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기획 29주년 기념 특별 한정판 버지니아 울프 전집 2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희진 옮김 / 솔출판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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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소설이 다 있다니 — 처음에는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페이지를 건너뛰듯 더듬으며 읽어가자 차츰 그 낯섦에 익숙해졌고, 마침내 깊은 감동에 이르렀다.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감할 것이다. 여섯 인물의 내면 독백이 교차하며 흘러가는 구성은 희곡처럼 느껴지다가도, 어느 순간 시처럼 울린다. 그것은 소설이라기보다, 하나의 서사시라 불러도 좋을 작품이다.

브루노 스넬이 『정신의 발견』에서 말했듯, 서구 정신의 첫 단계는 호메로스의 언어에서 비롯되었다. 언어가 세계를 만들었다면, 울프의 『파도』는 현대 정신을 새로이 빚은 서사시라 할 수 있다. 그녀의 문장은 ‘나’와 ‘타자’의 경계를 허물며 존재의 울타리를 무너뜨린다. 그 언어의 진동은 장자의 세계관만큼이나 충격적이다.

사물의 본성을 통찰했다는 점에서 루크레티우스와 장자, 그리고 울프는 서로 닮아 있다. 그들의 언어는 죽음을 두려움이 아닌, 사물과의 합일로 이해한다. 죽는다는 것은 단지 파도나 바위,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되는 일이다.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은, 우리가 모두 동일한 물질적 존재임을 가르쳐준다. 그 인식이야말로 삶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하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게 한다.

카뮈가 『시지프스 신화』에서 반항하는 인간을 넘어 ‘사랑하는 인간’을 이야기했듯, 이타성은 바로 그 자각에서 싹튼다. 울프의 세계에서 중년의 버나드는 그러한 존재다. 그는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의 적에 맞서 투사로 성장하며, 그 반항 속에서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파도는 해변에 부서졌다.”

그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파도가 부서짐으로써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된다.
삶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파도의 리듬처럼, 멈추지 않는다.

이제 묻노라,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버나드, 네빌, 지니, 수잔, 로우다, 그리고 루이스에 관한 이야기를 해왔지만 나는 그들 모두인가? 별개의 존재인가? 모르겠다. 우리는 다 같이 여기에 앉아 있었지만 퍼서벌은 죽었고, 로우다도 죽었다. 우리는 흩어져서 지금 여기에 없다. 하지만 우리를 갈라놓는 어떤 장애물도 찾아볼 수 없어. 나와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경계도 없어.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너다’라고 느꼈다. 우리가 그토록 대단하게 생각하는 차이도, 그렇게나 열정적으로 소중히 여기는 개성도 정복되었다. 그렇다, 친애하는 컨스터블 부인이 스펀지를 들고 머리부터 따뜻한 물을 몸에 들어부은 이래 나는 민감한 지각력을 지니게 되었다. 내 이마에는 퍼서벌이 낙마했을 때 받은 상처가 있다. 내 목덜미에는 지니가 루이스에게 키스한 자국이 있다. 나의 두 눈에는 수잔의 눈물이 가득 찬다. 저 멀리 로우다가 본 기둥이 금색 실처럼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이고, 그녀가 튀어올랐을 때 그 비상이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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