에선 오히려..풍요로운자가 바보가 될지도 모른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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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marine > 환상의 책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말 그대로 환상적인 책이다
여기서 환상이란 몽환적이고 비현실적인 얘기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책, 사라져 버린 책을 말한다
폴 오스터는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혹시 "뉴욕 3부작" 의 기묘한 줄거리에 질린 사람이라면 이 책과 "달의 궁전" 을 꼭 권한다
"공중 곡예사" 도 재밌지만 이건 정말 재밌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독서, 은둔, 액자 소설 등으로 뒤덮혀 있다
주인공은 늘 독서열에 불타고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숨어 버리며 주인공의 얘기를 다른 사람이 들려 주는 화자가 꼭 존재한다
모든 소설이 다 그런 형식을 취한다
그는 문장을 참 잘 쓴다
이문열과는 다른 의미로 글을 잘 쓴다
이문열은 문체 자체가 훌륭한데 비해, 오스터는 묘사력이 뛰어나다
사물이나 풍경 묘사가 아니라 주변 정황이나 심리 묘사에 탁월하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어쩜 이렇게 술술 잘 풀어 놓는지...
오스터의 높은 독서열이 소설의 수준을 높혀 주는 것 같다
역시 최고의 글쓰기 비법은 다독인 것일까?

이 소설의 화자인 데이비드 짐머는 "달의 궁전" 에 나오는 마르코의 친구다
마르코가 굶어 죽기 직전 집으로 데려가 숙식을 제공하고 돌봐 준 바로 그 짐머다
마르코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우연히 그를 만나는데, 그 당시 짐머는 아내가 죽었고 폐인 같이 살 때였다고 나온다
전작과 특별한 관련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두 번 인용되는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창작하기 보다는 기존의 인물을 변형시키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이 책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영화배우다
오스터는 또 지나가 버린 것들에 대한 추억이 강한 편인데 여기서는 무성 영화 시대의 코메디 배우가 등장한다
찰리 채플린 정도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1920년대라면 오스터 역시 태어나기 전인데, 아마 과거 기록을 보고 흥미를 느낀 것 같다
이미 영화의 역사도 100여 년이 되기 때문에 무성 영화 시대는 이제 새로운 신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오스터라면 충분히 흥미를 느낄 만 하다
우리나라 작가 중에도 오스터처럼 대단한 이야기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지 이야기만 잘 해서는 안 된다
같은 얘기도 수준 높게 잘 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문득 안정효가 쓴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가 떠오른다
비슷한 느낌의 책이다

짐머의 아내와 아이들이 비행기 사고로 죽은 후 그는 폐인이 된다
사실 실감나게 다가오지는 않았다
괴롭긴 하겠지만 인생을 망쳐 버릴 정도로 고통스러울까?
아직 경험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왠지 과장법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브리지드가 실종된 후 그녀의 아버지가 고통을 견디는 장면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울컥 하는 심정이 들었다
브리지드는 살아 생전 아버지와 크게 다툰 후 거의 의절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막상 그녀가 실종되자 혹시나 하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그녀를 찾아 다닌다
딸이 사라져 버렸을 때 아버지가 느껴야 할 고통은 얼마나 클까?
사이가 좋았던 딸도 아니고 잘해 준 것도 없는 딸인데 화해할 기회도 안 주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면 그 동안 잘못한 게 얼마나 후회가 되겠는가!!
브리지드의 아버지 오팰런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그녀를 찾아 헤맨다
차라리 시신이라도 발견되면 포기할텐데 실종됐으므로 죽을 때까지 포기할 수도 없다
결국 오팰런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딸에 대한 죄책감과 부질없는 희망으로 자신의 삶을 갉아 먹는 것이다

짐머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그는 가족을 잃는 댓가로 어마어마한 보상금을 받았지만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잃어 버렸다
돈이, 혹은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그 행복이 어느 정도 본질적일까?
때로 돈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사람들을 보면서 그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 돈이 없으면 당장 죽을 정도가 아니라면, 그 돈을 가졌다고 해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혹은 물질이 생활을 안락하게 하는 건 사실이지만 본질적인 행복을 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인간이 보다 정신적인 존재라고 믿는다
기본적인 의식주만 해결된다면, 즉 최저 생계 수준만 유지할 수 있다면 물질이 아닌 정신적인 것에서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오스터 소설의 은둔자들은 모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은 안락함을 제공해 주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벗어났지만 형편없는 새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산다
그들을 위로하는 것은 대부분이 책이었다
책 속에 진리가 있고 행복이 있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헥터 역시 헐리우드 대스타라는 최고의 물질적인 자리를 버리고 나왔지만 (물론 어쩔 수 없긴 했다) 부둣가의 노동자로 일하면서도 그는 책을 읽으며 삶의 새로운 즐거움을 맛봤다
나는 이 설정이 절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행복의 기준은 달라진다
행복이 충만한 자기 만족감이라면 만족에 대한 기분을 바꾸면 된다

짐머는 아내와 아이들이 죽은 후 피폐한 삶을 산다
사실 그는 대학 교수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굳이 큰 재산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물질적인 것에 큰 가치를 주거나 가족과 사이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그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큰 돈까지 안겨 준 비행기 사고가 고맙기도 하겠지만 (아마 로또 복권 당첨된 기분일 것이다), 짐머는 대단히 가족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비행기 사고가 가져다 준 불행은 엄청난 보상금으로도 절대 회복될 수 없는 치명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짐머는 보상금을 아낌없이 다른 곳에 쓴다
술과 마약 등 자신을 좀먹는 일에 쓰는 것이 아니라 그의 남은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쓴다
아내 헬렌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고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와 유치원에 놀이 기구를 제공한다
또 그와 헬렌의 피붙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만약 내 가족이 내가 죽는 불행을 당한다면, 그래서 혹시라도 돈을 얻게 된다면 우리 엄마 아빠 역시 내 이름을 기리기 위해 그렇게 할 것 같다
나를 잃은 슬픔은 다른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할 것이다
가족이란 바로 이런 존재들인가...
(어제 읽은 "변신" 에 나오는 가족과는 참 다르긴 하지만)

짐머가 헥터의 영화에서 위로를 얻는 장면도 공감이 간다
삶의 의욕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을 웃기는 코메디 배우에게 집중한다
아마 그 순간에는 어떤 것에라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뭐라도 살아갈 희망이 있어야 하니까 기대고 싶었을 것이다
그 대상이 반드시 논리적이거나 타당한 것일 필요는 없다
하여간 자기 마음을 의지할 수 있으면 된다
짐머는 헥터에게 빠져 그의 영화들을 모두 섭렵하고 책을 쓴다
헥터의 영화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영화를 보기 위해 유럽까지 날아가기도 한다

앨머의 등장은 그를 다시 삶 속으로 끌어 들인다
여기서 삶이란 행복과 기쁨 등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앨머는 짐머를 헥터에게 데려가기 위해 권총까지 꺼내 들고 첫 만남에서부터 섹스를 하는 좀 특이한 여자인데 결론적으로 정신 상태가 매우 불안했다
프리다가 헥터에 관한 전기를 불태우는 걸 보고 그녀를 밀친다는 게 우발적 살인이 되버린 후 죄책감과 불안감에 자살하는 장면이 오히려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실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헥터의 일생을 수집하는데 7년이나 매달렸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의 전기를 쓴 짐머를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으며 헥터의 아내와도 격렬하게 다퉜을 것이다
그녀가 정상적인 감정 상태였다면, 또 합리적인 사고 방식을 가졌다면 헥터나 짐머에게 매달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제일 인상적인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헥터다
오스터 소설에 절대 빠지지 않는 매력적인 캐릭터가 바로 헥터 같은 은둔자다
그들은 왜 안락한 현실을 포기하고 고통스런 익명의 삶으로 뛰어들까?
나라면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없다
나는 현재 누리고 있는 것 보다 더 얻기 위해 늘 긴장하며 산다
혹시 내 것을 뺏기지 않을까 항상 조마조마 하다
그래서 여유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스터 소설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누리던 것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떠난다
물론 정신적인 충격이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물질에 대한 집착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나라면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그런데 익명의 삶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함은 없지만, 대신 의무감이나 구속감도 똑같이 사라진다

가장 큰 의무감이라면 물론 가족에 대한 것이리라
이런 생각하면 큰일나겠지만 가끔 가족이 없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그럼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살 수 있을 것 같다
멋대로 살아도 미안해 할 사람이 없으니까 말이다
나로 인해 실망하고 속상해 할 사람이 없다면 나는 좀 더 자유롭게 내 맘대로 살 것 같다
이것도 그저 환상일 뿐일까?
가족은 내 삶의 큰 원천이지만 때로 구속이기도 하다
사회에서 정한 길대로 따라 가라고 요구하는 그런 구속 말이다
가장이 되면 특히 그럴 것이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가장이라면 가끔은 그 책임감에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헥터는 헐리우드를 떠난 후 부둣가에서 거친 노동을 하면서 산다
그는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브리지드를 배신하고 그녀가 자신의 약혼녀 돌로레스의 손에 죽는데 도의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에 보속하는 마음으로 밑바닥 삶을 받아 들인다
만약 헥터가 헐리우드의 삶에 전혀 미련이 없었다면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돌로레스 역시 바로 은퇴했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했더라도 우발적인 살인 내지는 정당방위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명성을 위해 사건을 숨겼지만 평생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물론 그 사건이 알려지면 돌로레스나 헥터가 편안하게 사라질 수는 없었겠지만 평생 죄책감과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또 그것이 가엾은 브리지드의 가족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눈에 총을 맞고 뱃속의 아이와 함께 암매장된 딸을 찾기 위해 평생을 매달린 아버지 오팰런을 생각해 보라
결국 헥터의 행동은 비겁했다
그가 브리지드의 동생 노라의 구혼을 뿌리친 것은 당연하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말이다

헥터는 죄책감을 덜기 위해 심한 육체 노동을 하고 책을 도피처로 삼는다
사실 그는 이민자의 아들로 정규 교육을 못 받았다
더구나 연예인의 화려하고 무절제한 삶에 익숙한 헥터가 책에서 재미를 찾는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헥터의 기질 속에는 예술적이고 지적인 면이 풍부했던 것은 아닐까?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그 수준이 형편없더라도)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좋지도 않지만 나쁠 것도 없다
사실 현대 사회에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살 수 있다
상대적인 박탈감만 안 갖는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뭘 하든지 세 끼 밥은 먹을 수 있을 것이고 (생활 보호 대상자를 생각해 보라 직업이 없어도 나라에서 쌀과 반찬값을 준다) 도서관에 가면 책은 널려 있다
결혼을 해서 책임질 사람이 생기면 다르지만, 혼자 몸이라면 얼마든지 먹고 살 수 있다
더구나 나라면 평생을 안락하게 살 안정된 직업이 있다
나는 욕심이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노라가 헥터에게 반한 걸 보면 자매간에 닮은 구석이 있나 보다
브리지드는 헥터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그가 다른 여자들과 놀아난 것도 참아 준다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에게 돌아오리라 믿은 것이다
이 믿음은 나도 경험해 봐서 안다
비록 당신이 지금은 다른 여자들과 만나지만, 시간이 가면 내 사랑의 진실함을 깨닫게 될 것이다, 결국 내가 유일한 안식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자의적이고 허망하기까지 한 믿음에 매달리는 가엾은 여자!!
결국 헥터가 돌로레스와 약혼까지 한 후 브리지드는 자살을 기도한다
헤어졌다고 자살까지 할 정도면 그녀가 얼마나 헥터에게 매달렸는지 알 만 하다
나도 누군가를 사랑해 봤지만 그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해서 죽을 생각은 안 해 봤다

정신병원에 입원한 브리지드는 헥터의 아이를 임신한 것을 안다
그리고 돌로레스에게 찾아간다
아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이다
결국 위협감을 느낀 돌로레스는 권총으로 위협한다는 게 그만 총을 발사하고 만다
살인 무기가 허용된 미국의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돌로레스는 그 후 연예계를 은퇴하고 결혼한 뒤 곧 사고로 죽는다
그녀에 관한 얘기는 거의 없는데, 혹시 그녀도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을까?
암매장 당한 딸을 찾아 평생을 헤매는 가엾은 오펠런에 관해 알았더라면 편한 잠을 자기 힘들었을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말이다
어쩌면 사고로 죽는 순간 자기 손에 죽은 브리지드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헥터가 노라의 사랑을 받게 된 까닭은 일단 그가 헐리우드 배우를 할 정도로 잘 생겼다는 것과 함께 놀라울 정도로 성실한 태도에 있었을 것이다
자기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는 가진 것 없는 남자지만 헥터는 누구보다 성실하고 유능했다
브리지드 가족의 집이었고 또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헥터는 가게 일에 헌신적으로 매달린다
사실 그렇게라도 집중하지 않았다면 헥터는 브리지드의 집에서 정상적으로 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책에서 구원을 찾은 헥터는 노라에게 수업을 받으며 지적 교양을 넓혀 간다
만약 이 정도로 신실하게 사는 남자라면 (더구나 잘 생겼다면) 나도 한 번쯤 호감을 느낄 것 같다
비록 그가 객관적으로는 가진 게 없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노라는 진실된 여자였다
상원의원의 아들이 가진 명예와 재산에 현혹되지 않고 내면에 숨겨진 가치를 볼 줄 아는 여자!!
그래서인지 노라는 학교 선생님에서 시작해 교장까지 진급한다
비록 헥터가 떠날 때는 괴로웠겠지만 그 후 그녀의 삶이 평탄하고 행복했을 것 같다
또 헥터가 자신이 언니를 죽이는데 일조했다는 걸 평생 몰랐기 때문에 더욱 다행스럽다
만약 헥터가 노라를 사랑해 그 사실을 고백했다면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언니를 죽인 범인이나 다름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동생의 괴로움이라니!!
헥터는 노라에게 그런 고통을 주지 않기 위해, 또 브리지드의 가족에게 일말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결국 그녀 곁을 떠나고 만다

헥터란 남자는 운이 좋은 걸까?
아니면 소설이기 때문에 뭐든 잘 풀리는 걸까?
내가 보기에 노라와 잘 안 된 걸로 그의 운은 다한 것 같은데, 즉 그녀 곁을 떠난 후 막노동자로 인생을 마감할 것 같은데 또 한 번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찾아온다
은행 강도에게 인질로 잡힌 프리다를 대신해 총에 맞은 후 놀랍게도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뭐가 딱딱 들어 맞으려고 프리다는 부잣집 딸이었고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결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고마워 한다
프리다는 왜 이 보잘 것 없는 남자에게 반했을까?
아무래도 헥터에게 큰 매력이 있나 보다
책을 읽을 때는 코메디 배우라길래 그저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논리적으로 꿰맞추다 보니까 그가 엄청나게 잘 생겨야 (장동건이나 송승헌처럼) 여자들 마다 그에게 반한 게 설명이 된다

프리다와 헥터는 시골로 이주해 농장을 짓고 영화를 찍으며 살아 간다
둘 사이의 아들은 벌에 쏘여 일찍 죽었다
이 부부는 그 충격을 이기기 위해 영화 찍는 일에 몰입한다
사람마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열정이 있기 마련인데, 짐머가 헥터의 전기에 매달린 것처럼 프리다와 헥터 역시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을 영화 촬영에 몰두한다
책에서는 헥터만 몰입하는 걸로 나오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프리다 역시 헥터 같은 열정으로 매달린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많은 돈이 들어가는 일을 평생 후원했을 리 없고 그가 죽고 난 후 편집증적으로 영화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부부는 쿵짝이 잘 맞았다
아마 프리다는 아들이 죽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헥터와 함께 영화에 매달렸을 것이다

어쨌든 헥터가 죽은 뒤 그의 영화는 모조리 파기된다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고 없애기 위해 찍은 영화라...
사실 일기나 다른 글들도 스스로의 만족감을 위해서 쓴다
즉 남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기 위해 쓰는 게 아니라 내적 만족감을 위해 쓰기도 한다
영화라고 다를 게 있겠는가?
만드는데 돈이 좀 들어가서 그렇지 개인적인 만족을 위해 제작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내면적인 기록이라면 남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가들도 가끔 일기나 유고들을 없애 달라고 하지 않는가?
헥터는 자신의 전기를 쓴 짐머에게만은 그 작품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프리다를 설득해 그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프리다는 완전무결성을 위해 첫 약속처럼 누구에게도 공개해서는 안 된다고 고집을 부린다
결국 헥터가 죽기 전 날 도착한 짐머는 그와 단 5분 밖에는 얘기를 못하고 그의 단편 한 작품을 보게 된다
짐머는 프리다가 헥터를 질식사 시켰다고 추리한다

정말 프리다는 헥터가 모든 것을 발설할까 봐 두려워 그를 살해했을까?
90이 넘은, 오늘 내일 하는 노인이니 죽인다고 큰 죄책감은 없겠지만, 더구나 그녀 자신도 80이 넘은 나이니 삶에 미련 같은 것도 없겠지만, 헥터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킬까 봐 평생 사랑한 남편을 죽이기까지 한 걸 보면 그녀 성격도 보통은 아닌 것 같다
프리다는 앨머의 전기마저 불태워 버릴 정도로 집요했다
결국 그 편집증적인 태도 때문에 앨머에게 우발적이지만 죽기까지 했다
프리다는 뭐가 두려웠을까?
세상에 헥터의 작품이 알려지면 자신들이 평생 쏟아 부은 노력이 헛것이 된다고 생각했을까?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고 자기만의 세계에 갖히기는 한다
한편 모든 것을 정리할 때이므로 너그러워지기도 하는데, 하여간 프리다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꽤나 완고한 여자였을 것 같다

짐머가 본 단 하나의 단편에서도 나오듯, 헥터는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영화를 곧 파괴하므로써 죄책감을 덜려고 한다
"프로스트의 내면적 삶" 을 보면 작가인 프로스트는 사랑하는 클레인이 죽어가자 자신의 소설을 하나씩 불태운다
클레인은 죽기 전 그 소설의 완성을 보려고 간절히 소원하는데 어느 순간 프로스트는 자신이 소설을 없애 버려야 그녀가 살아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각별한 노력을 기울여 만든, 가장 가치있게 생각하는 것을 파괴하므로써 사랑하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
헥터는 브리지드에게 속죄하는 심정으로 평생을 바쳐 만든 영화를 모두 파괴하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야 자신에게도 형벌을 내리는 것일테니까
프리다의 경우는 벌에 쏘여 죽은 어린 아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담감을 벗기 위해서였을까?
어쨌든 자기 학대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드문 경우라 하겠다

아주 재밌고 인상적인 책이다
특히 마지막 결론이 마음에 든다
짐머는 앨머의 성격상 헥터의 단편들을 복사해 놨을 거라 믿는다
사실 그랬을 가능성이 크다
헥터의 전기를 7년씩이나 쓰면서 그의 과거 행적을 전부 조사하고 다닌 앨머가, 헥터가 죽는 즉시 불타 없어질 영화들을 그대로 방치했을 리 없다
이 부부는 헥터가 죽으면 영화도 없앨 거라고 늘 공언했기 때문에 앨머는 분명히 모종의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더구나 그 영화는 그녀의 아버지가 촬영하고 어머니가 주인공으로 출연한 것이다
말하자면 헥터와 프리다만의 영화는 아니라는 얘기다
짐머는 앨머가 어딘가에 그 영화들을 복사해 놨을 거라 믿고 누군가가 영화를 발견해 내면서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리라 믿는다
멋진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난 사실 앨머와 헥터의 관계를 의심했다
프리다가 앨머에게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거나, 앨머가 성적으로 액티브한 걸 보면 둘 사이에 뭔가 모종의 거래가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오스터는 진부한 형식을 거부한다
또 짐머 역시 평생 앨머만 그리워 하며 사는 게 아니라 (사실 둘은 겨우 8일 동안 알고 지냈을 뿐이다)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이룬다
그는 모든 것을 비밀에 부치려 하지만 심장마비를 겪은 후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른다는 부담감 때문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특별한 사건을 기록한다
그리고 헥터처럼 죽은 후 출간하라고 유언한다
그러니까 헥터가 살아 있을 때는 이 책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또 이 책은 헥터와 앨머가 죽고 프리다가 모든 기록을 없애 버렸으므로 증거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환상의 책" 이 되는 것이다!!

폴 오스터는 참 대단한 작가다
그가 비록 문학적으로 뛰어난 작가는 아닐지라도 독자에게 이 정도의 재미와 생각할 꺼리를 준다면 훌륭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문열의 소설을 읽는 기분이다
물론 둘의 차이는 명백하지만 말이다
그가 한국 사람이라면 이 독후감을 보내고 싶다
과연 그 자신은 자기 소설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도 처음에는 책이 안 팔려 야구 게임을 팔러 다녔다고 하니,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글을 써야 하려나 보다
(역설적이지만 그가 훌륭한 작가가 아니었다면 백날 글 써도 여전히 게임이나 팔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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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마태우스 > 바람둥이의 비극?
환상의 책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폴 오스터의 책은 이번이 4번째인데, 잘나가다 '이게 뭐야?' 소리가 나오게 했던 전작들에 비해 이번 책은 끝까지 긴장을 풀 수 없게 만드는 재미가 있었다. 시작부터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오스터의 흡인력도 여전히 탁월했고.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만, 이 책은 '미남 주변에는 이쁜 여자가 꼬인다. 하지만 이쁜 여자를 너무 밝히면 망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게 아닌가 싶다. 잘생긴 영화배우 헥터는 소문난 바람둥이다.
[헥터는 몇명인지도 모를 예쁘장한 여배우들과 계속 놀아났다....함께 침대로 가고 하기를 즐기면서]

그런 그가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녀가 오후 세시에 그의 집으로 찾아오는데, 다섯시경이 되자 그들은...바닥에서 알몸으로 뒤엉킨 채 이리저리 구르며...' 대체 어떻게 생긴 여자길래? '생기발랄한 표정으로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적어도 2, 3일에 한번씩은 그녀와 함께 지냈다'

하지만 헥터는 다른 영화를 찍다가 엄청난 미인을 만난다. '그녀에겐 야성적인 기질...눈을 떼지 못하도록 하는 동물적인 에너지가 있었다' 한마디로 도발적인 매력이 있었다는 얘기다. 헥터는 한달간 67통의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녀를 사로잡는다. 잘생기기만 해서 되는 건 아니고, 가끔은 이런 노력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그는 그전 여인에게 '바쁘다고 둘러'대며, 야성녀와 결혼하기로 맘먹는다. 하지만 일이 잘 안되어 두 여인이 싸우는 바람에 헥터는 도망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는 그전 여인의 고향으로 가 그녀 아버지가 하는 가게에 취직하는데-성격도 이상해!-거기서 그전 여인의 동생을 만난다. 동생의 미모는 어땠을까. '얼굴 전체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서 언니보다 한두 급수는 예뻐 보였다' 사람이 잘생겼다는 건 참으로 좋은 일이라, 언니가 그랬던 것처럼 동생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되고, 심지어 결혼해 줄 것을 요구하지만, 그는 황급히 거기서 도망친다. 양심상 그러기도 했고, 또다른 문제도 있어서.

낯선 도시에 온 헥터는 우연히 은행에 갔는데, 거기서 또 미인을 만난다. '그녀는 감탄스러울 정도의 미모에...자부심 강한 눈빛...' 그때 하필 은행강도가 그녀를 인질로 잡고, 헥터는 그녀를 구하려다 총을 맞는다. 그녀가 보기엔 생명의 은인인 셈,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그녀는 헥터와 결혼을 한다. 이건 헥터가 잘생긴 탓도 있는 것이, 내가 그랬다면 고맙다고 사례나 좀 하고 말았을 거라는 거다. 그 후 헥터는 제법 잘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속사정을 따져보면 사는 것같지 못하게 살았는데, 그러니까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여자를 울리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폴 오스터가 이 서평을 못보는 게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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