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종속적 자영업자에서 플랫폼 일자리까지 서해문집 사회과학 시리즈
전혜원 지음 / 서해문집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노동에 대해 알지 못했던 개념들을 습득했다. 사람은 계속 배워야 한다.
사회보험이 고용이 아니라 소득을 상실한 이들을 위한 보험으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점, 자영업이 선택이 아니라 고용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불가피함일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깨닳았다.
노조는 단순히 집단 이기주의를 실현하는 이익집단에 불과하고, 이들의 승리는 노동자들의 임금 격차만 벌릴뿐 사회적 정의와는 무관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산업별 교섭이라는 개념은 처음 접했는데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임금이 자격이나 신분에 대한 보상이 아닌 성실한 노동의 대가가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공정과 정의를 가장한 젊은 세대들의 보상심리의 문제점도 동의하는 바이다. 도저히 연대라는 개념도 없고 자기 성찰도 모르는 최악의 세대가 탄생했다. 그래도 인간이라서 존중해 주지만 결국 스스로 자멸해 가기를 더 바란다.

한국사회는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서 확대해나가는 과정에서이해관계 세력들 간에 파국적인 갈등과 분열을 겪었지만, 건강한자와 병든 자, 부자와 가난한 자의 행복과 고통을 서로 기대게 함으로써 모범적인 제도를 만들 수 있었다. 전혜원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나는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사례는 지금의 갈등과 대립을조정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강자와 약자 사이의대등한 경쟁은 공정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은 한국사회에서 경험을 통해서 증명되었다. 합리주의의 수리개념으로 보면, 정의가 현실 속에서 구현된 모습은 다소 불합리해보인다. ‘서로 기대기‘ 이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그러나 ‘기대기‘를 제도화하려면 정치력이 필요하다. - P7

문제는 노동시장이 더 이상 직접고용으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기존 노동법으로 포괄할 수 없는 ‘자영업자‘가 자꾸만 생겨난다는 점이다. ‘자율적으로‘ 새벽배송에 나섰다가 골반뼈가 부서진 최서경 씨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지금까지는, 노동자가아니지만 ‘예외적으로 보호해주는 조치‘를 확장해오는 일의 연속이었다. 이 과정은 더디고, 우연에 의존한다. 이런 방식으로는 노조로 조직되거나 특별히 눈에 띄는 업종의 사람들만 순차적으로보호할 수 있을 뿐이다. - P49

‘건강보험처럼 고용보험도 모든 일하는 국민에게 확대하자‘는주장 역시 코로나19를 계기로 공감대를 얻었다. 이른바 ‘전 국민고용보험‘이다. 언뜻 당연해보이지만, 실은 혁명에 가까운 변화다. 왜 그런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정치권과 학계에서 두루 인정받는 복지제도 연구자다. 그는 "기존 고용보험은 회사에 고용된 사람, 즉 노동자만을 대상으로 하는 제도였다. 전국민 고용보험은, 노동자 기반에서 취업자 기반으로 사회보험의 틀을 바꾸겠다는 의미다"라고 말한다. 취업자란 노동자보다 넓은개념이다. 수입을 위해 한 시간 이상 일한 모든 사람을 포괄한다. - P60

"나는 안정된 고용을 가지고 있지만 불안정 노동자들을 위해서 보험료를 더 낼 수 있느냐. 전 국민 고용보험이던지는 질문이다. 이걸 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새로운 사회계약이고 연대이기 때문이다. 안정된 고용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연대이고, 또한 세대 간 연대다." - P69

한국은 이미 ‘제조 노동자 1만 명당 로봇 이용 대수‘ 1위인 나라다. 이 같은 극단적 자동화에는 노동조합의 묵인도 기여했다는평가가 있다. 회사는 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생산공정을자동화하고, 생산 유연성은 외주화로 확보해왔다. ‘정의로운 전환‘이란 기후위기에 대응해 급격한 산업전환이 일어날 때, 그 과정이 모두에게 정의로워야 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한국사회는 준비가 되어 있을까. 성큼 다가온 전기차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 P114

한마디로 ‘데이터 기반의사결정‘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이 물류 혁명의 본질이다. - P122

그런 한편 쿠팡은 막대한 돈을 쏟아부으며 로켓배송 관련 인력을 유지하면서도, 큰 규모를 바탕으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추구하는대신 공격적인 투자로 경쟁자를 몰아내는 ‘약탈적 가격 책정‘이다. 플랫폼 기업에게 이는 합리적 전략이다. 이용자가 많아질수록효용이 올라가므로 초반에 얼마나 많은 이용자를 확보하느냐가 관건이어서다. - P133

그런데 공기업의 진정한 주인은 시민이다. 공기업 경영진은 정부를 대리하고, 정부는 시민을 대리한다. 인천공항 정규직이 시험한 번으로 사실상 평생 얻고 있는 결과는 납세자의 이익에 충실한가? 시민이 제공받는 서비스의 질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공채시험으로 얻는 유무형의 이익이 100% ‘노력‘ 또는 ‘재능‘에 따른것인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다. - P174

이쯤 되면 공정은 우리 시대의 블랙홀이다. 일단 ‘불공정 논란‘에 불이 붙으면, 논의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 논의를 뒤엎을 힘이 있는 의사 집단은 자신들의 의지를 실제로 관철했다. 의사 파업은 인천공항 정규직화 논란의 극단화된 버전이라 할 만하다. - P180

저성장 사회가 오랫동안 지속되면서 젊은 세대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 예전만큼 질 좋은 일자리가 많지 않고, 학벌이나 자격증이 더 이상 괜찮은 직업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밥그릇 싸움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의사나 (공기업) 정규직 같은일자리를 노력해서 얻게 되었는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나 공공의대같은) 구조적 개입이 ‘나‘의 노력을 헛수고로 돌린다며 일단 반발하고 본다. 좀 더 넓은 시각으로 사회적 불평등이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자신에 대한 공격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때 공정성을 들이대는 건 굉장히 문제적이다. 사실그 공정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뿐이다. ‘내밥그릇을 빼앗아가거나 내 노력을 보상해주지 않아서 불공정하다‘는 것이지 사회적 공정성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들이대면서도 ‘절차적 공정성이 문제‘라며 이를 은폐한다.
미국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웨포나이즈weaponize(무기화)라고 한다. 담론 싸움에서 (공정성 같은 특정 단어를 무기화하는 거다. 사실 공공의대가 얼마나 복잡한 문제인가? 이 정책을 둘러싸고 검토해야 할 갈등이나 세부사항이 정말 많다. 인천공항 정규직화 역시 풍부하고 섬세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의제인데, 공정성이라고 말하는 순간 논의가 활발해지는 게 아니라 차단되어버린다. 나아가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이 말할 자격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들은 ‘절차적 공정성‘ 같은 정의로워 보이는 개념을 들고나온다. 그 순간, 비정규직은 갑자기 불공정하게 수혜를 입은 것처럼 되어버린다. 결코 그렇지 않은데도. - P182

대한의사협회의 카드뉴스가 드러낸 건 지난 20년간 양성된 의사 집단의 엘리트주의, 능력주의, 성과주의다. 우리가 그만큼 성적이 좋은 엘리트들이고, 한번 이겼기 때문에 계속 모든걸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인데, 지적한 것처럼 공정이나 정의 같은단어를 갖다 붙였을 뿐이다. 특히 이번에 공공의대나 의사 증원에반대하기 위해 집단휴진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전면에 나선 집단이 필수의료를 공급하는 대학병원의 전공의였다는 건, 기본적인직업윤리나 ‘전문가주의‘조차 잠식당했다고 봐야 한다. 이렇게 양성한 의사들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필수적이고 공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심각한 의문을 던져주었다. - P185

공채에서 또 반복될 것이다. 취업시장의 서열이란 그 앞의 교육불평등에 따른 서열일 거고, 그건 아마 부모 소득의 서열과 맞아떨어지지 않겠나? 이렇게 가는 구조를 계속 둘 것인지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 P190

그렇게 위험은 흘러서 하청에 고인다. - P242

중소 영세기업의 지불능력과 지속성을 고려할 때, ‘모든 노동자들이 연공급을 받아야 한다(연공급의 보편화)‘는 대안엔 현실성이 없다. 격차를 해소하는 데 한계가 뚜렷하다. 연공급이 사회적기준으로 작동하긴 어렵다는 이야기다. ‘근속연수‘와 그 사람이다니는 기업의 지불능력, 그리고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현재의 노동시장이 더 정의로운지, 아니면 그사람이 하는 일 (직무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노동시장이 더 정의로운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 막연하게 ‘원·하청 격차를 줄이자‘고 주장하는 것보다 ‘원청이든 하청이든 같거나 비슷한 일을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가 격차 축소에 훨씬 강력할 수 있다. - P288

한국사회에서 20년 가까이 떠도는 구호가 하나 있다. ‘산업별(산별) 교섭 법제화‘다. 지금은 기업마다 있는 노동조합이 각 기업 사용자 측과 ‘우리 회사 임금‘을 논의한다(기업별 교섭). 이 경우 개별회사의 지불 능력과 노조의 힘에 따라 회사마다 임금이 달라진다. 하지만 특정 산업의 노동자 전체를 대표하는 노조가 해당 산업 사용자 단체와 협상을 벌인다면(산업별 교섭), 어떤 기업에 속해 있든같은 일을 하면 비슷한 임금을 받게 될 것이란 논리다. - P3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끌림부터 봤는데 점점 겉멋은 사라졌고, 농후한 감성으로 따듯해져 가는 느낌이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할수록 희미하고, 또 차이가 없다고 할수록 선명하다. - P19

누굴 좋아하는 것이 나 스스로에게 보내는 ‘알람‘이라고 한다면사랑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내리는 ‘명령‘이다. - P21

우리는 한 끼를 소화시킨다음, 타이머에 맞춰 또다른 한 끼를 먹기 위해 그저 한 끼와 한 끼 사이의 간격을 이동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무리 모른 체하려 해도, 배가고프다는 사실은 지긋지긋하면서도 참으로 눈물겹게도 인간적이다. - P107

친구로부터 그를 경멸하듯 함부로 내뱉는 소릴 듣자니 참 딱하고아찔했다. 세상을 살면서 혼자 있는 것을 단 한 번도 꿈꾼 적이 없는사람이라는 게 들통나버린 것이다. 단언컨대 그 친구는 아내와 아이가 자신을 떠나버리면 대책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대로에 퍼질러앉아 울부짖기나 할 사람이다. 가여운 사람. 자신과는 다른 철학을 부여잡고 혼자 세상을 살며, 혼자 세상을 떠도는 친구를 옆에 두고서그런 말을 서슴지 않다니.
나는 말해주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으며 혼자더라도 당당할 수 있으니 혼자인 사람에 대해 함부로 말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끔 혼자이고 싶은 것은, 우리에게 분명어딘가 도달할 점이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을. 내 밑바닥의 어쭙잖은 목소리를 스스로 듣게 된다면 스스로를 객관화할 수 있다는것을.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주겠다.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혼자 있어 보질 않았으면 혼자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또한 보통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 P122

여기, 세상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가 있다. 동시에 의미가 간명한단어이기도 하고 또 역시 세상의 그 어떤 말로도 번역하기가 난감한단어라고 하는데 바로 Mamihlapinatapai(마밀라피나타파이)다. 칠레 최남단 섬에 사는 소수민족인 야간Yaghan족이 쓰는 단어로 뜻은,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면서도 어떤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먼저마음을 앞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다. 아주 긴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타국의 언어로 번역하기 가장 난감한 단어로 기네스북에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 P236

대답이 시원치 않았다. 관계에 체한 것 같았다. - P247

하라는 것이다. 언뜻 화장실 매너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도시인일수록 살면서 타인들을 향해 얼마나 섬세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알게 해주는 일화다. - P29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 오피스 오늘의 젊은 작가 34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맛이 간 지 오래지만 그 정점을 찍은 작품.
현명한 척 잘 나가다 막판에 성격을 바꿔 행사를 말아먹는 임강이 (그리고 홍지영과 마지막에 주고받는 훈훈한 문자는 무엇??), 강혜원의 스토리를 위해 이랬다 저랬다 파전 뒤집듯 편리하게 입장을 바꿔가며 써먹는 선차장, 초반에 뭔가 대단한 인물인 듯 등장시켰다가 후반부에 감당을 못해 포기한 듯한 오균성과 송라희, 그 사이에 도저히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행동으로 스토리 사이사이 끼워 맞춘 백대표, 뜬금없는 알렉스와 홍지영의 러브라인. 역시 막장드라마를 보고 자란 세대들은 등단하고 이딴 소설을 배설하는 것도 부끄러워하지 않는구나.
캐릭터 정체성도 일관성도 없이 뻔하기만 한 극적 요소들로 떡칠해 놓은 쓰레기임.

홍지영은 오균성을 보며 예의에 대해 생각했다. 오균성은아마 지금 자신이 매너를 잘 지키고 있다고 생각할 거였다.
불편하지 않게 자연스러운 대화 자리를 만든 자신의 모습을자랑스럽게 느낄지도 몰랐다. 홍지영이 보기에는 전제부터 잘못됐다. 오균성은 매너가 아니라, 예의가 없는 거다. 스킬이 없는 게 아니라, 상식이 없는 거다. 더 놀라운 건 강혜원이었다.
그런 것 따위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한 손에 다이어리를들고 오균성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간간이 다정한 박수를 치는, 체득된 사회화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저 사람. - P86

어릴 때 홍지영은 자신이 지구에 떠다니는 먼지 같다고각하곤 했다.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회사에서일을 하고 늙어 가다 결국 죽는 이 거대한 연극이 한없이 유치하게 느껴졌다. 그것 좀 하자고 일을 하며 청춘을 바치는꼴이라니. 그런데 언제부턴가는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청춘, 꿈, 열정 따위는 애초에 인생에 없었던 단어처럼 멀어졌다. - P96

"고담 시티 같은 신도심에서는 회사 식당 아니면 먹을 데가 마땅치 않거든요. 이 나라의 성실함과 기술이라면 5년 뒤쯤 도시 하나가 뚝딱 완성되겠죠. 개성이야 하나도 없겠지만." - P1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분이 없는 기분
구정인 지음 / 창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나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현실과 미래가 다 들어있는 만화이다.

누군가를 보낸다는 건, 그리움, 슬픔만이 아니라 쌓인 분노를 털어낼 시간도 필요한 일이에요. - P187

나는 겁이 났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보려고, 자꾸 괜찮다고만 했었나보다.
마음을 아주 조금 열어봤더니, 역시나 불안하고 무섭다.
모르는 척하고 얼른 도로 닫아버리고 싶지만, 그러면 고장난 데를 고칠 수 없겠지. - P1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부) 산싱촌의 마을 사람들은 ‘목구멍병’으로 나이가 40이 되기 전에 죽는다.
마을 촌장 쓰마란도 목구멍병이 걸린다. 쓰마란의 동생 쓰마후와 쓰라루, 처남 두바이는 현의원에 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기계가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쓰마란의 병원비를 마련하러 교환원으로 가 피부를 팔지만, 화상 환자였던 세무국 국장이 과거 산싱촌 사람들이 피부를 팔고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것을 빌미로 협박을 하여 피부를 판 값을 받지 못한 채 마을로 돌아온다.
오랜 기간동안 혼외 애정관계에 있던 란쓰스가 쓰마란과 그의 억세고 고집스러운 아내 두주추이의 이혼을 조건으로 현으로 나가 ‘인육장사’(성매매)를 하며 쓰마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로 한다. 란쓰스는 쓰마란의 딸 쓰마텅의 시중을 받으며 인육장사를 시작하지만, 쓰마텅은 자신이 더 어리기 때문에 란쓰스 보다 몸값이 높아 아버지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쉽다는 것을 깨닫고 인육장사에 나서려 하지만 란쓰스가 이를 만류한다. 이를 란쓰스의 방해로 여긴 쓰마텅은 란쓰스와 사이가 틀어져 산싱촌으로 돌아와 두바이의 아들인 두류와 혼인한다.
란쓰스가 번 돈으로 수술에 성공한 쓰마란은 8년 전 마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했다 중단된 링인거 수로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사람들의 재산을 내놓게 하고 여자들에게는 매춘을 강요하여 공사 자금을 모은다. 수로 개통 전 공사를 마친 산싱촌의 남자들은 쓰마루를 포함해 공사장에서 사망한 일곱 구의 시신을 들고 돌아오고, 두류와 다바오 둘은 링인거 상류로 수로를 개방하러 간다. 쓰마란은 아내 두주추이보다 란쓰스를 먼저 찾아가지만 란쓰스는 인육장사를 하다 얻은 부인병으로 죽어있었다. 수로를 개방하러 간 두류는 수로 시작점이 8년 동안 공장과 도시의 폐수로 오염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자살을 한다. 다바오가 두류의 시신을 들고 산싱촌으로 도착하자 오염된 물이 링인거 수로에 가득 차오른다. 오염된 물을 보고 놀라 쓰마란을 찾으러 간 쓰마후는 란쓰스 옆에 쓰마란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바로 자살해 버린다. 산싱촌 사람들은 공사 중 사망한 일곱 명의 시신과 쓰스, 란, 후를 매장하고, 그제서야 두바이는 몇 년 전 서양인 조사단이 왜 산싱촌에 왔다 갔는지를 알 것 같았다.
(산싱촌의 목구멍병은 공장 등의 폐수로 오염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발생한 불소중독 현상이었고, 이를 조사하러 온 서양인 조사단은 며칠간 산싱촌에 머물다 치명적인 불소수치에 기겁하며 돌아갔다.)

(2부) 촌장 란바이수이가 목을 매 자살했다. 란바이수이의 딸 란쓰스는 아버지가 촌장 자리를 쓰마란에게 넘겨준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하고, 이로써 쓰마란이 산싱촌의 촌장이 되어 란쓰스와 혼인을 서약한다. 쓰마란이 촌장이 되자 향 간부 두옌의 딸인 두주추이가 산싱촌 밖에서의 혼인 금지규정을 어기고 마을 밖에 시집을 간다고 선언한다. 란쓰스는 촌장의 명예를 걸고 두주추이의 행실을 저지하려 하지만 두옌의 아들인 두바이는 향 간부인 아버지를 방패 삼아 두주추이를 옹호하며 쓰마란을 압박한다. 두주추이는 쓰마란에게 란쓰스 말고 자기를 신부로 맞아주면 마을 밖으로 시집가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하자 쓰마란은 촌장으로서의 체면, 두바이의 압박, 란쓰스를 향한 마음을 저울질하다 두주추이와 결혼을 한다.
쓰마란은 링인거수로를 마을로 끌어오면 마을 사람들이 40세를 넘게 살며 장수할 것이라고, 마을의 모든 재산, 관까지도 팔아 수로 공사자금을 만들어 공사를 시작한다.
두주추이는 임신하지만 조산하게 되고, 아이를 멀리 묻어주라고 거우얼에게 부탁하자 란쓰스는 거우얼에게 더 높은 값을 치러주며 아이를 두주추이의 앞마당에 묻어버라고 한다. 이 사실을 안 두주추이는 며칠 병을 앓다 쓰마란이 있는 공사현장을 찾아간다.
두옌은 목구멍병이 들자 향에서 통신원으로 일하는 아들 두바이에게 자신을 관에 생매장해달라고 부탁한다. 두바이는 두옌이 자신의 관을 쓰마란이 팔아버릴 것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아버지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두옌을 관에 생매장하고, 조만간 돌아와 무덤에 묻어줄 것을 약속하고 떠난다. 하지만 그 사이 쓰마란과 주추이가 두옌의 집에 들려 두옌의 관을 발견하고는 두옌의 시체를 꺼내 멍석에 말아 매장하고, 관은 팔아 수로 공사 자금에 쓴다.
쓰마란의 어머니도 목구멍병에 걸려 죽을 날이 다가오자 쓰마란에게 비녀를 주며 자신이 묻힐 때 쓸 갈대로 엮은 관을 구해달라고 한다. 쓰마란은 옆 마을로 비녀를 팔러 간 길에 한 여인에게서 시장 개방 소식을 듣게 되고, 마을 사람들에게 모두 교환원에 가 피부를 팔아 수로 공사 자금을 마련하게 한다. 마을 사람들이 교환원에서 피부를 팔고 돌아오고, 쓰마란이 사흘 동안 기절한 듯이 내리 잔 뒤 일어나 피부를 판 돈을 수거하러 나오지만, 마을 사람들은 전부 피부를 판 돈을 밑천으로 장사를 하러 나가고 없었다. 통신원인(국가 간부) 두바이는 시장개방을 했으니 다른 마을과 같이 산싱촌도 장사를 하고 토지분배를 주장하며 쓰마란과 맞선다. 결국 토지는 분배되었고, 쓰마란은 자신의 동생들마저 피부를 판 돈으로 신부를 얻는 등 공사자금을 다 써버리자 깊은 상실감에 빠져 좌절한다.

(3부) 촌장 쓰마샤오샤오가 죽고 까마귀에 쪼아먹혔다. 쓰마샤오샤오의 장례를 주관하는 란바이수이가 촌장이 되었고, 마을에 목구멍병이 걸리고도 살아남은 촌장의 아내 두메이메이가 흙을 갈아엎은 땅에서 난 곡식을 먹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싱촌은 그때부터 마을의 땅을 갈아엎으면 장수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 란바이수이는 쓰마샤오샤오의 아들 쓰마란에게 피부를 팔아 수레바퀴를 사와 밭을 갈아엎는 데 일조하면 딸 란쓰스를 쓰마란에게 시집보내준다고 했다. 이에 쓰마란은 바로 교화원에가서 피부를 팔고 수레바퀴를 사오면서 진에서 대규모로 땅을 갈아엎는 사업을 벌인다는 소식도 전해온다. 쓰마란과 란바이수이는 진으로가 루주임을 찾아 산싱촌을 전답시범운영마을로 선정해 인력 동원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하지만 루주임의 어머니가 병치레를 하여 소식이 없자 두옌의 아내 쓰마타오화가 루주임 어머니를 간병하러 나서고, 그로 인해 산싱촌에 대규모 인력이 동원된다. 루주임은 촌장인 란바이수이에게 촌장을 주임으로 명칭을 바꾸고 당원에 가입하여 인민공사 지도를 받을 것을 제안하지만 란바이수이는 루주임이 쓰마란과 같은 젊은 사람이 주임을 해야한다라는 말에 질투심을 느껴 산싱촌의 체제를 바꾸지 않는다. 쓰마란은 루주임의 나팔수 역할을 하며 자신의 신분이 상승할 것을 내심 기대하지만 쓰마란이 아닌 두옌이 향의 간부가 된다. 쓰마란은 두옌이 향의 간부가 된 이유가 쓰마타오화와 루주임을 내연관계에 있었기 때문을 알게 되고, 이게 들통난 현장에서 쓰마란은 루주임에게 자신을 촌장이 되게 해달라고 압박한다. 그리고 쓰마란은 돌아오는 길에 란바이수이와 자신의 엄마 역시도 부정한 관계임을 목격한다.
쓰마타오화와의 관계가 시들해진 루주임은 산싱촌의 인력을 철수할 것을 결정하고, 쓰마타오화에게 루주임을 설득해줄 것을 부탁하러 가지만 쓰마타오화는 란쓰스같은 젊은 여자가 나서야 루주임을 설득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란바이수이는 긴급 회의를 열어 루주임을 접대해야 한다는 안건을 내놓다 마을 사람들에게 몰매를 맞지만, 란쓰스가 직접 루주임을 접대하겠다고 나서고, 란쓰스의 엄마는 그 날 음독자살을 한다. 대규모 인력은 다시 산싱촌으로 돌아와 마을 땅을 다 갈아엎었고, 일을 마친 인력들이 마을에 빠져나가면서 마을의 처녀들도 인력들과 같이 도주해 버린다. 땅을 갈아엎어도 마을의 목구멍병은 없어지지 않았으며, 란바이수이가 목구멍병이 생기자 그는 목을 매어 자살해 버린다.

(4부) 산싱촌에 메뚜기떼가 나타나 흉년을 예감한 두옌은 마을을 돌며 빌려줬던 곡식을 수거한다. 며칠 후 다시 나타난 메뚜기떼가 사흘 동안 마을의 곡식을 전부 먹어치우고 쓰마샤오샤오가 사수하려던 유채밭도 모두 쓸어버린다. 곡식을 전부 잃은 산싱촌마을은 메뚜기 시체를 양식으로 먹기 시작하는데, 어린 란쓰스는 메뚜기 사체를 주우러 다니다 만난 어린 쓰마란에게 란바이수이가 촌장이 유채밭을 사수하려다 마을 곡식을 다 잃었다고 비난한 것을 전한다. 아직 순수한 쓰마란은 란바이수이의 말을 곱씹으며 자신이 꼭 훗날 촌장이 될 것이라고 말하고 란쓰스는 쓰마란이 촌장이 되면 자신이 촌장의 아내가 되고 싶다며 결혼을 약속한다. 두주추이는 이 둘의 행위를 지켜보다 란쓰스가 가고 난 뒤 쓰마란에게 자신도 아내로 맞아달라고 말하지만 쓰마란은 이를 무시한다.
기근이 계속되자 마을에서는 두껀이 아들을 다리 밑에 버리는 사건이 발생하고, 촌장인 쓰마샤오샤오는 두옌에게 곡식을 마을 사람들과 나눠 가질 것을 요청하지만 두옌이 이를 거부하자 실랑이 끝에 쓰마샤오샤오가 두옌의 딸 두주추이의 뺨을 때리는 일이 벌어진다. 쓰마란은 아버지 쓰마샤오샤오에게 자신이 두옌의 집에 곡식이 숨어있는 곳을 알아내겠다며, 두주추이에게 결혼을 약속하겠다며 곡식을 숨겨둔 자리를 알아낸다. 마을사람들이 두옌의 집의 곡식을 털자 쓰마란은 두바이와 두주추이에게 죄책감을 느끼고, 두바이와 두주추이는 쓰마란에 대한 증오심을 키워간다. 곡식을 분배하는 과정에서 촌장이 식구가 많은 란바이수이의 가족에게 곡식을 더 나눠주자 쓰마란은 라쓰스에게 들은 란바이수이의 말을 쓰마샤오샤오에게 전한다.
기근이 계속되고 마을의 사람들이 죽을 때마다 장례는 이어진다. 장례식에 따라 나온 아이들 중 하나가 지전(죽은자를 위한 돈)을 가로채는 일이 발생하자 놀란 큰 아이들은 장수경을 외어 부정을 물리치려 한다. 이를 본 아이들은 각자 집안에 조금씩 남은 곡식들을 재물로 바치며 장수경을 외우다 쓰마란을 사이에 둔 란쓰스와 두주추이의 갈등이 생기게 되고, 두바이와 두주추이는 무리에서 이탈해 재물을 바치지 않는다. 나머지 아이들은 이탈한 두씨집안 남매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기근이 점점 심해지자 두껀이 장애가 있는 딸을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돌고, 촌장은 종자로 사용할 양곡마저 마을에 분배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리지만, 장애아들의 몫은 분배하지 않기로 한다. 이에 반발한 마을사람들은 쓰마샤오샤오를 비난하지만, 마을 남자들이 결국 장애아를 부인들 몰래 마을 밖으로 내다 버리기로 한다. 쓰마샤오샤오가 마을 여자들을 이끌고 봄나물을 캐러 나간 사이 마을 남자들은 장애아들을 마을 밖으로 내다 버리고, 산나물을 캐고 돌아온 여자들은 넋을 잃을 정도로 혼비백산해버린다. 쓰마란은 장애가 있는 형 셋을 찾아나서고, 도랑에서 까마귀떼가 몰려있는 곳으로 가보니 마을에서 버려 죽은 아이들의 시체를 까마귀들이 쪼아먹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쓰마란은 마을에서 아이들을 모아 까마귀떼를 물리쳐 장애아들의 시체를 남녀 짝을 지어 묻어주고 죽은 까마귀를 가져와 까마귀 고기를 먹는다. 이 후 어른들은 계속해서 까마귀를 사냥해서 마을로 가져와 식육의 기간을 가지게 되는데, 알고 보니 어르들은 아이들이 묻어 준 장애아들의 시체를 다시 파내 미끼로 삼아 까마귀를 사냥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은 다시 장애아들의 시체를 어른들이 찾을 수 없는 곳에다 묻어준다.
까마귀 고기도 얻을 수 없게 되자 쓰마샤오샤오는 산싱촌사람들에게 구걸을 하기로 결정하지만 전국적으로 메뚜기떼의 피해를 입은 뒤라 다른 마을도 모두 기근인 상태였고, 쓰마샤오샤오도 목구멍병의 증상이 찾아온다.

(5부) 쓰마란은 어렸을 때무터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을 하며 자랐다. 마을사람들이 언제부터 40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가는데, 어느 날 마을에 84세의 장수한 노인이 나타나 자신의 장수비결이 유채즙을 먹은 덕분이라고 말하자 촌장 쓰마샤오샤오는 유채밭을 마을에 조성하는데 열중한다. 또 마을 사람들에게 대가 끊이질 않도록 출산을 장려하였고,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의 성애에 간접적으로 쉽게 노출된다.
과거로 올라가 쓰마란의 엄마가 동생을 임신하자 젖을 찾아 울어대는 사이 란쓰스의 엄마는 쓰마란을 안고 한쪽에는 쓰마란을, 한쪽에는 란쓰스에게 젖을 물린다. 이를 지켜보는 쓰마샤오샤오는 란쓰스의 엄마와 혼외 관계를 가지고, 란쓰스의 엄마는 쓰마샤오샤오에게 아들 이름에 란자를 붙여달라고 하여 쓰마란이라는 이름이 지어지게 되었다.
촌장 두상의 장례식에 아이들은 장례놀이를 하게 되었고, 관에 들어간 쓰마란은 시간을 거슬러 쓰마란의 엄마의 뱃속에서 나오는 탄생의 장면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소설은 시간의 순서를 역행하여 서술된다. 처음 등장인물들의 상식을 벗어나는 행동에 놀라지만 점차 그들이 겪었던 과거를 거슬러 가면서 그들의 야만적인 행태에 설득력을 얻게 된다. ‘나쁜 사람은 없다, 다만 안 좋은 환경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을 되새기게 된다.
소설은 인간의 삶과 죽음, 촌장이라는 권력에 대한 욕망, 끊임없이 갈구하는 성애에 대해 다룬다. 옌롄커는 <딩씨 마을의 꿈>에서도 에이즈 집단 감염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권력과 재물에 대한 탐욕을 그린 적 있다. 중국이 지난 과거 시장개방을 통해 부정한 부를 획득하는 과정이나, 공산주의 국가라는 특수성에서 나오는 권력의 부패를 보다 현실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점이 옌롄커 소설을 읽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최대 장점이다.
순수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시작한 쓰마란과 란쓰스, 두주추이의 감정과 애정을 쟁탈하는 과정과 결과는 처절하게 비참하다. 쓰마샤오샤오와 란쓰스의 엄마, 쓰마타오화와 루주임, 란바이수이와 쓰마란의 엄마 등 윗세대는 불륜으로 얼룩져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적절한 행각이 오히려 아랫세대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주는 계기가 되는 점이 특이하다. 특히 이런 과정에서 여성 착취의 면모도 드러나는데, 루주임에게 상납되는 란쓰스나, 쓰마란이 혼인을 빙자하여 두주추이에게 두씨 집안의 곡식창고를 알아내는 것 등은 남성의 권력과 정치에 희생되는 여성들에게 연민을 느끼게 한다.
장애의 존엄에 대한 문제도 장애를 구경거리로 만들어 서커스를 해 부당한 이익을 취하는 소설 <레닌의 키스>와 같이 옌롄커 소설의 주요 소재이다. 쓰마란이 어른들이 버린 장애아들의 장례를 주도적으로 처리하는 리더쉽을 보면서 작가의 장애의식에 대해 또 한 번 놀랐다.
<일광유년>은 산싱천 사람들의 병의 원인에 대해서 파고들고 이를 비판하는 책이 아니다. <딩씨 마을의 꿈>에서는 에이즈가 퍼져나간 이유와 그에 대한 벌을 선고하기는 하지만, <레닌의 키스>나 <작렬지>, <그해 여름 끝>과 같은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듯이 옌롄커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투쟁이 아닌 피해자들 안에서의 아귀다툼을 서술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소설에서 주석으로만 달려있는 불소중독은 첫 장의 마지막에 두바이 혼자 간파하는 내용으로 끝이날뿐, 산싱촌 마을의 목숨을 연장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들에 집착하듯 매달리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갈등을 그린다. 표면적으로 옌롄커의 작품이 중국에서 출간하지 못하는 이유는 공산당에 대한 명예를 훼손하기 때문인데, 사실 진정한 적을 파악하지 못하고 을들의 전쟁을 비꼬아 의식 개선을 조장하려 한다는 점이 공산당이 옌롄커를 불편해하는 이유 아닐까 싶다.
나의 좁은 경험을 기준으로 세운 잣대를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각자의 경험으로 마음속에 자리한 감정의 발로로 행동할 뿐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세 주요 인물들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느껴지는 작가의 연민의 시선, 중국인들에 대한 연민의 시선이다.

"먹여 살릴 수 없어서 버릴 거면 닭처럼 가슴이 튀어나온저 애를 내다 버려야지."
두건이 눈을 하얗게 뜨고 쓰마샤오샤오를 쳐다보며 말했다.
"괜찮은 애를 버려야 혹시 누군가 데려다 키울지 모르잖아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버리면 누가 데려다 키워주겠어요? 그거야말로 정말 죽으라고 내버리는 것이지요."
목구멍이 막힌 쓰마샤오샤오는 가슴이 쿵쾅대며 뛰기 시작했다. 그 밖에
"두껀 자네가 아직 사람인 줄 몰랐네. 당장 자루 하나 들고나를 따라오게." - P7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